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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의 삼남 익안대군 이방의 益安大君 李芳毅 | |
캐릭터 | |
<colbgcolor=#A60C0C,#360505><colcolor=white> 작호 | 익안군 (益安君) → 익안공 (益安公) |
등장회차 | 1회 ~ 21회 |
배우 | |
홍경인[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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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 사이의 삼남으로 조선의 개국공신과 정사공신이며 최종 작호는 익안대군(益安大君)이다. 5형제 중 딱 중간이라 그런지 서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들[2] 사이에서 고생하는 인물로 방원을 갈구는 방간을 말리고, 자주 부딪치는 방과와 방간 사이를 중재하며 방원을 타이르는 등 호인스런 면모를 보여주지만, 때로는 단호한 모습도 보여준다.[3] 다만, 담당 배우가 다른 사람들보다 단신인 홍경인이라서 그런지 체구가 작아 주변에서 다소 만만하게 여긴다는 설정이 붙었는데, 방우는 적장자의 권위에 주관이 뚜렷한 강직한 인물이고 방과는 형제들 중 최고의 군재와 무예 실력을 지닌 인물이라 방간의 바로 윗 형에 성격도 형제들 중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허술한 면이 있는 방의가 방간에게 만만한 상대로 여겨질 만 하다. 만만하다는 말은 곧 그만큼 친숙해지기도 쉽다는 걸로도 풀이 가능한 만큼 방간과 함께 세트로 등장할 때가 많고 방간이 편안하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대화를 나눌 상대로 여긴다.
2. 극중 행적
2.1. 1회
동생 방간과 위화도 회군부터 공요군에 종군했다.2.2. 2회
우왕이 가족들이 있던 저택을 습격한 이후,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에 분노한 방간이 우왕을 찾아가서 죽여버리자고 할 때는 이에 동의를 한다.2.3. 3회
방원이 형제들을 대표해 이성계의 막료 회의에 참석하게 되자 불만을 터뜨리다가 방과에게 질책을 받은 방간을 달래며 "괜히 내뱉어서 욕 먹지 말고 속으로 삭히라."고 충고하나 방간은 듣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나자 결국 방의 역시 분노한다. 그 때 옆에 간식을 먹으며 앉아있던 이화상이 이를 말리다가 무심결에 작아서 만만하다는 식으로 말해서 오히려 더 화가 나기에 이르렀다. 이화상이 말을 다시 고쳐 사과하자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한숨만 쉬고 자리를 뜬다.[4]2.4. 6회
이후로도 방과, 방간과 같이 자리하고 있다가 6회 중반 모친 한씨가 있던 포천으로 형제들과 함께 들어서다가 상복을 입고 울고 있는 여동생들을 괜찮다며 다독여주고 모친의 빈소로 들어간다.2.5. 7회
아버지가 낙마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과, 방간과 벽란도로 달려왔으나 방원이 오기 전까지 전전긍긍한 모습을 보였고, 시묘살이를 하던 방원이 오고 나서 아버지를 개경으로 모시자고 주장할 때, 반대를 하긴 했으나 이후에 가족들과 이성계를 개경으로 옮길 때, 중간 이후에 형제들과 함께 가마를 끌었다. 이후 정몽주 척살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보였다.2.6. 8회
동생인 방간과 함께 정몽주의 목을 베어 저자에 효수한다. 하지만 이 일로 아버지의 눈 밖에 나서 자신과 동복 형제들(방과, 방간, 방원)이 저택의 출입을 금지당했고, 이후 아버지의 마음을 풀기 위해 찾아오지만 문전박대를 당한다. 어지간해선 참는 방의도 이번만큼은 아버지가 야속하다며 서운함을 드러낸다.2.7. 9회
아버지가 왕이 된 소식에 형제들과 함께 기뻐하지만, 아버지 이성계로 인해 자신과 형제들이 대관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알게 되자 아버지가 용서할 것이란 건 헛된 기대였고, 아버지가 이미 자신들을 버렸으며 더는 자식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것이라며 씁쓸해한다.2.8. 10회
방석이 세자로 선택됐다는 말을 이방원에게 전해 듣지만, 이미 포기했는지 기생들을 옆에 끼고 술이나 퍼마시며 방관한다. 이후 이방원의 아들이 죽어서 방원이 그 관을 지게에 지고 매장을 위해 집을 나서는 모습을 다른 형제들과 같이 서서 안타깝게 바라본다.2.9. 11회
태조가 이방원에게만 사병을 하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터뜨리는 방간을 말리지만, 방의 역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저 인자한 모습으로만 나왔던 용의 눈물에서의 이방의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2.10. 13회
방간이 사병을 모은 것을 보고 일을 저질렀다고 한탄하지만 방간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준비한 것이다라는 변명을 듣는다. 동시에 방원이는 무슨 짓을 반드시 저지를 것이란 말도.2.11. 14회
방간의 말을 듣고 느낀 바가 있는지 사병들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작중 대사에 따르면 이방원보다도 더 먼저 사병을 모으고 있었다. 방의의 사병을 본 방간은 왕 자리 욕심난 것이냐 농을 던지는데, 방의는 거기까진 생각한 적 없고 니 말대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모았다는 답을 내놓는다. 이 말을 들은 방간이 왕 자리에 욕심 없으면 자기를 지지해 달라는 부탁을 하자 당황하며 끝내 답을 내놓지 못한다.2.12. 15회
사병을 뺏긴 후 이방간을 찾아 와 모든게 일장춘몽이 되었다며 자조하는 걸 보면 긍정의 답을 내놓았던 것 같다. 이후 이성계의 위독을 명분으로 궁궐에 반강제로 끌려와 유폐당하는 신세가 되자, 아무리 미운털 박힌 왕자들이라지만 해도해도 너무한다며 화를 낸다. 이성계가 실신한 상태라는 정보를 들은 상태임에도 이러니, 벽란도에서 실신한 이성계를 개경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에 아버지의 안위를 걱정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변했다.2.13. 16회
태조(사실 정도전)의 호출을 받아 궁으로 들어가는 데, 궁궐의 등이 어두운 이유를 내관에게 묻는다. 삼봉의 지시와 그 연유에 대해 듣고 방의와 방간은 그런가보다 하지만, 방원이 이상하다며 함정임을 눈치채고, 곧 자객들이 나타나자 숙위병들을 다급하게 호출한다. 이후 방원의 말대로 방간과 함께 방과를 소격전에서 빼내어 함께 탈출하여 방간의 집으로 간다.2.14. 17회
방원이 오래전부터 정변을 기획했다는 사실을 방간의 아들 맹종에게 듣고는, 방간과 함께 삼군부에 있던 자기 사병들을 되찾아 궁궐 수비에 일조한다. 그러면서 이런 일을 형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을 두고 방원에게 실망을 표한다. 이후 방간이 독단적으로 이방번을 살해하고, 이 때문에 방원과 방간이 서로 멱살을 잡고 충돌하게 되자, 둘을 말리면서, 여기서 한 마디만 더하고 한 발짝이라도 더 가게 되면 둘 중 하나는 죽게 된다며 제발 멈추라고 만류한다.[5] 겨우 이방원이 한발 물러서는 것으로 상황이 진정된 뒤, 방원에게 앞으로 몇 사람을 더 베어야 끝나는 거냐며 떨면서 묻는다. 그 때 남은의 출두를 들은 방원으로부터, 이제 끝낼 거다라는 답을 듣는다. 이후 남은의 살려달라는 호소에도 그를 참살하는 이방원을 보고 경악한다.2.15. 18회
무인정사가 일단락된 뒤, 방간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아버지와 한씨 소생 (요절한 막내 방연까지 포함) 여섯 아들이 한꺼번에 아버지에게 덤벼들어서 이기나 싶었는데, 순식간에 괴력으로 형제들을 내동댕이쳤었다는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면서, 살아있는 아버지를 대적할 생각은 형제들 중 그 누구도 하지 못했는데 방원이는 그걸 했다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표출한다.2.16. 19회
실제 역사와는 달리 방간과 함께 2차 왕자의 난에 가담하는 모습을 보이는듯 했지만 결국 끝끝내 가담하지 않았다.[6] 일단 거병을 결심했으니 도와달라는 방간의 요청에 응하고, 그를 따라 방원에게 팽당한 박포를 설득하는 데까지는 동참했지만, 거사 당일 방원의 뒤를 맡아달라는 부탁에는 알았다고 해놓고는 실제로는 갑옷도 입지 않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2.17. 20회
거사에 실패한 후 자신을 왜 도와주지 않았냐며 따지는 방간에게, 자신은 방원이 두려워서 나가지 못했다며 방간에게 용서를 빈다. 박포도 처형되고 방간 부자도 귀양을 간 이후 방의 본인도 방원에게 본인도 사실은 주동자 중 하나라며 잘못했다며 용서를 빌지만, 방원은 상관 없으며 입에 올리지만 말라고 한 뒤 방의는 용서해 주었다.제작진은 이방의가 2차 왕자의 난의 공모자였지만, 이방원이 의도적으로 숨겼기에 기록에 남지 않았다는 해석을 한 것인데, 2차 왕자의 난에 대한 기록에서 주동자인 방간의 책임을 무마하여 골육상쟁을 최대한 숨길려는 정황이 보이기 때문에 나름 개연성이 있다.[7] 이리 본다면 이방의는 자의로 권력을 내려 놓은게 아니라 반란 주동의 책임을 지는 의미로 권력을 내려 놓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모든 관직을 내려놓은 <용의 눈물>의 묘사와는 확연히 다른 묘사.[8]
방과는 왕이 되었고, 방간은 모든 작위를 박탈당하고 귀양, 방원은 차기 왕이 될 예정, 방우, 방번, 방석은 사망. 덕분에 방의는 20회를 기점으로 태조의 자식들 중 마지막 왕자가 되고 말았다. 고독한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2.18. 21회
민제의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이방원이 주도하는 사병 혁파에 동참한다. 민제에게 이방원의 즉위 소식을 듣고 이제 형제들끼리 피를 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안심하면서도, 이를 위해 지금까지 벌어진 참상이 떠올르는 것인지 내내 침울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씁쓸하게도 골육상쟁 하나가 더 남았다.2.19. 이후
이방의의 죽음은 다뤄지지 않았다. 24화까지 벌어진 조사의의 난은 1402년이므로 살아는 있었지만, 25화에서는 이거이가 유배되는 1404년 10월로 넘어가는데, 이방의는 이미 1404년 9월 세상을 떠났으므로, 언급이 되지 않은 것이다.[9]실제 태종은 이방의가 죽었을 때에 크게 슬퍼하며 직접 찾아갔던 기록이 있으며 용의 눈물에서도 이 장면이 직접 묘사되지만, 이 작품에서 이방의는 이방원을 치려고 계획하다가 물러난 모습을 보여줬기에 좋은 관계는 아닌지라 슬퍼하는 모습을 중간에 넣기도 애매하긴 했다. 용의 눈물에서의 이방의는 진중하면서도 다소 유약한 성격에 욕심이 없는 인물로 묘사되었지만, 여기에서의 이방의는 이화상에게도 만만한 인물로 나오고 이방간과 이방원 모두를 두려워하는 모습이 나왔기에 용의 눈물보다 너프된 모습이다.[10]
[1] 〈광개토태왕〉 이후 10년만에 대하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 방원 역의 주상욱과는 선덕여왕에서 서로 적으로 출연했었다. 첫째인 방우의 엄효섭이 선덕여왕에서 염종을 담당했기에 그때는 그와도 적이었다.[2] 첫째 방우와 다섯째 방원의 나이차가 13살.[3] 실존 인물 역시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어 버리는 조용한 처세를 했지만, 한씨 소생 왕자들의 이권이 달린 1차 왕자의 난 때는 적극적으로 참여한 일면도 있었으니 적절한 묘사라 할 수 있겠다.[4]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도 홍경인의 단신 개그가 자주 나왔으며 선덕여왕에서 맡은 석품 역시 비담한테 조그맣다고 놀림을 받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5] 이때 눈에 공포가 서린게 한 눈에 보인다. 둘의 형이란 권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직접 가서 말리지 못하고 둘과 거리를 두고 말로만 말리는 것도 그의 공포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6] 이때문에 익안대군 후손회 측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여 KBS가 19회와 20회 다시보기 방영 전에 '본 회차 드라마 내용의 일부는 실제 내용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리며, 이와 관련하여 익안대군 후손들은 "익안대군 방의는 2차 왕자의 난에 가담한 역사적 기록이나 가담한 정황조차 전혀 없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냈다.[7] 드라마상에서도 박포가 방간을 살리기 위해 희생양이 되었음을 강조한다.[8] 다만 개연성이 있다 뿐이지, 반대로 난에 가담하려다가 발을 뺐다고 볼 만한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이 점은 용의 눈물이 더 실록의 기록과 일치하는데, 익안대군은 정치에도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고 2차 왕자의 난 직후에 절제사로서 가지고 있던 군권을 내려놓으면서 정안군을 도왔다는 기록이 정종실록에 있다. 이 드라마에서 양녕대군은 용의 눈물에서의 미화를 걷어내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개차반의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내기에, 익안군도 새롭게 조명하는 시도를 하고 싶었던 듯 하다.[9] 흐름이 빠른 본작의 특성상, 자연사한 인물의 죽음이 언급되는 경우 자체가 거의 없다. 자연사했으면서 사망 언급이 나온 경우는 이성계와 민제, 이성계의 두 부인과 이지란, 정안왕후 뿐이다. 이들은 주요인물(이방원의 친부모)이거나, 대부분 죽음이 극의 중요 분기점(강씨, 이지란, 민제, 정안왕후의 죽음은 1차 왕자의 난, 조사의의 난, 민씨형제 사사, 양녕의 일탈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계기가 된다.)이라 안 다룰 수가 없다. 물론 태종이 이화와 이방의 등의 종친들과 모여 잔치를 열었던 기록 등은 있지만, 민씨 집안과 이성계를 동시에 상대하느라 깨지다 못해 가루가 돼버린 이방원의 가족을 묘사하는 데 방해가 됐을 것이다.[10] 반대의 사례는 이방과가 있는데 동생에게 이끌려 다니던 용의 눈물과는 달리 강인한 무장의 모습이며 본인의 의지로 즉위와 양위를 하는 등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