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0-03-14 01:45:25

이석기

파일:Semi_protect1.png   로그인 후 편집 가능한 문서입니다.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동명의 정치인에 대한 내용은 이석기(1907)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folding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파일:국회휘장 (구).png 비례대표 제19대 국회의원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5px"
새누리당 몫 비례대표
민병주 김정록 윤명희 조명철 강은희
주영순 신의진 이상일 이에리사 이만우
박근혜 안종범 김현숙 김장실 이자스민
최봉홍 류지영 송영근 민현주 박창식
손인춘 김상민 현영희 이재영 신경림
이운룡 박윤옥 양창영 장정은 이동주
정윤숙
민주통합당 몫 비례대표
전순옥 최동익 은수미 홍종학 진선미
김용익 배재정 백군기 남인순 김광진
한정애 김기준 장하나 김기식 한명숙
도종환 김현 진성준 최민희 홍의락
임수경 신문식
통합진보당 몫 비례대표
윤금순 이석기 김재연 정진후 김제남
박원석 조윤숙 이영희 오옥만 노항래
나순자 유시민 윤난실 서기호
자유선진당 몫 비례대표
문정림 김영주 황인자
}}}}}}||
파일:이석기-8.jpg
이름 이석기
출생 1962년 2월 2일([age(1962-02-02)]세)
전라남도 목포시
학력 성일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1] 중국어 학사
소속 정당 무소속[2]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자녀 슬하 1남 1녀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9[3]
혐의 국가보안법 위반[4]
내란선동
업무상횡령
형량 징역 2년 6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2003년 8월 15일 가석방
2005년 8월 15일 특별복권
징역 9년 및 자격정지 7년 (내란선동 등 혐의)
징역 8월 (업무상횡령 혐의)
현황 복역 중[5]

1. 개요2. 논란
2.1. 민주민족혁명당 사건2.2. CN커뮤니케이션즈 설립과 재산증식 사건2.3. 국가(國歌)에 대한 발언2.4. 비례대표 부정 경선과 사퇴 거부2.5. 통합진보당 폭력사태 배후 논란2.6.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2.7. 내란음모 사건을 둘러싼 논란2.8. 종북과 반미 그리고 민족주의 의식의 혼합2.9. 2017년 집권계획
3. 평가4. 근황5.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 포함 논란6. 선거이력7. 함께 보기

1. 개요

파일:이석기-4.jpg
△ 이석기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

대한민국의 비례대표 부정 선거로 득표받은 정치범[6], 사기, 횡령으로 복역중인 경제 사범, 헌정사상 최초로 내란선동죄로 처벌받은 종북주의자이다.

1962년 2월 2일 생. 전라남도 목포시 출생으로, 성일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現 글로벌캠퍼스)를 졸업하였다. 과거 통합진보당에 소속되어 활동했던 전 국회의원이며,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으로 인해 현재 구속 수감되어 있다.

이 인물의 행각으로 인하여 이후 한국의 진보 정당들이 NLPDR, 종북과 선을 긋는 태도를 보이게 되며 국민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신뢰도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부정경선을 통해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국회의원 자격심사가 계류되었다. 더 나아가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및 소속 국회의원 자격 박탈 선고로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2013년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되었으며, 2014년 2월 17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8월 11일 2심 항소심에서 내란 음모 혐의가 인정되지 않아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으로 감형되었다. 2014년 12월 19일에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선고에 의하여 소속 의원 나머지 4명과 함께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2. 논란

2.1. 민주민족혁명당 사건


당시 이석기는 1990년대 후반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한 민족민주혁명당의 지도급 조직원이었다. 민혁당은 김영환[7]과 하영옥 등 3인을 중앙위원으로 하고 중앙위 산하에 경기남부위원회, 영남위원회, 전북위원회를 뒀는데, 이석기는 경기남부위원장을 맡았다. 1999년 민혁당 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3년간 도피생활을 하다가 2002년 5월 검거되었다.

2003년 3월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구성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6일만에 취하하고 형을 받아들였다. 5개월 복역 후 2003년 8월 15일, 노무현 대통령 광복절 특사때 공안사범으로는 유일하게 가석방되었다. 다시 2년 후 2005년 8월 15일 노무현 대통령 광복절 특사때 복권까지 이뤄지면서, 공무담임권 및 피선거권을 회복하였다.

2.2. CN커뮤니케이션즈 설립과 재산증식 사건

파일:이석기-6.jpg
△ 이석기 前 의원

CN커뮤니케이션즈는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 이석기가 2005년 2월에 설립한 선거 기획광고 대행사이다. 그는 2012년 2월까지 회사를 운영하였다. 이 회사는 서울대학교 등 30여개 대학 총학생회와 동아리 축제 기획 및 홍보사업 등의 계약을 맺어 매출을 올렸다. 또한 권영길 민주노동당 제17대 대통령 후보의 광고와 홍보를 맡으며, 2007년 12월 한달에는 25억원의 수입을 거뒀다. CN커뮤니케이션즈의 수익이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의 자금줄로 전용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유시민은 통합진보당과 그 전신인 민주노동당의 선거 운동을 CN커뮤니케이션즈가 독점하는 방법으로, 당권파와 CN커뮤니케이션즈가 부적절한 돈거래를 해왔다 주장했다. 2008년 분당사태 당시 비대위 집행위원장이었던 최순영도 당내 토론회에서 당시 당이 CN커뮤니케이션즈에 20억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석기의 측근인 당권파 의원들은 선거 비수기 때도 CN커뮤니케이션즈과 독점 관계를 맺어왔음이 밝혀졌다.

이석기는 2008년 5월 동작구 사당동에 아파트를 구입하고, 2009년 4월에는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J빌딩 6층을 다시 매입한다. 구매 당시 CN커뮤니케이션즈는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와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등 전국 규모의 선거를 거치면서, 연매출 20억 원대 이상으로 성장했다. 이로인해 이석기는 민노당과의 유착관계를 통해 자신의 재산을 치부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검찰은 이석기 전 의원이 2010년 지방선거 등에서 선거비용을 부풀려 4억4천만원 상당의 보전 비용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이석기 전 의원과 공모했다는 후보들은 모두 무죄이거나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피고인 14명 중 9명이 무죄판결을 받았고,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취득한 이익은 없다’고 인정했다. 4억4천만원 편취금액 대부분도 무죄로 판결되었다. 이 중 ‘전화홍보시스템 수량 오기’와 ‘모 후보가 미지급한 6천만 원’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이 혐의로 2013년 기소됐고, 2016년 1월 11일 서울중앙지법은 사기·횡령에 대해 징역 10개월과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해 징역 2개월, 총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확정된다면 이석기는 내란선동죄로 확정된 9년에 1년을 더해 총 10년을 복역해야 한다.

2.3. 국가(國歌)에 대한 발언


2012년 6월 15일, 이석기는 "우리나라는 애국가를 국가로 정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애국가는 그냥 나라 사랑을 표현하는 여러 노래 중 하나"라고 말하며, "민족적 정한과 역사가 있으므로 아리랑이 실제 우리 국가 같은 것이라고 본다"라고 발언하였다. 그는 또 애국가는 "독재 정권에 의해서 국가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애국가 부르기를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라고 말했다. 이석기는 통합진보당 당원 모임에서 북한의 군가 중 하나인 '적기가'를 같이 합창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내란음모 재판과정에서 이석기 의원이 적기가를 불렀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일부 참가자들이 강연 직후 촌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렀다는 것이 국정원 프락치에 의한 녹취록에서 나온다고 1심 재판부에서 밝힌바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애국가를 국가로 정한 적이 없다"는 내용 자체는 담백한 사실 그 자체로 맞는 말이다. 단지 '그러니 애국가 안 부를래 강요하지마'로 귀결되어서 논란이 되었던 것이다.

애국가를 군사정권이 만들었다 혹은 강요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많은 반발이 나왔다. 한국사회가 일제강점기와 오랜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국가주의, 전체주의가 만연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애국가의 가사가 봉건적인 충성만을 강요하는 내용이라던가 혹은 친일행적이 있는 안익태가 만든 노래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랜 역사동안 민중들은 태극기애국가를 자신들의 상징이자 단결의 수단으로 생각해왔다. 바로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의 현장에서도 자연스레 등장한 것이 태극기애국가다. 때문에 애국가가 가지는 의의 그 자체도 부정한다고 해서 진보진영에서도 당연히 까였다. 한겨레에서도 이석기의 애국가 거부를 비판했다. 사설과 같이, 태극기애국가는 나라의 상징일수 있음을 명시적으로 밝혔고 애국가 거부는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8]

적기가를 부르지 않았다고 하지만 법원에서 이적성 행위라 판단한 혁명동지가를 부른게 더 큰 문제였다.
파일:이석기-1.jpg
△ 이석기 前 의원

이런 모습들로 인해 제 19대 국회가 개헌하는 날(2012년 7월 18일),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때 카메라는 온 국민의 시선을 반영하듯 "화제의 인물" 이석기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이석기는 세간의 기대(?)를 저버리고 분명하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으며, 애국가도 제창했다.

2.4. 비례대표 부정 경선과 사퇴 거부

이석기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선출을위한 경선과정에서 발생한 부정에 연루되어 있다. 당시 그는 통합진보당에 입당한지 3개월밖에 안된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인물이었지만,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당내 경선에 입후보해 27%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였다.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이석기는 많은 비당권파 인사들에게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에 따라 통합진보당 내 특정계파의 개입에 의한 조직적인 표몰이 의혹이 제기되었다.

부정선거 진상조사 위원회는 이석기가 얻은 전체 온라인 득표수 10,136표 중 5,965표(58.85%)가 동일 IP에서 중복 투표되었고, 소스 코드가 개방된 직후 이석기에게 득표가 73%나 몰리는 비정상 상황이 연출되었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석기는 자신의 경기동부연합과 함께 통합진보당에 정계 진출의 목적을 위해 계획적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유시민은 당권파들이 마음대로 업무를 처리하며 경선 부정을 조직적으로 저지름을 진상보고서가 발표되기전 이미 알았다고 한겨레 인터뷰에서 밝혔다.

국민의 대다수가 이석기의 사퇴를 원하고 있음에도 불구, 이석기는 인터뷰에서 국민은 자신의 사퇴를 원하지 않으며, 이석기 사퇴 운동은 야권연대를 음해하려는 수구세력의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TV방송에 출현해서는 진상조사의원회의 결과발표에 대해 "일부 부실이나 부정은 있을 수 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이는 전체 선거를 부정할 만큼의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번 경선을 '총체적 부정선거'로 매도하는 것은 정치적 폭력"이라고 입장을 밝혔다.[9]

그러나 "총체적부실은 70% 이상일 때 써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당내 경선에서 일부 부정이 있었음을 자인하는 동시에 심각한 도덕 불감증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2.5. 통합진보당 폭력사태 배후 논란

2012년 5월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가 열린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그랜드볼룸에서 의장을 맡은 심상정 대표가 첫번째 안건으로 ‘강령 개정안 심의·의결의 건’을 처리하자 당회의에서 당원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대련 소속 대학생이 회의가 생중계되는데도 불구하고 폭력을 행사했고 그 배후로 당권파가 지목이 되었다.

2007년 이전까지 기존의 운동권 학생조직인 ‘한국대학생총연합회’와 한대련을 오가며 활동하던 경기동부연합 학생들은 2007년 이후 대거 한대련에 들어오며 요직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장부터 집행위원장, 사무처장에 이르기까지 핵심 직책은 모두 경기동부연합이 거머쥐었다. 한 통일운동 단체 관계자는 "경기동부연합이 6~7년 전부터 학생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학교에 이른바 '지도 사업'을 나갔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조직된 학생들이 폭력사태에 앞장서며 사실상 이석기 친위대 역할을 해온 셈이다.

이석기는 자신이 동원했다고 보여지는 당권파의 폭력사태에 관해 먼저 비당권파가 폭력을 부추긴게 문제라고 말을 함으로써,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부정 선거로 촉발된 당의 내분을 수습하기 위해 선출된 강기갑 비대위원장은 이석기와 만나 비례대표 사퇴를 종용할 예정이었으나, 이석기의 거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2.6.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

2013년 8월 28일, 국가정보원과 수원지방검찰청 공안부는 형법상 내란예비음모 혐의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석기의 사무실과 자택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석기가 국회의원 신분이기 때문에 체포영장은 청구되지 않았으나, 신체를 포함한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었다.

국정원은 이석기와 경기동부연합 조직원들이 2013년 5월 경기도 용인에서 모임을 갖고 경기남부지역의 통신시설과 유류시설 파괴를 모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국정원은 이석기가 2004년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 Organization)를 결성해, 1년에 1번씩 비밀 회의를 가졌다고' 보며, 압수수색 당일 도피했던 이석기는, 다음날인 8월 29일 통합진보당의 당 최고위원회에 참석해 입장을 밝힌 자리에서, "나에 대한 혐의내용 전체가 날조"라며, "유사 이래 있어본 적이 없는 진보세력에 대한 엄청난 탄압책동"이라고 발언했다.

9월 2일 법무부는 이석기에 대한 체포동의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이날 연합뉴스는 체포동의요구서 전문을 언론사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한국일보는 9월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서, 2013년 5월에 있었던 RO모임 녹취록의 요약본을 신문에 보도했다. 9월 4일 오후 3시 법무부가 제출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의원들의 과반수 찬성을 얻어 가결되었다. 헌정 사상 12번째의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이었다. 다음날인 9월 5일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이석기는 수원구치소에 수감되었다. 2014년 2월 17일에 1심 재판부는 이석기에 대한 내란 음모·내란 선동·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지만, 같은 해 8월 11일 2심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부장판사 이민걸)는 지하혁명조직 RO 실체는 인정되지 않고, 합의에 이르렀단 증거가 부족하여 내란 음모 혐의는 인정되지 않는다며, 내란선동혐의만 인정,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으로 감형하였다. 2015년 1월22일 대법원은 항소심처럼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해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 내란선동 혐의는 인정'해 징역 9년을 확정했다.

징역 9년 선고에 대해서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 것 가지고 중형을 내리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석기는 이미 민혁당 사건으로 수배된 바 있으며, 특별 사면을 받고 정계 진출까지 했음에 불구하고 이 같은 언행을 저질렀다. 일반 범죄도 재범은 크게 처벌한다. 내란 관련 혐의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문제다.

교도소에서 책을 집필중이란 소문이 돈다.

CNP 사건 최후진술에서 본인이 대통령에게 미움받아서 잔인하게 기소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2.7. 내란음모 사건을 둘러싼 논란

파일:이석기-5.jpg
△ 이정희 前 의원과 함께
해당 문서 참고.

2.8. 종북과 반미 그리고 민족주의 의식의 혼합


국내의 좁은 정치관[10]이 그렇듯 실제로는 이석기를 진보나 좌익으로 분류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러 정책 발언 면에서 종북주의적이거나 인종차별주의적인 발언을 하였으며, 모든 문화와 유행 그리고 개인의 성향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거나 특히 미국에서 눈에 띄는 것일 경우 적개심을 가진 발언을 하는 장면이 자주 포착되었다.

이석기는 국회의원 시절 박근혜정부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김종훈이 미국의 CIA출신임을 밝혀내어 낙마를 시켰다. 또한 주한미군의 한국 방위비분담금 문제를 제기하며 미국에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꼬집는다. 이석기는 미국에 대해 자주적인 입장을 강조해왔다. 다만 이 문서에서 보다시피 미국에 한해서만 자주적이었다는걸 감안해야 한다.

한편으로 종북보다 종미가 문제라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정작 본인 아들은 미국에 있다. 이석기가 보낸 건 아니고 2002년 이석기와 이혼한 부인이 자녀들을 데리고 이민갔다.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주체사상을 철저히 공부해라."는 메시지를 카카오톡으로 보냈다는 논란이 있기도 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변증법적 유물론[11]을 오보했다는 의견도 있다.

2.9. 2017년 집권계획

이석기는 경기동부 진영의 핵심 전략가로 알려져 있지만, 국회의 체포동의안에 명시된 이석기의 집권전략을 보면 전략가로서의 자질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이석기는 2014년 6월 지방선거와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승리하여 통합진보당이 민주당을 제치고 제1야당의 위상을 확보한 뒤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집권 시간표'를 제시하였다. 또한 '새누리당-민주당 양당체제'를 "미국 제국주의의 남측 분할통치 전략"이라고 평가했고, 19대 총선 직후 통합진보당 분당으로 이어졌던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태'에 대해서는 "혁명과 반혁명세력의 치열한 전쟁으로 규정하였다.

이를 접한 정치권은 여야할 것 없이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의원은 "어린이들이 우주전쟁을 꿈꾸는 것 같은 과대망상 환자를 보는 것 같다"고 촌평했고, 민주당의 중진 의원은 "거의 '전국 또라이 연합' 수준 아니냐"고 비판하였다.

이석기는 집권계획이 실현되기도 전에 감옥에 갔으며, 통합진보당은 제1야당이 되기는 커녕 2014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정당으로 지목되어 해산되어버렸다.

3. 평가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당시 증거로 제출되고 변호인단에 의해 검토된 녹취록을 살펴보면, 이석기는 철저한 반미주의자로서 한반도의 자주통일을 위해서 궁극적으로 이들을 몰아내야 하고, 반대로 북한과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해 북한이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교섭해야 하므로 북 핵보유를 인정 및 옹호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강연에서 종종 핵보유국 상호간에는 국지전과 대치전 위주의 무력분쟁이 벌어지며, 심리전과 사상전, 정치전(예컨데 종북몰이)이 횡행하므로 이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발언을 자주 하였다. 자주적인 민족통일을 위해서는 이러한 정치적 세태를 뿌리채 뽑아서 바꿔야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주장과 발언내역이 문제가 되어 법정에서 내란선동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다만, 판결과 조사과정이 법조계와 정계에서 별도로 논란이 되었는데, 이에 대한 논란은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논란을 참고하길 바란다.

내란모의죄 유죄판결과는 별개로 사상이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여러 문제점을 지적받는데, 80년대 NL계 운동권과 같이 단순히 반미, 반제국주의에만 치중하여, 북한과 중국에 대한 비판의식과 현실파악능력은 완전히 결여되었고, 세계정세를 바라보는 안목 역시 비현실적이고, 편향되어있다. 예컨데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벌어진 6.25전쟁을 이석기는 2013년까지 민족해방전쟁으로 부르고 있었다.

80년대 북한에 불법 월북한 친북 NL계 인사 김영환 같은 사람들조차 북한의 현실을 알고 90년대 중반부터 성향을 180도 선회하여 반북(엄연히 말하면 북한의 反김씨정권)으로 돌아서는 등, 해가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탈북자와 처참해지는 북한의 현실속에서 대중적으로 반북정서가 확대되는 추세고, 현실과 상반되는 이러한 이석기의 사상은 점점 힘이 약해져, 공감대를 완전히 상실한 상황이다. 진보세력조차도 이미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김씨 왕조 종교국가가 된 북한을 극우라며 비판하고, 온건적으로 가도 남북교류 및 우리 주도의 평화통일로 가자고 주장하는 게 현실이다. 이미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기 전부터 여/야로부터 거의 정신병자에 준하는 취급을 받기 시작했고, 내란음모죄에 판결에 논란이 있음에도 정치적인 지지기반이 거의 소멸한 상황이다.

민혁당 사건 당시 주도자 3인방이 전부 그때와 다른 길을 걸었으므로, 이석기를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면 살아있는 NL계의 화석이라고 할 수 있다. 구 NL계가 가지는 단점을 이석기 역시 그대로 다 가지고 있다.

4. 근황

파일:이석기-4.jpg
△ 체포된 이석기 前 의원

현재는 2023년까지 징역을 살아야 하는 수형자이다. 그리고 그의 사건은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의 밑거름이 되고 있으나, 민중당의 지상목표 중 하나로 항상 이석기의 석방을 요구하는 만큼 출소하고 나서도 둥지가 사라졌다고 판단을 내리긴 힘들것이다.

2017년 11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당시 당대표와 민중당 대표단이 만난 자리에서 민중당 측은 이석기의 석방에 더불어민주당이 도움을 줄 것을 요청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측은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2019년 3월에 선거홍보회사를 차려 후보자들의 선거 물품 비용을 부풀리고 지자체에 선거 보전 비용을 과다하게 청구한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8월의 형이 확정됐다.
파일:이석기-7.jpg
△ 이석기 前 의원

5.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 포함 논란

진보계 인사 98명으로 구성된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등 37명을 양심수로 분류하고,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다.추진위가 선정한 양심수는 총 37명으로 노동자 12명, 국가보안법 위반 25명 등이다. 이 명단에는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9년 및 자격정지 7년형을 받은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되었다.

민가협에서 발행하는 양심수 목록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석방운동에 적극 나설 것임을 공표해 논란이 예상된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까지 석방운동에 합세하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12]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까지 참여한 석방운동은 청와대에 양심수석방을 촉구하는 보라색엽서를 말하는 것으로 8.15에 맞춰 1만 6천명이 참여한 가운데 청와대에 전달되었다. 하지만 청와대 측은 특별사면을 감행할 뜻이 없다며 진보계 일각의 요구를 일축했다. 결국 8.15에 석방되지 않았다.

다만 양심수석방 추진위원회는 단체에 속한 인사 98명이 가입한 단체(이하 추진위)이다. 추진위에서는 일반적으로 폭력을 사용하지 않은 채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여 정치/종교/인종/문화 등의 온갖 요인으로 인해 박해를 받아 구속된 모든 사람을 석방하라는 요구이지 오직 이석기 석방만이 주가 된 것이 아니다. 만약 이를 종북행위로 규정한다면 양심수석방운동에 함께한 98명의 인사들과 보라색엽서 켐페인에 참여한 1만 6천여명을 모두 종북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석기가 양심수로 버젓이 선정됐다는 점에서 다른 양심수들이 정말 탄압과 박해를 받은 양심수인가 하는 점은 논란이 될 수 있다. 더군다나 어느 단체나 인물도 왜 이석기가 양심수로 선정됐냐고 공식적으로 항의나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석기가 박해받은 양심수라는 점에는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석기를 양심수라고 보는 국민들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국민들도 있다.

차라리 이석기가 "난 북조선을 사랑한다!"고 당당히 커밍아웃하여 구속된 거라면 그 사상이 옳냐, 그르냐를 떠나서 사상의 자유를 탄압받은 양심수라고 볼 여지는 있으나, 그냥 다 정부와 국정원이 조작한 거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딱히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는지도 의문라는 지적이 있다. 더군다나 이석기 녹취록이 공개되자 통진당도 녹취록을 어느 정도 인정하여 술자리 농담이었다고 말을 바꿨다는 점, 국정원도 단지 이석기가 북한을 좋아해서 체포한게 아닌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했다는 점에서 단순 술자리 농담이냐,아니냐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지언정 왜 "양심수"인지는 의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냥 억울하게 체포됐다고 다 양심수는 아니며,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처럼 당당히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다 감옥간 것도 아니다. 이석기 측에선 자신을 탄압하려고 증거 조작을 했다고 주장하므로 양심수에 포함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러면 먼저 녹취록이 조작됐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NL 성향 언론에서조차[13] 내부고발자를 파악하고 대충 어느 대학 나왔고 집이 어디인지 직접 기자가 찾아가기도 했다는 점, 평상시 내부고발자 보호를 부르짖던 세력들이 이석기 내부고발자를 프락치라고 벼르고 있어서 그 제보자가 신상에 위협을 느끼고 해외로 도피했다는 점에서 녹취록 자체는 거짓이 아닌 걸로 보인다.

차라리 솔직하게 전쟁 시 남조선을 없애고 민족통일을 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당당하게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밝혔다면 양심수라고 보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이석기는 그것이 아니고 술자리 농담식으로 회피하려 들거나 아예 다 조작이라고 우기는 건 그다지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다. 류샤오보처럼 법적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과 양심을 지키는 것이 양심수지,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요리조리 말 바꾸고 거짓말을 한다면 양심수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중이다.

다만, 여기에는 민가협의 성향도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민가협에서 지명하고 있는 양심수 중에는 폭력을 부분적 동반하는 이들도 있으며, 사상의 차이로 검거된 모든 정치사범을 양심수라고 부르고 있다. 즉, 양심이라는 개인의 매개체적 요소로 붙잡힌 이들을 총칭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공공연하게든 개인적으로든 표출하였으나 그로 인해 붙잡힌 이들 전체를 양심수라 총칭하고 있으며 실제로 양심수의 범위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해석은 갈릴 수 있다. 넬슨 만델라의 경우엔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지만 양심수라 부르는 점에 대해서도 포함되며 인권주의 내지 인권 근반적 사상을 가지고 있거나 양심이라는 키워드에 초첨을 둔 이들, 종교단체들의 경우엔 정치적 신념으로 붙잡힌 이들은 모두 인권 탄압이라고 보는 것이다.

사실, 개개인마다 이에 대한 해석은 다르며 일각에선 한상균, 정석만은 양심수라 불릴 만 하지만 이석기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며 실제로 이재명 시장도 종북은 문제라고 하며 내심적으로 표출한 적이 있다. 더불어, 오해해선 안 되는 것이 양심수라는 것이 양심적으로 신념을 표출하다가 붙잡힌 것이 아니라 신념을 표출하다가 검거된 모든 이들을 통칭한다. 그렇기에 개인과 나라마다 범용의 해석이 갈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석기가 신념을 표출하다가 검거된 인물이냐는 점이다. 만델라처럼 자신의 신념 표출 수단으로 폭력을 행사한 인물도 아니고, 녹취록에서 보듯 때를 기다려야 한다면서 비교적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지내왔던 인물이었다. 뜬금없이 애국가로 인해 논란이 된 적이 있으나, 딱히 정부와 심한 대립각을 세우던 인물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놓고 반정부 투쟁의 선봉으로 나섰던 것은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이었으며 필리버스터를 주도하기도 했었으니 만약 정말 정부에 대한 사상의 차이로 탄압받는 국가였다면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먼저 구속됐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정부와 심한 대립각을 세우던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이 2017년 합법적으로 정권을 쟁취한 것만 봐도 단지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막 잡아넣는 국가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석기는 특별한 신념 표출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단지 국민을 테러하자는 술자리 농담(통진당측 주장)이 문제가 되어 구속된 것이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집권 제 1과제를 적폐청산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국정원 TF팀을 구성하여 댓글부터 시작해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국정원의 댓글대선개입을 덮기 위해 조작된 사건으로 주장하는 이석기에 대한 내란선동과 관련된 언급은 없다. 한편 지난 박근혜퇴진 촛불 때부터 문재인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이석기를 비롯한 양심수석방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당연히 구 통합진보당 NL계 잔당과 그 관련자들의 목소리이지만

2017년 12월 6일 7대 종단 지도자들과 연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해서 사실상 사면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내비친 상태이다.

靑, 대규모 성탄 특사 고심… 이석기·한상균 포함될지 미지수다

결국 2017년 성탄 특사에서 이석기, 한상균은 제외되었다.[14]

2019년 연말 특사가 이뤄졌는데 한상균은 사면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이석기는 또 다시 제외되었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에선 사면의 기회는 없을 것이란게 중론이고, 사면없이 형기를 다채우고 만기 출소할 것으로 보인다.

순수하게 정략적인 면에서 봐도 이석기의 사면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겐 위험 부담이 큰 편이다. 통합진보당이 공식 해산당하기 전까지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은 야권연대 등 과거 통합진보당과 연대한 행적 때문에 '종북 NL과 결탁했다'라는 비방을 오랫동안 들어왔고, 이로 인해 정계에서 불리한 입장을 강요받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석기를 함부로 사면하면 간신히 확보한 중도 및 보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을 위험이 너무 크다. 반면 이석기를 석방한다고 해서 이석기를 지지하던 부류들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확실하게 지지해 줄지도 미지수이고, 그 규모 자체도 상당히 작다. 이런 상황에선 사면을 선택하지 않는게 당연히 더 이익이 크므로, 앞으로도 사면의 가능성은 매우 낮다.

6. 선거이력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통합진보당 2,198,405 당선 (2번) [15]

7. 함께 보기


[1] 현 글로벌캠퍼스[2] 최종 당적은 통합진보당이다.[3] 내란음모 사건으로 인한 의원식 상실[4] 반국가 단체 구성, 반국가단체 등 활동 찬양 · 선전 · 동조, 이적표현물 소지[5] 업무상횡령 재판이 끝나기 전에는 수원구치소,이후 대전교도소[6]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판결받은 사유이다.[7] 시간이 흘러 뉴라이트로 전향한 그 사람이 맞다. 결국 방향만 바꿔서 삽질하는 격이지만...[8] 다만진보진영 내부에선 국기에 대한 경례는 비록 김대중 정부에서 몇몇 문구를 수정했다고 하더라도, 국가주의의 냄새를 풍긴다면서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전형적인 자유주의자인 유시민도 자기가 국회의원이 아니라면 거부했을 것이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9] 이런 식이면 국정원 댓글 여론 조작 사건도 용공분자 색출이나 계도 같은 핑계를 대며 무마할 수 있다. 물론 이쪽 진영에선 절대 그렇게 여기지 않겠지만.[10] 일본에서 독립한 후 미군정까지의 우익과 좌익은 지금은 유럽/일본의 우익/좌익과 비슷했다. 민족주의+국가주의 우익과 사회주의 좌익. 실제로 독립운동가들도 이런 진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한국에서 이 좌우 구분이 망쳐진 건 당연히 같은 민족인 북한인들이 공산주의를 내세우며 일으킨 한국 전쟁.[11] 주체사상과는 전혀 다른 마르크스주의적 사상. 북한 서적에서는 김정일 사상의 독창성을 주장하기 위해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별로 관련성이 없다. 사실 주체사상은 왜곡된 민족주의에 가깝기 때문에 되려 마르크스주의와는 충돌한다.[12] 해당 언론에선 양심수(이석기)라는 병기를 사용 중이지만, 해당 언론사는 박근혜를 반대하는 국민을 촛불세력이라 규정하거나 트럼프의 행적을 지지하거나 수리온에 대해 옹호적이고 문재인 및 원내정당중 자유한국당, 대한애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에 비판을 가하는 언론사이므로 걸러서 들어야 한다.[13] 진보 언론이나 잡지 중에서도 정상적인 좌파 성향을 가진 한겨레, 경향신문, 시사인, 오마이뉴스에선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14] 이때 이들 대신 사면된 이가 정봉주였다. 그러나 그는 약 3개월 후...[15] 내란음모 사건으로 인한 의원식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