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렉 슈바르츠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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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프랑스의 축구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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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191919> 이름 | 엘렉 슈바르츠 Elek Schwartz | |
본명 | 알렉산드루 슈바르츠 Alexandru Schwartz | |
출생 | 1908년 10월 23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테메스바르 | |
사망 | 2000년 10월 2일 (향년 91세) 프랑스 아그노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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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78m | |
직업 | 축구 선수 (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bgcolor=#eee,#191919> 선수 | 카디마 티미쇼아라 (1926~1930) CA 티미쇼아라 (1930~1932) FC 이에르 (19321934) AS 칸 (1934~1936) RC 스트라스부르 (1936~1938) 레드 스타 파리 (1938~1939) EDS 몽뤼송 (1939~1940) |
감독 | EDS 몽뤼송 (1939~1940) AS 칸 (1948~1949) AS 모나코 (1950~1952) 르아브르 AC (1952~1953) 함보른 07 (1953~1955) 로트바이스 에센 (1956~1957) 네덜란드 대표팀 (1957~1964) SL 벤피카 (1964~1965)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65~1968) FC 포르투 (1969~1970) FC 도르드레흐트 (1970~1971) 스파르타 로테르담 (1971~1972) TSV 1860 뮌헨 (1972~1973) RC 스트라스부르 (1976~1977) FCSR 아그노 (1978~1979) | |
국가대표 | 2경기 0골 (루마니아 B팀 / 1931~1932) |
1. 개요
루마니아와 프랑스의 축구 선수 출신 축구 감독. 선수 시절에는 주로 수비수로 활약했으며, 1930년대와 1940년대 프랑스 리그에서 활약했다. 감독으로 변신한 후에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여러 국가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쌓았다. 특히 1957년부터 1964년까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았고, 1964-65 시즌에는 SL 벤피카를 이끌고 유러피언컵 결승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또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FC 포르투, TSV 1860 뮌헨 등 유럽 명문 클럽들을 맡아 지도자로서 깊은 족적을 남겼다.2. 선수 시절
1908년 10월 23일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테메스바르에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트란실바니아 지역 출신인 슈바르츠는 1926년부터 1930년까지 유대인 클럽인 카디마 티미쇼아라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30년부터 1932년까지 CA 티미쇼아라에서 활약했다. 1931년과 1932년 사이에는 루마니아 B대표팀에서 2경기를 소화했다.1932년 리페니아 티미쇼아라의 프랑스 원정에 초청받아 동행한 슈바르츠는 이를 계기로 프랑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프로 축구 리그가 막 창설되었고, 슈바르츠는 FC 이에르와 계약하며 프랑스 프로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1932년부터 1934년까지 FC 이에르에서 활약한 뒤 1934년 AS 칸으로 이적해 2시즌 동안 25경기와 28경기에 출전했다. 1936년에는 RC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해 이곳에서 가장 성공적인 선수 시절을 보냈다. RC 스트라스부르에서는 1936-37 시즌 프랑스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우승은 이루지 못했다. 2시즌 동안 스트라스부르에서 57경기를 소화한 슈바르츠는 1938년 레드 스타 파리로 이적했다. 1938-39 시즌 레드 스타와 함께 프랑스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과 함께 파리를 떠난 슈바르츠는 1939-40 시즌 EDS 몽뤼송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했다. 독일의 프랑스 점령 기간 동안 유대인이었던 슈바르츠는 신분을 감추고 조용히 지냈다.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슈바르츠는 감독 생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48년부터 1949년까지 AS 칸을 지휘했고, 1950년부터 1952년까지는 AS 모나코에서 감독을 맡았다. 모나코에서는 1부 리그 승격을 목표로 했으나 두 시즌 연속 승격에 실패했다. 이어 1952년부터 1953년까지 르아브르 AC를 맡아 1부 리그 잔류에 성공시켰다.
1953년 슈바르츠는 독일로 건너가 함보른 07의 감독이 되었다. 첫 시즌에 7위를 기록한 뒤 1954-55 시즌에는 준우승을 차지하며 오버리가로의 승격을 이끌어냈다. 1955년에는 당시 전국대회 챔피언이었던 로트바이스 에센의 지휘봉을 잡았다. 이 팀에서 슈바르츠는 오버리가 서부에서 4위와 8위를 기록했는데, 당시 유러피언컵이 창설되어 초대 대회에 초청을 받아 참가한 이력이 있었다.
1957년 슈바르츠는 네덜란드 왕립 축구 협회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여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의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1958년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 변방에 머물던 상황이었다. 다국어가 능통하고 인품이 좋았던 슈바르츠는 네덜란드 축구계에서 환영받았다.
1957년부터 1964년까지 7년간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며 총 49경기에서 19승 12무 18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주요 국제 대회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1959년 쾰른에서 독일에게 0-7로 대패한 것은 그의 재임 중 가장 낮은 순간이었다. 반면 브라질과 프랑스를 상대로 한 친선경기에서의 승리는 큰 성과로 남았다.
1964년 네덜란드를 떠난 슈바르츠는 포르투갈의 명문 클럽 SL 벤피카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벤피카는 에우제비우를 비롯한 훌륭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슈바르츠는 이 팀을 이끌고 1964-65 시즌 포르투갈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유러피언컵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었다. 8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제압하고 결승에 진출했으나, 결승전에서는 엘레니오 에레라가 이끄는 인터 밀란의 카테나치오 전술에 0-1로 패배했다.
벤피카에서의 성공 이후 1965년 슈바르츠는 독일로 돌아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감독이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4-2-4 시스템을 도입했고, 선수들에게 엄격한 규율과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요구했다. 슈바르츠는 세 시즌 동안 프랑크푸르트를 이끌며 분데스리가에서 7위, 4위, 6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1966-67 시즌에는 인터내셔널 풋볼 컵과 알프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인터-시티 페어스컵 준결승에 진출하는 등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1969-70 시즌에는 FC 포르투의 감독을 맡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포르투에서는 15경기에서 6승 5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고, 결국 건강 문제로 1970년 2월 팀을 떠났다. 포르투는 그 시즌 리그 9위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 FC 도르드레흐트, 스파르타 로테르담, TSV 1860 뮌헨 등을 거치며 감독 생활을 이어나갔다. 특히 1860 뮌헨에서는 강등된 팀을 분데스리가로 복귀시키는 임무를 맡았으나 실패했다. 1976-77 시즌에는 RC 스트라스부르로 복귀해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 프로 감독 경력이었던 이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1978-79 시즌에는 아마추어 클럽인 FCSR 아그노에서 지도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슈바르츠는 은퇴 후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아그노에 정착해 여생을 보냈다. 1996년 그는 암스테르담 아레나 개장식에 네덜란드 왕립 축구 협회의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2000년 10월 2일, 91세의 나이로 아그노에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