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20:32:06

유태우(1920)

{{{#!wiki style="margin:-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808080> 파일:유시민 투명.svg유시민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808080,#ffed00> 일생 생애
가족 아버지 유태우 · 누나 유시춘 · 장녀 유수진
발언 노무현의 시대가 오겠어요?
비판과 논란 비판과 논란 (참여정부 이전 · 참여정부~2020년 이전 · 2020년 이후)
사건사고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 · 서울의 봄 · 채널A 기자 취재윤리 위반 사건 (수사 진행 상황 · 타임라인)
저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 · 역사의 역사 · 항소이유서
기타 노무현시민센터 · 노유진의 정치카페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 유시민의 알릴레오 · 썰전 · 정치합시다 · 여담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유태우
柳台佑
출생 1920년
사망 1982년 (향년 62세)
경상북도
부모 아버지 유하식, 어머니 경주 최씨
형제자매 4남 1녀 중 3남(넷째)
배우자 서동필[1]
자녀 장녀 유시춘
장남 유시훈
차녀 유시정
삼녀 유시은
차남 유시민
사녀 유시주

1. 개요2. 생애3. 가족4. 참고 항목

[clearfix]

1. 개요

유태우(柳台佑, 1920년 ~ 1982년)는 전 교사이다. 유시민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아버지이다.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류성룡의 12대손이며, 유하식(柳河植)의 아들이다.

2. 생애

1920년 4남 1녀 중 네 번째이자, 3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3살인 1923년 어머니가 사망하였는데 당시는 유태우의 동생이자 유시민의 숙부가 막 태어났을 시기였다. 이후 유시민의 고모인 누나가 그들을 양육하였다고 한다.[2]

일제강점기에 한쪽 눈을 실명했으며, 심한 위장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아들인 유시민에 의하면 이는 가난으로 인한 유아기의 영양실조와 질병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33년 경주의 소학교를 졸업한 뒤 땅을 빌려 소작농을 지으며 살다가 일본으로 이주하여 병원, 약국 등지를 돌며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이었고 검정고시를 통해 5년제 중학교의 야간부 3학년에 편입하였다. 유시민의 주장에 의하면 졸업 여부는 불확실하다. 또한 유태우는 한쪽 눈을 실명했고, 의료기관에서 일을 했기에 징용을 면제받았다고 한다.

일본국 동경도 준대상업학교를 나와, 1943년 2월부터 1945년 7월까지 만주국 통화성 폐대무자촌 국민우급학교에서 재직했다. 당시 훈도[3]로 근무했다는 의혹이 있다. 보수 성향 언론 단체 브레이킹 뉴스의 취재에 따르면, 경상북도 교육청 인사기록에 유태우의 훈도 경력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서울신문의 취재에서는 그런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본인과 직계 가족만 인사기록 열람이 가능하기에 검증 논란이 불었다. 아들 유시민은 보건복지부 장관 청문회에서 '만주에 가서, 거기 어느 소학교에서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교사였는지, 보조원이었는지, 또는 행정사무를 보앗는지는 알 수 없고, 교사 자격이 있었는지 여부도 모르겠습니다'라며 검증을 거부했다.

1945년 해방 직후 미군정이 교사 요원 공채를 시행했을 때, 동양사 분야에 응시하여 합격했고, 6개월 연수를 받은 후 당시 6년제였던 경주여자중학교에 부임하였다. 이때 유태우는 교원 자격을 얻었으며 1948년 서동필과 결혼하였고, 1959년 6남매 중 다섯째 자녀인 유시민을 낳았다. 이후 유태우는 6남매 교육으로 인해 진 빚을 갚기 위해 남은 일생을 기독교 미션 스쿨인 경주문화고등학교에서 재직하였고 1982년에 사망하였다.

묘소는 경북 칠곡군 동명면 가천리 878번지로, 현대공원 제2묘역 특1-20이다.

3. 가족

그의 아버지 유하식(柳河植, 1883년 ~ 1953년)은 유태우가 34살일 때 사망했고 묘소는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이며 유도숙(柳道淑)의 아들이었다. 유태우의 조부 유도숙은 1845년에 태어났으며 1923년 3월 7일 사망하였고 묘소는 경주시 내남면 화곡리이다.

4. 참고 항목


[1] 이천 서씨 서장수(徐漳洙 또는 徐璋洙, 1897. 11. 14 ~ 1963. 1. 27)의 넷째 딸이다.[2] 이 때문에 당시엔 매우 늦은 나이에 누나가 시집을 갔다 한다.[3] 이 시기 일반적인 훈도는 제복입고 칼을 차며 천황숭배를 가르치는 존재였다. 훈도 경력이 친일 의혹을 가중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그 박정희이다.[4] 이쪽도 일제 시대에 면장을 지내 친일 논란이 있다.[5] 조카 유시민과 50살이 넘게 차이나다 보니 유시민을 친손자처럼 여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