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play Entertainment
1. 개요
공식 홈페이지미국의 게임 제작사. 1982년에 브라이언 파고를 주축으로 하여 인터플레이 프로덕션(Interplay Productions)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이후 1998년에 회사명을 현재와 같이 변경하였다. 초기에는 주로 일렉트로닉 아츠를 통해 게임을 발매하였으나, 1990년 무렵부터 직접 퍼블리싱에 뛰어들었다.
2. 상세
1985년 바즈 테일 시리즈를 시작으로, 1987년 폴아웃 시리즈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웨이스트랜드라는 RPG를 개발했으며, RPG만 전문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설립한 블랙 아일이라는 사내 스튜디오에서 폴아웃 2, 발더스 게이트[1][2] 등을 제작, 후기에는 서양 CRPG 명작의 산실로 추앙받았다.CRPG로 유명했지만, 액션 게임 등의 장르도 퍼블리싱을 맡았다. 이 회사가 발매한 RPG 외 장르의 작품들은 어스웜 짐, MDK, 디센트,[3] 레드넥 렘페이지, 배틀 체스, 노멀리티 등이 있다. 유통사로서의 인터플레이의 업적을 두 가지 더 추가하자면 예전에는 「실리콘 & 시냅스」 시절 초기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게임(둘 다 회사가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 어바인 소재)의 유통을 담당한 적도 있다. 또 국산 게임인 타프 시스템(레드덕의 전신)의 낚시광 시리즈 중 하나인 대물낚시광의 해외수출에 있어서 해외 현지 유통을 해준 적도 있다.
1994년 어스웜 짐, 1995년 어스웜 짐 2와 디센트, 1996년 디센트 2, 1997년 MDK와 폴아웃, 1998년 발더스 게이트와 폴아웃 2의 연이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재정난을 겪게 되었다. [4] 결국 1998년부터 프랑스 게임 개발사인 타이터스의 자금 지원을 받게 되었고 2001년 결국 타이터스의 자회사가 되었다. 창립자인 브라이언 파고는 이를 책임지고 2002년 회사를 떠났지만, 이후 인엑자일 엔터테인먼트를 세웠다.[5] 이 시기 인터플레이는 재정난 때문에 자사의 지분이나 권리를 다른 회사에 계속 팔았는데 얼마나 사정이 어려웠는지 당시 신문기사를 바탕으로 확인해보자면,
- 1998년에 파산위기를 맞음. 파산을 피하기 위해 나스닥 상장함.
- 1999년 기업 상황이 악화되자 신규 투자자를 물색하던 중 타이터스(Titus)가 3,500만 달러를 투자해 주주가 됨. 당시 인터플레이의 주가는 주당 2.06달러였는데 타이터스는 주당 4달러라는 후한 조건으로 주식을 매수함. 당시 취득한 주식수는 875만주로서 인터플레이 총주식의 42%에 달하는 것이었음.
- 2000년 1분기 손실이 550만 달러로서 전년도 1분기 손실액 830만 달러보다는 나아졌지만 상장 지속 요건 미달로 2000년 5월 나스닥에서 퇴출 경고를 받음.
- 2000년에는 32개의 게임을 발매했으나 경영 악화로 2001년에는 단 10개의 게임만 출시.
- 2001년 5월 자금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투자자를 찾음. 2001년 3월말 재무제표를 보니 보유 현금은 760만 달러인데 비해 부채는 6,360만 달러에 달함. 내일 파산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 2001년 상반기 2,080만 달러의 순손실 발생. 나중에 2001년 1년치를 결산해보니 4,630만 달러라는 경이적인 손실액 기록.
- 타이터스가 2001년 9월 지분율을 51%까지 취득해서 사실상 장악.신문기사 나중에는 지분율 70%까지 올라감. 이후 타이터스는 구조조정에 착수함.
- 2001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일부의 퍼블리싱 권한을 비방디에게 1,350만 달러에 매각.
- 브라이언 파고는 2002년 1월 대표자리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는 타이터스의 에르베 캉(Herve Caen)이 대신함.
- 2002년 4월 자회사인 샤이니 엔터테인먼트를 4,700만 달러에 매각. 이중 2,600만 달러는 인터플레이의 빚을 갚는데 쓰였다.
- 2003년 말 프로젝트 반 뷰렌을 취소하고 직원을 해고.[6]
이런 상황이다.
과거에 혹자는 브라이언 파고가 다른 회사(타이터스) 경영진과의 사내 정치에 억울하게 물러났다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인터플레이의 경영 위기가 시작된 것은 1998년부터이다. 타이터스 입장에서 보자면 인터플레이가 정말 망해버리면 거기에 투자한 자기들도 막대한 손해가 예상되는 상황.
즉, 인터플레이의 경영 상황은 타이터스가 인터플레이를 지배하기 전부터 총체적인 난국이었고 그 책임을 제공한 사람은 브라이언 파고 자신이었다. 오히려 타이터스가 없었다면 인터플레이는 더 일찍 망했을 것이다.
어쨌든 인터플레이의 경영 위기는 끝나지 않았는데, 2003년 말 프로젝트 반 뷰렌 개발을 취소하고 이듬해인 2004년 블랙 아일 스튜디오를 폐쇄한 후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에게 폴아웃 3, 4, 5 라이선스를 내 주었다. 그러다 2005년 모회사였던 타이터스의 파산으로 인터플레이도 이듬해인 2006년 파산 보호 신청을 했고, 그렇기에 다시 이듬해인 2007년 폴아웃 지적재산권을 베데스다에게 575만 달러에 매각했다. 그리고 폴아웃 지적재산권을 사들인 베데스다 소프트웍스는 인터플레이가 폴아웃 온라인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몇 가지 조건을 들어 라이선스를 내주었다. 싱글 플레이 요소가 전혀 없어야 하고, 3개월 이상 서비스가 지속되어야 하며, 게임기가 아닌 PC용으로 서비스할 것, 게임 개발을 위해 3천만 달러를 확보할 것, 2년 내로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할 것, 4년 내로 개발하고 더 시간이 걸리는 경우에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와 추가 협상을 해야하며,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의 품질 보증을 충족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 계약에 따라 폴아웃 온라인 게임은 프로젝트 V13이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2009년 베데스다 소프트웍스가 정한 2년의 본격적인 개발 기한이 지나버렸고, 베데스다 소프트웍스는 인터플레이가 폴아웃 온라인 게임 개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송을 걸었다. 이 소송의 결과는 베데스다에게 유리하게 났는데, 인터플레이는 폴아웃 구작들의 골드 마스터 소스를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에게 양도할 것, 인터플레이는 폴아웃 온라인 게임 개발을 중지할 것, 그 대가로 베데스다 소프트웍스는 인터플레이에게 200만 달러를 지불할 것 등이었다. 다만 인터플레이의 폴아웃 구작들의 판매는 2013년까지 인정했는데, 다만 수정 및 PC 이외의 다른 기기로의 이식 또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금지하였다. 인터플레이는 폴아웃 구작을 팔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마지막 해인 2013년 연말, GOG.com에 폴아웃, 폴아웃2, 폴아웃 택틱스 세 작품을 모두 무료로 풀어버렸다.
디센트의 경우는 여전히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있고 2008년 1분기 실적 보고에서 후속작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지만, 현재까지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면 더 이상 만들 여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8월 블랙 아일 스튜디오를 다시 만들었다. 하지만 원래 블랙 아일의 핵심 인원이던 크리스 아벨론은 자신과 옵시디언은 그에 대해서 모른다고 하며, 초대 인터플레이를 세웠으며 웨이스트랜드 2를 만든 브라이언 파고도 뭐라 말하기엔 정보가 부족하다고 한다. 즉 핵심 인원이 없는 이름만 블랙 아일인 듯. 링크 동영상(싫어요가 많다)
하지만 프로젝트 V13은 원래 폴아웃 온라인 게임이었으나, 소송에 진 이후 폴아웃의 요소는 전부 제거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을 만들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클래식 폴아웃 시리즈를 만든 제작자들은 옵시디언 등 다른 회사들에서 일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대부분의 올드 폴아웃 팬들은 에르베 캉 인터플레이 CEO를 믿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킥스타터처럼 모금을 했는데 모금자에게 게임을 주는 게 아닌 V13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는 이야기만 해 비난받았다. 그 이후 현재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고 결국 잊혀져 버렸다.
그리고 2016년 9월, 결국 게임 사업을 완전히 정리하려는 것인지 자사의 게임 IP 70개를 매각한다는 뉴스를 발표했다.
바즈 테일 IV를 발매한 날이었던 2018년 9월 18일, 인터플레이 엔터테인먼트의 설립자이자 인엑자일 엔터테인먼트의 CEO인 브라이언 파고는 바즈 테일 IV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 인터플레이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발매 후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했으며, 2018년 11월 11일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엑자일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면서 결국 없던 일이 되었다.
2024년 현재 회사는 살아 있지만, 신규로 발매되는 게임은 없다.
3. 인터플레이 코리아
3.1. 개요
2001년 설립된 인터플레이 엔터테인먼트의 한국지사. 본사 등에서 출시하는 게임을 한국에 정식발매하는 업체. 일부는 발매가 취소되거나 다른 업체에서 유통하게 되었다.[8]2002년, 사명을 버프 엔터테인먼트로 변경했다.
3.2. 유통 소프트웨어 목록
- 발더스 게이트 2 - 쓰론 오브 바알
- 스타 트렉: 스타플릿 커맨드 - 오리온 파이럿츠: 목록 중에서 유일하게 비한글화
- 웜즈 월드 파티
- 폴아웃 택틱스: 브라더후드 오브 스틸
네버윈터 나이츠: 인포그램즈 코리아에서 국내 유통아이스윈드 데일: 하트 오브 윈터: 한글판 출시 취소
[1] 바이오웨어에게 하청을 줘서 실질적으로는 바이오웨어가 담당했다. 발더스 게이트 1편과 폴아웃 2편은 같은 연도(1998년)에 나왔는데, 폴아웃 2 개발 당시에도 인력난, 시간 부족에 시달려서 버그도 제대로 못 잡고 무수한 미완성 컨텐츠를 남긴 블랙 아일이 발더스 게이트까지 공동 제작했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2] 원래 발더스 게이트 게임 시리즈는 던전 앤 드래곤을 보유하고 있는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에게 게임 퍼블리싱 계약을 맺어 포가튼 렐름 세계관을 AD&D2 규칙을 토대로 게임으로 만든 것이다. 실제로 발더스 게이트라는 이름 자체도 포가튼 렐름 내 도시 이름이며, 게임 내 각종 설정이 포가튼 렐름에 정식으로 편입되기도 했다. 다만 2002년 인터플레이 엔터테인먼트의 재정난으로 D&D 게임 퍼블리싱 권한을 인포그램에 넘겨 리메이크 버전인 발더스 게이트 Enhanced Edition들을 발매했다.[3] 원래는 3D 렐름즈에서 유통할 예정이었다.[4] 인터플레이의 재정난은 스톤키프라는 RPG 게임이 실패했던 게 컸다. 1990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였으나 제작이 4년 이상 지연된데다 제작진 규모 및 FMV 도입 등 여러가지 요소로 돈이 많이 든 작품이었는데, 몇몇 장점이 있는 평작 수준의 결과물이 되어 버렸고 판매량도 저조했다. 스톤키프는 한국에서도 동서게임채널에서 한국어화해 정발했다.[5] 그 외에 폴아웃 1편 개발의 주역이었던 팀 케인, 레오나르도 보이야르스키, 제이슨 앤더슨도 폴아웃 2 개발 중 회사를 떠나 트로이카 게임즈를 설립했으나 게임 3개만 내고 해체.[6] 이 해고직원들이 모인 곳이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다.[7] 이 당시 올드 게임 유저들 중에는 베데스다가 싫다고 인터플레이를 응원하는 촌극을 벌이는 사람도 있었는데 정작 폴아웃 프랜차이즈를 베데스다로 팔아치운 당사자가 현재 인터플레이 CEO인 에르베 캉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에르베 캉 CEO를 비난할 수만도 없는 것이 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하게 되면 채무 상환을 위한 회생 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한 이후 그대로 회사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8] 그런데 그 업체인 인포그램즈 코리아가 결국 인터플레이 코리아의 총판이기도 했다(웜즈 월드파티 판매 당시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