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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왕후(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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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60c0c,#360505><colcolor=#fff> 시호 <colbgcolor=#fff,#111>신의왕후 (神懿王后)
신분 조선국파일:조선 어기.svg 왕비파일:왕비 오조룡보.png [1]
등장회차 1 ~ 8회
배우
예수정

1. 개요2. 극중 행적
2.1. 1회 ~ 4회2.2. 5회2.3. 6회2.4. 6회 이후

[clearfix]

1. 개요

드라마 태종 이방원이성계의 향처(鄕妻)[2]이자 이방우, 이방과, 이방의, 이방간, 이방원 형제와 경신공주, 경선공주의 어머니. 독실한 불자로서 지속적으로 염불을 외는 모습을 보여준다.

2. 극중 행적

2.1. 1회 ~ 4회

정치적 식견과 야심이 있는 강씨와 달리 이 쪽은 소박한 어머니 타입이다. 하지만 1회부터 간간이 경처(京妻)인 신덕왕후 강씨와 대립적인 장면을 보이면서 훗날 벌어질 사건의 복선을 암시한다.

정국이 혼란한 개성 대신 전장(田莊)인 포천에서 지내왔다. 남편인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자 개경에서 온 방원을 따라 온 가족[3]들과 함께 동북면으로 도주하면서 남편인 이성계가 회군을 한 사실에 당황해하면서 서경에 인질로 잡혀있던 방우와 방과의 안위를 걱정하는데, 두 아들 모두 뛰어나니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는 강씨의 말에 "자네 아들이 아니라서 그리 쉽게 말하는가?"라고 툴툴거렸다.[4][5] 그들이 도망쳤기에 자신들을 인질 삼고자 병사들이 쫓는 것이라고 강씨가 더 설명하자 납득했고, 계곡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취할 때는 강씨가 방번을 씻길 동안 그녀는 방석을 씻겨주는데, 강씨와는 미묘한 알력이 없을 수 없지만 어머니 입장에서 강씨의 자식들까지 유감을 갖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다행히 추격하던 군관을 방원이 제거하고 군사들이 도망칠 때, 동북면에서 방향을 틀어 개경으로 돌아온 이후 가족들과 재회한 뒤 곧바로 공요군 군막으로 돌아가려는 이성계에게 강씨와 더불어 가족들과 식사를 같이하고 갈 것을 권하고, 방번과 같은 말을 타고 개경 저택에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이후 개경의 이성계 집에 들려 갓 태어난 방원의 아들을 위해 직접 지은 배냇저고리를 주려고 왔다가 때마침 폐가입진 건으로 다투고 있던 방우와 방원의 모습을 보고 꾸짖는다. 이후 강씨와 며느리 민씨와 같이 차를 마시다가 그 일로 걱정을 하는데, 곧 괜찮아질 거라는 강씨의 말에 다시금 자네 아들이 아니라서 그리 말하냐고 답하고, 개경에는 더 있기 싫으니 빨리 포천으로 돌아가겠다며 자리를 나선다. 그리고 떠나면서 이방원을 비롯한 아들들에게 일찍 죽은 막내[6] 방연을 언급하면서 사이좋게 지낼 것을 당부한다.

2.2. 5회

사찰에서 불공을 드리고 나서는 중, 아버지의 곁을 떠나온 맏아들 방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2.3. 6회

중반에 위독하다는 소식을 포천의 하인들이 개경의 이성계의 집과 이방원에게 알렸고, 이에 슬하의 아들들이 모두 급하게 말을 타고 왔지만, 끝내 아들들이 도착하기 전에 사망하였다.[7] 이후 온 가족들이 모여서 장례를 치르고[8] 슬하의 (사실상)막내이면서 유학자인 방원이 묘소 옆에서 3년상을 치르게 되었다.

이후 방원의 시묘살이 도중 정몽주가 찾아와 문상을 드리면서 방원에게 과거 자신이 본 한씨[9]의 모습을 말하는데, 여진족과 싸우고 나서 이성계의 집을 갔을 때 정화수를 놓고 부처님과 천지신명에게 기도하면서 이성계가 다시 전쟁터로 떠날 때에는 차라리 마음 졸이지 않게 아예 오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었다고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이방원이 그 모습이 생각난다[10]면서 눈물 짓는다.

2.4. 6회 이후

강씨가 8회부터 본격적으로 야심을 드러내 한씨 소생들과 이성계 사이를 이간질하기 시작하자, 강씨에게 여러 번 "자네 아들이 아니라서 말 쉽게 한다."라고 야단치고, 자기 소생과 강씨 소생 사이에 선을 그었던 한씨의 모습도 다시 볼 여지가 생겼다. 겉으론 공평하게 사랑하는 척해도 뒤에선 냉정하게 손익을 계산하며, 자기 소생의 아들들을 앞세우는 강씨의 속내를 진즉 꿰뚫어 본 데서 나온 태도였다고 볼 수 있다.[11]

10화에서 간접적으로 신덕왕후의 입에서 언급이 되는데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고 뒤통수를 친 것에 대해 분개하며, 울분을 토로하는 이방원에게 일찍 죽은 네 어머니를 탓하라는 패륜적인 발언을 하며 그 사악함의 끝을 보여준다. 이에 이방원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다과상을 뒤집고, 신덕왕후의 목을 조르려다가 아내인 민씨가 말려 겨우 참는다. 위에서 신의왕후가 줄곧 말하던 것처럼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이방원을 차별하는 것에 더해 고인능욕까지 하는 신덕왕후의 표독스러움이 제대로 드러나는 장면.[12]

이후에는 신의왕후의 묘만 나오는데 11화에서는 이방우가 이방원을 대신해서 3년상을 치르고 있었으며, 15화에서는 거사를 하기 이전에 이방원이 묘를 들러서 어머니에게 절을 하면서 자신이 이후 저지를 일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13]

23화에서는 부부싸움을 크게 벌인 이방원이 아예 원경왕후를 폐비시키고 새 왕비를 들겠다고 선언했을 때 상왕이던 이방과가 찾아와 실록에서처럼 이를 말리며, 지금 이방원이 하는 짓은 이성계가 신덕왕후와 중혼해 자신들에게 했던 것처럼 이방원의 자녀들에게 두 명의 어머니를 만들어주는 거라고 설득하면서 간접적으로 언급이 된다. 신의왕후의 자식들에게 있어 신덕왕후가 어떤 존재였고, 그녀에 대한 악감정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인과응보인지 신의왕후에 대해 패드립을 하던 신덕왕후는 그녀의 사후 일어난 1차 왕자의 난에서 친아들인 이방석이방번이 모두 살해당하면서 혈통이 완전히 끊어졌고[14], 반면에 신의왕후는 차남 이방과와 5남 이방원 그리고 이방원의 셋째 아들이자 신의왕후의 손자인 이도가 차례대로 즉위하면서 대대로 조선 왕실의 후계가 그녀의 혈통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니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1] 생전 받은 적은 없고, 사후 자식들에 의해 추증되었다.[2] '첫 번째 부인'은 왕자의 난으로 즉위한 정종과 태종의 주장이고, 확실하게 말하자면 '향처(鄕妻)'가 맞는 표현이며 드라마를 앞두고 방영했던 〈역사저널 그날〉 '태종 이방원' 특집에서도 이 부분을 거론하였다. 관련 영상 그러나 첫 번째 부인도 틀린 표현이 아닌게, 어쨌든 한씨가 이성계와 처음 결혼한 아내인 것은 맞다.[3] 한씨 본인과 슬하의 두 딸(후에 경신공주와 경선공주), 철원에 잠시 머물던 강씨와 방번과 방석.[4] 이 때 강씨의 표정을 보면 약간 서운해하는 면을 비추었고, 이방원의 얼굴 역시 굳이 그렇게 말할것까지 있는가? 하는 식의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적대감을 가졌던 정도전과는 이방원도 강씨를 적대하지 않으며 흔히 존재감 없이 억울하게 간 것만 같은 만만한 한씨가 아니라는걸 보여준다.[5] 단 아래에서 말한 것처럼 여자의 직감으로 강씨가 자신의 자식들은 친자식처럼 살갑게 대하고 있지 않음을 눈치채고 있었을 가능성도 많다.[6] 강씨와 그 소생인 방번, 방석과 선을 긋는 발언이라 볼 수 있다.[7] 개경에서 방과부터 방원까지 말을 타고 왔으며, 다른 곳에 있었다가 소식을 들은 첫째 방우도 포천 집 앞에서 만나서 들어서는데, 들어서자마자 형제들이 본 건 이미 상복을 입으면서 울부짖고 있는 여동생들의 모습이었다. 아들들이 들어왔을 때에는 뚜껑은 열려 있었지만 이미 관 속에 들어가 있었다.[8] 이때 이성계는 불교 신자였던 아내 한씨의 손에 조용히 염주를 쥐어 주고, 아들들은 오열한다.[9] 여담으로 정몽주는 한씨를 '택주(宅主)'라고 하였다.[10] 이방원의 발언으로 보아 이성계를 그렇게 떠나보내고도 다시 기도를 올렸던 것으로 보인다.[11] 실제로 강씨는 자기가 낳은 아들인 방석을 세자로 밀어올리고는 방원에게 "어미란 자기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법"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는데, 이 말은 곧 강씨가 방원을 비롯한 한씨 소생 아들들은 애초부터 자기 자식으로 여긴 적이 없다는 말이 된다.[12] 동시대를 다루는 정도전에서도 신덕왕후가 신의왕후를 마음 속으로 좋아하지는 않을지언정 "화령 형님" 이라고 언급하기도 하고, 패드립은 일체 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 선을 지킨 걸 생각하면 정도전 때보다 더 막 나간다고 볼 수 있다.[13] 아이러니하게도 위화도 회군 당시 두 어머니와 어린 이복동생들을 구한 게 이방원이었지만.. 결과는 알다시피 왕이 되기 위해 두 이복동생을 죽이고 계모의 묘까지 파묘해버리기 때문. 거기다 심지어 동복형과 칼을 맞대고 유배까지 보냈다. 심지어 아버지를 왕좌에서 쫒아내다시피한 데다 궁궐에 유폐시키고 결국은 아버지와 군사적으로 충돌까지 했다. 이방원이 거사를 고민한 이유가 바로 이 패륜적인 행위를 저지를 것이 뻔하기에 고민했던 것이다. 결심을 하고 이런 짓을 저지른 자신이 어머니를 뵐 면목이 없어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14]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식인 경순공주마저 남편 이제가 눈앞에서 참살당하고, 절의 비구니로 출가하면서 일국의 공주에서 비참한 처지로 굴러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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