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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07:05:26

정예선 미개 발언 논란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과정3. 비슷한 발언들

1. 개요

정몽준의 아들 정예선페이스북에서 국민이 미개하다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된 사건.

2. 과정

당시 강남대성학원에서 재수하던 중이던 정몽준의 막내 아들 정예선이 2014년 4월 18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다.
파일:attachment/미개/Example.jpg
위의 글은 국개론, 국까, 시민의식 비하 등의 문제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논란이 되었다. "이 나라는 미개해서 그렇다."는 식의 자국 혐오가 담긴 데다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서 했던 발언인 만큼 수많은 사람들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갔다.[1]

추가로 그의 어머니까지 "아들의 발언은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시기상 좋지 않았다"고 발언해 아들과 마찬가지로 구설수에 휩싸였다. 동료 의원들은 그걸 또 틀린 말이 아니라고 맞장구쳤다고 한다.

결국 정예선의 이 발언을 한 직후 세월호 유가족 측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하여 이에 정몽준 의원이 아들을 데리고 직접 유가족들에게 찾아가 머리 숙여 사과하며, 간신히 고소가 취하되기에 이르렀다.

3. 비슷한 발언들

의외로 한국 사회에 대해 정예선과 비슷한 소리를 했던 사람들은 옛날에도 많이 존재했다. 구한말 조선인의 의식 수준을 질타했던 유길준, 민족개조론이광수윤치호, 안창호, 서재필, 박중양 등이 그런 사례.

위에 언급된 인사들 중 유길준안창호, 서재필을 제외하면 거의 국개론으로까지 발전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 일제 통치 협력에 앞장섰다. 물론 이들은 대놓고 미개하다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취지의 지적들을 남겼다. 조선총독부시세민도론이라는 억지 논리로 "조선인들의 민도가 낮으니 그에 맞게 차별대우를 해도 된다"는 식민통치 정당화 방식으로 써먹었다. 일본이 개화기에 심어놓은 씨앗이 꽃을 피워 친일파와 식민통치 정책으로 열매를 거둔 것이다.

정몽주니어의 발언이 있기 전인 2011년에 박근혜 정부의 총리 후보자이자 언론인이었던 문창극온누리교회에서 강연하며 "조선 민족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 것은 이씨조선 시대부터 게을렀기 때문"이라며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른 것이다.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것이 조선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다. 이를 고치기 위해 하나님이 일본으로 하여금 식민통치를 하게 했다"고 주장한 것이 2014년에 재발굴되어 큰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문창극은 총리 후보에서 낙마했다.

2년 뒤인 2016년 7월에는 정몽주니어의 연세대학교 동문인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해 비슷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디시위키정몽주니어 문서에서는 이 과정에 대해 우스갯소리로 "정몽주니어가 후쿠자와 유키치유길준에게 영향을 받아 개똥철학 이론을 펼친 것을 나향욱이 다시 영향 받았다"고 서술했다.

물론 (타당성을 떠나) 정예선의 망언, 그리고 나향욱의 망언은 당연히 차원이 다르다. 정예선의 발언의 경우 당시 고작 고등학교를 졸업해 갓 성인이 된 사람이 자신의 SNS에 되는 대로 쓴 글에 불과하지만 발언자가 재벌이자 서울시장 후보인 정몽준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여파가 생각보다 더 커진 것이지만, 나향욱은 고위공직에 있다는 작자[2]가 그런 되도 않는 특권의식과 선민의식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

2017년에는 자유한국당 충북도의원이었던 김학철이 지역구인 중부권 폭우 상황을 외면하고 유럽으로 외유성 출장을 나갔다가 국민들의 비난 여론에 직면하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국민들이 레밍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만만한 게 지방의원이냐고 되려 버럭하다가 후폭풍으로 정치 인생을 말아먹었다.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훈민정음을 반포하려던 세종대왕에게 "어차피 무지한 백성들은 교화가 안 되는데 그깟 글자 만들어서 뭐하냐"고 대들던 정창손이 있다. 당연하지만 파직됐다. 위의 사례들과는 달리 정창손은 진짜로 백성에 대한 선민의식에 찌든 사람으로, 가장 나향욱과 비슷한 사람이었다. 정창손을 비롯한 조선의 양반 및 사대부들은 단순히 백성들이 교화가 안 된다는 이유로 훈민정음을 반대하였던 것이 아니다. 훈민정음이 반포되고 평민들의 식자율이 높아져 생각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는 속내를 품고 있었음이 분명하다.[3]

사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교육받은 기득권 계층이 일반 대중에 대해 선민의식을 가지다 못해 '무지한 대중'이라며 멸시하는 것은 현대적인 민주사회가 형성되기 전까지도 흔하디 흔했던 엘리트주의의 전형적인 현상으로, 어느 나라에서나 보편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한 예로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이었던 필립 마운트배튼 공작은 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님에도 본인 의도와 다르게 일반 대중이나 개발도상국 입장에서 기분 나쁠 만한 발언을 여러 번 하여 문제가 된 바 있으며 옆나라어떤 총리양반은 자국 노인들에게 돈 아끼지 말고 돈 좀 쓰라면서 "언제까지 살아있을 셈이냐"라고 하기도 했다. 심지어 자민당의 당시 정책이 노년 세대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시피했는데 저런 말을 했다는 것은 노년 세대를 늙어서 쓸모없으니 이제 그만 사회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존재로 보았다는 의미이다. 정작 본인은 80이 넘은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막후 실세 노릇까지 하고 있다.


[1] 글 중 '국무총리가 물세례 맞은 것'은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세월호 사고 다음날 새벽에 정홍원 총리가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진도체육관에 방문해 구체적인 구조 계획도 없이 "책임있게 하겠다"는 형식적인 소리를 하는 보여주기식 행정에 분노가 폭발한 실종자 가족들이 물병을 던진 것이다.# 즉, 전복 직후 배 안에 생존자들이 아직 있다고 알려진 시점이었는데(실제로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이때 이미 전부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어쨌든 이 시점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대부분 이들이 살아 있다고 믿고 있었다.) 가족들 입장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구조작업을 해도 모자란 시점에 총리가 찾아와서 뻔한 얘기만 하며 최선을 다하는 시늉만 내니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 실제로 세월호 침몰 사고는 노화하고 마개조한 선박 문제는 넘어간다 쳐도 구조 과정 자체가 하나부터 열까지 수준 이하였던 비극이었다. 이성적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피해자 가족이 슬픔과 분노가 폭발한 것을 두고 "국민의식이 미개해서 그렇다"면서 비난한 것이다. 자식의 목숨이 위기에 빠졌는데 이성적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2] 무려 2급(이사관)에 해당되는 직책이었다. 고용안정성이 보장되는 공무원의 급수가 2급까지다.[3] 같은 이유로 현재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남미, 동유럽개발도상국에서는 지역 유지, 토호 등 기득권 세력들이 시스템의 변화와 개혁에 대해 회의적이고 국민들을 교육하고 계몽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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