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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18:47:02

야마카와 준이치

<colbgcolor=#000><colcolor=#fff> 야마카와 준이치(山川純一)
나이 불명[1]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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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만화가
활동기간 1982년~1988년
대표작 엉망진창 테크닉


1. 개요2. 일생3. 재평가4. 인기를 끈 이유5. 본인에 관한 정보6. 작품 일람
6.1. 단행본

1. 개요

일본만화가. 게이 잡지 薔薇族(장미족)[2]에서 활동했다. 애칭은 야마준(ヤマジュン).

2. 일생

1982년부터 1988년까지 6년에 걸쳐 장미족에서 단편 작품을 연재하였으며 단행본도 3권 출판했다. 하지만 그 이후론 적어도 야마카와 준이치의 명의로 일체 만화를 그리지 않아서 현재는 뭘 하고 있는지, 생존 여부 조차 알 수 없다.

기본적인 작풍은 마치 1970년대의 순정만화를 보는 듯하고, 작품들은 주로 갖가지 주제를 동성애와 연관시킨 스토리를 갖고 있으며 남성 캐릭터들의 과도한 섹스 어필과 억지스러운 성관계 전개가 특징이다.

3. 재평가

10년 이상에 걸쳐 햇빛을 보지 못했던 야마준 작품이 다시금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아야시 월드'라는 채팅풍 게시판에서 2002년 2월 ~ 7월경에 익명 투고자가 야마카와의 작품 엉망진창 테크닉에서 한 페이지를 스캔하여 불법으로 공개한 것이 발단이었다. 실제 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황당무계한 연출이나 대사가 웃음을 유발하여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조심스레 화제가 되었다.

2003년 3월경 후타바 채널에 야마카와의 작품이 공개되어 이 될 전조를 보였고, 거의 같은 시기에 2ch에서도 웃음의 재료로서 불똥이 튀어 인지도가 비약적으로 올랐다. 작품증의 대사인 "우홋! 멋진 남자...(미치시타 마사키)", "야라나이카(하지 않겠는가 - 아베 타카카즈)"는 순식간에 유행어가 되어 '야마준어'라 불리며 "우홋!"이라는 말이 게이를 의미하는 말이 될 정도가 됐다. 그 침투성이 2ch뿐만 아닌 모든 커뮤니티에서 커다란 움직임을 불러 일으켰다. 이 때문에 그 이전에 그려진 만화의 "우홋!"이라는 대사[3]가 모두 게이를 나타내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인기 상승에 힘입어 국립국회도서관에서 당시의 "장미족"을 찾아 작품을 발굴하는 사람이 나타났고, 거의 모든 작품이 웹상에 공개되었다. 이 인기는 일부계층에서 멈추지 않고 게임, 플래시, 이미지 컬렉션, 아스키 아트(AA)등의 2차 창작물이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온리 이벤트까지 개최되는 기염을 토한다. (…)

최종적으로 뒤늦게 팬들이 복간운동을 펼쳐 실제로 '우홋!! 멋진 남자들 야마준 퍼펙트' 라는 타이틀로 지금까지의 단행본이나 미수록 작품을 정리한 책이 발매되었다. 이 인기는 엉망진창 테크닉에서 볼 수 있는 코믹한 임팩트 이외에 단편으로서의 재미도 높이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또, 야마준의 매력은 본래의 대상인 게이 남성뿐 아니라 여성마저 매료시켜,여성 야마준 애호가를 페니스가 없는 점에서 유래한 "無주니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으로 치자면 필수요소의 백미인 김대기홍진호, 혹은 같은 게이 코드를 다룬 엉덩국[4] 정도의 인기를 가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010년대 초반부터 유행은 다소 식었으나 2ch이나 인터넷상의 서브컬처계에서는 일종의 기본으로 넓게 퍼져 완전히 정착하기에 이르렀으며 아직까지도 이미지, 콜라주 등의 단골이 되곤 한다. 더욱이 동인계에서는 야마준 낭독CD도 소수이지만 만들어져서 팬들 사이에서 레어 아이템이다.

4. 인기를 끈 이유

야마준 작품이 이렇게까지 높은 인기를 얻은 이유는 실제로 잡지상에서 작품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나 동성애에 흥미가 없는 독자들도 그다지 저항감 없이 읽을 수 있는 그림체와 작풍이라는 점. 그리고 단편이면서도 진지함과 개그가 적당히 섞여 있는 등 상당히 짜임새있게 구성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야마준 작품의 다수는 단순히 게이 섹스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게이를 둘러싼 환경, 범죄, 정신세계, 가족의 형태 등 갖가지 테마를 다루기 때문에, 팬들 중에는 "이미 하나의 사회/철학적 만화로 승화되었다."라고까지 극찬하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이다. 야마준 작품 이후에도 밈으로서의 게이 만화가 발굴되는 일은 있었으나 이 이상의 인기를 얻은 작품은 없다.

다만 이런 다양성과는 별도로 등장인물의 성격은 꽤 정형화된 편이다. 게이 섹스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거나 호기심은 있지만 적극적으로 실천할 엄두는 내지 못하는 육체적으로 약한 남자 A, 이와 반대로 능숙한 동성애 테크닉을 자랑하며 상대가 게이든 스트레이트든 개의치 않고 홀리는 마성의 게이 남자 B, 이 둘 사이의 섹스가 거의 모든 작품의 기본 플롯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아베 타카카즈가 전형적인 남자 B 스타일에 속한다.

또한 BL과는 달리 등장하는 남자들은 근육질이되 비교적 현실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으며[5] 성적 취향이 아닌 캐릭터 자체만 놓고 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들이라는 점에서 여성향 동성애물과 차별점을 갖는다.

여자의 나체나 남녀의 섹스신도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데 이에 대한 묘사 역시 준수한 편으로, 예전 시절의 정통 극화체에 가깝게 그리고 있다. 대략 김성모의 19금 만화에 나오는 누드신/섹스신과 비슷한 느낌[6]이면서도 묘하게 색기가 넘친다. 남성 동성애 19금 만화가 아니라 이성애 19금 만화를 그렸어도 괜찮았을 정도의 작화다.

5. 본인에 관한 정보

장미족의 창간자이자 편집장인 이토 분가쿠(伊藤文學 1932년 3월 19일 ~)[7]가 잡지와 블로그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야마카와 준이치는 창간 5주년을 맞이하던 장미족의 사무실에 본명은 커녕 주소와 신상정보 등도 일절 밝히지 않은 채 갑자기 원고를 들고 찾아왔다고 한다.[8]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였으며 '어두운 사람'이라는 첫인상을 받았을 만큼 자신의 집에서 쥐죽은 듯 조용히 살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1983년경 부터는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고 문 밖에서 원고만 주고 갔기 때문에 사적인 대화도 거의 나눠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터넷 상에서의 인기와는 반대로 연재 당시, 야마카와 준이치의 작품은 장미족의 스태프들이나 독자들에게 심하게 미움받고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장미족 스태프들이 야마카와에게 연재를 중지해줬으면 한다는 요청을 수시로 해서 갑자기 연재가 중지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토는 당시 게이 만화계의 주류인 '땀내가 풍기는 근육질의 마초적인 남성상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실제 게이들의 성생활을 묘사하는 내용'과는 정반대인 가느다란 선을 가진 순정만화풍의 그림체로 꽃미남 스타일의 등장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성관계의 묘사도 실제 동성애자들이 보기에 괴상할 정도로 비현실적이라서 야마준이 동성애자인 자신들을 조롱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추측했다. 더불어 그는 야마준의 만화에 나오는 묘사들은 실제 발전장[9]에서 겪은 일들이 아니라 혼자 상상한 내용을 그린 것 같다"'라고 추측하였다.

당시 오로지 장미족의 투고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듯 해서 생활이 곤궁해 보였던 야마준의 모습을 불쌍히 여겼던 이토는 잡지에 작품이 게재되지 않을 때도 그에게 고료를 지불했는데 야마준이 그 사실을 안 이후부터 장미족 사무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야마카와 준이치가 마지막으로 출판사에 모습을 비춘 건 1988년으로 추측되며 이 사이 그의 작품을 3권짜리 단행본으로 발행하던 케이세이출판이 망해 이토 분카쿠가 소유한 제이서방(第二書房)에서 판매를 맡게되었는데, 이 3권의 단행본은 산더미같은 양의 반품이 쌓여있었으나 당시에도 상당수의 매니악한 독자들도 있었기때문인지 2, 3년쯤 지나자 천천히 팔리게되어 결국 완매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스태프들의 차가운 반응과 다르게 이토 분카쿠는 1986년 그의 첫 단행본 ‘너에게 냥냥(君にニャンニャン)’ 권두 말미글로 남자와 남자의 사랑의 찬가(男と男の愛の賛歌)라는 평가와 함께 “야마카와 준이치 군의 작품이 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너무나도 기쁘다. 그의 작품을 좀 더 모든 사람이 알아줬으면 한다.”라는 글을 남겼는데, 결국 이 소원은 20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토는 이후 야마준의 행방에 대하여 '소식은 전혀 알 수 없으며 당시 장미족의 작가나 독자들 중에 자살한 사람이 많으니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며 추측했으나 정확한 것은 불명이다.[10][11]

이토의 말에 따라 1980년대 초반 당시 30대 후반이고[12], 현재 살아있다면 2020년대인 현재는 80대를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작가가 잠적함에 따라 2000년대 무렵 갑작스런 재평가를 받고 일본 서브컬쳐계에서 온갖 패러디물로 인기를 얻었던 야마준의 작품은 사실상 저작권이 없는 무법지대 수준이었다.(...) 그리하여 2013년부터는 이토 분카쿠가 저작권 회사와 계약을 맺어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 그가 만든 작품들의 저작권은 잡지 출판사인 (주)사이조가 지니고 있다. (참고)

야마카와 준이치는 2003년에 나온 ‘ウホッ!いい男たち ヤマジュン・パーフェクト 우홋! 멋진 남자들 야마준 퍼펙트’ 단행본이 발매되었을 때도 일절 어떠한 연락조차 없었다고 한다.

한때는 레이디즈 코믹에서 츠지 아사미 명의로 활동하고 있다는 설이 유력했으나 근거는 그림체가 유사하다는 것 뿐이었고 야마카와 준이치가 활동할 시기, 이미 츠지 아사미는 소년 빅 코믹에서 인기리에 첫사랑 스캔들을 연재 중이었으며 당시 그의 그림체 또한 야마카와 준이치 같은 소녀 만화풍이 아니라 당시의 전형적인 소년 만화 화풍이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츠지 아시미는 야마준이 아니라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2006년 11월 "장미족"이 사용하고 있던 사무소를 철수할 때 야마카와의 35작품 중「裏切り」(배반), 「美しき野獣」(아름다운 야수), 「快楽の罠」(쾌락의 덫) 등 13작품의 원화가 23년 만에 발견되었다. 각각의 작품은 보존 상태도 양호했기에 인터넷 옥션에 올려 팬에게 매각될 뻔 했으나 이것에 대해 "본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매각하지 말고 인지도를 높이는데 써야 할 것"이라는 야마카와에게 호의적인 의견이 많아 야마준의 인기가 쇠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야마준의 작품이 인기를 끌자 2ch에서는 유저들이 여러 방면으로 소식을 탐색하였다. 실제로 2ch에서 야마카와의 조카라고 자칭한 인물이 그의 근황을 얘기하는 낚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2023년 4월 1일 작가의 대표작인 엉망진창 테크닉단편 OVA화가 확정되었다. 원작 협력은 역시 당시부터 야마준의 작품을 인정해왔던 이토 분카쿠가 담당했다.

6. 작품 일람

6.1. 단행본


[1] 1983년 당시 30대 후반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2] 이 잡지는 2000년대에 세 번 가량 휴간했지만, 그 때마다 계속 복간되어 꾸준히 발간되고 있다. 2011년 7월 통권 400호를 돌파했다.[3]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장비의 대사 등[4] 이쪽은 야마준과 달리 게이 대상은 아니지만.[5] 어디까지나 BL 속 남자들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이야기지만.[6] 정확히 말하면 김성모가 일본의 7~80년대 극화체를 답습하는 경향이 있다.[7] 일본의 사업가이자 작가, 칼럼니스트. 현재는 출판사 제이서방(第二書房)의 대표다. 90세가 넘은 고령이지만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출판업계에서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는 출판계의 대들보격 인물. 1960년대부터 아직은 동성애에 보수적이었던 일본에서 동성애를 다룬 잡지를 간행해왔다. 하지만 본인은 동성애자가 아니고 결혼하여 손주까지 본 이성애자다. 음몽 시리즈같은 호모 비디오에도 카메오 출연하기도 했다.[8] 야마카와 준이치라는 이름도 이토 분카쿠가 붙인 필명이다.[9] 남성 동성애자들이 모여서 성행위를 하는 장소[10] 동성애 문화가 그나마 양지로 조금 올라온 지금과 달리 완전히 음지에 있던 시절에는 동성애자들의 자살은 상당히 흔한 일이었다. 그나마 발전장이나 동성애 클럽을 드나들면서 같은 동성애 성향을 가진 이들과 교류할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이들은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끝까지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숨긴 채 살아가면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동성애자들 중에는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무리한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11] 그러나 이래봐도 동시기 한국에 비하면 일본의 사정은 좀 나은 수준이었다. 그 당시 한국은 군부독재 시기이기도 하고 아직 유교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회였다. 일본과 비교하면 굉장히 경직되고 엄격한 사회 였기에 동성애자들은 당연히 가족이나 지인들한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숨기고 몰래 남자들을 만나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일부는 이마저도 들킬까봐 참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었고 앞서 말했듯이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이 경향은 2000년대 이전 까지 계속된다.[12] 1942~1945년 사이 출생 추정[13] 사실 그 살인 사건을 일으킨 살인마의 정체가 바로 주인공 유스케의 형인 히다카다. 자신을 따돌리는 세상에 환멸을 느껴 스스로를 단련시킬 목적으로 몸을 만들었고 그렇게 호모 본능이 발동해 호모굴까지 들어가봤지만 거기서도 성기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그런식으로 남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것.[14] 그렇게 전근 가기 전 날에 마지막 강간을 하기 위해 공원으로 가서 타겟을 물색하다 함정수사 중이었던 동생에게 잡혀 정체를 밝히게 된다. 동생이라 죽일 수는 없으니 자신을 범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동생에게 그대로 박히는가 싶더니, 항문에 총을 맞고 사망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