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신라문서가 처음 발견된 정창원 신라 유기그릇.
1. 개요
통일신라 시기에 작성된 공문서 2장으로 1933년, 일본 도다이지 쇼소인에서 유기 그릇의 일종인 '좌파리가반'(佐波理加盤)[1]을 정리하던 중 포개진 그릇 사이에서 꼬깃꼬깃 접혀진 통일신라시대 공문서 2장이 발견되었고, '제2 신라문서'로 명명됐다.제2신라문서인 이유는 이보다 앞서 민정문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민정문서를 제1신라문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소개
이런 신라 공문서가 바다건너 일본에서 발견된 것은 신라에서 열도로 운송할 좌파리가반을 포장하는 과정에서 제2 신라문서가 충격 완화재로 사용됐기 때문이었다. 즉 공문서로 사용한 이면지를 구겨서 택배의 뽁뽁이 용도로 사용했다고 보면 된다.신라에서 이 문서가 작성된 장소는 '파천촌'으로 기록되어있는데,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로 추정된다고 한다.
통일신라 지방사회 구조를 파악할 1차 사료로 엄청난 관심을 모았던 민정문서와 달리 제2신라문서는 역사 전공자들한테도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다. 분량이 적고 해독이 어렵기 때문. 소수의 구결 연구가에게만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3. 내용
그 내용은 앞면과 뒷면으로 나뉘는데 앞면에는 지역 진상물인 공물(貢物)에 관한 내용이 있다. 관청에서 말린 돼지고기와 말고기의 상태를 점검하고, 지방 마을로부터 쌀과 콩을 매달 상납받은 것을 기록했다. 돼지고기는 꼬리 부분은 상납받았지만 유통 과정에서 더럽혀져 버렸다고 한다.뒷면 내용은 해석이 어렵지만 벼를 도정한 것, 관리 급여인 녹봉(祿俸)에 대한 내용이 기록된 것으로 대략적으로 파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