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9EB639><colcolor=white> 예수의 소화 수녀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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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 교구 설립 수도회 |
주보성인 | 소화 데레사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
설립자 | 김준호 레오 평신도 · 조철현 비오 몬시뇰 |
설립일 | 공동체 설립: 1956년 교구장 인준: 1999년 1월 18일 |
총원장[1] | 이 엠마누엘 수녀 |
수도자 현황[2] | 종신서원자 15명, 유기서원자 1명 |
홈페이지 |
1. 개요
예수의 소화 수녀회는 여성 수도자들로 이루어진 가톨릭 교구 설립 수도회이다. 광주대교구에서 처음 공동체가 설립되어,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인준을 받았다. 현재 본원이 소재한 광주광역시와 더불어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와 장수군에 분원을 설립하여 사도직에 임하고 있다. 이름의 ‘소화’는 흔히 ‘소화(小花) 데레사’라고 불리는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를 의미한다.2. 역사
예수의 소화 수녀회는 창설의 연원을 평신도에게 두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3] 창설자 김준호 레오 평신도는 1924년 8월 20일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출생하여, 1944년 일본군에 의해 강제 징집되었다가 해방 직후 귀국한 역경을 겪었다. 이후 1946년, 김준호 레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정신을 그대로 따라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이현필 선생[4]이라는 사람을 만난 후 출가하여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살게 되었다. 이 시기, 김준호 레오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삶을 접하고 깊이 감화된 것으로 보인다.독신 생활을 유지하면서 광주천 다리 밑으로 들어가 걸인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수년간 동고동락했던 김준호 레오는 1956년 제중병원(현 광주기독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결핵 환자를 통해 소화 데레사의 시 ‘사랑을 살다’를 읽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김준호 레오는 가난과 병이 모두 성스럽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결핵 요양소를 창설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전해진다. 1956년 3월, 김준호 레오는 결핵 환자들과 장애인 및 걸인들을 돌보기 위해 광주광역시 북구에 ‘무등원’을 설립하여 공동생활을 시작하며 뜻을 이루었다. 이 시기, 김준호 레오는 성 프란치스코의 ’완덕의 길‘과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을 읽은 뒤 이미 두 성인의 영성을 따르고 있었다.
1958년에는 무등원의 봉사자들이 일식(一食)과 성경 및 영적 독서, 침묵 생활로 규칙을 세워 살아가는 작은 움막집 기도처가 무등산 산자락에 마련되었다. 이후 무등산 중턱에 수원지가 생기자, 저수지에 결핵균이 오염될 우려를 이유로 정부는 무등원 공동체에 철거 명령을 내렸다. 이 때, 당시 광주기독병원 원장이었던 카딩턴(Codington)[5]이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에 500평의 부지를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1966년에는 김준호 레오를 대표자로 하여 사단법인 ‘무등자활원’이 등록되었다. 또한, 유영모 선생[6]의 후원으로 1968년 전라북도 완주군에 전주분원을 설립하였다.
1970년대에는 광주자활원에 위기와 기회가 있었다. 1970년대 초부터 가톨릭 신앙에 기반을 두고 봉사활동을 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공동체에 모였다. 이 여성들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의 홍 안칠라 수녀의 지도로 성무일도를 바치며 더욱 규칙적인 성사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점차 식량지원 구호가 줄어들었고, 공동체를 지원해 주었던 카딩턴 원장 또한 한국보다 사정이 더 어려운 방글라데시로 떠나 버린 위기 또한 있었다. 이 당시 70여 명의 환자 공동체의 생계 유지를 위해 누에치기와 낙농, 양돈과 양봉 등을 통하여 노력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있었다. 동시에 공동체는 조직을 갖추어, 1975년 광주광역시 북구[7]에 무등산 분원을 설립하고 김준호 레오를 스승으로 모시던 김천자 세라피나[8]를 초대 원장에 선임하며 조아라 선생[9]을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하였다.
1978년, 여러 재정적 어려움에 부딪힌 광주자활원은 조철현 비오 신부와 인연이 닿는다. 조철현 신부는 당시 주임을 맡고 있었던 계림동 성당 교우들과 함께 공동체를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였으며, 사비를 털어 공동체를 지원해 주었다. 같은 해, 전라북도 장수군에 분원이 설립되었다. 김준호 레오와 조철현 비오 신부는 공동체를 가톨릭 수도 생활로 완전히 승화시킬 수 있도록 수도회 창설을 협의하였고, 공동체의 이름을 소화 데레사 영성에 따라 ‘소화자매원‘으로 변경하였다. 이는 김천자 세라피나의 생전 소망이기도 하였다. 조철현 신부는 꾸준히 소화자매원을 위한 후원요청을 가톨릭신문에 내었고, 후원회 미사와 후원회원 피정 지도를 매월 실행하였다고 한다.
3. 영성
예수의 소화 수녀회의 영성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12)'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라 (루카 10, 29-37 참조)'라는 두 구절의 복음 말씀을 따라 모든 이의 이웃이 되어 교회 안에서 충실한 봉헌으로 사랑의 성소를 살아가는 것이다. 수녀회의 카리스마는 두 주보 성인, 소화 데레사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에서 비롯된다. 수녀회는 첫째로 성녀 소화 데레사의 사랑과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 및 작음의 영성을 살며, 둘째로 스스로는 힘이 없는 이들을 돌보는 일에 나눔과 섬김으로 헌신한다. 셋째로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위해서 기도와 활동에 임하며, 넷째로 교회 안에서 사도적 활동과 관상 생활의 조화를 이룬다.4. 사도직
[1] 한국 천주교 주소록의 내용을 따른다.[2] 한국 천주교 통계 2023 기준[3] 절대 다수의 수도회는 평신도가 아닌 사제나 주교를 창설자로 모시고 있다.[4] 정황상 이 자료의 이현필 선생으로 보이며, 일제 강점기에 그리스도교 영성 운동을 전개한 개신교인이라고 한다.[5] 이 자료의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로, 한국에서 결핵 퇴치를 위해 힘썼다.[6] 생몰년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 자료의 종교철학자로 보이기는 한다.[7] 화암동으로, 무등원 공동체가 처음 설립된 동이다.[8] 1979년 사망(선종)하였다고 한다.[9] 이 자료의 인물로,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재학 당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하였고 5·18 민주화운동 당시 수습대책위원이었다. ‘광주의 대모’라는 칭호로서도 존경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