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0-02-27 03:03:02

최철한

{{{#!wiki style="margin:0px;margin-top:-10px;margin-bottom:-10px;padding:0px"
{{{#!wiki style="margin-left:10px; margin-right:-20px; display:inline-table"
<tablebordercolor=#FFFFF9><tablealign=center> 파일:ESB-.png }}} {{{#!wiki style="padding:0px; display: inline-table; margin-top:-5px"<tablebordercolor=#FFFFF9><tablealign=center>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회차 년도 우승자 준우승자 점수
1 1988~89 조훈현 녜웨이핑 3-2
2 1992~93 서봉수 오타케 히데오 3-2
3 1996 유창혁 요다 노리모토 3-1
4 2000~01 이창호 창하오 3-1
5 2004~05 창하오 최철한 3-1
6 2008~09 최철한 이창호 3-1
7 2012~13 판팅위 박정환 3-1
8 2016 탕웨이싱 박정환 3-2
9 2020 -
※ : 우승 당시 三단이었으나 중국기원의 규정에 따라 즉시 九단이 되었다.
}}} ||
최철한
崔哲瀚 / Choi Cheol-han
파일:KBA_7791.jpg
직업 바둑기사
소속 한국기원
생년월일 1985년 3월 12일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출신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학력 충암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학부
입단 1997년
단급 九단
한큐바둑 닉네임 bibibig(P)
타이젬바둑 닉네임 열시미,가닥구

1. 개요2. 생애
2.1. 어린시절부터 프로 입단까지
3. 기풍4. 상세5. 라이벌6. 통산 경력

1. 개요

한국바둑리그 사상 최초로 100승을 달성한 한국의 정상급 프로 기사.
한국바둑랭킹 1위를 기록해 본 다섯 명의 기사[1] 중 한 명 [2]
또한 국내 전통의 양대기전인 국수전명인전을 모두 석권한 몇 안 되는[3] 기사이다. [4]
파일:Honeycam 2016-09-17 11-04-05.gif


최철한 九단 한국바둑리그 2016년 세리머니

2. 생애

2.1. 어린시절부터 프로 입단까지

1985년 3월 12일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에서 태어났다. 1991년에 부산 연제구 거제동에서 살며 부산 백양초등학교 1학년 재학하던중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로 이사온 지 1주일 후, 아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싶었던 아버지 최덕순(아마 5단)의 뜻으로 권갑용 도장에 들어가 처음으로 바둑에 입문했다. #1 #2 #3

당시 최철한의 재능에 대해 스승 권갑용은 "초보자 교육부터 시켰는데 보통 아이들은 3, 4개월 걸리는 교육을 1주일 만에 마스터했다.", "1년 만에 핸디캡 1급으로 승급하는 기록을 가지고 있을 만큼 기재가 뛰어났다.", "연구생 6조부터 1조까지 논스톱으로 올라간 기록의 보유자"라고 말했다. #

1995년 이붕배, 김성준배에서 우승하고 해태배에서 준우승 하는 등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를 휩쓸었다.

1997년 5월, 12세 2개월 나이에 단 한 번 도전하여 프로 입단에 성공했다. 이는 역대 최연소 입단기록 4위이다.

3. 기풍

별명은 '독사'. '올인보이'라는 별명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쓰이지 않는 편이다. 보통 프로기사들은 위험부담이 큰 작전을 싫어하고 전투가 일어나도 타협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철한은 모든 것을 한 국면에 걸고 승부를 보려고 아주 지독하고 끈질기가 달려들기 때문이다. 두터운 기풍과 막강한 수읽기를 바탕으로 한 공격력은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굳이 이세돌과 비교하자면, 이세돌은 날카로운 비수로 끊임없이 급소를 찌르고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공격이 날아온다면, 최철한은 모닝스타나 큰 몽둥이를 가지고 대놓고 휘두르는 쪽에 가깝다. 그러나 이런 기풍과 달리 실제 성격은 몹시 온화하고 부드럽다고 한다. 가토 마사오의 전성기 모습과 비슷하다고 한때 일본 바둑계에 소개된 적도 있다.

4. 상세

포스트 이창호 시대의 서막을 연 것이 목진석이라면 최철한과 이세돌은 본격적으로 포스트 이창호 시대를 만들어 나간 기사들이다. 특히 최철한은 최초로 이창호에게 상대전적이 앞섰던 기사로, 국수전 타이틀을 빼앗아 오기도 했다. [5]

파일:090425-yingshi-0000.jpg
2004년 응씨배에서는 창하오 九단한테 3:1로 졌지만 2008년 응씨배에서 이창호 九단을 3:1로 이기고 응씨배 타이틀을 차지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승선하여 남자 단체 [6] 금메달, 혼성 페어 [7]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한국바둑리그 사상 최초로 100승을 달성했다.

후배기사 윤지희 三단과 2012년 6월 결혼을 발표했다. 프로기사 부부 4호이다. 결혼하기까지 순탄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번역 2015~2016 중국 증시 폭락 과정에서 최철한 九단의 만류로 윤지희 三단이 중국 주식 사기를 단념했는데, 이게 바로 최철한 九단 재산을 지킨 일화도 있다. 기사

오른쪽 귀로는 아예 듣지 못한다는데, 왼쪽 귀로 초읽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흰돌 자리를 좋아하는 것과 기풍도 이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다만 이건 초시계를 직접 눌러야 할 때는 해당하지 않으니 확인바람[8]

파일:MG_0321.jpg
2015년 발목 부상을 입는 바람에 3개월 정도 휠체어 신세를 졌다. 이에 조치훈 九단이 생각나게 하는 휠체어 대국이 여러판 나왔다.(...) 위 사진의 상대는 다카오 신지 九단으로 2015년 LG배의 장면이다.

2018년 9월 21일 천부배 A조 16강전에서 천야오예에게 패해 떨어졌다. 11월 23일 농심배 5국에서 판팅위에게 지면서 4연승 허용.

5. 라이벌

동갑내기 라이벌 박영훈 九단과의 관계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국내에서의 입지는 최철한, 세계대회의 입지는 박영훈이 앞서 나간다. 최철한은 박영훈이 해내지 못했던 한국바둑랭킹 1위와 국제전인 초상부동산배에서 한국팀 주장으로서의 활약,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을 달성했다. 반면 박영훈의 세계 대회 성적은 우승 3회[9], 준우승 5회[10]로 우승 2회[11], 준우승 2회인[12] 최철한에 우위에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최철한이 우위였지만 06~09년은 박영훈의 우위[13], 10년도 초중반은 최철한이 다시 성적에서 앞서나가다가 16년부터는 박영훈의 3년 연속 세계대회 결승진출로 앞섰다. 2018년 기준 상대전적은 22승 22패 동률로 호각세.

이창호, 이세돌과 3인 간의 관계도 흥미롭다. 이세돌과 최철한이 한창 두각을 나타낼 때 이창호 다음의 한국 바둑 1인자 계보를 누가 이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최철한은 국내 최고의 전통 기전이자 이창호의 상징과도 같던 국수전을 쟁취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국내 기사 중 최초로 상대 전적에서 이창호를 압도하며 왕좌에서 끌어내렸다. 반면 이세돌은 이창호에게 상대전적도 뒤졌을 뿐더러 큰 대회에서 유난히 발목을 잡혔다. [14] 하지만 최철한은 이세돌에게 상대전적 및 국내대회와 세계대회의 결승무대에서 연거푸 이세돌에게 패배했다. 마치 가위바위보 같은 (최철한>이창호>이세돌>최철한) 이 세 기사간의 경쟁은 이세돌이 랭킹 1위와 세계대회에서 독주하며 끝을 맺었다.

이창호를 1인자 위치에서 끌어내린 사람은 최철한이지만 정작 1인자가 된 이는 이세돌이라는, 최철한 입장에서는 얄궂은 상황.

6. 통산 경력

2003년
제8기 박카스배 천원전 우승

2004년
제47기 국수전 우승
제15기 기성전 우승
제9기 박카스배 천원전 우승
제6회 농심신라면배 한국대표 우승
2004 바둑대상 최우수시기사상

2005년
제48기 국수전 우승
제5회 응씨배 준우승
제16기 기성전 준우승
제18기 후지쯔배 준우승
제2기 전자랜드배 왕중왕전 준우승
제2회 중환배 우승
제10기 GS칼텍스배 우승

2006년
제49기 국수전 준우승
제7회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준우승
제25기 KBS 바둑왕전 준우승
제11기 GS칼텍스배 준우승

2007년
KB국민은행 2006 한국바둑리그 MVP
제18기 기성전 준우승

2008년
제1회 세계마인드스포츠게임 남자단체전 금메달

2009년
제10기 맥심배 우승
제6회 응씨배 우승

2010년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혼성페어 동메달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남자단체 금메달

2011년
제15기 박카스배 천원전 우승
제54기 국수전 우승
제55기 국수전 준우승
제16기 천원전 우승

2012년
제13기 맥심커피배 준우승
제7기 원익배 십단전 우승
2012 olleh배 준우승
제56기 국수전 준우승

2013년
제17기 박카스배 천원전 준우승
제41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우승

2014년
제18기 천원전 준우승
제19기 GS칼텍스배 준우승

2015년
제20기 GS칼텍스배 준우승
제16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우승

2016년
2016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우승

2017년
2017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준우승


[1] 이창호,이세돌,최철한,박정환,신진서[2] 대신 조훈현 9단 전성기에는 한국바둑랭킹 집계가 따로 안 되었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3] 조남철, 김인,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이세돌[4] 국수전명인전은 2016년 이후로 일시 폐지되어 박정환도 명인전 타이틀은 획득하지 못했다.[5] 90년대 이창호의 최전성기에는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을 제외한 한국기사들은 1년동안 국내기전에서 이창호에게 한 판도 못 이긴 적도 있다 흠좀무[6] 이창호, 이세돌, 최철한, 조한승, 강동윤, 박정환[7] 김윤영 기사와 페어를 이뤘다.[8] 한국은 초시계를 직접 눌러야 한다면 초시계를 '검은돌 잡은 사람의 왼쪽-흰돌 잡은 사람의 오른쪽'에 놓는다. 참고로 일본은 흰돌을 잡은 사람이 시계 놓는 자리를 정하기 때문에 초시계 멈추는 단추가 둘 다 하얗다. #[9] 후지쯔배 2회, 중환배[10] 삼성화재배 2회, LG배, 춘란배, 몽백합배[11] 응씨배, 중환배[12] 응씨배, 후지쯔배[13] 최철한은 응씨배 준우승 이후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14] 2003년 LG배 결승전에서 설욕에 성공하지만 2001년 LG배 결승전, 응씨배 4강전 등에서 이세돌은 이창호에게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