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E4A84><colcolor=#fff> 한양대학교 부총장 유세희 柳世熙 | Yoo Se-He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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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0년 5월 8일 |
경상북도 안동군 (현 경상북도 안동시)[1] | |
사망 | 2024년 9월 8일 (향년 84세) |
묘소 | 국립 4.19 민주묘지 4묘역 4-2-104 |
본관 | 전주 류씨[2] |
학력 | 경기고등학교 (54회 /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정치학 58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석사)[3]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박사)[4] |
가족 | 배우자 김문자, 딸 유예강·유예진 |
경력 |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양대학교 중소연구소장 한국정치학회 회장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 공동대표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이사장 한양대학교 법정대학장 한중리더스협회 총재 한양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한양대학교 아태지역학대학원장 한양대학교 부총장 |
1. 개요
대한민국의 교수.독립유공자 유림은 종조부이다.[5]
2. 생애
1940년 5월 8일 경상북도 안동군(현 안동시)에서 태어나 일찍이 상경하였다. 경기고등학교(54회)[6] 졸업 후 1958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정치학과(58학번)에 진학했다. 이후 학과 내의 신진회라는 서클에 가입하였다.1960년 4.19 혁명이 발발하기 하루 전, 학보사 기자 출신의 학과 동기 이수정[7], 신진회 회원 서정복과 함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명의의 「4월 혁명 선언문」을 작성하였다.[8] 그리고 4월 19일 당일에는 서울대학교 재학생 200여 명과 함께 시위를 위해 교문을 나가자마자 법과대학[9] 앞에서 시위대를 막으러 나온 경찰들의 구타로 인해 부상을 당하였고, 주변에 있던 개인병원으로 후송되었다.
1962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10] 196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74년에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 논문 주제인 '일제하에서의 한국 공산주의 운동과 농민'과는 별개로 당시 미국 정치학계에서 유행한 '비교공산주의연구'에 몰두했다.
1974년 귀국 후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로 부임했고, 한양대학교 부설 중소연구소 설립을 주도했다.[11]
1975년 중국·구소련 관련 학술잡지 '중소연구' 창간에 관여하며 북방 연구에 헌신했으며 활발한 북방 연구와 학술교류로 한러수교(1990)와 한중수교(1992)에 공헌한 점을 인정받아 1992년 수교훈장 창의장을 받았다.
2005년 정년퇴임하여 명예교수가 되었다.
3. 사망
2024년 9월 8일 향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같은 해 9월 11일 국립 4.19 민주묘지에 안장되었다.[1] #[2] 회헌공파(檜軒公派)-안동 수곡파(安東水谷派) 22세 희(熙) 항렬.[3] 석사 학위 논문: 아세아 후진국에 있어서 민주사회주의 운동의 제문제점 : 특히 버마의 경우를 중심으로(1966.)[4] 박사 학위 논문: The Korean communist movement and the peasantry under Japanese rule(1974.)[5] 유림은 유세희의 조부 유돈영(柳暾永, 1884.8.22. ~ 1916.2.19.)의 막내 남동생이다.#[6] #[7] 훗날 노태우 정부에서 문화부장관을 지냈다.[8] #[9]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학교가 위치해 있다.[10] #[11] 1957년에 창설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와 함께 사립대학의 사회주의 연구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