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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01:01

이승훈(스피드 스케이팅)/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이승훈(스피드 스케이팅)
1. 2009-10 시즌2. 2010-11 시즌3. 2011-12 시즌4. 2012-13 시즌5. 2013-14 시즌
5.1. 월드컵 시리즈5.2. 2014 소치 동계올림픽
6. 2014-15 시즌7. 2015-16 시즌8. 2016-17 시즌9. 2017-18 시즌
9.1. 월드컵 시리즈9.2. 2018 평창 동계올림픽
10. 2018-19 시즌11. 2020-21 시즌12. 2021-22 시즌
12.1. 국가대표 선발전12.2. 월드컵 시리즈12.3.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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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대표팀 탈락 후 본업이었던 롱 트랙으로 돌아왔다. 쇼트트랙 선수였을 때에도 강점을 보인 장거리에 도전하여 쇼트트랙 대표팀에 탈락한 지 불과 6개월 만인 2009년 10월 롱 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뒤이어 11월 월드컵 2차대회에서 5,000m 6분 28초 49로 한국신기록을 경신했으며 이후 두 번 더 대한민국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5,000m 개인기록이자 한국 신기록은 6분 14초 67이었다.[1] 무서운 기세로 5,000m 기록을 줄여나가서 올림픽이 기대되는 유망주라고 간혹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1. 2009-10 시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5,000m에서 6분 16초 95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아무리 유망주라고 기사가 나오긴 했어도, 평소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에서 메달이 나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남자 500m의 이강석, 이규혁이나 여자 500m의 이상화 정도가 메달 후보라고 생각했지, 당시 코치나 본인조차도 5,000m 목표는 5위 안에 드는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 때 그는 보프 더용과 레이스를 시작할 때 무서운 페이스를 보여주면서 주도적으로 레이스를 이끌었고, 결국 6분 16초 95의 기록으로 아시아 남자부 스피드 스케이팅 최초로 장거리 종목 은메달을 수상하는데 성공했다.[2] 이 은메달은 밴쿠버에서 대한민국이 획득한 첫번째 메달이 되었다. 여담으로, 당연히 기존의 강자들이 5,000m 시상대를 휩쓸 것이라고 생각했던 외신들이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의 이승훈이 은메달의 주인공이 되자, 한국기자들에게 "한국에서는 저 선수의 메달을 예상하고 있었나요?"라고 질문할 정도로 놀라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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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m는 더 드라마틱했다. 2009년 12월 국내대회인 빙상선수권대회에서 14분 01초 64를 기록한 이후, 이듬해 1월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13분 21초 04로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우더니, 또 그 다음 달 펼쳐진 올림픽에서는 최강자인 네덜란드스벤 크라머가 실격당하는 운이 겹치면서[3] 12분 58초 55로 올림픽 신기록까지 바꿔버리면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게다가 같이 경기를 펼친 네덜란드의 반 더 키에프 선수를 마지막 코너에서 한 바퀴 차를 내며 제치는 퍼포먼스[4]를 선보이며 기적의 콩라인 탈출과 동시에 10,000m 공식대회 단 3번째 출전에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상단 사진에서 3위를 기록한 보프 더용[5]과 함께 시상식에서 저런 포즈를 취했다.

비록 코스 착각 때문에 메달을 뺏기긴 했지만 스벤 크라머도 5,000m 경기를 본 뒤에 '5,000m 하던 대로만 한다면 은메달을 땄었을 것'이라고 예측했을 정도다. 다음 달 19일에 열리는 2010 월드올어라운드챔피언십에 이승훈 선수가 나간다면 올림픽에서 대결한 지 3주 뒤에 리벤지 매치가 확정이 되는 것인데, 체력 문제를 이유로 올해는 올림픽을 끝으로 시즌 종료를 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플라워 세리머니에서 은메달리스트 스콥레프와 동메달리스트 보프 더용은 이승훈을 들어올리면서 새로운 강자의 탄생을 축하했다.(위 사진) 메달리스트 모두가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훈훈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같은 나라 선수들도 아니고 서로 다른 나라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올림픽 화합의 정신에 들어맞는 명장면이었다.[6]

1988년생으로 아직 나이가 어리며(빠른 1989년생인 모태범, 이상화와 한체대 동기이자 친구), 무서운 성장속도[7]를 보여주고 있어 앞으로의 미래도 매우 밝다.

5,000m 은메달 획득 이후에도 쇼트트랙 국가대표에 대한 열망을 내비치는 등 대단한 도전정신의 소유자다. 실제로 라트비아에서는 스피드 장거리와 쇼트트랙을 병행해서 하는 선수도 있는 만큼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위 쇼트트랙 선수 시절 서술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쇼트트랙 선수로서는 탑급 선수는 절대 아니었고, 곽윤기, 성시백, 이정수과 비교했을 때 실력적에서 이미 밀린다.[8] 그렇다 하더라도 쇼트트랙 국가대표 탈락 후에도 스케이팅을 포기하지 않은 의지와 새로운 종목에 도전해서 올림픽 메달 2개라는 최고의 성과를 거둔 성공 신화는 앞으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을 듯하다.

빙상 계열 선수로는 최초로 무릎팍도사에 출연이 확정되어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스피드 스케이팅의 전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소개되었다.

2. 2010-11 시즌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 5,000m와 10,000m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우며, 홈의 이점을 앞세운 드미트리 바벤코를 아시아 스피드 스케이팅 무대의 콩라인으로 등극시켰다. 물론 매스스타트에서도 막판 질주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아 장거리 무대에서는 이제 독재자가 될 듯하다. -현재도 그를 뛰어넘는 사람이 없다.[9]-- 그 뒤 모태범과 함께 새로 창단한 대한항공 빙상팀에 입단하게 되었다.

2011 종목별 세계선수권에서 5,000m 은메달에 입상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이는 스피드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장거리 종목 아시아인 최고 성적이다.

3. 2011-12 시즌

그러나 훈련 방식을 바꾼 것이 독이 되어 훈련량이 부족해지고, 무릎 부상이 겹치면서 2012년 들어서부터는 부진을 거듭했다. 이 시즌은 이승훈에게 최악의 시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쇼트트랙 훈련 비중을 줄였는데, 그게 오히려 부작용이었다. 그리고 본인이 밝힌 바에 의하면, 스케이트 구두 문제도 있었다고 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에게는 구두와 날도 아주 중요하다.

4. 2012-13 시즌

다행히 2013년 종목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0,000m 4위를 차지하면서 회복하는 추세이다. 여기에 팀 추발 같은 단체 종목에서는 아직도 한국의 에이스급 선수다.

5. 2013-14 시즌

5.1. 월드컵 시리즈

5,000m와 10,000m 종목에서 스벤 크라머와 요리트 베르흐스마와 같은 네덜란드 선수들이 상위권을 독점하지만, 그 속에서 메달을 항상 따내면서 기량을 많이 회복했다. 팀 추발 부문에서는 단연 한국팀의 에이스의 역할을 맡았다. 김철민, 주형준과 팀을 구성하여 출전하는 팀 추발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전까지 열린 월드컵 3개 대회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전 대회 메달을 따면서 네덜란드에 이은 포인트 2위를 기록했다.

5.2. 2014 소치 동계올림픽

2014 소치 동계올림픽 5,000m에서는 6분 25초 61이라는 부진한 기록으로 12위에 머무르면서 메달 획득에 실패. 다음날 이승훈은 인터뷰에서 ''현지 적응에 문제가 있었다, 내 불찰이다."라며 아쉬운 심경을 밝혔다. 경기 대기를 하면서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얼굴이었고,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 화면에 비쳐졌는데 심적 부담감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자랑스럽기만 한데 뭐가 죄송하냐는 반응이다. 기자들도 이승훈의 노력을 인정하여 가십성 기사는 삼가고 있다.

그리고 절치부심을 한 덕분에 2월 18일에 벌어진 10,000m 경기에서는 마지막 조인 7조로 스벤 크라머와 함께 출전해서 4위를 기록했다. 6조로 출진한 네덜란드의 베르흐스마가 세계기록에 가까운 올림픽기록을 세우며 들어오자 스벤 크라머가 초반에 페이스를 빨리 가져갔는데 이 탓에 페이스가 살짝 흔들린 것으로 보인다. 금은동은 또다시 네덜란드칰덜란드가 싹쓸이했다. 그러자 웹상에서는 모태범에 이어서 이승훈에게까지 지구 최강 드립을 열심히 시전하고 있는 중. 게다가 10,000m 출전 선수 중 유일한 동양계 선수이기도 했다. 5,000m 컨디션 난조는 아쉽지만,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 두 종목 은메달리스트인 드미트리 바벤코의 성적[10]과 비교해보아도 이승훈의 성적은 대단하다. 그리고 바벤코는 동양인이 아닌 백인이다. 누군가에 의하면 스벤 크라머를 같이 저승으로 보냈다고 '저승훈'이라 카더라.

그리고 마침내, 이후에 벌어진 팀 추월 경기에서 병역브로커 다운 모습을 보이며 김철민, 주형준과 함께 출전하여 8강에서 러시아, 그리고 4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캐나다[11]를 잇따라 격파하고 결승에 진출, 결승에서 네덜란드에 아쉽게 패하며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이 종목은 제일 앞서 타는 사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체력이 가장 많이 소모되며 앞에서 잘 끌어줘야 기록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은 주로 이승훈이 앞에서 이끌며 기록을 단축시켰다.[12] 컨디션 난조를 보였던 5.000m와 4위로 아슬아슬하게 동메달을 놓친 10,000m의 아쉬움을 만회할 만한 성과이며 후배들의 군 면제를 이끌어낸 것은 덤이다. 이리하여 팀 추월에서 진짜로 러시아를 저승으로 보내버리며 저승훈 확정 합법적 병역 브로커 타이틀까지도 획득

6. 2014-15 시즌

2014년 11월 14일 일본 오비히로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5,000m에서 9위를 기록했다. 동계올림픽 때도 그렇고 5,000m에서 계속 아쉬운 성적을 내고 있다. 그래도 11월 15일 팀추월에서 다시 한 번 은메달을 획득하며, 새로운 전략 종목으로 입지를 다졌다. 게다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이 되는 매스 스타트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전략 종목을 넓히고 있다.

11월 23일 2차 월드컵에서 10,000m 8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매스 스타트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네덜란드를 피해 매스 스타트에 정착했다. 3차 월드컵에서 팀추월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매스 스타트에서 금메달을 다시 한 번 따냈다. 2014년 마지막 월드컵인 네덜란드 헤렌벤 4차 월드컵에서 5,000m 13위를 차지했다. 소치 동계 올림픽 이후로 점점 장거리 부문 메달권에서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5,000m 10위로 많이 밀려났다. 그래도 아시아 1위 자리는 공고히 유지 중이다. 딱히 이승훈을 이을 선수가 대한민국에서 보이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려되었다. 대신 매스 스타트에서 은메달, 팀 추월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7. 2015-16 시즌

5차 월드컵에서 매스 스타트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2016년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종목별 세계선수권 대회 매스 스타트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8. 2016-17 시즌

1차 월드컵 매스 스타트 종목에서 10위권 밖으로 처지다가 막판 스퍼트로 1위로 들어오며 다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7년 2월 10일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했다. 1년 후 올림픽 모의고사로 생각되며 전략 종목인 매스스타트 활약이 기대가 되었는데, 팀추월 경기 도중 넘어져 정강이를 베이며 8바늘 꿰맸고, 이후 경기들을 모두 기권했다. 기대를 모은 만큼 아쉬운 상황이 되었다. 다행히 큰 부상까지는 아니었지만, 이후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도 경기력에 지장이 갈 것으로 보였다.

2017년 2월 20일, 부상을 이겨내고 아시안 게임 5,000m 금메달을 획득했다. 6분 24초 32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1년 자신이 세웠던 아시안게임에서 세웠던 기록을 앞당긴 아시안 게임 신기록이다. 또한 10,000m에서도 2011년 동계 아시안게임에 이어 또 한 번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10,000m 경기와 같은 날 열린 팀 추월에서 아시안게임 신기록을 달성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예상대로 경기 중후반에 선두로 팀을 이끌며 에이스의 면모를 과시했다. 결승선 직전 카자흐스탄 선수들을 따라잡고 바깥으로 홀로 치고 나가는 모습은 압권이다.[13] 2월 23일 매스 스타트 경기마저 막판 스퍼트를 통해 1위로 골인, 금메달을 차지함으로써 아시안게임 금메달 7개로 한국 선수 역대 최다 금메달기록을 수립했다.[14] 유망주 김민석의 군면제까지 이끌어내며 합법적 병역 브로커의 입지를 드높였다.[15]

아시안 게임이 끝나고 3월 12일 노르웨이에서 열린 월드컵 시리즈에서 막판 스퍼트로 매스스타트 금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이 시즌 매스스타트 월드컵 랭킹 1위까지 차지했다.

9. 2017-18 시즌

9.1. 월드컵 시리즈

1차 월드컵 매스 스타트 종목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향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9.2. 2018 평창 동계올림픽

5,000m 종목에서 6분 14초 15라는 자신의 올림픽 최고기록을 작성하여 5위를 기록했다. 10,000m 종목에서 12분 55초 54[16]로 기존 1등보다 4초가량 단축시켰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10바퀴 전만 해도 선두와 10초 차이로 3~4위에 위치했었는데. 남은 바퀴 수가 줄어들수록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17] 이 경기로 이승훈은 개인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경기 직후 바로 다음 조의 요리트 베르스마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면서 1위를 빼앗겼고, 직후에 캐나다 선수인 테드 얀 블루먼이 조금 전 베르스마가 세웠던 올림픽 신기록을 다시 2초 가량 갱신해 버렸다.[18] 그리고 테드 얀 블루먼의 퍼포먼스에 묻혀서 그렇지, 테드 얀 블루먼과 함께 레이스를 벌였던 니콜라 두몰레로 역시 좋은 레이스를 펼쳐 이승훈보다 1초 빨리 들어왔다. 결국 두 게임 만에 순식간에 4위까지 떨어지면서 아쉽게도 메달을 따는 데에는 실패했다. 정작 벤쿠버 동계올림픽 때부터 라이벌 기믹이 붙었던 스벤 크라머는 자신의 앞 순번에서 올림픽 신기록이 2번이나 연속해서 갈아치워진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는지 5,000m를 넘은 후부터는 한 바퀴 랩타임이 31~32초대까지 떨어지는 등 그답지 않은 레이스를 펼쳤고, 결국 이승훈보다 못한 13분대의 기록과 6위의 성적을 받았다.

팀 추월 경기에서는 김민석, 정재원을 잘 끌어가면서 팀의 결승을 이끌었다. 특히나 여자 팀 추월 경기는 남자 팀과 달리 불협화음을 제대로 일으키며 최악의 성적과 논란을 일으킨 만큼, 남자 팀의 선전이 더욱 돋보였다. 다시 결승에 올라 금메달을 노렸으나, 상대는 그 네덜란드를 제치고 올라온 노르웨이었고 결승에서 패배해 2연속 은메달 획득에 성공했다.[19]

매스 스타트에서 올림픽 매스스타트 종목 남자부의 초대 우승자로 등극했다. 정재원이 레이스 중반부 10바퀴가 남은 시점부터 4바퀴가 남을 때까지 바람막이 역할을 자처하며 이승훈의 페이스메이킹에 큰 도움을 줬다. 그는 금메달이 확정된 후 정재원의 팔을 들어올려주며 치켜 올려주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다만, 이 전략 때문에 특정선수 몰아주기 논란이 약간 있었는데, 이에 대해 이승훈이 라디오스타에서 유럽 쪽은 유럽 연합으로 전략을 펼친다고 하면서, 개인전이지만 팀 전략이 매우 중요한 경기라고 말하면서 논란을 해명했다. 실제로 당시 경기를 보면 네덜란드 역시 스벤 크라머가 혼자 치고 나가는 낚시질을 시전한 뒤 같은 나라의 쾬 베르헤이가 치고 나올 때 경기를 빠져주는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며 베르헤이의 동메달을 도와준 것을 볼 수 있다. '한국만 위계질서와 짬으로 어린 선수의 희생을 강요했다' 는 일각의 비판은 옳지 않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퇴하겠다는 인터뷰를 했었지만, 훈련을 하면서 점점 회복했고 평창에서 10,000m 경기를 치른 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노리겠다고 밝혔다. 다만,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면 한국나이로는 35세, 만 나이로는 33세다. 운동선수 치고는 상당히 나이가 있다 보니 향후 정말로 출전할지는 미지수인 부분이였으나, 진짜로 출전해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10. 2018-19 시즌

네덜란드 스피드 스케이팅 클럽인 AB 바크베르크(Vakwerk)에서 2018년 10월부터 2019년 3월까지 6개월 동안 스케이트 마라톤을 뛴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이번에 열릴 2018-19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 불참했고,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2019년 7월 9일, 후배 폭행사건으로 인해 1년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나이를 생각하면 사실상 은퇴 처분이다. 하지만 영구 자격정지나 연금 박탈이 아닌 단기 자격정지이므로 향후 지도자로 활동하는 것에 제약을 받지 않아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어났다.

11. 2020-21 시즌

징계 기간이 종료되자 유튜브를 통해 사과하고 복귀를 선언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2년 9개월 만에 국내대회인 회장배 전국남녀 5000m에 참여해 6분 53초 28로 4위에 올랐다. 그 동안 국내에선 장거리 강자였지만, 징계 여파와 나이를 무시할 수 없는지 순위권에서 밀려났다.

4월에 열린 종합선수권 대회 5000m에선 쟁쟁한 국내 선수들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나이를 먹었음에도 1위를 해서 국내에선 클라스는 여전하단 점을 보여줬지만, 여론은 좋지 않다.

12. 2021-22 시즌

12.1. 국가대표 선발전

5000m에서 정재원에 이어 2위로 통과해 국가대표 팀에 승선했다. 본인은 예전과 달리 올림픽에 출전하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말을 했으나 여론은 좋지 않다. 이번 시즌은 5000m와 매스스타트를 주종목으로 삼고 하락세였던 팀추월에도 전념했다.

12.2. 월드컵 시리즈

1차 월드컵에선 5000m 디비전 B에서 13위를 기록했는데, 출전권까지 아슬아슬한지라 상황이 좋지는 않다. 매스스타트에서는 소극적 레이스로 인해 실격 처리가 되었는데, 먼저 앞서나간 일본 선수가 한 바퀴를 따라잡았음에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려는 의도가 보여서 실격되었다. 반면 정재원은 실격 처리가 되지 않았다. 팀 추월은 디비전 B라서 그런지 몰라도 본인 대신 엄천호가 출전했고, 대한민국은 3분 55초대로 4위를 기록했다. 나중에 이승훈 본인이 팀추월에 출전한 경기까지 봐야겠지만, 이대로라면 팀 추월 또한 올림픽 출전권을 흭득하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2차 월드컵 10000m 디비전 B에서는 24위를 기록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한국 남자 장거리 선수 중 가장 좋은 기록이다. 3차 월드컵에선 5000m 디비전 B에서 21위를 기록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지만, 준결승에서 1위로 들어오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4차 월드컵에서는 5000m 디비전 B 14위를 기록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지만, 그간 쌓아둔 포인트가 많아 월드컵 랭킹 5위로 마쳤다. 팀 추월은 디비전 B에서 6위를 기록했으나 아직 올림픽 출전권은 확정되지 않았다.[20] 월드컵에서의 성적만 놓고 평가한다면 나이 탓에 장거리는 하락세가 뚜렷했으나 여전히 국내에서는 최강자임을 입증했다.

12.3.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매스 스타트와 팀추월에 출전했다. 팀추월은 일본의 실책이 아니었다면 출전권을 놓칠 가능성이 컸고, 외국 선수들의 기량이 4년 전보다 올라온 상태인 데다가 본인의 기량은 나이로 인해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상태라 메달 가능성은 낮았다. 결국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6위를 기록하며 준결승에는 진출하지 못했고, 5-6위 결정전에는 참가하지 않았다.[21]

매스스타트 준결승에선 일본 선수의 전력 질주에 동요하지 않고 노련한 경기운영 능력을 보여주며 2위로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는 한 바퀴를 남겨두고 선두로 치고 올라왔으나 마지막 직선 주로에서 선두 및 2위를 내주고[22] 4위와는 2/1,000초 차이를 두고 결승선을 3위로 통과하여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에 성공하며 여전히 건재한 실력을 선보였다. 이로 인해 이승훈은 대한민국 최초로 동계올림픽 4회 연속이자, 최다 메달리스트라는 업적을 세웠다.[23][24]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후배 선수들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같이 스케이트를 타는 게 나을 것 같다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까지 도전하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1] 2013년 11월 11일(현지시간으로는 11월 10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남자 5,000m에서 6분 07초 04로 한국 기록을 경신하였다.[2] 이전까지 아시아 남자부 최고 성적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10,000m에서 일본의 시라하타 케이지가 기록한 4위였다. 아시아 여자부 최고 성적은 북한의 한필화가 1964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 3000m에서 따낸 은메달이다.[3] 크라머가 인코스를 2번 탄 후의 기록이 이승훈보다 4초 정도 빨랐다. 하지만 인코스를 2번 타기 전에도 이승훈의 랩 타임보다 꾸준히 1~2초 정도 앞서던 상황인지라 실격되지 않았다면 또 은메달을 받았을 것이다.[4] 그 땐 네덜란드 사람들도 환호했다. 이후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이 일에 대해 언급하기를 자신이 쇼트트랙 선수를 했었기 때문에 앞에 사람이 보이면 추월하려는 본능이 있어서 추월을 해버렸다고 말했다.[5] 사진에서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다.[6] 이승훈이 말하길 2, 3위가 1위를 저렇게 들어올려주는 것은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례가 있다고 했다. 더군다나 크라머의 실격으로 메달 등급이 하나씩 올라간 격이니 분명히 셋 다 기분이 좋을 상황이었다.[7] 5,000m 6분 29초 99(2009/11/9) - 6분 14초 67(2009/12/13), 10000m 14분 01초 64(2009/12/24) - 12분 58초 55(2010/2/23). 장거리임을 고려해도 엄청난 기록단축 페이스이다.[8] 지금은 병행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며 5,000m, 10,000m가 워낙 체력 소모가 심한 종목이다.[9] 그러나 2019년부터 일본이 장거리에서도 수준급 기록을 내는 선수가 등장했고, 결정적으로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 매스스타트 은메달리스트인 쓰치야 료스케가 2020년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12분 55초대 기록을 타는 저력을 보여줬다.[10] 5천m 15위, 1만m 12위[11] 이전 대회 우승자를 말한다. 캐나다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팀 추월 종목에서 우승했기에 이리 불리는 것이다.[12] 이 메달은 대한민국이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확보한 메달 중 유일하게 남자가 딴 메달이다.[13] 대한민국 선수들이 뛰기 이전 일본 대표팀이 3분 45초 93을 기록했다. 이는 이전에 자신들이 세웠던 아시안게임 신기록을 3초 이상 당긴 기록으로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를 바로 대한민국 남자 대표팀이 3분 44초 68로 더 당기면서 일본은 은메달을 획득했다[14] 이전까지는 빅토르 안이 귀화하기 전 땄던 5개다.[15] 그 유망주 김민석이 다음날 1,500m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우며 본인 스스로 금메달을 땄다![16] 현재까지 아시아 선수가 세운 가장 빠른 10000m 기록이다. 아시아신기록이라 봐도 좋다.[17] 레이스 완주 후 인터뷰에 따르면 그간 자신의 10,000m 경기들이 6,000m 이후로 랩타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번 올림픽에서는 '6,000m부터 시작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페이스 조절을 했다고 한다.[18] 요리트 베르스마의 경우 이승훈의 기록이 12분 55초 54였는데 그보다 13~14초 정도 기록을 앞당겼고,(12분 41초 xx) 그 뒤의 테드 얀 블루먼은 그보다도 2초 가량 기록을 앞당겨서 12분 30초대로 진입했다. 다만 베르스마나 블루먼은 10,000m 전문 선수들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하며 애초에 베르스마는 그 스벤 크라머보다도 10,000m에서는 실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선수이다.[19] 양궁장용호, 박경모, 임동현 이어 2연속 올림픽 단체전 메달을 획득한 네번째 선수가 되었다. 참고로 장용호는 하계올림픽에서 최초로 2연속 단체전 메달을 획득한 남자 선수이지만, 이승훈은 동계올림픽에서 최초로 2연속 단체전 메달을 획득한 남자 선수가 맞다.[20] 상위 6개국이 월드컵 순위로 먼저 배분되고, 나머지 2자리는 먼저 배분된 국가들을 제외한 좋은 기록을 탄 국가들에 배분되는데 대한민국도 출전권을 확보했다.[21] 후배 선수의 올림픽 경험을 위해서 불참한 것으로 추정된다.[22] 이때 정재원에게 인코스를 내주고 본인은 아웃코스로 빠지며 다른 선수를 견제하면서 정재원에게 인코스를 내주었는데, 이는 정재원이 은메달을 따는데 도움을 주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때와 비슷하게 아웃 코스로 빠지며 1위 경쟁이 유력한 바트 스빙스의 움직임을 견제했지만, 4년 전과는 달리 스빙스가 견제를 이겨내며 결국 금메달을 가져갔다.[23] 하계올림픽을 포함 시 김수녕진종오에 이어 세번째 최다 메달리스트가 되었다.[24] 출전한 모든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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