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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건국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니 만큼, 조선 건국을 다루는 드라마에서는 항상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2. 드라마
2.1. 용의 눈물
장졸들은 들으라! 우리는 이 길로, 개경으로 돌아간다![1]
1화에서 바로 위화도 회군을 다루고 있다.
극 시작부터 공요군의 상태가 나왔는데, 악천후에 발이 묶인 상태에서 점점 피폐해지고 탈영병이 속출하는 상황이었다. 극 시작 시점에서는 이미 회군 요청을 여러번 하였으나, 왕명을 전하러 온 김완의 등장 장면이 이어지면서 최전선과 지도부간의 괴리를 극명히 보여주었다. 최전선의 어려움을 어찌 모르겠냐면서도 진군을 독촉하는 내용의 교서에다 회군은 더이상 입에 담지 말라는 취지의 우왕의 말이 더해지자, 회군을 거듭 요청했던 이성계가 분노하여 김완을 감금하고 회군을 결행한다. 이 때 나온 명 대사가 바로 이성계의 그 유명한 회군 선언, "개경으로 돌아간다!" 이다. 방송 시작과 동시에 명장면을 장식했던 것이다. 방영 전 예고편부터 이것으로 시작했을 정도로 중요한 장면.
우왕과 최영은 공요군을 독려하기 위해 서경(평양)에 올라와 있다가 이성계의 회군 소식을 듣고 급히 개경으로 돌아간다. 개경으로 돌아가던 길에 왕을 수행하던 관리들은 어느새 뿔뿔이 흩어지고, 개경에 돌아와보니 고위 신료들마저 대다수가 도망가서 극중 대사 그대로 궁이 텅텅 비어 있는 등 이미 그 위신이 추락해버린 고려 왕조의 모습에 우왕은 그저 한탄할 뿐이었다. 우왕과 함께 개경에 돌아온 최영은 우왕을 다독이는 한편으로 그나마 남아있는 신료들과 군사들을 닥달하며 개경 방어를 준비한다.
그 와중에 위화도 회군으로 이어진 2차 요동 정벌이 결정된 배경도 최영과 이성계의 회상을 통해 드러난다. 명나라의 일방적인 철령위 설치 통보에 다른 이들은 유하게 대처하자, 혹은 포기하자 등의 언행들을 보면서 최영은 분노를 터트리고는 고려 건국 초기의 기상은 온데간데 없어진 고려 조정의 모습에 한탄한다. 한편으로는 우왕과 최영이 이성계를 중심으로 급격히 세력이 커지면서 고려왕조를 약화시키는 신진 사대부들에 대한 견제를 논하는 장면도 나온다. 요동 정벌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최영과 이성계 간 언쟁도 나온다. 여기서 최영은 선대 왕인 공민왕의 요동에 대한 의지와 노력, 그리고 고려의 기상을 내세우면서 요동 정벌을 강하게 밀어 붙였고, 이에 대해 이성계는 유명한 사불가론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내세우면서 대립한다.[2]
개경 코 앞에 도착한 이성계는 일단 개경을 포위한 채 최영을 실각시키라고 요구한다. 처음에 우왕은 그 요구를 받아 들이려 했으나, 안대비(공민왕비)의 일갈에 밀려서[3] 이성계와 회군에 동조한 장수들을 적당히 구슬려 보려는 내용으로 답장을 보냈지만, 알맹이가 없는 답장에 분노한 이성계는 곧바로 개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최영은 공요군을 상대로 홀로 분전하지만 개경 성벽을 넘어 궁궐에까지 이성계의 군대가 쳐들어 오는 걸 막지 못하고, 결국 우왕의 코 앞에서 이성계 및 그 휘하 군사들에게 붙잡혀가 버린다. 이렇게하여 위화도 회군과 그에 뒤이은 개경 전투가 마무리되면서 1화가 끝난다.
회군을 단행하며 드디어 자신의 야망을 펼칠 절호의 기회가 왔음을 실감하고 회군 도중 최영과 요동 정벌에 대해서 말을 나누었던 것을 회상하는 이성계. 회군 결정 과정에서 반발하는 휘하 장수들을 숙청하고 자신의 이복형제인 이원계마저 실각시켰던 걸 회상하는 장면, 이성계가 회군하고 궁궐로 들어서자 우왕 앞에서 최영이 궁문을 닫고 홀로 이성계 일행과 맞닥뜨리는 장면. 야망을 위해 자신에게 아버지뻘이자 평생 존경하던 최영을 제거하기[4] 까지 이성계의 고뇌와 최영의 카리스마를 볼 수 있는 장면이 계속 이어졌다.
이와 함께,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서 개경에 남아있는 이성계의 가족들을 챙기고 대피시킨 뒤에 이성계의 회군에 적극 동참하려는 이방원[5], 파국으로 치닫는 고려 정국을 지켜보며 자신이 모시던 이성계의 회군을 이미 간파하고 고려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는 정도전 등 극 초반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간의 관계를 보여줬다.
이 모든 것이 한 편에 다 들어간, 여러모로 한국 드라마 사극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기록되었다. 그것도 1화부터.
2.2. 정도전
내 한마디만 한다. 우린, 개경으로 간다!
위화도까지의 진군 당시 막장스러웠던 상황이 그대로 영상으로 재현되며, 그 참상을 보고 있으면 왜 50,000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사실상의 반역인 회군에 동참해서 목숨 걸고 자기 나라 수도를 공격하러 갔는지 이해가 간다. 작중에서 배극렴이 수도에 원정 중단을 요청하러 와서 "위화도는 지금 사지나 다름없습니다."라고 한다. 그 상황에서 이성계가 고려에 충성할 것인지 아니면 반역을 해서라도 회군을 해야 하는지 갈등하는데 손익을 계산하던 조민수가 이성계의 편을 들기 전까지는 최영과의 친분 때문에 어떻게든 반역만은 피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고뇌하긴 했지만 새 왕조의 야심이 있던 용의 눈물의 이성계와 달리 정도전의 이성계는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이 한 것으로 처리되고[6] 모든 이들이 단체로 그를 떠받드는 장면이 나와서 이성계를 미화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기도 했다. 배극렴에게 마지막까지 최영이 '자네를 믿는다'라는 말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통곡하는 이성계의 모습은 그야말로 명장면. 마지막에 전군 회군 명령을 내리는 장면은 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펠렌노르 평원에 막 도착한 후 돌격을 준비하는 로한군을 연상시키는 연출을 보였다.4월 5일, 27회에 나온 개경 전투는 방영되자마자 주요 남초 커뮤니티를 환호의 도가니로 만들 정도의 역대급 임팩트를 남겼다. 성곽 시설의 문제 탓에 공성전 장면 자체는 그리 큰 스케일은 아니었으며, 이 장면은 나레이션으로 과감하게 생략해 제작비를 아꼈고, 대신 시가전에서 고퀄리티 전투씬을 보여주었다. 헬리캠을 이용한 실제 촬영과 카메라 효과 및 CG와 롱테이크 씬 등 연출으로나 카메라 기법으로나 상당히 공을 들인 티가 난다. 대체적인 반응은 국내 사극 역사에 남을 명장면.
특이하게도 엑스트라 병졸들이 주요 인물들이나 할 법한 스턴트 액션을 선보인다.[7] 공요군은 피아식별을 위해 투구에 빨간 띠를 맨 것으로 묘사했다. 그 전까지 병졸들이 화려하게 싸우는 모습을 부각시킨 사극은 불멸의 이순신 정도였고 웬만한 사극에선 전투력 측정기나 잠깐 찌르고 베는 장면만 나오는 수준이었다. 그 외 이전의 황산 전투와 달리 여기서 이성계는 직접 칼 들고 싸우진 않고, 말을 타고 전장을 관망한다.[8] 거기에 잘 언급되진 않으나 후반 야간 전투에선 바리케이드를 공성병기로 밀어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다[9]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한국사극에선 보기 힘든 방패대열을 맞춰 싸우는 장면도 나온다. 마지막으로 최영과 이성계의 대결로 비장미를 더했다.
2.3. 육룡이 나르샤
5만의 아들들이여! 오늘 우리는 우리를 기다리는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
20~22회에 묘사되었다. 그러나 드라마 자체가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제작 및 방영된 작품인지라 위화도 회군의 시기인 여름에 촬영을 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실제 역사상으로도 그렇고 드라마상에서도 분명 장마철이라 언급되었건만 작중에선 행군로 한정으로 눈이 오고 얼음이 얼어붙은 겨울에 위화도 회군이 이루어지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시기상 여름 촬영이 어려웠다지만, 위화도 회군을 다루는데 있어서만큼은 계절 문제가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기에 이 드라마의 주요 오점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내용상으로는 정도전과 마찬가지로 위화도에서 끊임없이 비가 내려 진군을 할 수 없고 역병이 도는 막장 상황이 묘사된다. 특히나 이성계 뿐만 아니라 극의 주인공이자 육룡 중 한명인 무휼의 입장에서도 보여주는데, 본인은 멀쩡했으나 동생들이 역병으로 고생하고 병사의 입장에서 비를 쫄딱 맞으면서 개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병사들이 볼때 이 요동 정벌이 얼마나 무리한 전쟁이었는가를 몸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50,000명의 병사들의 목숨과 인질로 붙잡힌 가족들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탈영병을 처형하는 현장에서 휘하 부장인 춘길과 무휼의 호소로 결국 우왕이 보낸 환관 김완을 추포하고 회군을 결심한다. 그리고 좌군도통사 조민수에게 회군을 제안하는데 조민수는 처음엔 반역을 하려는 것이냐며 반발하지만, 다시 회군을 요청하자고 제안한 뒤, 다시 이성계와 논의하여 "지금의 왕을 내버려둔다면 회군파 장수는 반드시 보복을 당할 것이니 왕을 바꿔야 한다"며 우왕 폐위 동의를 전제로 한 회군을 요구하고, 이성계가 받아들이면서 회군이 이뤄진다.
공요군이 개경으로 복귀하는 동안, 개경에 남아있던 정도전, 이방원을 중심으로 한 혁명파 세력들은 민가에서 다시 끌려가 도화전에 연금된 이성계의 식솔들을 구출하려 하고, 이방원이 화사단 대방 초영을 통해 도화전의 비밀 통로를 알아낸 뒤 이방원과 이방지의 활약으로 모두 구출된다. 그 동안 서경에 연금되어 있던 이방우와 이방과는 이지란이 보낸 무휼 덕분에 역시 구출된다. 개경으로 도착한 직후 가족들이 모두 구출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이성계는 공격 준비를 하고, 그 동안 이방원과 분이가 이끄는 장터 조직원들은 병사들의 탈영과 지휘관들의 이탈을 조장해 최영이 이끄는 군사의 지휘 체계와 방어에 구멍을 내서 유혈사태를 최소화한다.
<정도전>에서 개경 시가전을 역대급으로 묘사한 것에 비교되기에, 전면전 자체를 최소화하여 개경 공방전이 이성계 쪽으로 유리하게 흘러갔다는 식으로 전개되며, 이후 전면전은 궁궐 점령 때만 묘사된다.[10] 결국 최영이 무력하게 이성계에게 끌려가면서 마무리 지어진다.
2.4. 나의 나라
1회에서 등장한다.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공요군이 진격하기 전 우왕이 선발로 죄수부대 500명을 요동으로 올려 보내는데 요동의 선발대가 생각 외로 잘 버티자 이성계가 회군의 명분이 없어질 것을 우려해 처음에는 안 그런척하다가 자신의 사병 가별초를 이용해 선발대를 몰래 척살해 버리기까지 한다.2.5. 태종 이방원
그럼 모두 날 따르는 걸로 알겠소. 들으라. 이제 우린 개경으로 돌아간다. 지금 명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실로 미친 짓이다. 굶주림에 시달리고 왜구에 짓밟히는 백성들을, 더 큰 고통 속으로 밀어넣는 짓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를 가리켜 고려의 신하라 할 것이며, 누가 우리를 가리켜 고려의 장수라 하겠는가? 우린 이제 회군을 단행하여 전쟁을 주창하던 간적들을 처단하고, 종사와 생민의 안위를 즉시 확보할 것이다!
용의 눈물과 마찬가지로 위화도 회군으로 막을 열었다.
본작의 이성계는 가족의 신변안전이 불확실함에도 그대로 개경을 공성하는 냉혹한 면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본인은 훗날 천벌을 받을 거라고 자조하는데, 훗날 있을 1차 왕자의 난과 2차 왕자의 난을 암시하는 분위기를 풍긴다. 대체적으로 존재감 자체가 없었던 익안대군 이방의와 회안대군 이방간이 일찌감치 이 전투부터 등장해서 이성계화 함께 공요군으로 진출한 것으로 보이며 이들이 오히려 이방우, 이방과 그리고 이방원을 걱정해 회군을 말리다가 이성계의 결정에 마지못해 따르는 것으로 나온다.
이 와중에 이방우와 이방과는 우왕의 명으로 가택 연금을 당했으나 이화상의 거짓 연기와 셋의 무력으로 감금했던 병사들을 두들겨 패고 서경에서 탈출하여 이성계의 공요군에게 합류하여 다른 형제들과 함께 개경 시가전에서 크게 활약을 하고, 이방원은 자신의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장면 역시 잘 묘사되었다.
용의 눈물이나 정도전처럼 이성계의 간지나는 연설은 없지만, 대신 '회군' 과정 자체를 묘사하는 것에 공을 들였다. 개경 공성전도 굉장히 스펙터클하게 묘사된다.[11] 그렇다고 비판점이 없지는 않은데,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제작된 탓인지 액션신이 너무 절제적으로 대충 싸우다가 휙 지나가고, 공성전에서 아군이 성벽을 오르고 있는데 투석기를 쏘아대는 비현실적인 장면이 있다.[12]
용의 눈물과 마찬가지로 회군에 참여한 장병들은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는 것으로 피아 식별을 했다. 당시에는 정확히 어떻게 했는지는 불명이지만, 어느 쪽 편인지 구분하기 위해 선택한 연출로 보인다. 마침 두 작품 모두 KBS에서 만들었으니, 소품도 구하기 쉬웠을 것이다.
3. 영화
3.1.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상당히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이성계가 순전히 개인적인 야망 때문에 해볼 만한 싸움을 포기하는 것으로 묘사되며, 이성계의 사불가론도 실없는 변명으로 그려진다. 또한 이성계 휘하의 군관이었던 주인공 장사정이 회군에 반발하여 군에서 탈영하고 산적이 된다.3.2. 봉이 김선달
영화 봉이 김선달에서 김인홍의 지어내는 이야기로 김선달의 조상이 위화도 근처 마을의 촌장인데, 뗏목으로 부교를 만들어 이성계의 회군을 도왔다는 장면이 나온다.4. 기타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만화책)에서 사이토 하지메(바람의 검심)이 위화도 회군을 언급하는 순간이 있다.웹툰 조선왕조실톡에서도 위화도 회군이 언급된다. 여기에서는 고려 및 조선의 위인들이 스마트폰과 인터넷, SNS를 이용한다는 설정에 이렇게 표현된다.
1. 하나, 우리가 크기에서 밀립니다. 명나라 사이즈 보십시오! 견적이 안 나옵니다!
2. 그리고 봐요, 이제 장마철인데 불어난 압록강을 어찌 건넙니까? 거기다 농사철 아닙니까! 백성들 일하게 둬야지요!
3. 셋, 이 무더위 속에선 활줄이 팬티 고무줄처럼 늘어집니다. 콜레라도 번질 텐데 싸움을 어찌합니까!
4. 끝으로 왜구들 때문에 안 됩니다. 얘네 좀 보십시오. 빈집털이 올게 뻔하잖습니까! 아, 이 싸움 정말 안 됩니다. 전하, 최영 선배님, 제발 요동 정벌의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라고 요청을 하나 우왕은 들은체도 안 하고 엿을 날리고 최영은 아예 톡을 씹는다. 그 이후에 아들인 이방원이 카톡으로 왜구가 침입해왔다고 알리고 현재 국내의 병력으로는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하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는 말을 남기며 개경으로 회군한다. 우왕은 폐위되고 최영이 귀양을 떠난 후에 신진 사대부들끼리 파가 갈리며 정도전은 "기왕 장악했으니 이딴 썩은 나라 없애고 새로 만들어야죠!" 라며 주장을 하지만, 정몽주는 "아직 고쳐 쓸 수 있거든?" 라고 반박하는 장면도 나온다.
4.1. 무서운 걔임
무서운 걔임 0.299에서 "이성계가 회군한 곳은?" 이라는 퀴즈가 있다. 물론 병맛 게임답게 선택지에 '진짜 위화도', '가짜 위화도'가 있고, 이 문제의 생존 선택지가 '횡성'이다...[1] 14분 27초부터. 이 대사를 하는 순간 이성계 역을 맡은 배우 김무생의 발성, 연기력이 말 그대로 폭발한다.[2] 이 회상 속에서도 김성옥 씨와 김무생 씨의 대사만을 통한 연기력이 폭발하는데, 사불가론을 다 언급한 다음에 최소한 가을 추수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미루자는 이성계의 울부짖는 듯한 간절한 호소와 그 말을 다 수긍하면서도 그 순간이 아니면 기회가 없으니 가장 신뢰하는 이성계를 보낸다는 상황을 인정함에도 바꿀 수 없는 의지에 대한 체념한 최영의 목소리는 회군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서로의 정당성과 동시에 그럼에도 갈라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3] 본작에서 고려 왕조는 전반적으로 유약하고 노쇠한 모습으로 단순화 되어 묘사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나름 정치력이 있었고 이성계에게 대항했던 우왕은 등장 내내 유약한 모습을 보이며 안대비와 최고 권력자인 최영에게 크게 의존하면서도 이성계의 위협에 쉽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안대비 역시 실제 역사와 달리 매우 고령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구 시대의 노쇠한 왕조를 상징하려는 의도로 이렇게 하였을 수도 있다.[4] 최영은 2화에서 처형되고 만다.[5] 그러나, 이성계에게 꾸지람만 듣고 물러난다.[6] 정도전의 이성계도 물론 야심이 있지만 야심이 고려를 끔직히 위하는 최영이나 정몽주 등의 친분을 생각하는 마음보단 강하지 않았다.[7] 오히려 장수급들이 절제된 액션을 선보였다.[8] 황산 대첩의 야전군 지휘관이고 기록상에도 워낙 난전이기에 직접 싸웠다고 한다면 위화도 회군 때는 우군 도통사로 실질적 최고 지휘관이고 최고 지휘관이라면 응당 후방에서 지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애초에 전쟁에서 최고 지휘관과 지휘부가 함부로 전방에 나오는 건 위험부담이 크며, 지휘관이 적의 공격을 받는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실제 역사상 황산 대첩 때도 이성계가 괴물같은 활약을 하며 이겼지만 그 자신도 적에게 몇 차례나 공격을 받으며 화살을 맞고 부상당한 걸 감추며 싸웠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을 겪었다.[9] 마치 당시 시가전이었어도 이렇게 했을 것 같은 현실적인 바리케이드들도 포인트이다. 궁궐을 위시한 내성쪽에 가까울수록 목책으로 세워둔 제대로 된 바리케이드지만 외성과 가까울수록 그 조달과 보급이 어려웠을만큼 수레나 담요 등으로 마을에서 징발한 물건들로 서둘러 만들어낸 바리케이드가 인상깊다.[10] 정도전의 이성계처럼 이 작품의 이성계도 직접 싸우지 않고 지휘관으로써 지켜보다가 개경에서 한 궁병이 계속 스나이핑을 해대자 그것을 보고 아주 먼 거리에서 그 궁병을 저격하는데 그 장면 이후 바로 공요군이 분전하는 장면으로 연결된다.[11] 고려사 기록에 충실하게 군영에 있던 가별초 병사 하나가 부리나케 포천으로 가던 도중 최영의 군사들에게 화살을 맞고 죽음으로써 회군 소식이 개경과 서경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우왕과 최영은 서경에 머물고 있다가 회군 소식을 듣자 개경으로 돌아왔고, 개경 시내에는 수레를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만들었고, 왕궁으로 들어가는 전투가 밤까지 이어졌다.[12] 사실 이 부분은 연출 때문에 생기는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이 작품 뿐만 아니라 현대전을 묘사하는 영화들조차 아군이 맞을지도 모르는데 포격과 함께 보병이 진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보통은 대포 등을 먼저 쏘고 그 다음에 보병이 진격하는 게 맞지만 연출면에서는 동시에 하는 것과 비교하면 심심해보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