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병역 의무가 없거나 병역 의무 및 병역 특례(예술체육요원)를 먼저 마친 후, 그것을 아직 마치지 않은 다른 동료 선수나 휘하 선수들이 예술체육요원 특례를 받을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거나 지휘해준 선수 및 감독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일반적으로 축구, 야구 등 팀 단위 경기에서 볼 수 있는 일이며, 단체전이 있는 경기에서도 해당된다. 이 '합법적 병역 브로커'의 도움 없이 자기 힘으로 병역혜택을 받은 경우는 브로커라는 말보다는 면제로이드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반대로 후술할 커제처럼 병역 특례가 걸린 상대방의 경기에 져줘서 그 상대방이 특례를 받은 경우에도 비꼬듯이 브로커라 부른다.
2. 명단
여기에 기술된 나이는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시점의 나이를 가리킨다.2.1. 야구
2.1.1. 박찬호
당시 LA 다저스의 잘나가는 선발투수였던 박찬호는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본인도 구원하고, 동료들도 구원했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 이 대회부터 프로선수 참가가 허용이 되었고,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아시안 게임 개최가 야구 비시즌인 12월에 하는 덕택에 박찬호나 서재응[1] 등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들의 참가가 가능했었다. 이때 박찬호는 예선전 대만 5이닝 1실점 승리, 두 번째 대만 예선에서 1.2이닝 무실점, 마지막 일본과의 결승전은 7이닝 1실점으로 깔끔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알루미늄 배트 타자들을 상대로 이런 성적을 기록한 것이다.이후 2001 시즌이 끝나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 FA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퇴물이 되었다고 생각할 무렵, 그는 브로커계의 대부가 되었다. 오랜만에 2006년 WBC에 태극마크를 달고 참가, '방어율 0'에 3세이브를 기록하며 WBC 4강 신화의 주역이 되었다. 다들 박찬호의 체인지업 위력이 떨어져서 고전할 거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그 체인지업에 상대가 박살났다. 심지어 일본과의 예선 2라운드에서는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5이닝을 무실점으로 잘 막아냈다. 4강 신화로 인해 많은 후배들[2]이 2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원래 WBC는 병역 혜택 대상이 되는 대회가 아니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로 축구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받자, 야구계에서도 형평성 논란이 발생했고, 정부에서는 병역 혜택을 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관련기사. 다만 병무청에서는 타 종목으로 무분별하게 혜택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서 더이상의 특례 혜택은 없다고 못을 박아 버렸고, 2009년 WBC 에서는 병역 혜택이 사라졌다.
이후 장출혈로 고생하지만, 베이징 올림픽 예선을 겸해 열린 2007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에 기꺼이 참여해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하였다.
박찬호는 1994년 도미 당시 대학생이었던 관계로 본래는 입영대상자였으나 국가에서 대승적 차원으로 보내줬고, 4년 만에 이를 몇 배로 갚았다. 물론 한 명이라도 더 현역으로 보내기에 혈안이 된 병무청 입장에서는 갚은 게 아니라 떼인 격일 것이다. 2012년에 은퇴하면서 병역 브로커 업무도 같이 마무리했다. 물론 훗날 지도자로 나서게 되면 다시 브로커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본인은 이미 병역문제가 해결되었는데도 국가대표팀에서 부를 때마다 영광이라면서 이에 꾸준히 응해 왔다는 부분에서 칭송받는다. 이는 김병현도 마찬가지. 아마 본인이 느낀 짜릿함을 후배들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었을 것이었다.
2.1.2. 이승엽
노블레스 오블리주 -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빛이 나는 |
하지만 그가 모두에게 존재감을 발휘한 시점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8년전 시드니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조별리그에서는 죽도록 삽을 펐지만[4], 4강인 일본전에서
이승엽 본인은 국제대회 성적으로 면제를 받은 것이 아니다. 경북고등학교 시절 입은 팔꿈치 부상(아니면 척추분리증)으로 인해 이미 군대 면제를 받은 상태였다. 즉, 면제로이드조차 먹은 적 없이 곧바로 병역 브로커로 데뷔한 것.[8]
국대 타율 2할 8푼에 국대 최다 홈런 최다 타점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시드니,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대회 초중반 극도로 부진하며 삽펐지만 나머지 국대에선 최고의 타자였다. 부진했던 시드니에서도 타점은 잘 쌓았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결승타를 때리며 해결사 역할을 했다. 베이징에서는 막판에 타격감이 올라와 4강과 결승에서 중요한 홈런을 두 방 날리며 부진을 만회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타이중 참사 당시에도 타율 4할을 기록하며 이대호와 함께 둘뿐인 타자 까방권을 얻었었다.[9]
2.1.3. 구대성
2000년 당시, 타자 쪽에 이승엽이 있다면 투수 쪽에는 구대성이 있다. 투수부분에서 고향팀에서 은퇴한 원조 병역브로커의 뒤를 잇는 2번째 합법적 병역브로커로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 3,4위전의 수훈공신. 대표팀 선수들의 카지노 출입 파문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한데다, 본인은 담에 걸려 팔을 제대로 뻗기 힘든 상황. 하지만 구대성은 괜찮다고 하고 등판했으며[10] 무려 156개의 공을 던지며 완투승을 일궈냈다. 이로 인해 그의 별명은 일본킬러가 되었다.[11] 사족으로 구대성 본인은 96년에 MVP까지 받고 시즌후 입대하였으나 허리 디스크로 면제판정 받았다.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나이는 31세. 이후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도 참가해서 활약했다. 일본 킬러 답게 일본전에서도 계속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2.1.4. 정대현
궁내 채고의 싱카볼 투수 - 허구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9회말 1사 만루, 한점차의 위기에서 율리에스키 구리엘 상대로 마운드에 올라와서 그림 같은 사실 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딸 때도 엄청난 기여를 한 선수이다. 언더핸드에 프로가 아닌 대학생 신분[13]임에도 선발로 6이닝 이상을 먹어대며 이닝이팅을 한 덕에 팀 투수 운용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
다만 정대현 본인은 무릎 수술 이력 때문에 올림픽 출전 전에 먼저 제2국민역 처분을 받았었다.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로 예술체육 특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심지어 기자들조차도) 실제로는 제2국민역이었다.[14][15]
2.1.5.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의 전설인 타자 이대호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여 타율 0.360 3홈런 10타점 OPS 1.285를 기록하였고, 특히 장타율이 0.760에 달하는 등 큰 활약을 보여주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4강까지 극도의 부진을 보이던 이승엽의 상태를 고려해 봤을 때는 이대호의 활약이 아니었으면 4강 가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4강과 결승에서의 이승엽의 결정적인 홈런으로 인해 묻힌 감이 있다. 사실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성적에서 이대호가 이승엽보다 홈런은 적었지만 타율은 월등히 좋았다.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5경기동안 7안타 (1홈런) 6타점을 기록하면서 무난한 모습을 보였으나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과의 결승전에서 대형 홈런을 치면서 금메달에 일조했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부터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까지 6번의 국제 대회에서 총 37경기에 출장해 타율 0.347 6홈런 39타점을 올리며 맹활약을 펼쳤다. 이 때문에 이대호에게는 기라성같은 선배들(심지어 이승엽까지 포함해서) 다 제쳐두고 "조선의 4번타자"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이승엽은 국민 타자[16]로 이미 굳어져있었고, 이대호에게만 유독 조선의~ 라는 별명이 붙은 건 국제대회에서 흡사 독립운동하듯(...) 좋은 성적을 올려서이다.
2.1.6. 김현수
2000년대에 이승엽이 있다면, 2010년대는 김현수가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10년, 2014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선수들의 병역특례에 많이 기여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전 이와세 상대로 대타 1타점 적시타는 굉장했다.[17] 다만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는 이상하게도 구멍이 되었다.더 이상의 병역 혜택은 없어졌지만, 그 뒤로 2009, 2013년 WBC에도 출전하고 2015, 2019 프리미어 12에도 출전해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09년 WBC에서는 베스트 멤버에 들었고, 2015 프리미어 12 MVP를 차지했다. 참고로 2008년 국대 출전 이후 2017년 WBC를 제외하면 모두 출전했다.
2.1.7. 류중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감독직을 맡아 황재균, 김민성, 나성범, 손아섭, 김상수, 오재원, 차우찬, 홍성무의 병역특례를 이끌어냈다.이후 9년 뒤인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의 전임감독이 되어 원태인, 박세웅, 문동주, 노시환 등의 병역특례를 이끌었다.
물론 아시안게임 우승 감독은 류중일 외에도 많고, 올림픽 메달 감독도 둘이나 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우승을 두 번이나, 그것도 젊은 미필선수 위주의 팀으로 해 냈다는 점에서, 병역 브로커로서의 위상은 류중일이 감독들 중 최고라고 봐도 무방하다.
2.2. 축구
2.2.1. 거스 히딩크
한국인은 아니지만 지도자로서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인물이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폴란드를 이기고 미국과 비긴 뒤 다시 포르투갈을 이겨 16강에 진출시켰다. 이 상황에서 당시 주장이었던 홍명보 선수가 응원차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선수들에 대한 병역 혜택에 관해 문의했고, 대통령도 이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하였다. #대표팀은 16강에서 그치지 않고,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연장 혈투 끝에 이기고 스페인과의 8강전 역시 승부차기로 이겨 4강 신화를 만들어내며, 병역 혜택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었다. 16강 진출로 이미 대통령의 긍정적인 답변이 있었는데, 4강까지 진출하자 병역 혜택은 별 문제 없이 승인되었다. 이로 인해 박지성, 설기현, 이천수, 이영표, 송종국 등의 선수들이 유럽 무대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18]
히딩크 본인은 이로 인해 대한민국 명예 국민이 되었고 휘하 선수들 상당수의 병역 문제를 해결해줬으며 조국인 네덜란드에서는 이 공로로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2.2.2. 홍명보
이 분야의 레전드로 선수/지도자로서 모두 달성한 케이스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붙박이 주전 수비수로 나섰고, 대한민국 4강 신화의 주역이었다. 당시 주장이었던 홍명보는 대한민국이 16강에 올라가게 되자, 김대중 당시 대통령에게 선수들 병역에 관해 논의했고[19], 국가에서는 선수들의 요구에 화답하여 선수들의 병역을 해결해 주었다.#[20][21] 그리고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서 성공한 후의 그의 표정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 있다.
이후 홍명보는 지도자로서 커리어를 쌓았고, 2012 런던 올림픽/축구 대표팀 감독으로서 최초 4강 진출인라는 위업을 달성했으며, 4강에서 브라질에게 패하긴 했지만, 3위 결정전이 성사된 한일전에서 2:0 완승으로 대한민국 올림픽 축구 사상 최초의 메달을 받게 되었다.
한편, 출전이 없는 선수는 메달을 따도 군대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3위 결정전에서 유일한 비출전 선수인 김기희를 후반 44분에 투입, 모든 선수들에게 동메달+병역특례를 선사했다. 일단 이겨야 하기 때문에 홍명보 본인은 김기희의 출전을 고민했으나, 다행히 2:0이 되면서 상황이 제법 여유로워져 투입할 수 있었다. #
다만 홍명보 감독 본인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상무에서 병역 생활을 했었고, 그나마 4대독자여서 6개월만 복무했다. 이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해서 커리어는 모두가 아는 대로... 선수로서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것은 33세 때, 43세 때에는 지도자로서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되었다.
2.2.3. 이광종
28년 만에 아시안게임 축구에서 대한민국의 우승을 이끈 감독이다.게다가 무실점 전승우승으로 단 한 번도 승부차기까지 가지 않고 모든 상대를 이겼으며 그 결과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은 모두 병역 특례를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이광종호 참조.
2.2.4. 김학범
두 대회 연속 아시안 게임 축구 금메달을 이끌어낸 감독이며, 특히 병역특례를 안겨준 대상 중 손흥민이 있다는 것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 밖에도 이승우, 황의조, 조현우 등 뛰어난 선수들이 병역특례를 받았다.반둥 쇼크를 시작으로 가시밭길로 흘렀던 아시안 게임 축구였지만, 이란과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일본을 차례대로 꺾고 결국 19인 미필자 및 의경 1인[22]으로 구성되었던 선수단 전원에게 모두 병역 특례를 안겨줬다. 특히 손흥민의 병역 특례 여부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외신들의 관심거리였다. 그래서 경기후 여러 외신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손흥민의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한국에서 2018 아시안게임에 큰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축구 그 자체라기보다 손흥민의 군면제 여부였다.
하지만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입대 브로커로 대활약을 보여준다. 아무리 올림픽의 메달 획득 난이도가 높다고는 하나,[23] 3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 무색하게 대회 직전부터 매우 형편없는 운영을 보여주어 초라한 성적을 자초하였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자세한 내용은 김학범호 문서 참조.
2.2.5. 황선홍
절친인 홍명보와 함께 선수/지도자로서 모두 달성한 케이스다.선수 시절에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맏형이자 핵심 스트라이커로 나섰고, 대한민국 4강 신화의 주역이었다.
지도자로서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U-23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부임했으나 클럽팀에서의 쇠퇴기 및 U-23 대표팀 감독으로서도 대회 이전까지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팬들의 불신을 낳았으나 아시안게임 본선에서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며 대회 3연패를 달성했고 그 결과 조영욱[24], 이강인, 엄원상, 백승호, 이한범, 정우영, 설영우, 홍현석, 박진섭, 송민규 등 총 19명의 병역특례를 이끌어냈다.[25]
특히, 자신의 애제자였던 박진섭의 경우 2022년 겨울 상무 입대에 실패하면서 2023 시즌이 끝나고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해 K4리그에서 1년 9개월을 보내야하는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 처했으나 은사 황선홍의 와일드카드 멤버로 발탁되며 극적으로 병역특례를 받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1년 후인 파리 올림픽에서는 지역예선인 2024 AFC U-23 아시안컵 카타르 8강에서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탈락하여 10연속 올림픽 진출에 실패하고 입대 브로커로 전락하였다.
2.3. 농구
2.3.1. 김주성
김주성 본인은 이미 생계곤란으로 병역면제 상태였지만, 2002 부산 아시안 게임/농구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남자농구 두번의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함과 동시에 다수 후배들의 병역문제를 해결시켜 주었다.2.3.2. 김승현
2002 부산 아시안 게임/농구에 방성윤과 함께 유이한 미필선수로 참가,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활약으로 스스로 병역특례를 쟁취했다.2.3.3. 문태종
병역의무가 없는 귀화선수였으나,2014 인천 아시안 게임/남자농구에 무려 38세의 나이로 참가했다. 8강 조별리그 필리핀전 38점, 결승 이란전 19점 등으로 맹활약하며 오세근의 조기전역과 김종규, 김선형, 이종현등의 병역특례를 이끌었다.2.4. 배구
2.4.1. 김세진
김세진 본인은 이미 병역면제 상태였지만,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다수 후배들의 병역문제를 해결시켜 주었다.2.4.2. 신진식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획득으로 본인의 병역문제를 직접 해결함과 동시에 후배들의 병역문제를 해결시켜 주었고,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 획득으로 다수 후배들의 병역문제를 해결시켜 주었다.2.4.3. 이경수
위의 신진식과 완전히 같은 스토리이다. 단, 이경수의 나이는 신진식보다 훨씬 어리다.2.5. 바둑
2.5.1. 이슬아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남녀 페어에서 박정환 8단(현 9단)과 출전하여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93년생인 박정환에게 군면제를 선사했다.1991년생으로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나이는 불과 19세. 여성으로서는 이효정의 뒤를 이은 두 번째 합법적 병역 브로커다. 2019년 이슬아는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하여 바둑기사직을 사직하고, 중국인 바둑기사와 결혼한 뒤 바둑계를 완전히 은퇴했다. 2019년 현재 중국에서 살고 있다.
2.5.2. 이창호, 이세돌, 최철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에서도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며, 강동윤, 조한승 두 명이 추가로 병역혜택을 받게 되었다. 특히 조한승은 현역 군복무 중 소속 부대의 배려로 한국대표 선발전 및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 획득하였다. 그리하여, 남은 복무기간을 바둑기사 생활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이전에 이미 병역 특례를 받았거나 전시근로역 처분을 받은 위 세 명[26]이 합법적 병역 브로커에 이름을 올렸다. 브로커가 된 나이는 이창호가 35세, 이세돌이 27세, 최철한 25세. 바둑에 대한 병역특례 특성상 브로커 본인의 분야와 혜택을 받은 이들의 분야가 다르다는 것도 특이하다. 이창호는 예술요원으로 특례를 받았고 후배 기사들을 체육요원으로 만들어서 특례를 받게 했다.
바로 전날 혼성에서 금메달을 따서 이미 자격을 획득한 박정환은 브로커로 쳐주지는 않는 듯 싶다.
2.5.3. 커제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바둑 남자 개인전 은메달, 남자 단체전 은메달, 즉 두 판 다 결승전에서 패배하여 쉬하오훙(대만) 九단과 신민준(한국) 九단에게 병역특례를 선사하였다. 커제-쉬하오훙(남자 개인전 결승전), 커제-신민준(남자 단체전 결승전) 두 판 다 커제가 우세한 과정에서 어이없는 판단 미스로 큰 손해를 보면서 역전패를 당했기 때문에 진정한 병역 브로커 소리를 듣는 중. 바둑 갤러리에서 관련 반응이 나오고, 트위터에서도 반응이 있다. ???: 저는 진게 아닙니다 드립도 나오고, 심지어 중국에서조차 "네(커제)가 병역 브로커냐" 소리를 듣는 판이다. 김성룡 유튜브[27] 쉬하오훙 九단과 신민준 九단은 이번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병역면제를 못 받으면 2024년에 나란히 중화민국군과 대한민국 국군 입대 예정이었기 때문에 커제가 결승전에서 패배하면서 병역특례를 따냈으니 쉬하오훙이랑 신민준은 좋아 죽는 중이다.문제는 커제가 항저우 아시안 게임 시작하기 전에 "항저우 아시안 게임 선수촌 식사가 아주 토 나올 정도로 맛 없다"고 동영상을 올렸다가 중국공산당의 심기를 건드려 영상이 강제로 삭제당했고, 중국 공안에 의해 코로 마라탕까지 마실 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커제는 무조건 금메달을 땄어야 하는데 결승전에서 어이없는 착각으로 대만과 한국에 병역 면제를 선사했으니 이제 커제의 신변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2.6. 배드민턴
2.6.1. 이효정
이쪽 분야에서는 드물게 이분은 여성. 일명 브로커계의 대모(代母).배드민턴 선수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용대 선수와 호흡을 맞춰 혼합복식 금메달을 획득하며 이용대에게 혜택을 주었다. 당시 나이는 27세로 합법적 병역브로커가 되셨다. 2년 후인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도 신백철 선수와 혼합복식에 출전하여 또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신백철 선수에게 혜택을 주었다. 이렇게 2년 만에 두 선수에게 금메달을 하사(?)하고서는, 나이+결혼을 이유로 국가대표 은퇴하였다.
2.6.2. 이현일
선수 본인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배드민턴 단체전 금메달을 통해 병역특례를 받았다. 원래 단식 전문이라 병역 브로커의 역할과는 거리가 멀었고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던 상황이었다.그러나 여기서 끝났다면 이 문단은 만들어 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단체전 단식의 구원투수로 호출되어 다시 국가대표에 복귀했다.
8강전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5게임 마지막 단식 주자로 나가 승리하여 팀을 4강으로 이끌었고 결승전인 중국전에서도 1, 2게임을 이긴 뒤 3, 4 게임을 내리 내주며 쫓기던 대표팀의 마지막 주자로 나와 중국 선수를 2:0으로 잡으면서 금메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단체전 우승으로 인해 현재 복무중인 고성현과 아직 미필인 김기정, 김사랑, 이동근, 전혁진까지 무려 5명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었다. 한편 손완호와 유연성은 결승전 당일에 전역해 안타깝게도 병역 혜택을 직접 받지 못했다.
35세의 나이에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되어 한 방에 5명의 병역 문제를 해결해준 후 진짜로 은퇴함으로써 합법적 브로커직에서도 물러났다.
2.6.3. 길영아
앞의 두 선수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에 김동문과 짝을 이뤄 출전했고, 결승전에 진출하여 김동문이 병역 혜택을 받았다. 결승전에서는 박주봉-라경민조를 잡고 우승하여, 선수 생활의 마지막에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기쁨도 누렸다.2.6.4. 김동문
자신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이미 금메달을 획득하여 병역 혜택을 받았으나, 2000 시드니 올림픽에 하태권과 짝을 이뤄 남자복식에 출전하여 동메달을 땄고, 하태권이 병역 혜택을 받게 해 줬다. 우여곡절이 많은 대회였는데, 라경민과 함께 출전한 혼합복식에서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8강에서 탈락했고, 남자복식에서는 4강전에서 패배하여 결승전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3-4위 결정전에서 말레이시아 조를 꺾고 동메달을 차지하여, 파트너인 하태권에게 '병역 혜택'을 선물했다.2.7. 기타 종목
2.7.1. 윤경신 (핸드볼)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 남자부 핸드볼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자신과[28] 동료들이 병역특례를 받은 이후에 바로 다음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것을 시작으로 2010년에 마지막으로 아시안게임에 참여하고 떠나기 이전까지 무려 5번이나 금메달을 쟁취하는 데 성공하면서 그가 이끌던 많은 후배 핸드볼 선수들이 예술체육요원 자격을 따내게 되었다.하술한 이형택보다도 더 나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29], 똑같은 비인기 종목이라도 테니스는 국내에서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고 생활 체육도 비교적 잘 되어 있는 편이지만[30] 핸드볼은 하계올림픽 기간 이외에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오심 등 국제 대회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국민들이 그들의 고충을 모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남자 핸드볼 국대팀은 여자 핸드볼 국대팀보다 선수층이 얇은데다가 병역 특례가 걸릴만한 국제 대회에서 입상한 기록 역시 밀린다.[31] 그런데도 이만한 성과를 냈다는 건 본인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윤경신 선수에게 위로가 될 점은 한국 핸드볼 국대팀 남자부가 아시아 최강인 것과[32] 선수 본인이 한국 핸드볼 선수들 중 남녀 통틀어서 제일 커리어가 좋은[33] 점이 위안이 되지 싶다.
2.7.2. 이형택 (테니스)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남자 테니스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 병역 특례를 받은 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도 남자 테니스 단체전 금메달의 주역이 되어 전웅선, 정희석, 안재성 등 후배들의 병역 특례를 이끌어냈다.다른 종목만큼 알려진 종목이 아니지만 국내 테니스의 사정상 개인 ATP 투어 랭킹보다는 데이비스컵 한국 대표팀 셔틀, 국내 챌린지 대회 흥행카드 등 어른의 사정으로 인한 국대 에이스 역할을 오랫동안 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 실력으로 따지면 비운의 선수.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나이는 25세. 그나마 체육훈장이라도 받아 다행이다.
비인기 종목 특성상 지독하게 안 알려져 있다가 차후 2019년 방송출연을 통해서야 겨우 저명도가 올라갔는데, 예능에서 활약이 나쁘지 않아 다행일 수도.
2.7.3. 임동현, 오진혁 (양궁)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당시 고3이었던 김우진에게 병역특례를 주었다. 정작 김우진은 이미 병역특례를 받고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이우석을 꺾고 또 금메달을 따 이우석이 상무에서 조기전역을 못 하게 만들어[34]본의 아니게 입대 브로커가 된 적이 있었다. 둘은 6년 후인 2024 파리 올림픽에 함께 출전하여 남자 단체전에서 함께 우승하고 개인전에서 나란히 금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2.7.4. 곽윤기 (쇼트트랙)
곽윤기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5000m 계주에서 2번 주자로 나서 막판 뒤집기로 4위에서 2위로 순위를 끌어올리며 은메달을 이끌었고 이 과정에서 본인과 김성일의 병역특례를 이끌어냈다.[35]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남자 5000m 계주에서도 2번 주자로 나서며 한국의 12년만의 계주 은메달을 가져왔고 김동욱, 박장혁, 이준서에게 병역 혜택을 주게 되었다.[36]
2.7.5. 이승훈 (스피드 스케이팅)
이 부문에서 동계 종목의 본좌이자 살아있는 전설 되신다. 병역 브로커 3(李)중 막내다.[37]일단, 이승훈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10000m 금메달, 5000m 은메달을 획득하며 자력으로 병역 특례를 확보했다. 다른 여러 브로커들과 비슷하게 면제로이드를 복용하고, 시혜자가 된 경우이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팀 추월 종목에서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빙속 남자 팀 추월에서 중후반부터 선두로 나서 팀을 이끌며 금메달을 수상, 만 17세인 후배 김민석을 구원했다. 그리고 김민석은 다음 날, 같은 대회 1500m 종목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에 올랐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팀추월에서도 이탈리아, 뉴질랜드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여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대표팀 막내 정재원의 병역 특례를 이끌었다.[39] 참고로 정재원은 대회 시점에서 만 16세로, 주민등록증이 나오기도 전에 병역부터 해결하였다.
2.7.6. 김정환, 구본길 (펜싱)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펜싱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후배 김준호와 오상욱에게 병역 혜택을 주었다.[40]2.7.7. 신유빈 (탁구)
2024 파리 올림픽 탁구 혼성 복식에서 임종훈과 함께 동메달을 획득하며 임종훈의 병역을 해결해 주었다. 임종훈은 8월 19일 국군체육부대 입대가 예정돼 있었는데, 입대를 불과 20일 남긴 7월 30일에 극적으로 예술체육요원 편입에 성공했다. 게다가 중국이 절대우세를 점하고 있는 탁구에서 12년 만에 메달권 진입에 성공한 것이라 더더욱 의미가 크다.3. 용어 사용에 대한 논란
합법적 병역 브로커는 훨씬 실력이 뛰어난 선수가 다른 선수의 병역을 해결한 것 같은 어감이 들어있는데,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혼성 단체전은 김제덕과 안산 둘이서 함께 다른 나라들을 실력으로 썰어버린 경기였기에 김제덕의 팬덤에서 안산에게 이 단어를 적용하는걸 싫어하는 반응도 있었다.[41] 다만, 같은 관점에서 보면 바둑의 박정환 + 이슬아 혼성페어의 경우에도 박정환의 실력이 이슬아에 비해 월등히 앞서기에, 이슬아를 병역 브로커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논란이 될 수 있다. 또한, 배드민턴의 이용대 + 이효정의 경우도 이용대의 실력이 부족했다면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을리가 없다. 아무래도 절대적인 기량은 남자 선수 쪽이 앞서는 것이 당연한 만큼, 혼성 단체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복식이나 단체전은 팀 플레이가 매우 중요하고 혼자서 노력한다고 되는 시합이 아니기 때문이다.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탁구 혼성 경기 동메달 결정전 이후 JTBC가 유튜브 썸네일로 “삐약이는 병역브로커”라는 용어를 썼다가 댓글에서 논란이 되어 썸네일을 수정해서 다시 올리는 촌극이 생기기도 했다. # 그럴만도 한게, 유승준 병역기피 사건 이후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병역 관련 이슈는 유력한 대권 후보마저 낙선시켜버릴만큼 매우 민감한 사항인데다가[42] 애시당초 병역브로커라는 직업군 자체가 엄연히 병역법에 위반되는 불법행위군이기 때문이다. 사실 해당 항목의 '합법적 병역 브로커'라는 용어 역시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은어적 표현으로, 그 용어의 언급 자체를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43]
4. 여담
귀화선수 신분으로 '합법적 병역 브로커'에 도전했던 선수로는 문태종(농구), 라건아(농구) 등이 있고 이 중 문태종은 실제로 성공하였다. 라건아도 2018 아시안 게임에서 맹활약했지만 4강에서 이란에게 패하며 실패한다. 단, 문태종은 귀화 직전에도 완전한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 어머니를 둔 혼혈 신분이었다.귀화 선수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종목은 농구와 탁구이다. 농구는 주로 미국인을, 탁구는 중국인을 많이 받고 있다. 다만 농구는 아시아권에서 아직 다소 고전하는 종목인 만큼 향후 귀화선수가 '합법적 병역 브로커'로 기여할 수 있는 종목은 탁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외로, 자기뿐만이 아니라 자기 친구들에게도 더 좋은 입대 자리라든가, 혹은 본인 특기를 살린다든가, 집에서 가까운 곳에 복무할수 있게 이것저것 조언해주는 친구들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물론 해당 경우에서 불법적으로 자리를 꿰찬 것만 아니라면 이런 경우에는 완벽히 합법이다. 군대 가게 도와주는 경우를 불법이라고 할 순 없기 때문이다.[44]이게 불법이거나 탈법, 편법 아니냐면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토익이나 드론 학원, 컴퓨터 학원 등에서도 입대 스펙 쌓으라고 버젓이 광고까지 하는 엄연한 합법 행위이다. 특히 컴활은 행정병 지원자들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필수템이기도 하고.[45]
[1] 당시는 뉴욕 메츠 더블A 마이너리거.[2] 오승환, 김태균, 이진영, 정성훈, 최희섭 등[3] 물론 마쓰자카는 이후 메이저리그로 진출했고, 이와세 히토키는 일본 통산 세이브 1위의 일본 대표 마무리 투수다. 이와세는 2008년 후반 부진하긴 했지만 그리 큰 부진도 아니다. 물론 명성에 맞지 않게 2008 올림픽 때 너무 부진했다.다만, 2006 WBC 때 이시이 히로토시(도쿄대첩의 원흉)나 돈트렐 윌리스를 생각해 보면... 물론 홈런을 맞아서 부진하게 된 것이 아니라 부진의 조짐이 있었으니 홈런을 맞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2005년 일본시리즈에서 홈런을 맞은 이가와 게이가 이런 징크스에 극복을 했으나 메이져리그 진출이후 노쇠화로 기량이 저하되 결국 맛이간체로 일본복귀, 복귀를 했으나 예전에 임팩트가 크게 줄고 2015년 방출되어 독립리그로 떠났다.[4] 다만 중국전 승부치기 상황에서 끝내기 안타를 치긴 했으나 약체 중국을 상대로 승부치기까지 간 것 자체가 졸전이었던데다가 경기 자체도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어수선해서 대중들의 인식에는 잘 남아있지 않다[5] 처음 맞았을 때 넘어가리라 생각한 사람은 적었다. 오히려 그 이후 펜스 앞에서 G.G 사토에게 잡혀야 할 고영민의 타구에 더 반응이 격정적일 정도였다. MBC의 한광섭 캐스터도 우측에 높이 떴다며 반쯤 포기했는데 옆에서 누가 자꾸 크다고 소리 지른다.허작두?[6] 류현진, 장원삼, 이용규, 김현수, 윤석민, 속꽉남한기주, 강민호, 이대호, 이택근, 고영민, 권혁, 김광현, 정근우, 송승준.....어마어마하게 많다. 이승엽의 역전 투런 한 방에 병역 봉인 해제. 그 중에는 2006년 도하 참사를 겪은 멤버들이 많다. 올림픽이다 보니 4강전에서만 이겨도 병역특례가 나온다. 지면 3.4위전에서 이겨야 한다.[7] 여담으로 이 때 이승엽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반쯤 울면서 인터뷰를 했는데 워낙에 임팩트가 커서 그런지 이후 한 5~6년 동안 방송에서 연예인(주로 개그맨)들이 이승엽 성대모사를 한다고 할 때 이 울먹이는 인터뷰 성대모사를 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8] 운동선수가 부상으로 면제를 받는 것은 의외로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몸을 혹사 시키기 때문. 투수 중에는 어깨나 팔꿈치 부상으로 4급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은 선수가 정말 많다.[9] 축구는 박주영이 2014년 월드컵 때 못해서 말그대로 역적이 되었고, 그 전에는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황선홍이 심하게 삽질하는 바람에 이완용 이래 최대 역적 소리를 들었다가 2002년 황금멤버가 되면서 유상철(그도 이 이전까지는 황선홍 못지않게 똥볼로 욕먹었었다)과 함께 영웅이 되었다. 축구는 실시간으로 뛰어다니는 종목이고 범위가 넓기때문에 어떠한 선수가 부진하면 답답해진다. 국대에서 장현수가 삽질하니 수비가 뻥뻥 뚫리지 않은가? 그러나 야구는 누구 한 명이 지독하게 삽푼다고 해서 망하는 종목이 아니다. 순서대로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08 베이징 때 조별리그에선 이대호와 김현수, 그리고 알토란같은 활약을 한 고영민이 있었다. 10 아시안 게임에서도 김태균이 못했지만 추신수가 멱살잡고 파괴왕모드였고 이대호, 강정호가 엄청잘했다. 추신수도 09년도 wbc때 조별리그서 삽펐고, 최희섭도 06년도 wbc에서 멕시코전까지 침묵했다. 하지만 추신수 최희섭 전부 결정적일때 한방해주었고 그 부진을 만회해주는 선수들이 06때 이승엽과 이종범, 09때 김태균, 이범호, 김현수가 있었다. 만약이지만 이승엽이 조별리그 캐리하고 4강, 결승서 삽질했으면 10년 월드컵의 이동국, 아니 94월드컵의 로베르토 바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바조가 그 승부차기 실축으로 인해서 역적이 되었으니..[10] 구대성 항목을 참고하자. 뒷이야기가 심히 흠좀무하다.[11] 사실 프로 이전 아마시절 때부터 이미 일본킬러로 이름나 있었다.[12] 이전 경기였던 일본전에서 9회 2아웃에 이용규가 플라이 아웃잡고 주저앉으며 감격한 걸 생각하면 알기 쉽다. 참고로 이 모습이 일본측에서는 상당히 인상깊었다는 후문.[13] 쌍방울 레이더스에 지명이 되었으나 경희대로 진학했다.[14] 이 제2국민역(현 전시근로역)은 통념과 달리 완전 면제가 아니다. 완전한 병역면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의 중증 장애인이나 북한이탈주민, 대성동마을 주민이 아닌 이상 어지간해선 받을 수 없는 처분이다. 따라서 차라리 1년 6개월 군대 갔다 오는 게 더 나을 정도로 몸이 아프거나, 북한이라는 지옥에서 목숨 걸고 내려오거나, 평시 군대보다도 엄격한 통제(저녁 이후 민사행정경찰과 유엔군의 점호를 받고 야간통금이 있다.) 속에서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15] 즉, 면제로이드도 없이 아마 시절부터 합법적 병역 브로커였다는 것[16] 이 별명은 일본에 그대로 수입되어서 거인 시절 교진팬이건 상대팀팬이건 전부 "국민적"이라고 불렀다. 다만 이 국민'적'이라는 건 일본이 약간 혐한조로 "쟤들은 뭐라 하면 국민적인 어쩌고"하며 깎아내리는 뉘앙스가 있었는데, 나중에는 압도적인 밀어치는 파워로 혐한들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17] 일본 최고 좌완을 상대로 좌타를 대타로 낸 대표팀의 결정의 적중한 순간.[18] 다만 그때는 워낙 2002년 월드컵에 대한 열기가 엄청나서 그랬던 것이지, 지금은 월드컵 우승을 해도 과연 병역면제의 혜택이 주어질지는 의문이다.[19] 지금이야 16강이 대진운만 극악이 아니면 어느 정도 갈 수 있다 여겨지지면서도 16강 진출만으로 나라가 떠들석할 시기인데, 이 시기는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다. 사실 2002년 월드컵 이전만해도 대한민국은 월드컵 1승조차 해보지 못한팀이었으니...[20] 이로 인해 박지성, 설기현, 이천수, 이영표, 송종국 등의 선수들이 유럽 무대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21] 참고로 홍명보는 직설적인 캐릭터라는 인상은 옅지만 할 때는 질러주는 타입이다. 1994년 막내로 처음 월드컵에 합류했을 때에도 김호 감독에게 선수단 처우에 대해서 직언했었다. 공교롭게도 그 김호 감독 또한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에 대표팀 막내로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대놓고 선수단 처우개선을 요구한 적이 있다.[22] 단, 군 복무 중이던 황인범은 전역 처리가 된다.[23] 한국의 최대 성적은 동메달이고 2012년 전만해도 조별예선 통과가 목표였다.[24] 김천 상무 FC 복무 중이었으나 조기전역.[25] 이광연은 십자인대 부상으로 전시근로역, 김정훈은 김천 상무 FC 만기전역으로 제외.[26] 이창호는 1996년 바둑으로 예술요원 특례를 받아 복무를 마쳤고, 이세돌은 학력이 초졸이어서 학력미달 사유로 전시근로역이다. 완전 면제는 중증 장애인이나 북한이탈주민, 대성동마을 주민이 아닌 이상 거의 없는 처분이다. 최철한은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했다.[27] 중국은 명목상으로만 징병제지 입영자원이 많아 실제로는 거르고 걸러서 모병제로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완전 징병제인 한국과 대만을 보며 비웃거나 불쌍히 여기곤 한다.[28] 사실은 윤경신의 키는 당시 신검 기준으로 5급에 해당한다.[29]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JTBC에서 방송하는 예능 프로그램인 뭉쳐야 찬다에 나온 적이 있다. 전자는 아예 고정 멤버이며, 후자는 2020년 10월 11일에 방영한 66화에 용병으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뭉쳐야 쏜다에도 전자는 창단 멤버, 후자는 용병 등장 후 추후합류 멤버로 출연했다.[30] 수영도 이와 비슷하다. 취미나 운동으로 즐기는 사람은 많은데 종목 자체는 비인기다.[31] 실제로 여자 핸드볼 국대팀은 올림픽에 나갈 경우 못 해도 기본 4위인데다가 메달을 따고 돌아온 적도 상당한 반면, 남자 핸드볼 국대팀은 메달권에 든 적이 88년 서울 올림픽 단 한 번뿐이며, 그마저도 은메달에 그쳤다. 당장 윤경신 본인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는 윤경신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오히려 그 반대이다. 애초에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다섯 번이나 딴 능력자가 실력이 부족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 한국 남자 핸드볼 국대팀이 세계 무대에서 유럽 대표팀들과 메달을 놓고 경쟁하기에는 약해서 그런 것이다.[32] 물론 한국 핸드볼 국대를 아시아 최강으로 만든 건 윤경신을 포함한 당시 국대 핸드볼 남자부에서 선수로 뛰었던 본인들이다.[33] 농담이 아니다. 윤경신은 핸드볼의 종주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독일에서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낸데다가 함부르크에서 5년간 주장까지 지냈으며, 총 7번이나 득점왕을 차지했다. 게다가 그의 통산 득점은 2908골로 독일 핸드볼 분데스리가 최다 득점왕, 통산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이다. 그리고 유럽 핸드볼 챔피언스 리그(EHF Champions League)에서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에 득점왕을 차지했고,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세 대회 연속(1993, 1995, 1997)으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또한 2001년에는 세계 핸드볼 협회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이 커리어를 프로축구선수로 대입하자면 종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그에 못지 않은 위상을 가진 분데스리가나 라리가, 세리에 A, 리그앙의 명문팀에서 뛰는 것은 물론이고 선수생활의 1/3에서 1/4 정도 되는 기간을 그 팀의 주장으로 있어야 하며, 현지에서 한 번 경기할때 마다 최소 4득점 이상 넣어주어야 한다. 거기다가 대표팀을 뛸 경우 아시안게임 우승과 대륙컵 우승은 물론이고, 월드컵과 올림픽에 나가서 뛸 경우 최소한 3위 이상은 해야 윤경신과 비슷한 경력을 쌓았다고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이 조건을 만족시킨 한국의 프로축구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34] 하필 남자 단체전에서도 은메달에 그치는 바람에...[35] 다른 계주 멤버였던 이정수는 대회 2관왕(1000m, 1500m), 성시백은 500m 은메달, 그리고 이호석은 본 대회 1000m 은메달,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금1, 은2와 2007 창춘 동계 아시안 게임 계주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이미 확보한 상황이었다.[36] 마찬가지로 다른 계주 멤버 황대헌은 본 대회 1500m 금메달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500m 은메달로 병역특례를 이미 확보한 상황이었다.[37] 첫째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에게 열심히 임대료를 뜯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의 4대존엄(이만수, 양준혁, 이승엽, 오승환) 일원이기도 한 국민타자 이승엽이고 둘째는 대모(大母)인 이효정이다. 이승엽과 이효정은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동기이기도 하다. 참고로 06년 시혜자이기도 했던 이승엽의 팀후배 오승환도 금메달리스트 동기이다.[38] 후보 선수였던 모태범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500m 금메달, 1000m 은메달로 병역특례를 이미 확보해 놓은 상황이었다.[39] 전술했듯이 후보 선수인 주형준은 소치 동계올림픽 팀추월 은메달로, 김민석은 2017 동계 아시안 게임 2관왕으로 병역특례를 이미 확보했다.[40] 김정환은 국군체육부대에서 복무를 했었고, 구본길은 2010년에 광저우에서 예술체육요원 특례를 받았었다.[41] 실제로 혼성 단체전에서 안산의 실수발이 많은편이었다고 본인이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42] 매번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때마다 선수들 병역특례 폐지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폐막 직후에는 야구대표팀 오지환의 병역관련 논란이 SBS 8 뉴스 헤드라인으로까지 보도되었고, 이는 결국 야구대표팀 감독의 국정감사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병역특례 폐지 논란은 저출산 여파로 병력자원이 줄어든 2020년대에도 심심찮게 언급되고 있다.[43] '합법적 병역 브로커'라는 용어는 한국언론에서도 신문 등 종이매체나 인터넷 뉴스 등에서나 간간히 언급되지, 전국민을 상대로 좀 더 강한 파급력을 가지는 방송사 기준에서는 금기시되는 표현이다.[44] 방법은 뭐 거창한 경우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헌혈을 하라든가, 자격증을 따라던가, 혹은 특정 가산점 시험을 보라는 식으로 조언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건 성공하면 개인 스펙과 봉사시간까지 받으니 일석이조, 아니 삼조 그 이상이다.[45] 다만 병역의무마저도 경쟁시키냐는 비판이 있긴 하나, 이것은 궤가 다른 비판이라 해당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