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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트 왕국 발티 왕조 4대 군주 Wallia | 왈리아 | ||
제호 | 한국어 | 왈리아 |
라틴어 | Wallia | |
생몰 년도 | 미상 ~ 418년 | |
재위 기간 | 415년 8월 22일 ~ 41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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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고트 왕국 4대 군주. 서로마 제국과 손을 잡고 히스파니아에서 반달족-알란 연합과 대적했다.2. 행적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M. 로사리오 발베르데는 그가 발티 왕조의 일원이며 알라리크의 친척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아나 M. 히메네스는 발티 왕조의 혈통 존재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5세기의 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 왕조의 혈통은 서고트 왕국이 자리잡게 한 테오도리크 1세부터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415년 8월 14일 아타울프의 암살을 사주하고 왕위에 오른 시게리크를 8월 22일에 죽인 서고트 귀족들에 의해 새 군주로 등극했다.그는 식량난에 시달리는 서고트족을 구하려면 풍요로운 아프리카 속주로 이주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지브롤터 해협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수송 함대가 강력한 폭풍에 휩쓸려 완전히 파괴되는 바람에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이에 방향을 돌려 416년 서로마 제국과 평화 협약을 체결했다. 이때 로마의 실권자 콘스탄티우스 3세가 갈라 플라키디아 공주를 라벤나로 돌려보내라고 요청하자, 그는 이를 받아들여 갈라를 보내줬다. 이후 북아프리카에서 식량을 운송해온 로마 선박들이 도착하면서, 서고트족의 식량난은 해소되었다.
왈리아는 로마와 군사 동맹을 맺고 416년부터 418년까지 콘스탄티우스 3세의 히스파니아 탈환 작전에 참여했다. 로마-서고트 연합군은 베티카로 진군해 실링기아 반달족을 물리친 뒤 그들의 왕 프레디발을 체포해 호노리우스 황제에게 압송했다. 이후 알란족을 격파하고 그들의 왕 아다크를 주살했다. 이에 실링기아 반달족과 알란족은 반달 왕국의 군데리크에게 복종하고 더 이상 독자적인 왕을 선출하지 않았다.
로마는 작전을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서고트족이 아퀴타니아 세군다와 나르본 등 남부 갈리아 일부 지역에 정착하는 걸 허락했다. 이리하여 서고트족 툴루즈에서 보르도까지 이어지는 일대에 정착했고, 추가로 남쪽의 피레네 산맥에서 루아르까지 이어지는 대서양 연안 지대를 확보했다. 이 지역은 406년 아모리카의 바가우다이(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래 10년간 서로마 제국의 통제에 불응해 독자적으로 활동하다가 417년 엑수페란티우스가 이끄는 토벌군에게 진압된 곳으로, 콘스탄티우스 3세는 로마의 우방이 된 이들을 이 불안정한 지역에 정착시켜서 로마의 안보를 확보하고자 했다.
왈리아는 이로써 알라리크 이래 오랜 세월 각지를 정처없이 떠돌아야 했던 서고트족이 정착할 땅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으나, 협정을 맺은 418년 말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사후 테오도리크 1세가 새 군주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