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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9:51

이성우(야구선수)/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이성우(야구선수)
1. 프로 데뷔 이전2. LG 트윈스 1기 시절3. SK 와이번스 1기 시절4. KIA 타이거즈 시절
4.1. 2008 시즌4.2. 2009 시즌4.3. 2010 시즌4.4. 2011 시즌4.5. 2012 시즌4.6. 2013 시즌4.7. 2014 시즌4.8. 2015 시즌4.9. 2016 시즌
5. SK 와이번스 2기 시절
5.1. 2017 시즌5.2. 2018 시즌
6. LG 트윈스 2기 시절
6.1. 2019 시즌6.2. 2020 시즌6.3. 2021 시즌

1. 프로 데뷔 이전

서울특별시 도봉구 출신으로 백운초 3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 청원중-동대문상고에 진학했으나 하필 새로 부임한 감독[1]에 의해 총동문회장의 아들에게 주전 자리를 강제로 내줬다.[2] 이에 식당일을 하시며 이성우를 뒷바라지하시던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와 따졌으나 소용없었고, 결국 쫓겨나듯 신생팀인 성남서고로 전학하였다.[3]

2. LG 트윈스 1기 시절

우여곡절 끝에 성남서고를 졸업했지만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도 포기한 상황에서 2000년 LG 트윈스신고선수로 입단한다. 하지만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2군에 머무르며 정식 선수로 승격하는 데 실패하고 입단 1년 차에 방출 명단에 오른다. 방출 통보를 받고 구단 사무실을 나오던 중 당시 LG 2군 감독으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에게 야구를 더 하고 싶다고 애원한 덕분에 2년 더 LG에 남게 되었지만 끝내 2002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

3. SK 와이번스 1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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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1기 시절.

2003년 초 상무에 입대하여[4] 군 복무를 마쳤고, 전역 후 입단 테스트를 거쳐 2005년에 SK 와이번스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1군 출장을 하지 못하고 2군을 전전하며 꽤나 험난한 야구인생을 살았다. 만년 2군 SK포수 이성우 '서러운 추석맞이'

4. KIA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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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시즌 초반 KIA 타이거즈의 주전 포수 김상훈이 장기부상을 당하자 차일목이 주전을 맡게 되었고 1군 백업포수가 필요했던 조범현 감독의 요구[5]채종범, 김형철과 함께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KIA는 전병두, 김연훈을 SK에게 내주었다.[6]

4.1. 2008 시즌

2008년 KIA 이적후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왔지만 눈에 띄는 활약이 별로 없었다. 타격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포수 리드에 있어서는 상대 투수를 잘 다독이면서 신경써 주는 모습을 보여 주는 편이다. 송산과 함께 차일목의 백업으로 1군 기록을 조금씩 남겼다.

4.2. 2009 시즌

2009년에는 돌아온 김상훈이 주전을, 차일목이 그 백업을 해서 이성우는 3번 포수 역할이었는데, 1군경기 기록은 13경기 14타석 뿐이다.

2009년 6월 25일 SK 와이번스와의 홈 경기에서 연장 12회 말에 투수 최정을 상대로 안치홍의 3루타가 터진 이후 다음 타석이었던 이호신의 타석에서 이호신이 투 스트라이크까지 몰리자 이성우가 대타로 나섰고, 결과는 정상호의 포일로 3루 주자 안치홍이 홈으로 들어오면서 팀이 승리하는데 일조하였다.

4.3. 2010 시즌

2010년경에는 김상훈이 노쇠화가 시작되었어도 여전히 기회를 제일 많이 받았고, 백업 차일목은 커리어 하이 공격을 선보였다. 이성우는 2010년과 마찬가지의 신세였다.

4.4. 2011 시즌

2011년에는 드디어 차일목이 주전, 김상훈이 백업이 되었다. 그러나 이성우는 15경기 9타석만 나왔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 포함되었지만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4.5. 2012 시즌

2012년에는 차일목-김상훈 체제에 송산의 복귀와 한성구의 깜짝 등장으로 입지가 더 좁아졌다. 송산과 한성구가 3,4번 포수로 올라섰는데 이성우는 아예 5번포수로 밀렸다.

2012 시즌의 1군 첫 경기였던 2012년 8월 7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차일목에 이어 포수로 나왔다. 이후 5:5로 팽팽한 접전을 벌이던 9회말 1사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고, 밀어내기 볼넷을 골라내며 경기를 승리로 마무리지었다. 이 때 3루 주자로써 홈을 밟았던 선수가 안치홍이었다는 것이 3년 전 때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였다.

2012년 9월경부터 마땅한 포수 자원이 없는 팀 사정상 백업 포수로의 출장이 잦아졌다. 그래봐야 시즌 총 16경기 9타석에 들어섰을 뿐이다.

4.6. 2013 시즌

스프링캠프에서 발전이 많이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고 시범 경기에서도 백업 포수로 출장 기회를 많이 가졌다. 그리고 개막전 엔트리에 드는데도 성공하였다. 홈 개막전에서 앤서니 르루의 세이브를 돕는데 한 몫을 했다.

하지만 홈 개막 2연전을 치르자마자 바로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4월 27일에 전날 경기에서 부상당한 김상훈을 대신해 다시 1군으로 올라왔다.

4월 30일 잠실에서 벌어진 두산과의 팀 간 4차전 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안정적인 블로킹을 선보였고 8회말에 위기에 처했던 마무리 투수 앤서니 르루를 안정시키며 팀을 승리로 이끌어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2회초에 선발 노경은을 상대로 선두타자 안타를 기록했지만 이용규의 삽질과 본인의 타구판단 미스로 득점에는 실패하였다.

이후로도 이따금씩 올라와 백업 포수로 쏠쏠히 뛰어주었지만, 6월 27일 어깨 부상으로 재활군행.

결국 차일목과 김상훈이 주전과 백업을 차지한 가운데 송산 한성구 이성우가 그 뒤를 잇던 작년에서 송산 한성구가 이홍구 백용환으로 바뀐것 말고는 이성우의 입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4.7. 2014 시즌

2013 시즌 부상 및 팔꿈치 수술로 인해 재활로 시간을 보내다, 백용환의 반대급부로 6월 12일에 콜업되어 당일 경기에 바로 투입되었다. 이 경기에서 결승점이 된 싹쓸이 2루타로 의외의 방망이 실력도 보여주기도 했다.

6월 15일 선발경기에서는 파울타구에 왼손을 강타당하면서 교체되어 팬들의 불안감을 높이기도 했지만[7]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졌다.

7월 10일 명품 수비를 보여주었다. 평소 차일목, 김상훈에게서는 보지 못했던 좋은 수비 뒤에 안타를 치고 나가서 득점을 기록하였다. 6회말 KIA 이성우 끝까지 최선 다하는 수비

후반기 들어 쳤다 하면 땅볼, 병살인 극악의 타격감과 이해할 수 없는 포수 리드를 보여 주며[8] 팬들의 뒷목을 잡히게 하고 있다. 더불어 왜 매일 이런 선수를 기용하냐며 선동열이 까였었다.

10월 12일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삼성전에서 9회 말 박근홍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쳤다. 이는 2008년 이후 6년 만에 기록한 홈런이었다.

김상훈이 은퇴시즌을 맞이하여서 사실상 물러남에 따라 주전 차일목의 백업으로 이성우가 올라섰다. 드디어 33세의 나이에 기회를 얻었다.

4.8. 2015 시즌

KIA 타이거즈 주전포수인 차일목이 시범경기에서 왼쪽 허벅지 부상을 당하면서 이성우가 주전포수 마스크를 쓰게 되었다.

4월 4일 포수 선발 출전하여 3타수 1볼넷 1안타 2타점으로 드디어 첫안타가 5경기만에 터졌다. 이날 5연승으로 10-2 기아의 대승이였다. 4월 15일 데뷔 첫 한경기 3안타를 기록하였다.

이홍구와 포수 2인체제를 구성하고 있던중 4월 21일 차일목이 1군으로 복귀하였다. 결국 포수 3인체제를 구축하였다. 하지만 차일목은 5월 6일 부진한 성적의 원인으로 포수경쟁에 밀려 결국 함평행 2군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이로써 다시 시즌개막 포수엔트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해설자나 팬들이 불만인 점은 지나친 하이 패스트볼 요구 때문인데, 제구력이 부족한 투수들에게도 보여주기식의 속지도 않는 하이볼 요구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6월 2일 잠실 두산 전에서는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홈런(!!!)을 기록했다. 이 홈런이 시즌 1호 홈런이자 통산 3호이며, 잠실 구장에서 첫 홈런이라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 이 날 이성우는 서재응의 7이닝 1실점 호투를 이끌었으며 5회에는 무사만루 상황에서 니퍼트와 오재원을 멘붕으로 만드는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켰다.

6월 4일 두산 베어스전에 선발 포수로 출전하여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멀티히트를 기록하였고 2회초에 1타점을 올리는 안타는 이날의 결승타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날 선발인 양현종이 9이닝 1피안타 2볼넷 5K로 완봉을 하였는데 이성우의 투수리드도 일조를 했다고 볼수 있다.

8월 현재 이홍구와 백용환의 성장으로 인해 2군으로 내려간 후 콜업 소식이 없다. 하지만 2015 시즌 초반까지 안정된 포수리드로 투수진의 안정화를 가져온 공로가 있기 때문에 자주 나오지 않더라도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 있다.

9월 확대 엔트리가 시행되면서 다시 1군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이홍구와 백용환의 뒤를 받쳐주는 베테랑 백업포수 역할로 꾸준히 나왔다.

시즌을 총평하면 주전 포수가 된 이홍구의 백업으로 백용환과 비슷하게 기회를 받았다. 작년과 같은 134타석이나 경기는 더 많이 나왔다. 다만 차일목과 경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젊고 타격이 형편없는 이성우보다 이홍구 백용환이 기회를 더 받을 것은 자명해 보였다.

그래도 화려하게 빛나지는 않았지만, 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베테랑 백업 포수로써 야구 인생의 꽃을 피운 시즌이 되었다. 이성우는 기회를 잡으면서 차일목이 빠진 베테랑 포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으며, 결과적으로 2016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에서 차일목이 이적하게 되었다.

4.9. 2016 시즌

백용환이홍구가 주전 자리를 양분하게 될 상황이라서 더이상 낄 자리가 없어 보였는데, 막상 시즌이 시작하자 둘 모두 부진하게 되어 기회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이성우마저도 딱히 잘하진 못하는지라 포수가 자동아웃제조기가 되고 있는 실정이었으며 일부 과격한 팬은 "혐성우"라고 까기도 했다.

5월 7일 경기에서는 희생번트 후 투수 실책으로 세이프가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이 선수가 타고난 슈퍼 똥차다.[9] 그래서 아웃되어서 천재일우의 기회가 날아갔다. 그리고 양현종의 원바운드 투구를 블로킹하지 못하여 포일성 폭투를 만들어냈는데, 여기에서도 홈 주루를 허용할 상황이 안 될 수도 있었는데 느릿느릿한 안일한 플레이로 3루 주자 서건창에게 결승 득점을 헌납하고 말았다. 이로써 양현종은 무승 4패였다.

5월 8일 경기에서 레이저 송구로 도루저지 두 번을 해내며 간만에 까방권을 얻나 했지만 5회초 병맛스러운 주루 플레이를 선보이며 까방권은 고사하고 폭풍 까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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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비에서, 특히 프레이밍에서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위 움짤처럼 스트존 안에 들어온 볼을 바깥으로 빼거나 투구를 받고 스트라이크판정이 나오기도 전에 일어서는 등 전혀 프로답지 못한 모습. 항상 2스트라이크를 먼저 잡아놓고 3볼을 만든다. 그리고 주자 만루 볼 카운트 3-2에서 바깥쪽으로 볼을 빼는 경우도 종종 있다.

6월 1일 LG전에서 전역하고 돌아온 한승택이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면서 앞으로 입지가 좁아질 듯 하다.

6월 23일 2군에서 OPS 4할을 치고 있다. 타율은 2할 초반.

백용환이 타격 부진으로 2군에 가면서 1군에 올라왔으나 차라리 안 나오는게 도움이 될 정도의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 이미 기아엔 백용환, 이홍구, 한승택 등 젊은 포수가 즐비하고 이성우는 이미 나이가 30줄이라 이성우를 기용하는 이유에 리빌딩 명목도 갖다댈 수 없다. 게다가 이성우 1군 복귀 후 9경기에서 3승 6패, 6패 중 절반 이상은 이성우가 대수비로 나왔다.

8월 18일 롯데전 3:2로 팀이 리드하던 중 중 답이 없는 3루 송구로 실점을 허용했고 팀은 연장에서 결국 3:4로 역전당했다. 더 놀라운 건 이 난리를 치고도 다음 날 선발 포수로 출장했다.

8월 19일 어제 경기에 이어서 오늘도 선발출전 했지만 최악의 투수리드와 수비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팀이 홈런을 4방이나 때려내며 10:6으로 넉넉히 리드중이었으나 9회말 2사까지 잡아놓고 팀이 1점차까지 추격당하고 1, 2루 위기를 겪은 것은 신종길의 에러나 다름없는 수비도 한 몫했지만 이성우가 투수리드만 잘했어도 쉽게 끝날 경기였다. 때문에 팀이 이겼음에도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이렇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2군에 갔고 확장 엔트리 시행 기간에도 한승택에 밀려 2군 붙박이가 되나 싶더니 백용환의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다시 1군으로 올라왔다. 결국 이홍구 - 백용환 체제가 구축되고 작년보다 기회를 더 못받고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5. SK 와이번스 2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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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7일, 4:4 트레이드를 통해 9년만에 다시 SK로 되돌아왔다.

5.1. 2017 시즌

SK 복귀 후에는 주로 2군 주전 포수로 활약하면서, 이재원-이홍구의 뒤를 받치는 포수 제3옵션으로 활동하고 있다.

6월 14일 이홍구가 다치면서 15일 1군에 콜업되어 그날 바로 선발 출장. 여담으로 6월 15일 경기가 데뷔 이후 SK에서의 첫 1군 무대이다.[10] 그리고 이 날 타격은 예상대로 무안타에 그쳤으나 두 개의 도루 저지를 해내며 백업 포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특히 9회에 나온 도루저지는 연속안타로 흔들리던 마무리 김주한을 구해낸 천금같은 활약이었다.

피칭의 기복이 심한 스캇 다이아몬드가 이성우와 배터리를 이루면서 2번의 QS를 달성하는 등 기가 막히게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7월 12일 무려 433일만에 멀티히트를 때렸다.

이재원이 2군에 간 이후로는 이홍구를 제치고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하고 있다.

7월 29일 2016년 8월 11일 경기 이후로 무려 352일만에 타점을 올렸다.

8월 4일 4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하였다.

8월 8일 1사 1, 3루 수비상황에서 내야땅볼로 3루 주자가 런다운에 걸린다. 런다운 도중에 1루주자를 3루에서 태그하며 더블아웃을 만든다. 이성우의 좋은 수비

8월 11일 3타수 1안타, 1득점을 올린다. 2루주자 강승호를 견제구로 2루에서 아웃시킨다.

8월 12일 3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하면서 선취점을 올렸고 팀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타율이 .217(!)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트레이드된 김민식의 타율이 .212인것을 감안하면 트레이드에서 덤 정도로 여겼던 선수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고 있는 셈. 또한 수비는 좋은데 공격이 아쉽다는 평도 팀내 포수 이재원(.229)과 이홍구(.186)로 별차이 없는 듯하다.

8월 19일 기아전에서 3타수 2안타 오랜간만에 멀티히트를 올렸다. 하지만, 이날 13:1로 SK가 기아를 난도질하면서 묻힌다.

8월 24일 삼성전에서 정인욱을 상대로 814일만에 시즌 첫홈런이자 통산 4번째 홈런을 기록했으며 덤으로 멀티히트도 기록했다. 4회초 4:4 동점상황에서 솔로홈런을 치며 앞서가는 1타점을 올렸으며, 9회초 7:7 동점상황 1사에서 안타를 때려 출루하였고, 김강민의 투런으로 9:7로 승리하였다. 경기내 중요한 상황마다 타점, 득점을 올린 셈이다.

8월 25일 삼성전에서 4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을 올리며 팀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9월 10일 4회말 노아웃 1, 2루 상황에서 번트를 시도하려고 했으나, 상대가 압박수비인 척 하는 걸 압박수비로 착각해서(...) 슬래시로 전환해 안타를 뽑아냈다. 이 안타는 1이닝 7득점이라는 점수를 올리게 해준 좋은 활약이었다.

9월 14일 두산전 9회초 5:4 1사 만루에 2타점을 올려 7:4가 되었다. 9회말에 두산이 2점을 올리면서 8:6으로 SK가 승리하였는데, 이성우의 2타점 적시타가 없었다면 승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9월 20일 4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9월 29일 2타수 2안타 멀티히트를 때렸고, 타율도 0.275까지 올랐지만 팀은 패배하였다. 이로서 통산 war이 최초로 +가 되었다.

10월 3일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두산전에 대타로 나와 2타점 동점 적시타를 때렸다. 결국 이 적시타로 인해 SK는 3:2로 승리하고 두산의 우승은 물 건너가게 되었다. 최종 성적은 2할 7푼 9리.

10월 5일 NC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는 3회말 권희동 타석에서의 포일과 6회초 1사 1루에서의 병살타 등 부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포스트시즌에 삽을 들기는 했지만 사실상 트레이드 당시에 머릿수 맞추기용이라고 모두가 생각했고 아무도 기대않던 상황에서 부상으로 무주공산이 된 포수자리를 반시즌 안정적으로 잘 끌고 가줘서 SK팬들은 크게 만족하고 있다. 특히 주전 포수 옵션인 이홍구와 이재원 모두 공격툴이 뛰어난 대신 수비가 불안하다는 점 때문에 더욱 가치를 높이고 있는 중. 실제로 주전 이재원의 백업포수로서 이홍구보다 더 많은 경기와 타석에 들어서며 기회를 잡아낸 시즌이었다. 이성우의 기량으로 한팀의 주전은 어려우니 확실한 백업으로 1군에 오래 남아 경기에 나선다면 존재가치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고무적인 시즌이었다. 한편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허도환이 새롭게 이적하면서 백업 포수 자리를 두고 경쟁자가 1명 늘었다.

5.2. 2018 시즌

그래도 작년의 활약 덕인지 개막 엔트리에 허도환을 밀어내고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확실한 주전은 이재원이고 역시 백업으로는 허도환과 차이를 벌이며 백업포수의 경쟁에서 이겼다. 다만 타격이 형편없기 때문에 언제나 그랬듯이 수비력을 높게 평가 받아 기용되고 있다.

4월 29일 2018시즌 선발로는 두 번째 출전. 넥센과의 경기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심지어 그 중 하나는 2루타. 아쉽게도 팀은 패배했다.

6월 1일 선발출장해 4회말 2대 1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달아나는 1타점 적시타를 기록했다.

6월 30일 LG전에 선발출장하여 4타수 2안타 1득점 멀티히트와 도루저지를 기록하는 등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팀은 제이미 로맥의 끝내기 홈런으로 6:3 승리.

7월 6일 문학 한화전에서 이재원 대타로 나와 2루타를 쳐냈지만 무리한 주루로 3루에서 아웃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사실상 팀이 승리한거나 다름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많은 팬들에게 큰 웃음을 준 해프닝으로 끝났다.

7월 26일 문학 두산전에 선발출장. 켈리 전담으로 고정된 듯 하다. 2회 초 주자 1, 3루 위기상황에 정확한 송구로 1루주자 오재원을 아웃시켰다. 수비만큼은 SK의 주전포수.

8월 15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 1루수로 교체 출장하였다!! 이 전날 허도환이 콜업되며 포수가 3명이었는지라 이런 운용을 한 것 같다.

꾸준히 백업으로 나오다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들어 백업 포수로 출전한 이후에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들어가게 됐고,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거머쥐었다. 다만 한국시리즈 6차전 우승 마무리 포수로 백업 포수가 나올 상황이었는데[11] 나오지 못하고 대신 허도환이 나와 위닝샷을 누리지 못했다. 10월부터 허도환이 미세하게나마 더 자주 나오긴 했으나 중요한 순간에 백업 포수로 이성우가 좀 더 유력했기 때문에 이성우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 있는 대목. 그래도 12회 말, 13회 말을 허도환이 잘 이끌며 우승을 차지했기에 한국시리즈 출전은 없지만 우승 반지를 거머쥐었다.

2018년 12월 17일. 자유계약으로 풀리며 방출되었다. SK 와이번스 측에서는 은퇴 후 프런트 자리를 제의했지만 현역 의지가 강해 방출을 요구했다. 구단은 2019년 1월 15일까지 생각할 여유를 주겠다고 했다. 이후 발표된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면 현실적인 이유가 강하다. SK로 트레이드 될 때 가족들을 광주에 남겨두고 인천으로 갔는데,[12] 전력분석원을 하면서 받는 돈으로는 가족들과 따로 살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현역으로 계속 뛰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광주에서 아마추어 코치라도 하면서 가족과 함께 있고 싶다고 입장을 밝혔다.

6. LG 트윈스 2기 시절

파일:이성우 LG포수.jpg
2019년 1월 14일, LG 트윈스와 연봉 7000만원에 계약을 하면서 16년 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6.1. 2019 시즌

시즌은 2군에서 시작했다. 정상호가 5월 27일 부상으로 말소되었기에, 다음날인 5월 28일 키움전을 앞두고 1군으로 콜업되었다. 이 날 경기 후반 대수비로 출장하였다.

5월 31일 키움과의 경기에서 대수비로 출장, 문광은을 침착하게 리드하여 만루 위기를 막아내는 숨은 수훈선수가 되었다.

유강남이 1~2주간 부상으로 결장하게되어 잠시동안 주전포수가 되었다. 그 기간동안 빅이닝을 허용한 이닝은 딱 한번[13] 있으며, 그 마저도 신인 전준호 포수가 마스크를 쓸 때였다. 다시 말하자면 이성우 자신이 투수들을 리드할 때 LG는 한 번도 대량실점하지 않았다.

6월 4일 복귀후 첫 타점을 밀어내기 볼넷으로 기록하였고 그게 결승타가 되었다. 이와 별개로 볼넷 하나를 더 추가하기도. 다음날에는 첫 안타를 6회에 귀중한 적시타로 기록하였다. 오랜만의 안타여서인지 다리에 쥐가 났다.

6월 21일 KIA전에서 8:8 동점을 유지하던 9회초 유강남을 대신해 올라와 포수 마스크를 썼고 고우석의 2K를 도왔으며, 9회말 무사 1, 2루 찬스 상황에서 바뀐 투수 문경찬(!!)[14]20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앞선 투수의 승계주자이기 때문에 문경찬의 실점은 아니다. 여기엔 문경찬이 엘상바인 점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을 상대로 끝내기 2루타를 때려냈다!
파일:끝내기이성우.gif
그것도 외야 전진 수비를 감행한 KIA의 외야진을 페이크번트 앤드 슬래시 타격으로 뚫어낸 것. 그리고 이날 5회말 개인 통산 100홈런인 3점 홈런을 친 오지환과 진한 포옹으로 승리의 쾌감을 만끽했다.#

8월 1일 키움전에서 유강남의 뒤를 이어 7회부터 대수비 출장을 했고, 8회에 팀에 점수를 보태는 1타점 2루타를 성공시켰다! 팀은 5대 11로 대역전승을 거뒀는데, 이성우의 침착한 리드로 7~9회 모두 삼자범퇴로 막았다.[15]

옐로우카드3에서 차명석 단장이 이성우 영입의 사연을 공개했다. 차 단장이 처음 이성우 영입 의견을 제시했을 때 프런트의 모든 사람들이 이성우 영입에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자 유강남정상호가 동시 부상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면서 베테랑 포수 1명 추가 영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1주일간 심사숙고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여곡절 끝에 영입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유강남-정상호가 동시에 부상으로 이탈하는 사태가 실제로 일어나며 차명석의 미래를 내다본 예측이 정말로 현실이 되었고, 어쩌면 1군 경험이 극히 없는 전준호-김재성 체제로 시즌을 진행할 수도 있었던 상황에 베테랑 이성우의 존재는 LG의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는 데 큰 도움을 줬다.

8월 7일 광주 기아전에서 좌측에 큼지막한 홈런성 타구를 치고 두 손을 들어올리는 설레발을 시전했으나 이 타구는 정말 아쉽게 한 끗 차이로 폴대 옆으로 비켜나가고 말았다. 그래도 그 타석에 볼넷으로 출루했지만 결국 후속타자 이형종의 안타에 홈 쇄도를 하다가 본인의 그 특유의 느린 발때문에 아웃되었다.[16]

8월 13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홈경기에 선발출장 했으나 6회초 수비에서 상대팀 타자이자 주전포수인 박동원의 동업자 정신을 망각한 과격한 스윙으로 인해 배트가 왼쪽 팔에 강타하면서 고통을 호소하고 유강남으로 곧바로 교체되었다.

류제국의 전담 포수로 활약했지만, 8월 23일 돌연 그가 은퇴해버리며 선발로 나올 기회가 많이 줄어버렸다. 일단 류제국 은퇴 이후에도 1군에 머무르며 NO.2 포수로 자리를 지키는 중이다. 류중일 감독이 9월 확대엔트리 때 김재성, 박재욱, 전준호 중 하나를 콜업한다고 하니 # 이때부터의 출전과 활약이 향후 입지에 중요할 듯.

시즌 최종 성적은 54경기 74타석 타/출/장 .156/.239/.203. 타격 성적은 빈말로도 훌륭하다고 볼 수 없지만 백업포수로써 정상호의 구멍을 잘 메꿔주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17]

6.2. 2020 시즌

유강남의 뒤를 받쳐줄 백업 포수의 역할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2차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청백전도 꾸준히 출장중이다.

청백전에서는 나름 타격감을 선보이며 안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임시 해설을 맡은 차명석 단장은 해설하면서 안타 총량의 법칙을 말하며 시즌 때 쳤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18]

개막 엔트리에 들었고, 7일 경기에 대수비로 시즌 첫 출장을 했다.

NC와의 2차전에서 유강남의 대활약 이후 대수비로 출장해 정우영과 고우석을 잘 이끌었고 팀은 10:8로 대역전승 했다.

5월 14일 SK와의 3차전에서 9회 말 무사 2루 상황에서 대타로 나와 희생번트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하면서 끝내기 승리의 발판을 만들었다. 중계진이 번트의 교과서가 있다면 실릴 만한 번트라고 극찬할 정도로 완벽한 번트였다.

19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유강남 대신 포수자리를 맡았다. 선발투수인 임찬규를 온화하게 리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타격면에서도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5월 27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유강남의 대주자로 출장하였으며, 8회초에 타석에서는 데뷔 후 처음으로 만루홈런을 쳤다.

5월 29일 KIA전에서도 유강남이 벤치로 물러난 사이 포수로 나와 타석에서 적시타를 때려내면서 5:1의 스코어를 6:1로 더 달아나게 해주었다.

5월 30일 광주 KIA전에선 낮경기임을 감안, 유강남을 대신해서 선발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세번째 타석에선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끝에 중견수 방면 좋은 타구를 날렸지만 최원준의 호수비에 걸리고 말았고, 9회초 팀이 3:10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기어코 좌측담장을 넘기는 쓰리런 홈런을 만들어냈다. 이 주에만 홈런 2개를 포함 6타수 3안타 2홈런 8타점을 마크했다. 홈런 커리어 하이를 개막 한 달도 안되어 40살에 달성했다.

6월 11일 잠실 SK전 더블헤더 2차전에서 시즌 3호 솔로홈런을 쳤다. 이 홈런이 역전 점수가 되어 한 점을 지켜내며 팀이 승리, 결승타가 되었다. 정작 본인은 데뷔 첫 3루타인줄 알고(...) 끝까지 질주했다는 후문. 이는 방출되어 옆집으로 떠난 32억 먹튀가 LG에서 기록한 한 시즌 최다 홈런(2017년 3개)과 같은 기록이다. 여담으로 이 홈런은 상대 외야수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SK의 외야수인 최지훈이 점프 캐치로 잡으려던 공이 글러브에 맞고 넘어간 것이다.

요새 타격감이 워낙에 좋다보니 6월 12일 롯데와의 경기에서는 연장 1사 3루 끝내기 찬스에서 상대 배터리가 거의 거르다시피 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그렇게 볼넷으로 출루하고 팀은 다음타자 정근우가 웬일로 노익장을 발휘해 끝내기 안타를 쳐내며 승리.

7월 2일 kt전에서 연장 10회 초 살신성인의 블로킹으로 강백호를 태그아웃시키며 실점을 막았으나 태그 도중 충돌하며 쓰러졌고 유강남과 교체되었다. 쓰러져 있으면서도 비디오 판독을 외치며 많은 LG 팬들을 눈물 짓게 했으나, 팀은 송은범의 방화로 3대 4로 패배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으나 LG에서 단 한명의 코칭스태프도 나오지 않으면서 베테랑에 대한 대우라던가 부상 문제에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특유의 빨간색 프로텍터가 특징인데, 유강남의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프로텍터와 대비되므로 포수가 누구인지 구분하기 쉽다.

30일 SK전에 오랜만에 선발 출장해 결승타 포함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수비에서도 임찬규에게 커브를 잘 활용하게 하며 실점을 1점으로 최소화하는 등 제대로 친정에 복수했다.

8월 28일 유강남의 대타로[19] 나와 번트 하나와 투수 앞 땅볼로 1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9월 이후에는 실망스러운 플레이가 자주 노출되고 있다. 프레이밍 문제도 있고 번트 수비시 야수선택을 범하는등 노쇠화가 급격하다. 작년 유강남보다 높았던 도루저지율도 더 낮고 9이닝당 실점률도 더 높다. 타율도 큰 수의 법칙에 따라 쭉쭉 내려갔다.

11월 5일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대수비로 들어갔으나 9회초 실책을 저지르며 아웃시킬 수 있었던 주자 이유찬을 홈으로 불러들이고 말았다.

파일:이성우수비.gif
위 상황에서 이미 공은 포수 이성우에게 있었다. 혼자 왜 상황이 안 끝나는지 얼을 타다가 주자가 홈으로 쇄도하는데도 태그 자체를 하지 못해 세이프 판정이 나왔다. 추격에 불이 붙은 상황에서 포수로서 기본적인 플레이도 하지 못해 추가점을 내주는 바람에 2점차로 기세가 다시 두산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준플레이오프 스윕패 탈락에 일조하게 되었다. 물론 아무도 이유찬이 홈으로 들어가는 동안 아무도 콜을 안 준 것부터가 문제였던 것도 맞다.

41세라는 많은 나이로 은퇴설이 제기되었고 후반기와 가을야구에서의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유니폼을 벗기를 바라는 여론도 꽤 있었으나 류지현 감독의 언급과 차명석 단장의 유튜브 라이브로 내년까지는 함께한다고 한다. 2019년과 마찬가지로 백업 포수들이 아직 1군 경험이 적은 만큼 유강남 부상시의 보험이 필요하다는 프런트의 판단이다.

6.3. 2021 시즌

2021년 1월 5일 김주찬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2021 시즌 등록선수 중 유일한 20세기 프로 입단 선수가 되었다.[20]

이번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시즌 목표는 다른 건 없고 후배들이 잘 성장해주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사실 지난 해까진 3루타가 목표였는데 나이가 들고 주력이 감퇴하면서 포기했다고 한다. # 대신 지난 해에 홈런 관련 기록을 찍어 봤으니 그걸로 만족하는 듯.

유강남의 부진과 백업 포수 김재성의 경험치 부족으로 이성우가 올라올 만도 한데 확실히 나이가 많아서 출장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물론 1군에 등록하지 않고 사실상 코치 역할로 선수들과 동행하며 조언해주는 방법도 있다.

8월 11일 김민성을 대신해 1군에 콜업되었다. 1군에 유강남과 김재성 두명의 포수가 있지만 8월 10일 유강남이 사구를 맞아 며칠간 수비를 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 공백을 메우러 올라온 것으로 보인다.

이후 2군에 내려갔다가 25일 김재성을 대신해 콜업외었고 9회말 무사 1루에서 이천웅의 대타로 나와 초구 번트를 대고 들어갔다.

8월 29일 잠실 키움전에 9번 포수로 선발 출전해 손주영의 투구를 공격적으로 잘 리드했을 뿐만 아니라 멀티히트까지 기록하며 굉장히 좋은 활약을 보였다.

후반기 들어서는 연장전 폐지로 9회 대수비의 타석이 올 일이 없다는 점을 이용해 고우석의 전담 포수로 출장 중이다. 타격은 예년과 큰 차이는 없지만 타석 투구수가 늘어났고 그로 인해 볼넷도 조금씩 얻어서 출루하고 있다. 또한 경기 후반 대타나 대수비로 나와 번트를 대고 물러나는데 LG 야수들 중 가장 안정적인 번트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10월 25일 롯데전에서 9회말 무사 1루서 7번 이영빈의 대타로 나와 희생 번트로 신민재를 2루까지 보내주며 물러났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예고했기에 이 경기가 이성우의 현역 마지막 정규시즌 잠실 홈 경기가 되었다.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이 손가락을 4개 편 가운데 기념 사진을 찍었다.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 포함됐다. 1차전 대수비로 출장했다. 교체되기 직전까지 삽질하던 유강남과는 달리 도루저지에 성공하고 9회초 2루로 달리는 허경민을 침착하게 저지해 아웃시켜 최소실점으로 막는 등 수비에서만큼은 유강남보다 조금이나마 나은 모습으로 경기를 마쳤다.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팀이 3:10으로 지고 있던 9회말 2사에 대타로 출전했다. 사실상 패배와 탈락이 확정된 상황에서 이성우가 홈 팬들 앞에서 마지막 타석을 가질 수 있도록 류지현 감독이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성우는 타석에 들어서며 1루 관중석을 향해 인사했고, 타석에서는 김강률의 공을 잘 밀어쳤지만 2루수 직선타가 되며 현역 마지막 타석을 마무리했다.

준플레이오프 경기가 완전히 종료된 직후 김용의와 함께 은퇴를 선언했고, 자필 편지로 팬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이후 이성우의 은퇴 선언에 이어 한국시리즈가 폐막한 후에는 유한준까지 은퇴를 선언하면서 프로야구에서 1981년생 선수는 전멸하게 되었다.[21]

이후 김재성이 박해민의 보상선수로 삼성에 이적하면서 백업 포수 뎁스가 극도로 얇아진지라 벌써부터 LG 팬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결국 LG는 허도환을 FA로 영입하면서 백업 포수 공백을 메웠다.


[1] 동대문상고의 감독직은 정병규(1995~97), 한장철(1998), 송차복(1999) 순으로 맡았다.[2] 이성우의 말에 의하면 총동문회장의 아들은 이성우와 입학 동기(외야수)로 입학하자마자 기존에 잘 하고 있던 3학년 선배까지 제치고 주전 포수 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다. 정작 초등학교 때부터 포수만 봐왔던 이성우에게는 강압적으로 2루수를 보게 시켰다고...[3] 이것 때문에 당시 고교야구계에 소문이 워낙 안 좋게 퍼져 성남서고 전학 이후에도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이때부터 야구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4] 입대 동기로 박재상, 조동화, 오윤, 박종윤이 있다.[5] 2003~2006년 SK 와이번스에서 감독을 하다가 2007년 시즌 중 KIA로 합류, 2008 시즌부터 KIA 감독으로 팀을 맞게 된것이다. 즉 이성우는 SK시절부터 조범현 감독이 가까이서 지켜보던 선수였다.[6] 전병두는 당시부터 혹사와 롤러코스터 제구 문제는 좀 있어도 군 문제가 해결된 2차 1라운드 출신 20대 초중반의 좌완 파이어볼러였으며, 김연훈 역시 2차 2라운드로 나름 상위 라운더인 내야 유틸리티였는데 반면에 이성우는 1군에 발을 들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포수였다. 조범현이 KIA 감독 시절 까이던 이유 중 하나가 이 트레이드였다.[7] 김상훈은 은퇴를 선언했고, 같이 1군에 있었던 차일목 마저 발목 상태가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백용환은 2군으로 내린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8] 해설진들도 특히 지적을 많이 했던 부분이다. 주로 투 스트라이크 이후의 높은 공 유도를 자주 하는 편인데 항상 실패로 끌날 때가 많기 때문이다.[9] 인지도 부족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르는데 이 선수, 김태군보다 느리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느리다.[10] 이성우는 SK 1기 시절 1군에 딱 1번, 그것도 단 3일만 올라왔지만, 하필 그 3일 동안 모두 우천취소가 되는 바람에 1군 데뷔 없이 2군으로 내려갔고 이후 KIA로 트레이드되어 약 10년을 있었다.[11] 이재원이 연장에서 안타를 치고 대주자로 교체 되었기 때문.[12] 문학구장 근처에 원룸을 얻어서 자취 생활을 했다고 한다.[13] 6월 6일 kt전 7회초 4실점[14] 문경찬은 전날인 20일 SK전까지[15] 특히 진해수는 8회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는 엄창난 공을 던졌다.[16] 1군 엔트리에서 가장 느린 선수가 이 선수로 역시나 발이 느린 김민성, 유강남과 함께 LG에서 몇 없는 똥차 스킬이 나오고 있다. 사실 빠른 선수들이 많은 LG라 더 부각되는 것이다.[17] 그 정상호는 19시즌 24타수 2안타 타율 .083으로 최악이었다.[18] 대충 평균회귀를 의미한 듯 하며 실제로 그러하였다.[19] 번트를 워낙 잘 대니 번트를 대기 위해 나온 것이다[20] 현역 최고령인 송승준의 경우 1999년 프로 지명을 받았으나 해외진출후 2007년에 프로 입단을 하였으며, 타자 최고령 선수인 유한준의 경우 2000년 프로 지명을 받았으나 바로 프로 입단을 하지 않고 대학 진학 후인 2004년에 프로 입단을 하였다. 단, 이성우의 경우 1군 데뷔를 2008년에 했어서 실질적으로 20세기에 뛰었던 선수는 현재 모두 은퇴한 상황이다.[21] 2023년 현재 프로스포츠 통틀어서 1981년생 선수는 정대영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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