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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7 03:20:32

왕룽

1. 펄 벅의 소설 대지의 주인공2. 왕룽일가의 주인공

1. 펄 벅의 소설 대지의 주인공

가난한 농부 출신으로 다른 건 몰라도 땅을 사랑하며 농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착실한 성격이다. 대지주 황가(黃家)의 노비 오란(阿藍)을 아내로 맞은 왕룽은 홍수·한발·메뚜기의 내습 등 거듭되는 천재와 폭동 등의 시련을 겪으며, 고난을 참고 돈을 모아 대지주가 된다.

생활에 여유가 생긴 왕룽은 렌화(蓮華)를 첩으로 맞이한다. 아내 오란은 오랜 인고의 생애를 마친다. 세월이 흘러서 노인이 된 왕룽은 세상을 떠나기 전 장성한 아들들에게 땅을 팔지 말 것을 부탁하지만, 약삭빠른 아들들은 말로만 순종하는 척 한다. 또한 손자들도 할아버지가 혁명(신해혁명)으로 바뀐 세상의 흐름을 모른다면서 무시한다.

성격은 매우 강직하여 도둑질을 절대로 용납하지 못한다. 대기근으로 고향을 떠나 머나먼 도시로 가서 인력거를 끌며 겨우겨우 벌어먹었을 때도 아이들이 각설이짓을 하는 건 받아들였지만 둘째인 왕얼(王二)[1]이 고기를 훔쳐온 걸 알자 크게 화를 내며 고기를 바깥에 내던졌다. 아내인 오란이 고기는 고기라면서 기어코 그 고기를 씻어 국을 끓일 때도 절대로 그 고기를 건드리지 않고 스스로 돈 벌어서 사온 양배추만 먹었다. 그리고 밤에 아들을 끌고 나가 실컷 두들겨 패며 '앞으로 또 도둑질을 하면 정말 죽을 줄 알라'고 분노하고는, 이대로 살면 큰일나겠다며 고향에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인력거를 끌거나 이후 밤에 온갖 막노동을 하면서 고생해도 버는 돈은 겨우 하루하루 입에 풀칠할 수준. 왕룽은 이렇게 뼈빠지게 일하는데도! 배부르게 먹지도 못한다라고 한탄하는데 바로 이웃집 사내가 "이보쇼! 여기에는 당신같은 사람이 몇 만명도 더 있수!" 라고 비아냥거린다. 그 사내도 짐마차를 밤새 몰면서 고달프게 사는 빈민. 하지만, 그는 이웃과 교류도 없던 왕룽에게 지나친 부도 독이 되는 법이라는 말을 한다. 왕룽은 뭔 뜻인지 몰랐지만 머지않아 알게된다.

그가 대지주가 된 것도 실상은 아내인 오란이 털어온 보석 덕이 더 컸다(…). 당시 왕룽은 바로 이웃집 사내가 때가 왔다면서, 친절하게 왕룽에게도 당신도 어서 가서 한탕 챙기라고 하면서 엉겁결에 약탈당하는 부잣집으로 가서 정말로 엉겁결에 돈을 한 무더기 얻게 된다. 물론 약탈이지만 왕룽은 이 돈을 감싸안으면서 드디어 고향으로 간다고 기뻐했고 이 돈으로 새로운 소와 온갖 씨앗과 농기구까지 새로 사서 집도 고치고 알차게 썼다. 하지만, 그가 얻은 돈으로는 좀 중산층까지 가능해도 대지주는 어림도 없었고, 이 보석을 땅값대신으로 받으며 대지주가 될 발판이 된 거였다.

애첩 방에 덜거덕거리는 벽돌을 보고, 부잣집에서 오래 일한 오란이 단번에 눈치채고 털어온 것이다. 하지만 오란은 예쁜 여자들의 전유물인 보석을 갖고만 싶어했고 쓸 생각은 없었는데, 이것을 발견한 왕룽이 강제로 가져간 것이다(...). 이 때 오란이 진주 두 개만 갖고 싶다고 애원하는데, 예쁜 여자들이 가진 보석을 구경만 하고 갖지 못하는 아내 마음을 잠깐 엿본 듯하여 약간이나마 이해한 왕룽이 허락해 진주 두 개만 갖고 늘 지니고 다닌다. 헌데 이걸 왕룽이 나중에 창녀 렌화에게 빠지고 나선 렌화에게 귀걸이 선물을 해주기 위해 강탈해간다. 혈압 오르게 하는 대표적인 장면. 이후 왕룽은 이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끔 떠올린다. 그러면서 나중에 오란이 죽어갈때, 자신은 평균 이상으로 좋은 남편이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지 이해를 못한다(...). 헌데 당시 시대상 왕룽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닌게, 왕룽의 말마따나 왕룽은 아내를 때리지도 않고 달라는대로 돈도 주었고 여자로서 사랑하진 않았어도 어쨌든 가족으로서 존중하며 대해 주었다. 아내를 소유물로서 두들겨패며 노예 취급해도 이상하지 않던 당시 시대로선 괜찮은 남편상이었던 셈. 결국 오란이 병사하고 나서는 그래도 그 진주는 빼앗지 말 것을 그랬다며 후회하나 그때는 사후약방문이었다.

왕룽은 도둑질 할 생각 없다가 어쩌다 뜯게 된 돈으로 고향에 돌아왔는데, 상술했듯이 왕룽이 뜯은 돈은 고향으로 돌아와 재기를 하기엔 충분한 돈이었으나 땅을 살 정도는 아니었고, 황부잣집 땅을 산 건 오란이 가져온 보석이었다. 당시 민중들이 싹 털어간 부잣집에서 왕룽은 평생 도둑질을 하지도 남을 협박하지도 못해 그냥 왔다갔다하다가 나오는 길에 미처 달아나지 못한 부자가 살려주면 돈을 준다는 말에 난생 처음 거친 목소리로 남을 협박하면서 "죽기 싫으면 돈 내놔!"라고 말한 것.[2] 그렇게 뜯어온 돈으론 일단 고향으로 돌아가서 소, 농작물 씨앗, 농기구를 사고 비워둔 집을 고치며 썼기에 그냥저냥 사정이 나아지긴 해도 대지주까진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란이 가져온 보석으로 고향 마을 황부잣집[3]의 땅을 샀기에 현실 적응력이 강한 아내 오란의 힘이 더 컸다고 봐야겠다.

그런데 안정효가 번역한 대지 번역판에서는 위에 죽기 싫으면 돈 내놔 대사를 "그럼, 어서 돈 내놔요!" 라고 존댓말을 하여 다소 뜻이 엉뚱해졌다. 물론 반대로 저때까지 남을 협박하는 것도 서툴었다고 생각한 번역자의 뜻이 들어간 번역으로 보면 무조건 엉터리도 아니다. 돈을 다 내놓은 부자가 돈이 없다고 할 때 안정효도 왕룽이 혐오감와 분노를 담아 큰 목소리로 "죽여버리기 전에 꺼져, 더러운 놈!"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이다[4].

여하튼 흉년 시절, 악착같이 살아남아서인지 부자가 된 뒤로 빈민들을 꺼리는 등, 개구리 올챙이적 모르는 면모를 보인 적이 있다. 그나마 이웃집에 살던 친한 이웃인 칭은 예외. 왕룽의 숙부 정도 나이인 칭[5]은 왕룽 못지 않게 부지런한 농부로 흉년으로 자신도 먹을 게 없음에도 꼭꼭 숨겨뒀던 한 줌을 주어 임산부인 오란이 조금이나마 영양을 얻도록 해주었다. 이 은혜를 잊지못한 왕룽이 부자가 되어 돌아오니 칭은 45살도 되지 않았거늘 머리가 흰머리 투성이에 얼굴만 보면 예순도 넘어보일 정도로 고생했으며 이미 아내도 죽고 딸도 거의 죽게 되는 걸 보다못해 지나가는 군인에게 줘 버렸다고 한다. 그런 칭에게 왕룽은 팥이며 온갖 볍씨를 그냥 가득 나눠주고, 새로 산 를 빌려줘서 밭도 갈아주게 했다. 칭이 고마워 엉엉 울자 "아저씨가 주신 팥 한 줌을 잊었는지 아세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꼭 가난한 농부 시절을 완전히 잊진 않았기에 부자가 된 후론 딸을 종으로 팔러 온 사람들에게는 돈을 더 챙겨주고[6], 흉년에는 소작료도 받지 않았기에 소작인들에게 그래도 좋은 지주라고 존경을 받는다. 그래서 3부에서 농민들을 악착같이 털어먹는 둘째아들에 대해서 농민들이 "네 아버지는 그런 식으로 지독하게 굴진 않았다."며 토로하기도. 결국 아버지와 달랐던 둘째 왕얼은 농민봉기로 전재산을 약탈당한다.

사실 왕룽이 빈민을 혐오한 것과 달리 농부들에겐 잘 대해준 까닭은 도시에서 겪었던 일 때문이다. 그는 구걸이나 절도를 수치스럽게 생각해서 상술하듯이 고기를 훔친 둘째를 실컷 팼으며 첫째 왕이가 구걸에 서툰 걸 일절 나무라지 않았다. 자신도 인력거꾼이나 짐꾼 같은 고된 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주변의 빈민들은 이런 그를 비웃었다. 더구나 이 빈민들은 열심히 일해서 가난을 이겨내겠다는 의욕도 없이, 구걸이나 도적질을 일삼다가 난리가 나면 그 기회에 부잣집을 털어 한밑천 잡겠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7]. 이러니 일 안하고 빈둥대기는 빈민들은 혐오하게 된 것. 이에 반해 과거 자신처럼 땀흘리고 일하는 순박한 농부들에게는 너그러웠던 것이다.[8]
아무튼 이후에 칭의 땅까지 사고 칭에게 머슴 감독을 맡기는데, 먹여주고 살 집도 내주고 돈도 두둑히 줬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칭[9]을 왕룽이 얼마나 아꼈는지 그가 나이가 들었음에도, 새로 들어온 머슴이 도리깨질이 서툴자 그걸 손수 가르치려다가 몸이 탈나 쓰러져 죽게되자, 그 소식을 듣자마자 물불안가리고 전력질주[10]한 다음, 그 머슴놈 나오라고 하고 욕을 퍼부으며 우산으로 미친 듯이 두들겨팼다.[11] 그러다가, 다 죽어가면서 신음하는 칭을 보고나서야 "이놈 때리다가 칭 아저씨가 죽게 놔둘 뻔 했구나!"라고 멈췄는데 다 죽어가던 칭은 유언조차 못 남기고 그대로 죽었고 그저 왕룽은 안타깝게 그를 부여안으며 "제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관보다 더 좋은 관을 짜 드리겠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가 죽자, 아버지가 죽을 때보다 더 서럽게 울었을 정도였다. 정말로 좋은 최고급 관을 거액을 주고 사와 칭을 묻어주고 스님도 돈주고 불러와 명복을 빌게하고 자신이나 아들들에게까지 친가가 죽을때 입는 상복을 입게 할 정도였다. 두 아들은 "그저 머슴 감독인데요?" 라고 반발했으나 마지못해 따랐다. 그리고 가족이 묻힌 무덤 근처에 묻으려다가 이것만은 안된다는 아들들 반발에 무덤가 입구에 묻어주고[12] 자신이 죽으면 칭의 무덤 곁에 묻어달라고 할 정도였다.[13] 칭이 죽은 뒤로 그도 나이가 들었음을 알게 되었는지 아들들에게 논밭 농사일이나 소작같은 걸 거의 맡겨두게 된다.

하지만, 이런 부친과 달리 욕심많은 둘째 아들은 흉년에도 소작료를 내게 하여 결국 분노한 소작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자신처럼 무척 알뜰하고 당돌한 아내까지 살해당하고 만다.[14] 그래도 재산 상당수는 일단 돈이나 재물로 가지고 있었고 아들이 작긴 해도 제법 튼튼한 군벌을 거느리는 터라 아들이 다스리는 군벌 구역으로 달아나서 안전할 수 있었다.

참고로 왕룽이 어떤 여인상을 바라느냐며 결혼을 시키려할때, 둘째 왕얼은 "얼굴이 예쁘면 그걸 빌미로 바람피거나 사치를 부리니 저는 싫습니다. 얼굴이 예쁘지 않아도 좋으니 당돌하고 씀씀이가 적고 매우 알뜰살뜰한 여인이면 좋습니다."라고 즉시 말할 정도였다. (정확히는, 예쁘지도 못나지도 않은 외모를 바랐다.) 그래서, 왕룽이 수소문하여 상인의 딸을 찾았는데 얼굴은 별로지만(묘사를 보면 오란 같은 박색은 아니다. '붉은 고기'에 비유한 왕룽 사촌의 이야기를 보면 미인은 아니지만 호감은 갈 정도의 외모였던 듯하며, 상인의 딸 답게 발랄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보인다.) 왕얼이 원하던 성격에 알뜰살뜰하여 매우 마음에 들어했고 정말로 사랑했다...큰아들 왕이는 그저 예쁜 여자를 바래서 외모는 뛰어나지만 좀 씀씀이가 큰 여인이랑 결혼해 왕얼의 아내랑 사이가 나뻤다.[15][16]

나이가 들면서 롄화의 몸종(정확히는 첩실이던 롄화가 허드렛일을 시키고자 어느 농부가 데려온 딸을 은화 20냥을 주고 산)인 리화를 보고 잠깐 욕정도 생기고 그녀를 첩으로 들이며 사내로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관계를 맺거나 한 것은 아니고, 늙은 몸이라 추위에 약한 자신의 아버지가 손주와 함께 잔것처럼 말 그대로 잠자리만 같이 하였다. 또한 셋째가 리화를 좋아하는 기색을 보이자 그와 결혼시켜줄까 물어본다. 첫째는 높은 가문에서, 둘째는 부자집에서 어렵사리 아내를 구해와 결혼시켰음에도 고작 하녀인 그녀를 자신의 아들과 맺어주려 한 것을 보면 정말 그녀를 아낀것으로 보인다[17]. 다만 이 제안은 리화가 '젊은 남자는 싫어요. 노인은 친절해요' 라는 알수 없는 말로 거절하여 백지화되고,[18] 실연당한 셋째는 그대로 군대에 투신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19][20] 그리고 백치인 큰딸을 돌봐줄 것을 리화에게 부탁하고 2부 아들들 초반부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친척은 다 죽고 숙부가 있으나 아주 개망나니였다. 왕룽이 그리 잘살지 못할 때도 왕룽을 등쳐먹고 악랄하게 굴더니만 부자가 된 왕룽에게 나타나 온갖 횡포를 부렸다. 숙모나 사촌동생도 마찬가지로 답이 없는 족속이라 견디다못한 왕룽이 쳐죽일듯히 화냈지만 이 인간은 마적단 부두목이었다. 결국 참으면서 원하는 대로 돈도 주고 횡포를 견뎌야 했는데[21] 큰아들 왕이도 결국 분노하여 가족보다 저런 막장 친척을 돌봐야하냐 따져들다가 마적단 부두목이란 사실에 그도 데꿀멍.
"그냥 얌전하게 있으면 좋겠는데...." 라는 왕룽의 말에 왕이가 "맞아요! 방법이 있어요, 아편 담배를 피우게 하여 중독시키면 됩니다!"라고 말한다. 왕룽은 "아편은 비싼데?" 라고 했지만 아들은 "이대로 두면 그 아편보다 더 비싸게 돈이 날아갈걸요?" 라고 말했다. 왕룽은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래도 꺼림칙하다면서 일단 보류했다. 그러나 왕룽의 사촌동생이라는 놈이 나중에 왕룽의 딸까지 범하려고 하면서 왕룽의 생각이 달라진다. 왕룽이 두들겨패가면서 겨우 막게한 뒤 큰아들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니 그도 기겁하며 "이대로 두다간 내 여동생까지 범할 놈이에요. 약혼을 주선한 집안에 미리 살게 하는게 낫겠어요!"로 건의하여 딸을 약혼하기로 한 집안에 머물게 한다.[22]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결국 아편을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어차피 늙어서 기운도 다 빠진 숙부와 숙모는 좋아라 피우다가 중독상태가 되어 얌전해졌다. 그 후 숙부는 죽기 직전, 왕룽에게 자신의 아들보다 자신을 더 잘 챙겨주었다면서 고마워한다. 그리고 왕룽 역시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친척이라는 이유로 숙부와 숙모의 장례도 다른 가족 장례급으로 치러주었다.

젊어서 쉽게 아편에 빠지지 않았던 사촌동생은 이후 군인이 되어 나갔다가 나중에 군대를 이끌고 왕룽의 집을 엉망으로 만든 뒤, 군대가 이동하면서 퇴장하고 나오지 않는다.[23][24][25] 이 사촌동생에 대해 마지막으로 언급되는 것은 왕 룽이 죽었을 때 유산 분배를 위해 집안 어른들을 불러모을 때였다. 그는 떠돌아다니는 비적 떼의 대장 노릇을 하며 자기 부대를 끌고 그때그때 돈을 많이 주는 장군에게 가서 용병을 뛰다가 일이 없을 때는 도적질을 하는 모양이었다. 때문에 소재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그냥 왕룽 집안과 겹사돈을 맺은 곡물상 류 생원을 모셔다가 유산 분배를 진행했다. 작중에서는 사촌동생이 그런 인간이기에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다들 안도했다는 언급도 나온다.

왕룽의 숙부와 사촌동생은 파렴치하고 뻔뻔, 악랄한 인물상으로써 명백하게 부정적인 인물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객관적으로 보면 왕룽의 삶에 있어 이들로 인해 입은 손해보다 이득이 더 컸다고 볼 여지도 상당하다. 숙부와 숙모가 자신에게 뜯어낸 돈으로 사치스럽게 놀고먹는 모습을 보며 왕룽은 분노에 치를 떨었지만, 숙부의 말대로 왕룽만 못한 부자들도 약탈당하고 서까래에 목이 매달리던 시대에 조카로써 마적단 부두목을 부양하던 왕룽은 약탈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던 것. 숙부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듣기 전까지 왕룽은 자신이 약탈당하지 않은 것이 운이 좋고 관음보살의 가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애매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숙부가 마적단의 일원인 것을 알게 된 뒤에는 자신이 그때까지 약탈당하지 않은 것은 도적단의 간부인 숙부를 부양하기 때문이고, 숙부를 부양하는 한 앞으로도 약탈로부터 안전하다는 것, 그리고 숙부를 쫒아내면 그때는 도적단에게 보복당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사촌동생은 오촌조카인 왕룽의 딸을 덮치려고 하던 인간 말종이지만... 가난뱅이 집까지 군인들이 쳐들어가 눌러앉으면서 항의하거나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을 마구 찔러죽이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사촌동생 패거리는 왕룽의 집에 머물면서 갖가지 행패를 부렸을지언정 왕룽 일가 사람은 하인조차 하나도 죽이지 않았고, 무장한 군인들이 부녀자를 강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던 당시 상황에서 가주 일가는 건드리지 않고 하녀 하나를 내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은 좀 뒤틀린 의미에서지만 신사적으로 보이기까지 할 정도.[26][27] 말하자면 법과 원칙이 통하는 시대의 기준에서 보면 숙부 부부와 사촌동생의 행태는 분명 천하의 개쌍놈들이고, 왕룽 역시 이 점에 치를 떨며 숙부 가족을 혐오했지만... 사람 목숨이 파리목숨같은 혼란기였던 당시 기준으로 보면 마적과 군벌들에게 약탈당하고 살해당한 많은 부자들(또는 부자까지는 아닌 사람들)에게 왕룽 일가의 처지는 차라리 혜택으로 보일 정도인 것이다. 이 면에서 보면 숙부 일가의 태도 역시 의외로 친척으로써 도리는 지킨 것처럼 보일 정도인데... 공권력이 사실상 무력해진 상황에서 폭력으로 왕룽의 재산을 송두리채 빼앗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어디까지나 왕룽에게 돈이든 무엇이든 '달라'고 했고, 그 요구의 수준마저도 왕룽이 줄 수 있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28] 그 대가로 다른 폭력으로부터 사실상 왕룽을 보호하기까지 했던 것[29]

왕룽이 자신을 쫒아내려고 할 때도 폭력으로 보복하는 대신 붉은 수염 마적단의 표지를 보여줌으로써 '경고' 하는 것으로 그쳤고, 홍수로 흉년이 든 상황에서 숙부와 숙모가 내놓으라고 하는 돈을 주지 못하겠다고 버티자 역시 "너는 운이 좋다. 너만 못한 부자들도 전재산을 다 빼앗기고 대들보에 목매달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고 역시 '경고' 하는 것으로 그친 것. 살인, 강간, 약탈을 밥먹듯하던 당시의 마적떼에서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낸 상대에게 폭력적으로 보복하는 대신 점잖은(?) 경고로 그치는 경우가 그리 흔치는 않았을 것이다. 도덕과 도리의 논리에 따라 보면 숙부 일가는 천하의 개쌍놈들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법과 원칙, 도덕과 도리가 무력화되고 야만적인 폭력의 논리가 지배하던 사회상을 기준으로 본다면 오히려 '숙부 일가는 호의와 애정, 신뢰를 기반으로 왕룽에게 유리한 거래를 제공'하고 있는데 '왕룽은 오히려 작은 비용으로 큰 이익을 제공받는 거래의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 비용조차 내기 싫다고 뻗대는 뻔뻔한 인물'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부쪽이 인내심을 발휘하여 '이 거래가 없으면 손해를 보는 것은 바로 너.'라고 주의를 주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숨까지 막히는 어처구니없는 구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다르게 말한다면 숙부는 '팔면 안되는 것'을 팔고 있기는 한데 친족의 도리를 지켜 '양심적인 가격으로 팔고 있는 꼴' 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숙부와 숙모의 유언마저도 상징적인 것이, 숙부는 죽어가면서 '어디가서 죽었는지도 살았는지도 모르는 그놈(사촌동생)이 아니라 너야말로 내 아들이다' 라며 왕룽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숙모는 이보다는 좀 뻔뻔했지만 숙모가 왕룽에게 요구한 '나중에라도 아들(사촌동생)이 돌아오거든 장가를 들여서 집안의 대를 잇게 해 달라'는 것으로 당시 사회에서 부유한 친척이 사촌동생에게 해 줘야 할 도리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즉, 왕룽의 입장에서 자기 재산을 뻔뻔하게 갈취하는 악당으로밖에 안 보이던 숙부 부부지만 알고보면 왕룽과 그 일가를 친족으로 인식하고 나름 그에 걸맞는 도리도 지키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법과 원칙, 도덕과 정의'라는 잣대를 개입시키면 숙부 일가는 천하의 개쌍놈, 인간말종들이지만 그런 잣대를 빼고 당시 상황에서 손해와 이익만 따진다면 오히려 왕룽쪽이 숙부 일가와의 거래로 적잖은 이득을 보면서도 되려 숙부 일가를 미워한 것처럼 보일 정도인 셈이다.[30]

결국 숙부 일가는 왕룽의 인생에 있어서 뒤틀린 모습을 한 일종의 행운이었던 동시에 당시 중국사회의 혼란상과 참상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고 보아야 한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참혹하여 법과 원칙이 힘을 잃었기에 숙부 가족의 만행이 오히려 왕룽 일가의 행운이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자식은 총 여섯으로, 아들 셋과 딸 셋을 두었다. 아들들은 각각 위에서 나온 왕이, 왕얼과 셋째아들 왕싼[31]이고, 딸들은 백치 큰딸, 흉년기에 남방으로 떠나기 직전 태어났으나 곧 죽은[32] 둘째딸, 왕싼과 쌍둥이로 태어난 막내딸. 순서는 왕이-왕얼-큰딸-둘째딸-왕싼과 막내딸 쌍둥이. 막내딸은 집안에서 가장 잘생긴 왕싼처럼 상당히 미인인데, 오란이 전족을 철저하게 시켜 울고 지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왕룽이 우는 막내딸에게 왜 우냐고 물어보자, 엄마가 발이 크면 자기처럼 남편에게 사랑을 못 받는다며 전족을 너무 세게 묶어 울었다고 대답하여, 오란에 대해 돌아보며 마지막으로 잘해주는 계기가 된다. 막내딸은 왕이의 아내를 데려온 집의 아들에게 보내 겹사돈을 맺었으며, 당시의 출가외인 문화에 걸맞게 이후 행적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33]

실사판 흑백영화에서는 백인 배우 폴 무니(1895~1967)가 연기했다. 당연히, 펄 벅은 장난치냐며 무척 기분나뻐했지만 1937년 당시에는 인종차별이 엄청났기에 별 수 없었다. 오란 역시 백인 여배우가 맡았기 때문이다.

2. 왕룽일가의 주인공

머나먼 쏭바강을 쓰기도 한 박영한 작가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KBS,SBS에서 드라마화 하기도 했다. 배우는 박인환.


[1] 이 이름은 나중에 속편에서 등장하고, 대지 본편에서는 그냥 '둘째 아들' 정도로만 불린다. 고향에 돌아와 서당에서 글을 배울 때는 훈장이 '눙운(農溫)'이라는 일종의 아명을 붙여주었다고.[2] 심지어 왕룽은 이때 딱히 손에 든 무기도 없었다.그리고, 남들이 부잣집을 마구 털어갈때 왕룽은 구경만 하다가 사람이 아직 안 온 집구석을 보는데 갑자기 숨어있던 부자가 튀어나와 살려달라고 빌어서 왕룽은 쿡...웃을뻔 했다...그러다가, 돈을 준다는 말에 확 달라졌던 것. 결국 가진 돈을 다 주고 더 이상 돈이 없다고 하자 혐오감에 "썩 꺼져! 죽여버리기 전에!" 라는 말을 한다.[3] 이 시기에는 거의 망해 있었다. 소설 초반부 첫 아들을 낳은 후 문안 인사를 갔던 오란이 '그 댁이 궁색해져 가는 것 같다'고 하면서 이미 가세가 기우는 중이었다는 복선이 있는데, 흉년기에 마적들에게 털렸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안 그래도 돈이 말라가는데 약탈까지 당하면서 아예 기둥뿌리가 뽑혔을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건지, 왕룽네 마을에 있던 본가는 망했어도 도시로 나간 자식들은 나름 살 만했던 듯하다.[4] 애초에 해당 장면 자체가 처음에 집 주인을 협박할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당황하고 당혹스러운 상태였던 왕룽이 (평소에는 그렇게 잘나보이는 부자였던) 집주인이 비굴하게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분노와 폭력성에 사로잡힌다는 묘사가 있는 만큼 처음에는 (협박을 하면서도) 존댓말을 했다가 그 다음에는 난폭한 어조로 바뀐 것이 오히려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린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어쨌건 독자가 판단할 문제지만.[5] 번역에 따라 칭에게 '자네' 정도의 호칭을 쓰며 반말로 편하게 친구처럼 대하는 것으로 나오는 판본도 있고, 이와는 달리 '아저씨' 정도로 높여부르며 예의바르게 대하는 것으로 나오는 판본도 있다. 외국 소설(특히 대지의 원문은 영문이다)의 대화 번역에서 존비어의 적절한 번역은 언제나 까다로운 문제이므로, 그저 번역자가 스스로 생각해서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표현을 고를 수 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일단 참고사항은 칭의 나이가 왕룽보다는 명확히 많다는 점, 그리고 처음에는 사이좋은 이웃 정도의 관계였지만 왕룽이 큰 부자가 된 이후 칭은 왕룽의 일을 충실히 돕는 머슴 우두머리나 마름 비슷한 처지가 되었고, 왕룽 역시 그런 관계에서 칭을 깊게 신뢰하여 우대했다는 점이다. 이를 감안하여 한국 사회의 존비어 감성에 맞게 번역한다면, 예를 들어 처음에는 "칭 아저씨" 라고 예의바르게 존댓마을 쓰는 관계이다가 나중에는 "자네" 라고 적당히 예의를 갖춘 반말로 바뀌는 것이 어울릴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작중 서술에서도 칭은 왕룽의 일을 돕게 된 이후에는 자신의 처지를 지켜 항상 예의를 잃지 않았다는 설명이 나오기도 한다.)[6] 스스로도 딸을 팔아먹을 뻔 했다. 거기다 아내인 오란이 그렇게 팔려서 종이 되었던지라...[7] 더구나 이런 식으로 재물이 생기면 왕룽은 고향에 돌아가 땅을 사겠다고 했지만, 빈민들은 이런 그를 돼지꼬리 농투성이라 비웃으며 자기들은 산해진미를 즐기고, 노름을 하고, 예쁜 매춘부를 사겠다고 거들먹댄다. 이에 대해 왕룽은 재물이 무한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살 생각을 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빈민들은 돈 쓸줄을 아는 자신들이 재산을 가질만한 자격이 있고, 그렇게 돈쓸 줄을 모르는 왕룽같은 촌놈은 그럴 자격이 없다는 듯이 비웃었다. 물론 훗날 결국 그런 재물을 갖는 거부가 되는 건 왕룽이다. 아이러니 한건 결국 거부가 된 왕룽은 그 돈으로 결국 빈민들이 원하던 대로 산해진미를 즐기고, 예쁜 매춘부를 사게 된 것.[8] 머슴을 구할때도 칭이 머슴들을 잘 보고 기억한 걸 잘 듣었다. 저 머슴은 곡식 말리면서 몰래 몰래 곡식을 가로챘다고 칭이 말해주면 하면 일절 다음에는 머슴 일을 시키고자 부르지 않았다. 반면에 이런 짓 안하고 말없이 맡던 일 잘한 머슴은 다음 해에도 머슴 일 시키고 급여같은 것이나 식사도 후하게 대우했다.[9] 일찍 일어나서 온갖 밭에 대한 일을 손수하고 머슴 감독일도 너무나도 잘할 정도였다. 왕룽이 밭일은 칭이 있으니까 내가 신경안써도 된다라고 완벽하게 믿을 정도. 그만큼 그 믿음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았다. 다만 아무리 그를 배불리 먹여도 온갖 고생으로 몸이 망가졌는지 도무지 살이 찌지 않아서 왕룽이 안타까워했다.[10] 나이가 예순이 넘었음에도 왕룽이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훨씬 젊은 시종이 쫓아가지도 못할 정도였다![11] 그 분노의 기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왕룽까지 잘못될까 봐 말리지도 못했다고 나온다. 그래도 이 머슴이 무슨 악의가 있어 칭을 다치게 했던 것은 아니었고, 왕룽도 이걸 알고는 있었는지라 그를 내쫓거나 그 이상 혼내지는 않았다. 나중에 왕룽에게 골칫거리였던 숙부 일가가 모두 죽거나 떠나 버린 후, 숙부 일가를 모시던 하녀가 이제 남편을 맞게 해달라고 청해오자 그 머슴에게 이 하녀를 아내로 맞게 하기도 했다. 뻐드렁니에 맹한 구석이 있던 머슴은 그저 주인이 알아서 아내를 맞이하게 한 것에 머리숙여 고마워했다.[12] 그래도 왕룽은 이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는데 "칭 아저씨는 살아 생전 나와 우리 집안을 열심히 지켜 주셨지..그만큼 우리 집안 입구에서 지켜주실 테니까...."라고 물러났다.[13] 나중에 거의 결말부에 나오는 자신의 무덤자리를 보고 왔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잊어버리지 않고 그 자리를 '칭 아저씨와 가장 가까운 자리, 너희들 어머니(오란)의 곁'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진심으로 그런 결심을 했던 것이 분명하다.[14] 왕얼의 아내는 소작료를 받으러 직접 나갔다가 칼에 맞아 끔살당했고 이 이야기를 셋째 왕싼이 자신의 아들에게 말할때, 왕얼은 죽은 아내가 생각나는지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오죽하면 왕싼의 아들이 돈만 밝히던 저 큰아버지가 눈물도 흘리다니..그만큼 죽은 아내를 사랑했나...라고 생각할 정도.[15] 왕이가 바랐다기보단, 왕룽이 부잣집 종을 아내로 얻어왔던 콤플렉스 때문인지 첫 며느리를 되도록 최상의 여자를 구해주고 싶어서 첩 렌화가 고급창녀였던 시절의 손님 중에서(...) 딸 이야기를 하는 성내 부잣집의 소개를 뚜챈을 통해 받은 것이다. 렌화를 보면 딸과 닮은 점이 있어 딸 생각이 난다고 했던 말을 토대로 미인일 거라 추측했다. 예상했던 대로 상당히 미인이며, 큰아들이 잠깐 보고 좋아하는 걸 보고 왕룽이 뿌듯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만 부잣집에서 곱게 자라 씀씀이가 크고, 자존심이 지나치게 센 편이다. 왕이와는 처음에는 금슬이 매우 좋아서 왕룽이 창녀하고나 나누는 사랑을 아내랑 나누다니 천박하다고 핀잔할 정도였다. 허나 시간이 지나자 여자를 밝히는 왕이는 다른 첩들을 들이기 시작한다. 왕얼의 아내는 원래도 깔보고 있긴 했지만, 왕룽의 사촌이 군인들과 들이닥치면서 여자들과 아이들이 한 방에 다같이 살게 되자 사이가 극도로 나빠져 서로 증오하는 수준에 이르렀다.[16] 참고로 왕이의 아내 집안 둘째아들에게 왕룽의 막내딸이 시집가서 겹사돈이 되었다.[17] 하지만 이 독해는 오해로 보인다. 리화를 셋째에게 주겠다는 이야기가 나온 계기는 젊은날의 방황 속에서 집을 떠나 군대에 들어가겠다는 소리까지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여자라도 붙여주면 좀 나아질까' 라는 생각이 든 왕룽이 결혼을 시켜주겠다고 했다가, 오히려 결혼따위는 딱 질색이라는 아들의 반응에 당황하여 '그러면 마음에 드는 여자 종이라도 줄까?' 라고 제안을 바꾸자 이에 셋째가 다른 여자 종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지만 리화라는 아이는 마음에 든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셋째의 반응에 왕룽은 처음에는 남자로써의 질투심때문에 셋째를 타박했지만 곧 나이든 자신이 소녀를 상대로 욕망을 느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젊은 두 사람이 맺어지는 것이 옳다고 여겨 셋째에게 리화를 보내려 한 것이다. 즉 왕룽이 리화를 아낀 것은 분명 사실로 보이지만, 정말 신분의 선을 넘어 셋째의 정식 아내로 삼게 할 생각이었던 것이 아니라 첩으로 삼게 할 생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젊은(어린) 소녀인 리화의 삶을 자신의 욕망보다 우선시하는 애정이나 본인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것.[18] 이것이 당시의 잔인한 혼란상 속에서 리화가 정말 무슨 무서운 일을 겪은 경험 때문에 생긴 공포심인지, 아니면 한동안 리화를 데리고 있던 롄화 및 두쥐안이 들려준 음탕하거나 잔인한 이야기 때문에 겁에 질리거나 한 것인지는 왕룽도 구별하지 못했다. 여하간 공권력이 실추되고 마적떼가 창궐하며 기근과 가난으로 부모가 자식을 파는 일도 비일비재하던 당시의 시대상에서 '젊은 남성이 행사할 수 있는 폭력'에 대한 공포감이 리화를 사로잡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19] 다만, 일반적인 실연의 충격이라기 보다는 좋아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그것도 나이든 아버지)에게 빼앗겼다는 분노로 집에서 떠난 것처럼 묘사된다. 사실 이 점에서는 왕룽 역시 젊고 예쁜 리화는 셋째 아들과 같은 젊고 씩씩한 남자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에 자신의 욕망을 접고 셋째에게 보내려 했지만 리화가 거절했기에 자신의 첩으로 들인 것이라 나름 공정한 태도를 취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 사정을 속속들히 알지 못하는 셋째로서는 자신이 좋아하던 여자를 아버지가 가로챘다고 여길만 했던 것.[20] 하지만 정황상 셋째는 리화가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던 듯하다. 왕룽이 죽고 나서, 왕룽 무덤에서 진심으로 슬퍼하는 리화의 모습을 셋째가 보게 되는데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라고만 하지 의외라거나 몰랐다는 태도는 아니다. 그리고 집 나가기 직전에 왕룽을 찾아왔을 때, 셋째를 본 리화가 당황하여 창백해지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를 보지 않으려 했다는 묘사가 있는 걸로 봐선, 이미 리화에게 고백도 했지만 차였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아버지가 강제로 뺏은 게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가 진짜로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자신을 거절했다는 게 상처가 더 됐으면 됐지 덜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셋째 성격상 왕룽이 강제로 첩으로 삼은 거였으면 리화도 데리고 나가거나 왕룽에 대한 분노를 약간이라도 드러냈을 텐데 왕룽에 대한 원망 등이 일절 없이 집 나갈 때도 통보만 하는 수준이다. 후에 적이었던 산적두목의 여자를 사랑하게 되자 결혼 밀어붙일 정도의 집요한 성격인데 리화는 차지하려는 노력 전혀 안 했다는 건, 리화의 마음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집 나간다는 통보 할 때 셋째를 보고 굳어서 하얗게 질려 얼굴을 가리고 쳐다도 못 보는 리화 태도나, 리화가 자신을 보고 왜 그러는지 전혀 궁금해하지도 않고 그런 리화 쪽으로 일절 눈길도 돌리지 않고 못본 척하는 셋째 태도를 보면, 왕룽이 힘으로 첩으로 삼은 걸로 오해하여 리화 데리고 나가려고 몰래 찾아왔다 거절당했을 확률이 있다.[21] 다만 부두목이 머무르는 집이라서 마적단이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다른 부잣집들은 대부분 털렸다) 결과적으로 왕룽의 재산보전에 기여한 공이 없지는 않다. 왕룽도 이건 알아서 망나니같은 작은할아버지를 욕하며 내쫓자고 하던 큰아들 왕이에게 이야기하며 그래도 저자가 여기 있어서 우리가 마적에게 무사한거란다...라고 말한다.[22] 물론 약혼자 집안 쪽에는 동네 창피한 일이니 이유를 사실대로 말할 순 없었고 그저 '집안에는 워낙 할 일이 많은지라 오란이 죽은 후로는 딸아이 일을 보살펴줄 사람이 없다 보니 차라리 미리 시집에 보내놓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둘러댔다.[23] 참고로 사촌동생이 머물 당시, 여자도 내놓으라며 리화를 달라고 억지를 부리자 리화는 극도로 두려워하며 거부했고, 이에 왕룽이 그 애(리화)에게는 병이 있으니 다른 하녀를 내주겠다며 하녀중에 자원하려는 이가 있는지 묻자 당돌한 여자 하인 한 명이 그럼 제가 가겠다며 나선다. 이후 이 하녀는 임신을 해 딸을 하나 낳는데, 왕룽은 아들이었다면 일가의 아들이니 뭐니라고하여 시끄럽게 굴텐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딸을 낳은 하녀가 사내를 알고 나니 혼자서는 외로워 못 살겠고, 딸아이도 혼자 기르기 어렵다며 남편을 맞게 해달라고 청하자, 왕룽은 아편에 중독된 숙모가 죽으면 남편감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숙모가 죽을때까지 보살피고 죽은 뒤의 일(관에 모시는 일)까지 그 하녀가 맡아야 한다는 조건이었는데, 이는 다르게 보면 사촌동생이 왕룽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계속 그를 상대했고, 그러다 아이까지 낳은 하녀이니 정식 부인은 아니지만 첩 비슷한 지위로나마 일가의 며느리 역할을 했음을 인정해주는 의미인 셈이다. 숙모를 돌보는 일을 전담으로 맡긴다는 것 자체가 '시모를 돌보는 것은 며느리의 일'이라는 논리로 성립하고, 그 이후에야 남편감을 찾아준다는 것 역시 '집안의 첩-며느리로써 네 의무를 다하고 난 다음에 재가를 도와주겠다'는 논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숙모 사후 왕룽이 하녀에게 해 주겠다고 했던 일들 역시 '원한다면 숙모가 쓰던 방과 침대를 물려주겠다', 그리고 '돈도 좀 주겠다'(이 돈은 결국 하녀가 재가할 때 지참금으로 주게 된다)는 것으로, 작품 지문에서 왕룽이 이 일을 '정당하게' 처리하려 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해석하자면 '이 집에 계속 머물겠다면 네 방을 따로 주겠다'(=그리고 그 방은 네 사실상의 시어머니가 쓰던 방을 물려주는 것이다)는 것으로, 그녀의 하녀 신분을 면해 줄 생각은 없고 태어난 딸(왕룽에게는 오촌 조카가 된다)까지 함께 하녀로 취급할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도 첩-며느리 역할을 하여 일가 구성원의 딸까지 낳은 하녀의 지위를 인정하여 다른 하녀들보다는 좋은 대우를 해 주겠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다른 하녀들은 자신만의 방을 가지지 못할 것이니 자기 방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더 좋은 대우이고, 그 방에서 딸과 함꼐 지내며 딸을 키울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사실 숙모를 돌보던 시기에도 할머니를 돌보는 대신 다른 집안일은 덜 하고 이전보다 편하게 지내는 등의 대우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제아을 거절하자 남편감을 찾아 결혼시켜주면서 약간의 돈을 지참금으로 쥐어준 것.[24] 그래서 왕룽이 찾아준 남편이 바로 위에서 칭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던 그 머슴인데, 이유인즉 그때는 미친듯이 화를 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저 불운한 사고였을 뿐이지 그 머슴이 딱히 잘못한 일은 없었고, 무엇보다 당장 생각나는 상대가 그 머슴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즉 인생 후반부의 왕룽은 그렇게 순간적이고 즉홍적인 감정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자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젊은 시절 그런 권력자의 호의로 아내를 얻으려고 고개를 조아렸던 왕룽의 처지가 한 바퀴 돌았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동안 너무나 긴 시간이 흘러, 그에게 누구보다 충실했던 아내 오란의 죽음마저도 이제 더이상 왕룽에게 비통함보다는 그저 가슴을 무겁게 하는 아련한 애수로 느껴질 정도로 먼 옛날의 일이 되어버렸다.[25] 사실 왕룽의 집만 군인들이 온 것이 아니다. 왕얼이 왕룽에게 얘기한 바에 따르면 모든 집에 다 군인이 쳐들어왔고, 항의한 사람은 즉시 죽였다고 한다.[26] 이 사촌동생이라는 자는 잔인한 무뢰배로 보나마나 살인, 강간, 약탈등등을 밥먹듯 일삼고 다니는 자였을 것임이 뻔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왕룽 일가를 상대로는 나름대로 깍듯하게 최상의 예의를 지켰다고 보아야 한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무장한 군인들이 부녀자를 강간하고 살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이 자는 자기에게 붙여준 하녀 한명 이외에 집안의 다른 여자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고, 사촌동생이 떠난 뒤 하녀의 태도를 보면 함께 있던 동안 잘 대해줬는지까지는 알 수 없어도 최소한 잔인하거나 못되게 군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심지어 처음에 외모가 마음에 든다고 했던 하녀(리화)는 내줄 수 없다고 적당한 핑계를 지어내서 거절하고 일방적으로 다른 하녀(묘사를 보면 외모도 떨어진다)로 바꾸었는데도 집주인쪽이 알아서 결정해도 좋다는 듯 딱히 따지지 않고 받아들였다. 사실 이 당시 사회의 통념에서 보면, 부잣집에서 이 정도 대접은 무장집단 두목이 아니라 그저 멀리서 오래간만에 방문한 일가친척에게 해 줄수 있는 수준에서도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닌 셈이다. 게다가 이 사촌동생이 왕룽 일가의 부인들에게 무례한 말을 하며 함부로 굴었다는 것 역시 자세히 뜯어보면 좀 상황이 다르다. 물론 가까운 일가임을 내세워 안채까지 들어와 함부로 농짓거리를 하며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자신도 창녀 출신으로 험한 인생을 살았던 롄화는 자신을 마님이라 은근히 추켜주며 농담을 건네는 사촌동생의 언행을 도리여 약간은 재미있고 기분좋게 받아들였고, 시골 출신이던 둘째 왕얼의 아내는 (내심이야 어쨌건) 굳이 불쾌한 티는 내지 않고 적당히 재치있는 대답으로 받아넘겼다. 그러니까 그의 무례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노골적인 불쾌함을 보인 것은 도시(성 안)의 지체있는 집안 출신인 첫째 왕따의 아내 뿐이었던 것인데, 사촌동생이 막굴러먹던 무뢰배로 살던 것을 생각하면 설령 죽을 힘을 다해 예의를 지킬 생각이었다 한들 명문가 규수의 기준을 충족시킬만큼 예의바른 행동을 과연 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 게다가 왕따의 아내가 그런 사촌동생의 언행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내보이며 면전에서 자리를 피해버렸는데도 그저 비아냥거리고 투덜거릴 뿐 그 이상의 공격적이거나 적대적인 행동은 하지 않은 것을 생각한다면 사촌동생의 행태는 무례하고 제멋대로인 면은 있어도 최소한 악의적 공격성을 보인 것은 아니라고 인정해줄만 하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본다면 집을 나가버린 자기 대신 자기 부모님을 모신 (특히 이 시점에서 숙부는 이미 죽었지만 숙모는 아편에 심하게 중독되기는 했어도 아직 살아서 왕룽의 성내 저택에 함꼐 살고 있었다.) 사촌형이라는 생각에 나름은 최대한 예의를 차린 것이 아닌가 싶다.[27] 또 어떤 면에서는 숙모의 아편중독 역시 양면성이 있다. 당시는 아편의 해악성에 대한 경계심은 비교적 덜하고 사치스러운 기호품이라는 인식이 아직 남아있던 시기였기에 숙모를 아편중독에 빠트린 왕룽의 행태는 어찌보면 '집안의 웃어른이 좋아하는 기호품을 돈을 아끼지 않고 듬뿍 사드리는' 일종의 효심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던 것. 이는 아편에 쩔어있는 자기 어머니를 보고 사촌동생이 왜 자기 어머니를 어렇게 만들었느냐고 따질까 봐 두려움을 느낀 왕룽이 '돈이 이만저만 들지만 어르신이 청하시니 거절하지도 못한다'고 지레 변명한 것에서도 짐작 가능하다.[28] 작중 왕룽이 감당하기 어려운 큰 돈을 쓰고 있는 상황임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징후는 '땅을 파는' 것이다. 땅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왕룽은 땅을 파는 것은 자기 살을 잘라서 파는것처럼 뼈아프게 여기지만, 그래도 할 수 없이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땅을 팔아 돈을 마련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 하지만 숙부 일가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땅을 팔았다는 상황은 나타나지 않는다. 즉, 숙부 일가가 나름 돈을 뜯어내기는 했어도 그 액수는 땅에서 얻어지는 수익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사람 목숨이 파리목숨같던 당대 중국의 상황이라면 땅의 일부를 팔아 바치더라도 일가의 생명과 나머지 재산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오히려 감사하며 응할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29] 실제로 왕룽 역시 숙부에게 호락호락 당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고, 몇차례 저항을 시도했음을 생각하면 왕룽을 대하는 숙부의 태도는 그가 잔인한 무법자임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친족에 대한 호의를 가지고 최소한의 선만큼은 넘지 않으려했다고 볼 수도 있을 정도이다.[30] 다시 말하지만 당시 파리목숨같이 죽어가던 중국 각지의 부자들에게 누군가가 이런 '거래'를 제안했다면 감사하며 응할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숙부 일가가 보여준 행동은 결국 '나는 어떤 군벌, 혹은 마적단에서 상당한 입지에 있는 사람이다. 내가 당신에게 이것저것 요구는 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선은 안 넘을 거고 당신이 내 요구만 들어주면 당신에게 가해질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겠다.'라는 제안이나 다름없으니까.[31] 아들들의 이름은 모두 대지 본편에서는 나오지 않고 후속편에서 나온다. 본편에서는 그저 첫째, 둘째, 셋째(혹은 장남, 차남, 삼남) 하는 식으로만 불린다.[32] 뭔가 목을 조른 흔적이 있어보이는 것 같았다는 해당 부분 묘사를 보면 오란이 아이를 낳자마자 죽였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오란을 비난하기는 어려운 것이 당시는 다른 가족들도 목숨을 담보하기 어려운, 여러 모로 극한 상황이었다. 아기 수준도 뼈만 남을 수준으로 산모도 먹질 못한 상황이었다. 이후, 왕룽은 아이 시신을 묻어주려고 하는데 웬 큼직한 가 빼빼 마른 채로 나타났다. 당연히, 시신을 먹으려고 하는 것이니 왕룽이 분노하여 큼직한 돌을 집어 개에게 던져 맞췄지만, 개는 피멍이 들어도 반드시 먹고 말겠다는 듯이 그대로 있었다. 왕룽도 개도 굶주려 이렇다는 것을 알고 결국 시신을 대충 묻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다.[33] 그래도 겹사돈 맺은 집안에 왕룽과 곡물거래를 하는 집이라 만약 며느리 잘못 들였다는 말 나올 정도의 문제가 있었다면, 즉 이른 나이에 죽거나 큰 병에 걸리거나 아들을 못낳거나 소박이라도 맞는 등 뭔가 문제가 있었다면 소식은 올 텐데, 딱히 소식이 없던 걸 보면 부잣집 며느리로서 큰 문제 없이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다. 적어도 왕이 아내 정도의 삶은 살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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