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3-23 00:29:43

요시나리 코우

1. 개요2. 특징3. 활동4. 기타5. 참가 작품6. 작화, 연출, 채색, 촬영 샘플

1. 개요

吉成鋼(よしなり こう)
일본의 애니메이터. 1969년 1월 20일생. ([age(1969-01-20)]세) 실버 소속.

애니메이터 요시나리 요우의 형으로 작화 매니아 사이에서는 요시나리와 구분하고자 아니나리(兄成,Aninari) 라고 불린다. [1]

트위터는 안 하지만 후배 WEB계 애니메이터와 공동으로 창작물을 공개하며 오리지널 작품을 준비하는 '수수께끼의 애니메단(謎のアニメ団)' 이라는 계정이 있다. #링크

2. 특징

애니메이션적인 데포르메보단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애니메이터로, 옷의 주름까지도 세세하게 신경써서 그린다. 더욱이 3D CG로 착각하게 만드는 기술에는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 3D로 보이는 것도 절대 3D가 아니다. 그린 거다. 저렇게 보이려면 움직임과 움직임이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하고 오차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요시나리 코우는 그 오차를 없애겠다고 촬영까지 직접한다. 남이 하면 흔들리거나 어긋날 수도 있고 못 믿겠으니까 자신이 하는 것.

2000년대 이후는 장면의 작화를 의뢰 받으면 혼자 원화, 동화, 채색, 촬영까지 다 해서 더 할 게 없는 완성본으로 납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요시나리 코우는 원화를 그리면 선을 매우 거칠고 디테일하게 치고 명암도 특이하게 넣어서 동화나 채색 쪽에서 "코우가 원화를 한 건 힘들어서 안 한다." 라고 거절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고민하다 PC의 성능이 올라가 개인이 촬영과 채색을 하는 것도 가능해지게 되면서 혼자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반 애니메이터는 연필, 샤프를 사용해서 작화를 하지만 코우는 붓이나 마커 등 다양한 도구를 써서 작화를 한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의 애니메이션은 채색을 컴퓨터로 하니까 선을 닫아줘야 되는데 코우는 선을 열어놓고 그리는 경우도 많고 선이 아닌 채색 면만 가지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혼자 하니까 가능한 거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화는 질감이 일반 애니메이션 작화와 달라 티가 확 나게 된다.

이렇게 작업을 해서 작업 속도가 한 없이 느리다. 1년에 한 작품 하던 시기도 있을 정도. 강철의 연금술사 극장판에서는 스태프롤에 이름이 가장 많이 올라올 정도로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하는 주의. 따라서 주로 명장면 1컷이나 2컷만 하는 애니메이터로 기용된다.

2000년대부터 선구적으로 디지털 작화와 개인 작업을 연구한 애니메이터라 WEB계 애니메이터 등 디지털 작화를 하는 후배 애니메이터와 인맥이 있다. 특히 이카라시 카이, 메바치(めばち)와 친하다고.

3. 활동

작화 속도가 느려서 TV 애니메이션에서는 활동을 보기 힘들지만,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오프닝 등에서는 자주 활약한다.

그래도 2011년 이후엔 2013년 한해 빼고는 해마다 한편 이상의 TV애니메이션에 꾸준히 참여중이다.이외 연출이나 포스트 프로덕션으로도 이름을 올리는 등 동생보다는 여러가지에 관여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이는 편이다.

사쿠라 대전 3 오프닝의 캉캉 댄스 장면으로 이름을 알렸다.

발키리 프로파일 시리즈에서는 동생과 함께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 패키지 일러스트도 그렸는데 퀄리티가 높다. 동생과는 다르게 실사적인 터치를 중시한 그림을 그린다.

세븐 아크스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의 1기 1화의 식사 장면, 그리고 밤을 달리는 장면에서 무서울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주며 모에 오타쿠들에게도 강렬하게 어필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이후 같은 제작사의 DOG DAYS 11화에도 참여해 해당 화의 핵심인 라이브 장면을 연출했는데, 이 때도 전반적인 연출과 움직임은 좋았으나 나노하 때와 달리 도그 데이즈 특유의 선이 뚜렷하고 눈이 초롱초롱한 캐릭터 디자인이 유지되지 못한 탓에 시청자들로부터 작화 붕괴라는 뭇매를 맞고 BD / DVD에서 싸그리 수정되는 굴욕을 겪었다.[2]

마브러브 시리즈와는 의외로 인연이 깊은데, 초대 시리즈와 얼터너티브에선 메카닉 디자인을 담당했으며 얼터너티브 CM 애니메이션도 그렸다.

강철의 연금술사에선 TV판, 극장판 모두 담당했으며, 4기 오프닝 폭포에서 떨어지는 컷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길이길이 회자되는 희대의 명작화.

WHITE ALBUM 애니메이션판에서는 모든 에피소드에 원화 참가에, OP/ED 1인 원화, 차회예고도 서비스로 막 그려주는 대활약을 했다.

종말의 세라프 나고야 결전편 2화에서 사오토메 요이치가 겟코우인을 쏘는 장면도 이 사람의 재주. 별도의 CG처리 없이, 요시나리가 디지털 작화로 혼자 작업했다. 메이드 인 어비스에서는 아예 생물 디자인 직책으로 모든 어비스 생물체의 디자인을 담당하였다. 또한 원화도 일부 담당했다.[3]

그 외 참가작은 작화보루작화위키를 참고하자.

4. 기타

동생인 요시나리 요우에게 꽤 엄격한 편이며 천원돌파 그렌라간를 보고 한 감상평인 "작화적으로 볼만한 곳은 없군!!"이며, 이 발언은 코우를 상징하는 명언 중의 명언으로 자리잡았다. 그렌라간이 작화로는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받는 작품인데 작화적으로 볼만한 게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발언은 좀 왜곡되었는데 원문의 발언 의도는 "여러 개성있는 애니메이터가 참가했지만 이마이시 히로유키 스타일로 다 통일되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작화를 즐겨보는 재미가 떨어진다." 라는 발언이지 작화가 안 좋다는 발언이 아니다.

요우 말로는 형은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 매니아로 애니메이션 잡지를 계속 사고 애니를 다 챙겨보는 애니메이션 매니아였다고 한다. 형은 토미노 요시유키, 카나다 요시노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지나치게 봐서 엄마가 애니를 못 보게 학원에 보내서 못 보게 했다고 한다. 그러자 요우에게 "네가 보고 얘기해줘" 라고 해서 [4] 형이 보라고 한 애니를 봤는데 다 재밌었다고 한다.

애니메이터 데뷔는 형이 먼저했고 집에 오면 자신에게 뒷처리를 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프로가 되기 전부터 애니메이팅 기법을 배웠고 그 기술이 아까워서 애니메이터가 됐다고 한다. 자신은 형 때문에 애니메이터가 된 것이라고 한다.

화이트 앨범 차회예고 중 25화는 동생인 요우와 공동 작업했는데, 코우가 그렌라간 극장판 때문에 바쁜 요우를 억지로 끌고와서 시켰다고... 반면 요시나리 요우가 감독한 리틀 위치 아카데미아 TVA 2화에서는 깜짝 원화를 작업하기도 했다.

마츠타케 토쿠유키와 친분이 있는데, 마츠타케가 나노하 1화의 원화를 그릴 때 요시나리가 스튜디오에 놀러왔었다. 그 때 마츠타케가 꼬셔서 원화를 그리게 했는데, 그 때 그린 게 바로 상기한 전설의 두 컷이다. 이후 소속되어서 일하고 있는 스튜디오 실버도 마츠타케가 있는 곳이다. 모리오카 히데유키와도 친분이 있다고 한다.

작품 선정 센스가 굉장히 마이너한 것도 특징이다. 직접 찾아보지 않으면 구경하기 힘들거나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마이너한 작품이 많다. 그것도 요시나리 코우가 작품 전체를 그리는 게 아니라 한 두 장면 그리는 게 대부분이므로 정말 요시나리 코우가 그린 한 장면만 보기 위해서 봐야하는 셈. 주로 에로게 제작에 참여하거나 에로게 원작 애니메이션에 유독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아 에로게 매니아란 설도 있다.

트윈테일 캐릭터의 작화를 하는 경우가 많아 트윈테일 매니아라는 설도 있다.

동생인 요우와 달리 사진 등 얼굴 노출을 꺼리는 편이고 인터뷰도 잘 안 한다. 대부분의 자료는 동생 요우가 발언해서 알려진 것이다. 다만 언론 인터뷰 자료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5. 참가 작품

6. 작화, 연출, 채색, 촬영 샘플

작화 MAD
초기동전설 다이나기가 OP
콘티 요시나리 코우 / 연출 시라하타 노부유키
작화감독 카즈이 히로코
원화 요시나리 요우, 마츠모토 노리오, 이토 노부타케, 스즈키 히로후미, 오쿠다 야스히로, 오오쿠보 히로시 등
우리는 공부를 못해 OP
콘티 마츠타케 토쿠유키
연출, 원화논크레딧 요시나리 코우
공동 연출 사쿠마 타카시
작화감독 사사키 마사카츠
책상에서 공부하는 장면은 요시나리 코우가 원화도 직접 그린 것.
야마노스스메 Next Summit ED1
ED 디렉터 (콘티, 연출, 1인 작화, 채색, 촬영) 요시나리 코우


[1] 아니가 일본어로 형이라는 의미. 요우는 그냥 요시나리라고 불린다.[2] 연출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캐릭터 디자인이 유지되지 못한 장면들이 보강된 것.[3] 이 작품 이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공식적인 디자인일이 2009년 에우레카 7 극장판 때였다. 거의 10년만에 디자인작업을 잡은 셈이다.[4] TV영상을 기록할 기계가 보급되지 않은 시대라 방송을 놓치면 재방송까지 다시 볼 방법이 없었다.[5] 이 영상 전체를 요시나리 코우가 그린 걸로 잘못 알려져있으나 전체를 그린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