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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4:21:19

오정복/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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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성 라이온즈 시절
1.1. 2009 시즌1.2. 2010 시즌1.3. 2011 시즌
2. NC 다이노스 시절
2.1. 2014 시즌
3. kt wiz 시절
3.1. 2015 시즌3.2. 2016 시즌
3.2.1. 음주운전3.2.2. 파울볼 논란
3.3. 2017 시즌3.4. 2018 시즌

1. 삼성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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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복 삼성 시절 응원가

1.1. 2009 시즌

입단 첫해 1군과 2군을 오가며 경험을 쌓았다.

1.2. 2010 시즌

2010년 주장 완장까지 찼음에도 확장된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하지 못하여 타격 슬럼프에 빠진 강봉규를 대신해 1군에 콜업되었다. 대타 및 대수비로 감을 잡던 중 5월 2일 한화의 투수 데폴라를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8회 솔로, 10회 2점) 대전구장을 정ㅋ벅ㅋ한 오정벅이라 불리고 있다. 4타수 3안타 4타점으로 수훈선수가 되었으며 장동건고소영의 결혼까지 밀어내고 네이버 검색어 1위까지 정ㅋ벅ㅋ.

이 기세를 몰아 5월 4일 롯데전 홈 경기에서도 5회 말 장원준을 상대로 솔로홈런을 포함 4타수 2안타 1타점 2득점의 맹활약을 보여주었다. 이후 선발과 백업을 오가며 제법 제 몫을 잘 해주었고 5월 월간타율 .367에 4홈런 12타점을 기록했다. 2010시즌 5월 한 달은 정ㅋ벅ㅋ 그 자체였다.

여기까지 활약만 보면 장타력을 갖춘 파워히터 같지만 실제로는 176cm, 77kg의 왜소한 체구의 소유자. 게다가 작년 시즌까지 포함해 2군에서 기록한 홈런은 단 4개 뿐이다.

그러나 6월이 시작되고나서 선발 및 교체로 출장한 5경기 동안 총 9타수 무안타로 침묵하던 중 9일 SK와의 경기에서 오랜만에 멀티히트 및 2타점을 쳐내며 부활하는가 싶었지만 다음날 선발로 출장해 4타수 무안타로 다시 침묵하며 시즌 타율 역시 3할이 무너져버렸다. 11일 넥센전에서는 대타 및 대수비로 나온 후 12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다시 선발로 나와 2루타 1개와 볼넷 그리고 2타점을 쳐내며 다시 감을 잡기 시작했고, 6월 16일 롯데전 원정경기에서 연장 10회 초 1사 주자 1, 2루 상황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는 쓰리런 홈런을 때리면서 롯데도 정ㅋ벅ㅋ 해버렸다. 시즌 타율 역시 다시 .315로 상승.

갑작스레 나온 신인으로 결승타를 많이 터뜨려준 덕분에 신인 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꽤 많이 했다.

프로필 얼굴로 보다면 샤방샤방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은 박석민을 능가하는 개그캐릭터. 또한 다른 선수의 타격폼이나 여러 습관을 잘 따라한다.

야구계에서는 홍성흔을 뒤이을 차세대 오버맨으로 주목받는다. 오정복 본인도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들을 웃기는게 행복하다고 말했을 정도.개그맨인가 야구선수인가 그래도 한편으로는 진지한 면도 보인 적이 있는데, 나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다. 누가 툭 밀면 떨어질 것 같은 절박한 마음 속에 살아간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대활약을 한 5월과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 6월[1] 이후, 7월에는 다소 타격 싸이클이 하향세를 보이며 월간 타율 .246에 1홈런 8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5월과 6월 나쁘지 않던 볼삼비[2]가 7월에 사사구 5개를 얻는동안 삼진을 16개나 당해버렸는데, 아마 체력 문제이거나 분석을 당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로 인해 8월 부터는 주전보다는 거의 대타 및 대수비로만 나오게 되었으며 8월 월간타율 .240에 홈런 없이 2타점만 기록했다. 다행히 볼삼비는 많은 표본은 아니지만 3사사구 3삼진으로 어느정도 나아졌지만 병살타만 3개를 친 달이기도 했다. 9월에도 결국 페이스를 끌어올리지 못한 채 월간타율 .182를 기록하며 신인왕의 꿈도 날아가 버렸다.신인왕 정ㅋ벅ㅋ 실패...

2010시즌 최종 성적은 100경기 출전하여 263타석을 나서면서 221타수 60안타(2루타 10개, 3루타 1개) 7홈런 36타점 1도루 39득점 29사사구 40삼진을 내면서 타출장 0.271 / 0.350 / 0.421을 기록했다. 입단 2년차이자 실질적인 1군 첫 시즌 치고는 대단히 준수한 활약을 선보였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자체 평가전 세 번째 경기에서 2회 좌중간 가르는 타구를 날린 뒤 3루까지 내달리다가 오른쪽 발목을 크게 다치는 바람에 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트레이너에게 응급 치료를 받던 중 큰 부상임을 알고는 펑펑 울었을 정도.# 한국시리즈 직전까지 회복 속도가 괜찮아 엔트리 승선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지만 최종적으로 선수 보호 차원에서 한국시리즈 마저 엔트리 승선이 불발되었다.[3]

1.3. 2011 시즌

2011 시즌 들어서는 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졌는지 1군에는 잘 보이지 않고 2군에서 2할대 초중반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하위 타순에 배치되었다. 이는 입단 동기 배영섭에게 밀렸기 때문이었다. 류중일 감독도 올 시즌에는 기대하지 않는지, 2011 시즌이 끝나면 군 입대를 할 것이라고 대놓고 얘기하고 있다. 우동균이 경찰청에서 제대하여 외야진에 합류한다는 것도 그러한 요인이었다.[4] 게다가 삼성 내야수들은 다수가 군필이지만 반대로 외야수들은 대다수가 미필이었다. 결국 퓨처스리그에서 타율 0.290로 시즌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1군 출장은 24경기에 타율 0.192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경찰 야구단에 합격하였다.

한편, 8월 27일 그 유명한 아웃카운트 착각 사건조연이기도 했다.[5]

2. NC 다이노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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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복 NC 시절 응원가

입대가 확정된 상태에서 2011년 11월 22일 열린 한국프로야구 2차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의 지명을 받아 이적했다. 당연히 당장 입대할 선수를 2차 드래프트에서 선발하겠냐는 계산으로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류중일 감독과 코드가 안 맞았던 그를 보호명단에서 제외했는데, NC에서 앞을 내다보고 지명했다.[6] 2013년 9월 28일 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다.(전역인사 동영상) 제대하자마자 이틀 후 곧바로 미국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파견되어 있는 선수단에 합류하기 위해 출국했다.

2.1. 2014 시즌

김종호의 백업으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김종호의 부진과 상대팀의 좌완 선발 등판이 맞물려 주전 좌익수 자리를 빼앗았다. 4월 2일 기아전과 4월 6일 넥센전에서 결정적인 보살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보이지 않는 기여을 했으나, 4월 3일 기아전에서 이대형의 좌전안타를 원바운드로 잡고도 노바운드로 잡은 척하며 교묘하게 4심을 속여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 후로는 김종호가 주로 좌익수로 출장하고, 대타나 대수비로 나오고 있다. 4월 13일 LG전에서 전날 허벅지에 사구를 맞았던 이종욱 대신 우익수로 출장하기도 했다.

5월 11일, 어깨 부상이 있었던 김종호가 1군 등록이 되면서 말소되었다.

6월 28일, 오랜만에 다시 1군에 등록되었다. 대신 김준완이 말소. 6월 29일 대타로 나와 안타를 기록하지만, 이후 7월 11일까지 1군에 동행은 하는데 전혀 경기 출장을 못하고 있다. 대타, 대수비 어느 쪽으로든 출장 자체가 없는 상황.이쯤되면 투명인간 취급인데

3. kt wiz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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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복 kt 시절 응원가

3.1. 2015 시즌

개막 이후 1군에 오르지 못하다가 2015년 6월 21일 투수 홍성용과 함께 kt wiz로 트레이드되어 고향 팀을 떠나게 되었다. kt에서 NC로 옮겨 간 선수는 용덕한.

6월 23일 이적 후 바로 1군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고, 승부를 뒤집는 극적인 3점 홈런을 때려내면서 kt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6월 28일 자신의 친정팀인 삼성을 상대로 4타수 2안타 4타점으로 폭발하여 팀의 삼성전 첫승의 주역이 되었다.
삼성만 나가면 다 잘하는 무슨 탈쥐효과도아니고 탈성?

이대형을 2번으로 밀어내고 1번 타순으로 배치되고 있는데, 테이블세터진이 안정이되가고있다.

7월 1일 SK 와이번스전에서 트래비스 밴와트의 오른팔에 강한 타구를 날려 그를 방출시켰다.

부상으로 하준호와 함께 7월 6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후 올스타 브레이크 즈음해서 1군에 복귀했다. 다만 하준호는 복귀 시기가 조금 늦을 거라고.

8월 16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5년만에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패기 있던 신인 당시 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 마산이 비가 오고 있어 기록 인정여부에 관심이 갔으나, 이미 5회말을 마감했으므로 승패에 관계없이 해당 기록은 인정된다.

8월 18~19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2연전에서 2일 연속으로 경기 MVP를 차지했다. 그리고 19일 경기는 대첩으로...

8월 28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양현종의 왼 손목에 강한 타구를 날려 교체시켰다. 한 해에 두 명의 상대팀의 주축 투수를 실려가게 만드는 빠따질 1990년대 빙그레-한화 이글스의 전설적인 강타자 장종훈이 1995년 태평양의 최상덕, 1999년 쌍방울의 김원형에게 잇달아 안면 부상을 입힌 것에 빗대어 리틀 장종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8월 30일 경기 후 좋은 응원가를 만들어서 고맙다는 의미로 김주일 응원단장에게 큰절을 했다. 보고 있냐?
공교롭게도 2015 시즌 후 오정복의 팀인 kt wiz에 이적한 트래비스 밴와트는 오히려 "오정복 덕분에 kt에 올 수 있었다"며 웃었다고 한다.대인배

3.2. 2016 시즌

하준호와의 주전경쟁이 예상되었으나 하준호가 의외로 부진하고 본인은 의외로 준수한 타율을 보여주며 주전 테이블세터로 적응해가는 모습이다.

6월 24일 대구 삼성전에서 좌익수로 출장해 4회말 이승엽의 평범한 플라이 타구를 이대형이 처리하려는데 앞에 끼어들어 글러브를 들이대면서 히 드랍 더 볼시전하더니, 밴와트가 대거 3실점하며 역전된 5회말 1사 2루 상황에서 좌익수 뜬공을 잡은 뒤 아웃카운트를 착각하며 여유를 부리는 바람에 2루 주자가 홈까지 리터치해 득점하게 하는 본헤드 플레이를 선보인 후 바로 전민수로 교체되었다. 덕아웃으로 들어가며 글러브를 집어던지는 되도 않은 화풀이가 백미. 여담으로 2011년 삼성과 두산과의 경기서 투수 노경은, 중견수 정수빈, 2루 주자 배영섭, 타자 오정복의 상황서 정수빈이 똑같이 아웃카운트를 착각하는 본헤드로 연장전에서 삼성이 점수를 낸 적이 있다. 당시의 오정복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미묘한 기시감을 느꼈을지도..

다음 날 대구에서 9회초 8-7 한 점 뒤진 상황에 대타로 나와 적시타를 때려내며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간 데 이어 10회초엔 쐐기 스리런포로 13-8을 만드는 속죄의 대활약을 펼쳤다.

3.2.1. 음주운전

2016년 3월 12일, 음주운전 혐의로 오모 씨가 수원남부서에서 입건되었다는 보도가 떴다. 네이버 다음 수원의 오씨 야구 선수는 오정복뿐이라 당사자로 확신하는 분위기였고 오정복, 음주운전으로 10G 출전 정지-300만 원 벌금 기사로 본인 확정. 하여간 음주운전 사고로 개막전 합류가 불가능하게 됐다.

참고로 음주운전 자체도 살인미수에 해당하는 큰 사건이지만, 구단 포수 때문에 구단도 조심하고 조범현감독도 인터뷰마다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고 하는 상황에서 이런 적절치 못한 행동을 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

팀에서 대형 사고가 터진 이후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보다, 더 문제인 것은 이 사건이 시즌 시작 직전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야구 선수의 사건사고 속에서도 시즌 개막 직전에 이런 사고를 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팀 기강이 얼마나 해이한지, 또 선수 스스로의 프로의식이 얼마나 땅바닥에 떨어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

한 인터뷰에서도 "이 계기로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음주 운전을 조심했으면 좋겠고, 야구장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만회할 수 있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라고

한편 팬들은 이번 사건의 대해 오정복에게 내려진 징계가 약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같은 이유로 물의를 일으킨 정찬헌, 정형식, 김민우, 신현철, 최진호 등이 각각 잔여 경기 출전 정지, 임의탈퇴의 중징계를 받은 것에 비하면 솜방망이 징계인 셈. 사실 트래비스 밴와트를 kt로 데려온 덕분에(?) 경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중징계 때리겠다던 KBO15경기 출장정지, 120시간 사회봉사 ??? : ㅅㅂ 징계로 솜방망이 논란을 피해가기 어렵게 됐다. 참고로 정성훈이 잔여 경기 정지됐을 때의 경기수는 13경기. 정성훈 이후 징계 수위를 높이겠다고 공언한 KBO였음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주전 포수 때문에 말썽인 판에 오정복까지 사고를 치자 kt 팬들은 바람 잘 날 없다며 멘붕 중.

3.2.2. 파울볼 논란

관련 영상, [네이버] "오정복, 남우 주연상 줘야겠네"

2016년 6월 8일 두산과의 2차전 경기에서 좌익수로 출전, 5회초 두산 공격 무사 2, 3루 상황에서 박세혁이 친 뜬공을 좌익선상에서 잡으려다 실패하였다. 당시 오정복이 몸을 날려 공을 잡으려 했기 때문에 심판과 다른 선수들은 공을 볼 수 없었고, 파울로 선언될 때 오정복이 팔을 벌려 파울이라고 어필을 하는 듯한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하지만 바로 리플레이 된 중계 카메라에선 공이 라인 안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두산 벤치에서 챌린지 신청 등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2타점의 장타가 되어 두산이 추격의 분위기를 가져갈 수 있었는데, 파울로 판단된 것이다.

두산 팬이 이에 분개해 마법사 오정복 사기꾼으로 욕을 먹고 있고 포털 기사에도 좋은 성적을 낸 박경수주권의 기사의 댓글이 전부 오정복으로 도배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타자가 공을 치고 나가서 1루에서 아웃될 때 세이프 모션을 취하듯이 접전 상황에서의 어느 정도의 어필 플레이는 거의 모든 선수들이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점에서 오정복 선수 개인의 인성이나 스포츠 정신을 의심해볼 수 있다. 오정복 선수는 지난 2014년 NC의 유니폼을 입고 있을 시절 KIA와의 경기에서 이대형의 외야 안타를 원바운드 캐치해 놓고 한 번에 잡은양 아웃 제스처를 취한다.(이번 파울 제스처를 취하는 것과 오버랩) 그리고 심판은 아웃 판정을 내리고, 결정적인 오심으로 경기에 작용했다. 특히 이 오심 사건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비디오 판독이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이 도입되어도 오정복 선수의 신사적이지 않은 플레이가 있다는 게 흠. 증거영상

3.3. 2017 시즌

파일:79453.jpg
4월2일 6회 하준호의 대타로 출전해 안타를 때려냈다. 이 한 방으로 1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4월 4일 두산과의 홈 경기에선 연습때부터 타격감이 좋았기에 6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 했다. 감독의 믿음에 부응하듯 이 날 두산 투수진에게 봉인당한 kt타선에 안타를 때려줬다. 이 날 kt의 안타는 3개..였다.

4월 6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좌익수로 선발 출전 했다. 3타수 2안타 1볼넷을 따내며 타격감을 보여줬다.

4월 7일 9회말 심우준의 대타로 출전해 끝내기 희생플라이를 쳤다. 삼성에 강한 모습을이와 관련 김주일 응원단장은 4월 어느 경기에서 이는 오정복 본인이 바꿔달라고 한 등장 곡이었으며 자신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혀 이와 같은 설왕설래가 지속된 바 있다.

4월 후반부터 5월까지 맹타를 휘둘러 팀의 수위타자로 거듭났고 6월 역시 고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6월 18일 한화전에서 1회 외야 수비 도중 종아리 통증을 느껴 선수 보호 차원에서 하준호와 교체되어 내려갔다.

7월 7일 트레이드로 kt에 오게 된 윤석민 덕분에 팀 내 유일한 3할 타자라는 타이틀은 내려놓게 되었다. 오정복이 타격감이 좋기도 했지만 팀 내 다른 타자들이 못했던 탓이 크다.

8월 5일 sk와의 홈경기에서 오랜만에 선발출전 했으나 2회 땅볼과 4회 중견수 땅볼로 물러났다.

8월 9일 롯데와의 사직경기에서 9회초 전민수의 대타로 나왔지만 땅볼로 물러났다.

8월 12일 sk와의 문학경기에서 9회초 전민수의 대타로 출전하여 중견수앞 안타를 쳐냈다. 6점차로 지고있는상황이었지만 이후 1사 1,3루가 된 상황에서 역전까진 아니더라도 쫒아갈수 있는 상황에 김동욱의 병살로 이닝이 마무리가 되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타격감이 돌아온다면 규정타석은 아니지만 .387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오정복한테 기대를 걸 수 있을것으로 보였다. 다만 BABIP이 4할대로 지나치게 높은 데다가 우상바인 점도 있고, 우투수의 2S 볼카운트 상황에서의 속구 OPS가 단 6할에 그치는 점 등을 미뤄 이 규정타석 미달 .387의 타율은 플루크의 가능성이 더 높은 상황. 이미 구단에서도 그걸 인지했는지, 오정복의 배트 스피드를 근거로 오정복은 꾸준히 스타팅으로 기용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대타로 출장하는 상황에서도 우투수의 속구에는 속수무책으로 헛스윙을 하는 상황이 점점 늘어나면서 전반기의 성적이 플루크임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 그리고 이 때의 성적이 플루크라는 것은 다음 시즌에 방출을 당하면서 증명이 되었다.

3.4. 2018 시즌

2월 11일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평가전에서 6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하여 안타 하나를 신고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1군에서 5경기 무안타에 그쳤고, 2018년 7월 21일 김동욱과 함께 웨이버 공시되었다. 다만 야구 팬들 사이에서의 인지도도 높은 편이었던데다가, 표본은 적었지만, 직전 시즌 3할을 치고도 방출된 점으로 미루어볼 때 웨이버 공시된 것은 꽤 의외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부상 문제가 커리어 내내 발목을 잡았고 그로 인해 수비가 폐급 수준까지 떨어진 것이 가장 컸다. 그리고 전술되었지만, 2017년 시즌의 3할 타율은 플루크성에 가까운 기록이였던 점을 생각하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 패스트볼 상대 타율과 OPS가 처참했던 데다가 수비까지 망가져 결국 새 팀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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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간타율 .276 2홈런 14타점[2] 5~6월 사사구 19개, 삼진 19개[3] 이 부상이 참으로 개인적으로도 아쉬울 수 밖에 없는 것이, 이후 개인 커리어에 가을야구라고는 2014년 NC에 잠깐 있을 때 준플레이오프에서 딱 1경기에 대타로 1타석 나간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후 KT는 신생구단이라 팀 성적이 안나와 가을야구를 못갔고...개인적으로도 그렇고 팀에 있어서도 아쉬운 순간으로 남았다.[4] 사실 이것보다도 오정복의 툴이 류 감독의 성에 차지 않아 코드가 맞지 않았던게 컸다. 주력이 빠른 편도 아니고, 수비가 그렇다고 잘하는 편도 아닌지라 류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공격력, 그 중에서도 장타력을 뽐냈어야만 했는데 작년 시즌의 일발장타 능력이 결국 나오지 못하면서 1군에서는 자주 기용되지 못하게 됐다.[5] 최종 기록은 우익수 플라이만 되었고 2루주자였던 배영섭이 홈인하긴 했어도 수비실책 및 주자의 재치로 인한 득점이 되어 타점으로 기록되지는 않았다.[6] 신생 팀이라 군필 선수가 필요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