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7-13 23:31:22

장미 전쟁(창세기전 시리즈)

1. 개요2. 전개3. 전후4. 실제 역사와 비교

1. 개요

역사상의 장미 전쟁에서 모티브를 따온 창세기전 시리즈의 전쟁.

팬드래건 왕국의 성왕 라시드 팬드래건 사후, 당시 태자였던 헨리가 왕위에 올랐으나, 어머니인 로빈의 신분 문제,[1] 그리고 우드스톡 팬드래건의 실종에서 비롯된 첫째 왕자가 아닌 둘째 왕자의 왕위 계승 등으로 인해 올리비아에게서 태어난 왕자 및 그를 지지하는 귀족 세력들이 반기를 들면서 시작된 전쟁.[2]

로빈 태생 왕자들이 주축이 된 콘웰파는 붉은 장미를, 올리비아 태생 왕자들이 주축이 된 버몬트파는 백장미를 사용하여 장미 전쟁이란 명칭이 붙었다.

2. 전개

전쟁 초반 헨리가 버몬트파의 장남 조지를 살해하면서 콘웰파가 우위를 점하는 듯 보였으나, 버몬트의 차남 윌리엄, 그리고 삼남 리처드가 어머니의 고국인 비프로스트 공국으로 도망쳐 모젤 2세에게 도움을 청했고, 공국군을 끌고 와 반격하여 결국 헨리가 윌리엄에게 살해당하고 콘웰성[3]은 함락, 버몬트파의 승리로 윌리엄이 즉위하며 1차 장미 전쟁은 종결되었다.

한편, 우드스톡의 아들로 본래 콘웰파였으나, 한족과의 혼혈이라는 이유로 모두에게 배척받았던 클라우제비츠만이 콘웰파 왕족의 남자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제국으로 망명한다. 켈리 팬드래건은 아예 언급이 없어서 알 수 없다. 클레어 팬드래건은 뒤늦게 창세기전4에서 제국장교 앤 밀레니엄과 동일인물이란 것이 밝혀졌다.

윌리엄이 죽고, 리처드가 그의 장자인 필립의 실종을 이유로 국왕에 즉위하자 클라우제비츠는 이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자기가 팬드래건의 국왕이 되면 버몬트파인 엘리자베스 팬드래건과 결혼하여 장미 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발언을 한다. 또한 리처드 역시 자신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려고 한다.[4] 이에 엘리자베스는 장미의 전쟁을 종식시킬 열쇠로 여겨져 장미의 신부로 불리게 된다.

클라우제비츠는 샤른호스트라는 위장 신분으로 용자의 무덤에 기거하면서 엘리자베스가 스스로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돕고, 서커스단 '템페스트'를 조직하여 리처드의 눈을 속이고 팬드래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지역의 영주들을 설득하여 리처드에게서 돌아서게 했다. 이에 샤른호스트와 엘리자베스를 중심으로 한 반 리처드 연합이 결성되고, 게이시르 제국의 지원[5]을 얻은 반 리처드 연합이 승리, 제국에서 돌아온 클라우제비츠가 엘리자베스와 결혼함으로써 장미 전쟁은 진정한 종결을 맞게 된다.

3. 전후

하지만 이때 귀족들이 콘웰파와 버몬트파로 나뉘어 싸운 것이 차후 버몬트 대공과 헤이스팅스 공작 사이의 내전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100% 그런 것은 아니지만 창세기전3 메뉴얼의 내용에 따르면 버몬트에게는 구 콘웰파 귀족들이, 헤이스팅스 공작에게는 구 버몬트파 귀족들과 리처드 잔당들이 가세했다고 한다. 버몬트 대공이 헤이스팅스 공작과 언쟁할 때 버몬트와 친분이 있는 아델라이드 우드빌이 대공을 비호하자 헤이스팅스 옆에 있던 노포크가 '흥! 이래서 콘웰파는 어쩔 수 없다니까!'고 말한 것을 보면 서로 앙금이 상당히 오래 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버몬트 대공이 내전이 끝난 후 헤이스팅스편에 섰던[6] 귀족들은 사피 알 딘이 살라딘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모두 처형되었다고 하니 결과적으로 줄을 잘못 선 버몬트파 귀족들은 멸족당했다.[7][8]

그러나 이 결과는 왕국과 안타리아 동부의 장래에 있어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는데, 버몬트 대공이 추진한 투르 원정은 표면적으로는 아스타니아의 복수를 내걸었지만 진짜 의도는 '투르에서 목숨을 잃은 을 위한 복수'라는 자신의 개인적인 원한을 푸는 게 목적이었고, 아스타니아 멸망은 어차피 남의 나라 일인 데다 실버애로우 동맹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상황이었고, 국익의 관점에서도 득이 안되는 전쟁이었다. 때문에 군수 산업 종사자인 크리사오르 영지의 케이트 호크도 '우리도 이 전쟁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겠지만 무의미하게 병사들의 목숨을 희생시키고 싶진 않습니다'하고 반대한 바 있었다. 버몬트 대공이 헤이스팅스를 처형한 후, 커티스를 멸망시키고[9] 투르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엄청난 국력이 소비되었고, 투르에서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버몬트 대공도 백치가 되어버린 결과를 보면 헤이스팅스가 반대한 것에도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10]

비프로스트에게는 나라의 명운을 가른 두 번째 패착이었다. 영토 확장을 노리던 야심가인 모젤 2세의 외교는 후원하는 세력이 최종적으로 패배하는 마이너스의 손이나 다를 바 없었다. 첫 번째 패착은 게이시르 분열기에 체사레 보르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비프로스트군을 제국에 파병한 것. 이는 제피르 팰컨알프레드 프레데릭의 연합으로 이어졌고, 체사레는 제피르 팰컨에 처단당했다. 게이시르 제국은 알프레드의 딸인 크리스티나 프레데릭이 황제로 즉위하며 새로이 일어섰다. 또, 장미전쟁 당시에는 리처드 팬드래건과 상부상조 관계였는데, 리처드에게 공국군을 지원하고, 모젤은 비프로스트 내전에서 리처드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리처드는 샤른호스트-엘리자베스가 이끄는 귀족연합에 패배하고 제국으로 망명간 클라우제비츠 팬드래건이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신제국의 비프로스트 정벌을 방관했다. 이것이 두 번째 패착으로, 특히 클라우제비츠는 과거 제피르 팰컨의 군사로서도 활동했기에 모젤에게 호의적일 이유가 전혀 없는 인물이었다.

4. 실제 역사와 비교

역사상의 장미전쟁에서 모티브를 따온 만큼 겹치는 설정과 인물이 많은 편. 실제 역사상 인물들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447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447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 사이럽스의 도적 출신이었다. 하지만 창세전쟁 당시 왕국군의 주력이 용병단이었다보니 로빈이 이들의 지지를 받아 왕비가 되는 것이 가능했다.[2] 원래 팬드래건 왕국의 기존 귀족들은 이올린 왕녀가 게이시르 제국 원정을 갔다가 상당수가 갈려 나갔고 그 공백을 메꾼 것이 바로 그레이 스케빈저가 이끌던 용병 기사단이다. 즉, 버몬트 파는 기존 귀족 세력이 많고 콘웰 파는 용병 기사단에서 공을 세운 신흥 세력이다. 로빈 왕비 역시 용병 기사단 출신이지만 사실은 사이럽스에서 제국군에게 도적질하다 튄 기사이다. 반대로 올리비아 왕비는 비프로스트의 왕녀다. 다만 이 전쟁의 도화선 및 1차적인 명분은 라시드의 뒤를 이어 왕이 된 헨리 팬드래건(라시드 팬드래건의 차남, 콘웰 파)이 투르 제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한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버몬트 집권기에는 구 버몬트파 귀족들이 투르와의 전쟁을 반대해서 버몬트 대공에게 반기를 들었다.[3] 템페스트 시점에서 콘웰성에 가면 폐허가 되어있다.[4] 이 부분이 템페스트의 시작 부분이다.[5] 게이시르 제국이 개입하면 내정간섭이 될 여지가 있지만 이미 버몬트파가 외세인 비프로스트를 끌어들임으로서 명분이 갖춰졌다.[6] 물론, 버몬트 대공은 헤이스팅스 공작과의 최종 결전 전에 싸움에서 빠지거나 항복한 자들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항복하지 않고 헤이스팅스와 끝까지 함께 했던 자들은 도망친 그리피스를 빼고 모두 죽었다고 한다.[7] 물론 케이트 호크처럼 줄을 갈아타서 살아남은 버몬트파 귀족들도 많다. 다만 호크 가문은 원래 콘웰파였다.[8] 사실 헤이스팅스의 편을 든 쪽에 버몬트파 귀족들이 대다수이긴 했지만 버몬트 대공 편에도 버몬트파 귀족들이 없지는 않았다. 당장 아스트럴 스태포트와(아델라이데 우드빌과 둘 중 한 명을 선택해 구출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엘핀스톤이 대표적인 버몬트파 귀족이다.[9] 이 일 이후로 명목상으로만 유지되었던 실버애로우 동맹은 완전히 와해되었다고 할 수 있다.[10] 물론 버몬트 대공은 그 이전부터 록슬리와 함께 중앙 집권 국가로의 전환을 계획하고 있었는지라, 그 점에 있어서 헤이스팅스파의 심기를 건드린 것도 있긴 했다.[11] 다만 실질적으로 템페스트는 클라우제비츠파와 리처드파의 대결이었다. 사실 리처드 팬드래건의 폭정으로 기존의 버몬트파도 불만이 많았기 때문.[12] 실제로 보면 클라우제비츠파에는 버몬트파도 많이 있었고 리처드파는 해외에서 온 세력들이 주축이었다.[13] 에드워드 5세의 동생으로 리처드 3세에 의해서 에드워드 5세와 함께 런던 탑에 유폐되었다.[14] 에드워드 5세와 요크 공 리처드의 누이. 후에 랭커스터 가문의 방계인 헨리 튜터와 결혼하면서 장미 전쟁이 끝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