瀛州十景
제주의 10가지 아름다운 풍광
1. 소개
영주십경은 제주도에서 경관이 빼어난 곳 10곳을 지칭한다. 여기서 영주(瀛州)는 제주도의 옛 지명이다.[1]2. 상세
- 제1경 성산일출(城山日出)[2]: 성산일출봉에서 보는 일출(해돋이). 영주10경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한다. 특히 1월 1일 새해마다 일출을 보러 성산일출봉으로 모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때는 선착순 1500명만 받는다고 한다.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에 위치.
- 제3경 영구춘화(瀛邱春花): 영구(속칭 들렁궤)의 봄꽃. 봄철 방선문 계곡(제주시 오등동)에서 만발한 진달래꽃과 철쭉꽃을 말한다(영구는 방선문의 별칭이다.). 과거에는 꽃이 많았지만 현재에는 꽃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 대신 한라산 어리목에서 볼 수 있는 진달래밭이 영구춘화로 잘못 알려져 있다. 실제로 웹에서 영구춘화를 검색하면 십중팔구 어리목의 진달래밭 이미지가 검색된다.[3] 해당기사 참고 제주투데이 '영구춘화' 대신 '한라춘화'(?) 한라산 영구춘화를 보고 싶다면 한라산 어리목 코스로 가면 된다.
- 제4경 정방하폭(正房夏瀑): 정방폭포에서의 여름. 서귀포시 동홍동에 위치.
- 제5경 귤림추색(橘林秋色): 귤 익어가는 가을 빛. 귤밭은 제주도 어디에나 가도 볼 수 있다.
- 제6경 녹담만설(鹿潭晚雪): 백록담의 늦겨울 눈. 백록담은 한라산 성판악 코스나 관음사 코스를 통해 갈 수 있다.
- 제7경 영실기암(靈室奇巖): 영실의 기이한 바위들. 한라산 영실의 기암괴석. 흔히 오백장군, 오백나한으로도 알려져 있다.[4] 가을철에 가면 경치가 끝내준다. 한라산 영실 코스로 찾아가면 된다.
- 제8경 산방굴사(山房窟寺): 산방산의 굴의 절.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위치.
- 제9경 산포조어(山浦釣魚): 산지포구의 고기잡이. 산지포구에 흐르는 하천인 산지천은 한 때 복개되기도 하였지만 2002년 자연하천으로 복원되었다. 현재 산지포구 인근에는 수협 수산물 공판장이나 서부두 수산시장 등이 있어 현재도 수산업의 명맥을 잇고 있으며 또한 제주도의 물류와 여객을 담당하는 제주항이 위치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지천은 일도1동과 건입동에 걸쳐 있다.
- 제10경 고수목마(古藪牧馬): 풀밭에서 기르는 말. 이걸 보려면 제주마(馬)방목지를 찾아가면 될지도...? 마방목지는 제주시 용강동에 있으며 516도로를 지나가는 제주 버스 281번을 타고 가면 된다.
찾아가도 말이 없는 날이 많다는 건 함정.사실 여기로 가야 볼 수 있을지도(...)?
3. 역사
영주십경이 상당히 오래전에 나온 말인 것 같지만 이외로 19세기의 산물이며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제주의 학자인 매계 이한우(1818~1881)가 제주의 경관을 품제(品題)해 10곳을 골라 새로이 시적인 이름을 붙인 것이 영주10경이라고 한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인 1841년(헌종 7년)에 제주목사로 부임한 응와 이원조 목사도 이 10곳에 차례와 명칭이 일부 다른 시를 지었는데 지은 연대가 확실하지 않아 누가 먼저 영주10경을 정의했는지 뚜렷하지가 않다고 한다. [출처]
4. 관련 문서
*제주 중문 · 대포해안 주상절리대[1] 중국 설화에서 불로초가 있는 곳의 이름도 영주고, 한자도 같다. 안그래도 서귀포의 이름의 유래가 불로초 구하러 간 서불이 지나간 포구란 뜻이니, 관련있다고 할 수 있으려나...? 참고로 과거에는 한라산을 영주산이라고 부르기도 했었고 현재도 한라산의 별칭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영주고등학교(구 제주공업고등학교)와 같이 영주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단체나 가게들도 많다.[2] 성산일출이라 알려졌지만 실제 명칭은 성산출일이며 성산일출로 오식된 것이라고 한다. 한학자인 소농 오문복 선생이 편역한 영주십경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나온 '제주도실기'에 일출로 오식된 것을 '증보탐라지'에 그대로 표기하였고 결국 원래의 이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성산일출을 볼 수 있는 장소의 명칭부터가 성산일출봉이니 결국 원래 이름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 같다.[3] 제주도 관광정보 사이트에도 영구춘화 이미지가 어리목 진달래밭으로 되어있다. 제주도 관광정보[4] 설화 속 인물에서 비롯된 이야기이다. 옛날 어떤 어머니가 아들 500명을 데리고 살았다. 그러나 흉년과 가난으로 형편이 나빠지자 어머니가 아들들에게 양식을 구해 오도록 했다. 어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와 먹을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큰 가마솥에다 불을 때고 솥전을 걸어 놓고 돌아다니며 죽을 저었으나 어머니가 그만 발을 헛디디어 솥에 빠져 죽어 버렸다. 500명의 아들들은 집으로 돌아왔고 영문도 모르고 솥단지에서 죽을 퍼먹었다. 그러다 500명 중 막내가 사람의 뼈를 발견하고서는 "이건 엄마의 뼈다. 엄마가 빠져죽은 솥을 어찌 먹을 수 있겠느냐"고 울며 서쪽 한경의 차귀도로 떠났고 한없이 울던 막내는 차귀도 앞에서 바위가 됐다. 그리고 나머지 499명의 아들들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다가 바위가 되어 버렸다는 전설이다. 어떤 전설에서는 죽솥에 빠져 죽은 어머니를 제주도 탄생 설화의 주인공인 설문대할망으로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출처] 한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