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의 기념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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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로 지하배수로 | 인왕산 백운동 계곡 | 태평로2가 지하배수로 |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제40호 | |
인왕산 백운동 계곡 仁王山 白雲洞 溪谷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6-8 외 |
분류 | 자연유산 / 명승 / 자연경관 / 지형지질경관 |
수량 / 면적 | 각자바위 1基, 백운동 계곡부 및 토지 8,675.5㎡ |
지정연도 | 2014년 10월 30일 |
글자 '백운동천(白雲洞川)'을 새긴 바위[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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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계곡.2. 상세
인왕산에서 발원하며, 청계천의 본류인 옥류동천이 시작되는 곳이다. 즉, 청계천의 발원지. '백운동(白雲洞)'이란 이름은 흰(白) 구름(雲)이 뜬 것처럼 아름답다는 의미로 붙은 것이다. 여기서 '동(洞)'은 행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계곡'이란 뜻이다.암벽이 많아 산세가 험하지만, 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조선 전기부터 김종직, 강희맹 등 당대 유명한 문관들이 계곡을 보고 감탄하는 시를 짓기도 했고, 《용재총화》나 《신증동국여지승람》같은 책에서 한성의 다섯 명승지 중 하나로 언급되기도 했다.
정선 作, 〈백운동〉[2] |
고위 관료들이 이곳에 별서를 짓고 살기도 했다. 세조의 동서 이염의와 대한제국 시기에 법부대신을 역임했던 김가진이 대표적이다. 특히 김가진은 계곡 바위에 '백운동천(白雲洞天)'이란 글씨를 써서 새겼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백운장이란 이름의 김가진 별서는, 김가진이 독립운동을 하러 상하이로 망명한 후에는 고위층들이 자주 찾는 요리집으로 변했고 이는 1961년까지 지속되었다.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백운동 계곡에 있는 석탑[3] | 백운동 계곡 각자바위[4] |
[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3]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4]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