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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철/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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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구종

1. 개요

정민철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 다룬 문서.

2. 플레이 스타일

내가 받아 본 직구 중 최고는 정민철
- 박경완
우완 정통파 투수로, 전성기 시절 주무기는 빠른 공. 기록으로 확인되는 최고 구속은 149km/h 이다.

사실 전성기 정민철의 강점은 구속보다도 구위 자체였다. 테일링이 좋은, 소위 말해서 공 끝이 좋은 타입. 즉, 원조 돌직구. 동시대 선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대 최고의 구위로 평가 받는다. 당시 심판들이 꼽은 가장 좋은 구위의 선수로 김상진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박경완이종범이 본인이 경험한 최고의 공으로 정민철의 공을 꼽았고, 전성기 정민철의 볼끝은 임창용오승환보다 더 좋다고 평가하였다.

전성기 슬라이더와 커브[1], 포크볼 등 당시 언론에서 언급되었던 변화구의 레퍼토리 자체는 다양했으나, 커브를 제외하면 어느 하나 주 무기라고 할 수준은 아니었다. 철저하게 빠른 공 위주로 던지되 유인구로 커브를 써먹던 전형적인 투피치 스타일. 제구력이 탁월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칠 테면 쳐보라고 가운데로 팡팡 꽂아 넣었던 탓에 볼넷이 상당히 적었다.[2]스태미너도 좋아서 완투를 밥 먹듯이 한 전형적인 우완 정통파 파이어볼러 이닝이터 선발투수.

커브볼러로 유명한 김원형과 비교를 하자면, 김원형은 패스트볼과 커브의 구속-궤적이 비슷한 것을 이용했다면 정민철은 확실한 패스트볼과 그 패스트볼을 뒷받침할 수 있는 커브를 사용했다는 것.

다만 2000년대 이후로 패스트볼 구속과 구위가 급격히 떨어진 탓에 변화구와 커맨드(제구력) 위주의 기교파 투수로 폼을 바꿔야 했다. 커터 슬라이더 체인지업 포크볼 등등 온갖 변화구란 변화구는 다 던지며 말년을 보냈다. 선수 시절 후반기에 사용한 주 무기는 커브였는데, 본인 스스로가 너클커브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탓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3. 구종

3.1. 포심 패스트볼

<colcolor=#FFF>
파일:정민철141.gif
1999년 한일 슈퍼게임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상대 141km/h 포심

3.2. 커브볼

<colcolor=#FFF>
파일:108번뇌커브.gif

3.3. 체인지업

<colcolor=#FFF>
파일:정민철써체.gif
1999년 한국시리즈 김응국 상대 122km/h 체인지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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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팔번뇌 커브'라고 할 정도로 위력이 좋았다. 140Km/h 대에 패스트볼을 던진 후 낙차폭이 큰 100km/h대의 슬로커브를 던져서 타자들을 많이 고뇌시켰다. 이 슬로커브 말고도 12시에서 6시로 낙차 크게 떨어지는 파워커브도 보유했다.[2] 이 때문인지 은퇴해서도 칠테면 쳐봐라 라는 식의 투구를 하는 투수들 선호하는 듯하다. 김혁민을 두고 "얘는 털려도 정면승부 하잖아. 얘좀 보고 배워."라고 말할 정도였으며 별로 혼내지도 않았다고 한다.[3] 위 영상에 대해 본인이 밝히길, 다음해 일본 진출을 목적으로 체인지업을 조금씩 연습을 했었으나 자신이 없어서 정규시즌에는 봉인하고 있었는데,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포심, 커브 투피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이때 꺼내들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