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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4:14

유총(진민왕)

시호 진민왕 (陳愍王)
유 (劉)
총 (寵)
출생 미상
사망 197년 (향년 불명)
직위 진왕(陳王)
재임기간 ?[1] ~ 197년 9월

1. 개요2. 생애3. 평가4.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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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의 제후왕으로 작위는 진왕(陳王). 진왕가는 명제의 아들 진경왕 유선이 시조인데, 유총은 유선의 증손으로 진효왕 유승의 아들이다.

2. 생애

아버지 진효왕 유승이 죽고 진왕을 승계한 유총은 진국상 위음과 함께 황로군에 제사를 지낸 적이 있다. 그런데 위음이 패국의 상으로 발령되고 후임으로 온 사천이 유총을 모함하여 영제는 중상시 왕보를 시켜 조사토록 했다.[2]

유총과 위음은 장수의 복을 빌었을 뿐이라고 해명하였고, 초왕 유영도 제사를 지낸 전례가 있었기에 사천은 거짓으로 왕을 무고했다 하여 주살되었다.

유총은 용맹한 성품으로 를 잘 쏜 것으로 유명했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도 군사를 정비해 굳게 지켰기 때문에 봉국을 보전할 수 있었다.[3]

진왕이 진국을 굳게 보전하자 인접한 군(郡)의 백성이 많이 귀부해 그 무리가 10여 만에 이르렀다고 하며, 또한 각 주(州)·군(郡)에서 거병한 제후들이 동탁에 항거하자 유총은 군사를 이끌고 양하(陽夏)에 주둔해 보한대장군(補漢大將軍)을 자칭했다.

이때 진국상 허창예주자사 공주와 협력했는데, 유총은 양하에 주둔하며 전황을 관망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허창의 후임으로 진국(陳國)의 국상(國相)이 된 회계 사람인 낙준은 명망이 높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원술이 진국에 양식을 요구하자 낙준이 이를 거절했는데, 원술이 이에 원한을 품고 197년 9월에 자객을 보내 낙준과 유총을 암살하는 바람에 세력이 와해되었다.

원술이 진국을 공격할 때 격파되어 죽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아마 유총의 암살이 전쟁 중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3. 평가

후한의 제후왕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서 난세를 만나 거지꼴로 굶어죽던 다른 고위 황족들과 달리 자신의 능력으로 지역적, 군사적 기반을 갖추는 데 성공하였다.

사실상 본래 원술이 예주에서 가지던 입지를 대체하며 세를 급격히 불린 끝에 예주의 지역 군벌 수준을 뛰어넘어 조조, 유표, 원소, 원술, 공손찬과 같은 패권 전쟁의 메인 플레이어로 도약할 잠재성이 충분했던 초 거물급 황족.

하루종일 군사원정을 나서 흉년만 들었던 원술과는 달리 유총의 영지는 풍년이였으며 명성과 군사적 능력도 뛰어났고 스스로 쇠뇌 관련 병서까지 편찬할 정도로 무기 다루는 솜씨도 뛰어났고 원술의 유일한 자랑거리인 혈통조차 원술보다 뛰어났으니[4] 그 무엇을 비교해봐도 원술에게 패배할 요소는 없었지만 암살당하고 말았다.

유총의 사망은 결과적으로 자객을 보낸 원술 자신에겐 별다른 이득도 없이 조정을 장악하려는 조조의 아주 강력한 잠재적 경쟁자만 줄여준 셈이 되었다. 매니아 층에게도 삼탈워 천명 DLC에서 등장하기 전까지 유언, 유우 등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유망주 황족이었다. 삼탈워 이전 가장 유명한 삼국지 매체인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 등장하지 못했던게 큰 것으로 보이는데 제작진이 그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4. 창작물에서

파일:Total War Three Kingdoms standing Liu Chong.png

파일:유총_토탈_워_삼국.jpg

토탈 워: 삼국에서 2020년 1월 16일에 출시된 천명 DLC 에서 영제, 노식과 함께 한나라 진영의 플레이어블 세력으로 구현되었다. 천명 캠페인(182년 시점) 말고도 190년 그랜드 캠페인에서도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194년 캠페인 배신당한 천하 캠페인에서는 플레이가 불가능했으나, 1.7.0 패치로 가능해졌다.[5]

타입은 지휘관. 궁노를 잘쐈다는 기록을 반영해서인지 궁노를 든 장수로 구현되었으며, 세력 특성도 사격전에 특화된 쪽으로 구현되어 있다.

플레이어가 사용하지 않는다면 원술에게 암살당하면서 원술 세력에 흡수된다. 반대로 플레이어가 유총을 진행하는 상황에선 원술이 황제를 자칭할 때, 원술에게 조공을 할지 선택하는 딜레마가 확인되었다. 이외의 정보는 토탈 워: 삼국/세력/유총 문서를 참조.

파일:The Ravages of Time game Hero in War Liu Chong.png

화봉요원에서는 방통을 통해 반 조조 연합의 우두머리로 추대되어 조조를 궁지에 모는 역할을 수행했으며, 그 때까지 반목중이던 여러 약소 제후들을 통합할 정도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방통 또한 유비를 주군으로 정한 제갈량보다 자신의 안목이 뛰어나다고 자화자찬했으며, 낙준을 시켜 방통이 협력받지 않으려 한 사마 가문을 포섭하게 했다.[6]

그러나 사마의가 조조의 신하가 되기로 하면서 잔병삼선에게 피살되며, 이후 조조와 동맹을 맺고 원술을 치던 진궁의 계책으로 인해 그 죄는 원술에게 뒤집어 씌워진다. 화봉요원이 원술에게 우호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유총의 캐릭터성을 살리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음모론적 전개를 진행한 것.

소설 <삼국지 금수저 하후충전>에서는 왕자복의 설득으로 동승의 조조 암살 거사에 참여하기로 하며, 조조의 집에 찾아가 십자궁으로 조앙을 저격해 빈사 상태로 만들었고 조조의 가병들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소설 <금강 삼국지>에서는 주인공 이운의 군사와 싸우다가 고순에게 붙잡히자 항복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지만 이운은 식솔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유총을 풀어주기로 한다.

소설 <삼국지 전위전>에서는 원술이 공격하려 하자 원군을 요청하는 대상으로 유비를 언급하면서 낙준을 유비에게 보냈지만 실패했다.

소설 <삼국지 나만 왕으로 시작함>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로 등장한다. 주인공의 개입으로 진국에 많은 인재가 모이고 세력도 더 커지는 등 승승장구하지만 손견에 의해 절름발이가 되고 주인공에게 왕위를 선양한다.


[1] 후한서에 따르면 173년 패국의 상 사천(師遷)이 국왕을 모함한 죄로 죽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주석에서 사천을 진국의 상으로 정정한 것으로 보아, 유총은 최소 173년 이전에 진왕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2] 이때 영제는 불과 1년 전에 왕보의 무고로 발해왕 유회를 주살한 적이 있어서 또다시 제후왕을 죽이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3] 진왕의 일족인 다른 왕후(王侯)들은 난세가 오자 조세 수입이 없고 녹봉이 없는 데다가, 노략질을 당해 거지꼴이 되어 굶어죽었다고 한다.[4] 당대 한 황실의 혈통이라 인정받은 실력자들 중 유표나, 유언, 유비 모두 전한경제 아들 대에서 갈라져나와 후한 기준으론 황실과 큰 상관이 없는 인물들이었으며, 광무제의 아들 대에서 방계로 갈라져서 동일하게 헌제와 13촌 사이인 유우나 유엽이 그나마 제대로 된 황족들이었다. 유비나 유표의 경우 경제의 정확히 몇 대손인지 불명이나, 대략적으로 잡아봐도 헌제와 24 ~ 25촌 사이는 족히 된다. 그런데 유총은 광무제 다음인 명제의 아들 대에서 갈라져나왔으니 유우, 유엽보다도 더 가깝다. 물론 황제와 까마득히 먼 친척이란 건 마찬가지지만, 유우와 마찬가지로 군벌급 세력을 지닌 인물들 중에선 가장 혈통이 뛰어났던 인물이다.[5] 다만 고유 서사 임무가 없어지고 버그로 인해 관직 해금이 1단계씩 밀리게 되었다.[6] 사실 자화자찬 할 만 했다. 당시 제갈량이 주시하는 유비는 방랑 군벌 신세였으며, 주유가 섬기는 손책은 비록 욱일승천의 기세를 타고있으나 아직 약소 세력이었으며, 가후가 섬기던 장수 또한 약소 세력인데다 용렬했고, 순욱과 곽가가 섬기는 조조는 비록 황제를 끼고 있으나 세력이 좀처럼 확장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인데다 서주대학살로 인해 명망이 땅에 떨어지고 민심이 등을 돌린 상태였다. 그나마 원방이 소속된 원소의 세력이 군소 제후들을 규합한 유총 이상이었다. 게다가 유총은 황숙이기 때문에 여러면에서 조조보다 정치적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도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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