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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 제9대 황제 자한다르 샤 جهاندار شاه | |
<colbgcolor=#4A5D23><colcolor=#fff,#fff> 이름 | 미르자 무함마드 무이즈 웃딘 میرزا معزلدین محمد |
출생 | 1661년 5월 10일 |
무굴 제국 데칸[1] | |
사망 | 1713년 2월 11일 (향년 51세) |
무굴 제국 델리[2] | |
재위 기간 | 무굴 제국 황제 |
1712년 3월 29일 ~ 1713년 2월 11일 (11개월) | |
대관식 | 1712년 3월 29일 |
전임자 | 바하두르 샤 1세 (제8대) |
후임자 | 파루크시야르 (제10대, 조카) |
부모 | 아버지 : 바하두르 샤 1세 황제 (1643 ~ 1712) 어머니 : 니잠 바이 (1643 ~ 1692) |
종교 | 이슬람 수니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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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굴 제국의 제9대 황제. 짧은 기간 동안 무굴 제국을 다스리다가 11개월만에 후임인 이복조카 파루크시야르 황제에게 쫓겨났다.2. 생애
자한다르 샤는 1661년 5월 10일에 무아잠 왕자, 후일의 바하두르 샤 1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니잠 바이는 하이데라바드의 대귀족 출신의 고귀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1671년에는 할아버지 아우랑제브 황제에 의해 발크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되었고, 1712년에 아버지이자 황제 바하두르 샤 1세가 사망하자 제위를 두고 형제과 겨루었다. 자한다르 샤는 형제 아짐 우스 샨을 1712년 3월 죽이는 데 성공하고 무굴 제국의 제9대 황제로 즉위했다.자한다르 샤는 상당히 경박한 인물이었다. 그가 재위하는 동안 무굴 궁정에는 무희와 연회가 넘쳐났고 허구한날 왕궁에서 축제를 열었다. 심지어 궁정 무희를 황후로 삼는 등 기행을 벌이며 제국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심지어 아우랑제브의 딸인 지낫 운 니사마저도 이 결정에 반대했다. 민심이 악화되자 그에게 대항하는 인물들도 많이 등장했고 심지어 카르나틱 술탄국의 나와브는 아예 자한다르 샤의 권위를 부정하고 그를 '찬탈자'라고 부르며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의 재위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그가 제위를 두고 싸웠던 이복동생 아짐 우쉬 산(1664 ~ 1712)의 둘째 아들이자 조카이던 파루크시야르가 반란을 일으켜 끝내 그를 몰아냈기 때문. 파루크시야르는 당시 유력한 대귀족인 사이드 형제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자한다르 샤를 쫓아냈고, 자한다르 샤는 1713년 1월 10일 아그라의 전투에서 대패한 다음 사로잡혀 2월 11일까지 궁에 연금당했다. 2월 11일에 파루크시야르가 보낸 전문 암살꾼들이 자한다르 샤를 죽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