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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第2回衆議院議員総選挙 | ||||||||||
{{{#!wiki style="margin: -7px -12px" | 1890년 7월 1일 1회 중원선 | → | 1892년 2월 15일 2회 중원선 | → | 1894년 3월 1일 3회 중원선 | }}} | ||||
투표율 | 91.59% ▼ 2.14%p | |||||||||
선거 결과 | ||||||||||
<rowcolor=#2D3865,#CFA547> 정당 | 지역구 | 총합 | 비율 | |||||||
[include(틀:글배경br, 배경색=#f15b6c, 사이즈=.9em, 글자색=#ffffff, 내용=입헌자유당)] | 94석 | 94석 | 31.3% | |||||||
''' 중앙교섭회 ''' | 81석 | 81석 | 27.0% | |||||||
[include(틀:글배경br, 배경색=#d71345, 사이즈=.9em, 글자색=#ffffff, 내용=입헌개진당)] | 38석 | 38석 | 12.7% | |||||||
''' 독립구락부 ''' | 31석 | 31석 | 10.3% | |||||||
''' 긴키구락부 ''' | 12석 | 12석 | 4.0% | |||||||
[include(틀:글배경br, 배경색=#808080, 사이즈=.9em, 글자색=#ffffff, 내용=무소속)] | 44석 | 44석 | 14.7% |
[clearfix]
1. 개요
1892년 2월 15일에 치러진 중의원 의원 총선거.2. 배경
1890년의 1회 중원선 이후 야마가타 아리토모 내각과 이당(吏党)[1]은 번벌(藩閥) 중심의 정치를 추구했고, 이에 반해 민당(民党)은 경비절감과 감세로 국민생활을 재건하자는 민력휴양론(民力休養論)을 내세워 예산안을 삭감하는 등 대립했다. 다만 양 당파가 별다른 충돌 없이 탐색전을 계속했고, 정부로서도 첫 의회가 해산되는 것은 대내외적으로도 좋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해산되지 않고 1891년 3월에 회기를 마쳤다.1891년 5월 6일에 제1차 야마가타 내각은 총사퇴하고, 제1차 마쓰카타 마사요시 내각이 들어섰다. 그러나 5월 11일에 오쓰 사건이 터지면서 해군・농상무・체신대신을 제외한 모든 장관이 사퇴함에 따라 추진력이 크게 약해졌고, 이는 동년 11월에 열린 제2회 제국회의에서 민당이 정부에 대한 반대의견을 더욱 적극적으로 내는 계기가 되었다. 11월에는 정부가 전년대비 650만 엔 증액된 예산안을 제출했는데, 민당측에서 이를 비판하며 오히려 해군 경비 800만을 삭감하는 안을 내놓았다. 이에 해군대신 가바야마 스케노리(樺山資紀)는 12월 22일에 국회에 출석하여, "(민당이) 번벌정부니 뭐니 해도 4천만 인민의 안녕을 지킨 것은 현정부이다."라는 내용의 발언을 하자, 민당측에서는 즉각 "무례 천만(無礼千万)한 소리", "해군대신은 퇴장하라", "제국의회를 뭐라고 생각하는거냐" 등의 반발이 이어졌다. 이 사건을 만용연설(蛮勇演説)이라 하는데, 다수파였던 민당은 이에 자극받아 결국 삭감된 개정예산안을 채택한다.
수세에 몰린 마쓰카타 수상은 결국 12월 25일에 중의원을 해산시켰고, 1892년 2월 15일에 두 번째 중원선이 치러지게 되었다.
3. 제도
선거구, 선거권, 피선거권, 임기는 1회 중원선과 같았다.4. 선거 결과
정당 | 의석수 | |||
입헌자유당 | 94 | |||
중앙교섭회 | 81 | |||
입헌개진당 | 38 | |||
독립구락부 | 31 | |||
긴키구락부 | 12 | |||
무소속 | 44 | |||
전체 | 300 | |||
<colbgcolor=#2D3865> 유권자 수 | 434,594명 | |||
투표자 수 | 398,036명 | |||
투표율 | 91.59% | |||
입후보자 수 | 900명 | |||
선출인원 | 300명 |
5. 선거 후 상황
5.1. 의회 구성
정당 | 의석 | ||
이당(吏党) | 124 | ||
중앙교섭회(中央交渉会) | 81 | ||
독립구락부(独立倶楽部) | 31 | ||
긴키구락부(近畿倶楽部) | 12 | ||
민당(民党) | 132 | ||
입헌자유당(立憲自由党) | 94 | ||
입헌개진당(立憲改進党) | 38 | ||
무소속 | 44 | ||
전체 | 300 |
- 이당(吏党)은 선거 전에 비해 40석이 증가했고, 민당(民党)은 39석이 감소했다.
5.2. 보궐선거 및 경정
1894년의 3회 중원선 이전까지 총 21개 선거구에 대해 보궐선거(補欠選挙)가 치러졌으며, 사유로는 임기 중 사망이 8건, 사임이 13건이었다. 또한 당선소송에서의 당선무효 결정으로 인하여 3개 선거구, 4개 의석에 대해 재판소(법원)의 경정(更正)이 이루어졌다.6. 지역별 결과
6.1. 도호쿠
지역 | 중앙교섭회 | 독립구락부 | 긴키구락부 | 입헌자유당 | 입헌개진당 | 무소속 | 전체 |
아오모리현 | 0 | 0 | 0 | 3 | 0 | 1 | 4 |
이와테현 | 3 | 0 | 0 | 1 | 1 | 0 | 5 |
미야기현 | 1 | 1 | 0 | 1 | 0 | 2 | 5 |
아키타현 | 1 | 0 | 0 | 4 | 0 | 0 | 5 |
야마가타현 | 5 | 0 | 0 | 0 | 0 | 1 | 6 |
후쿠시마현 | 0 | 0 | 0 | 4 | 0 | 3 | 7 |
- 이당이 11석, 민당이 14석을 획득하여 민당이 약간 우세하였다.
6.2. 간토
지역 | 중앙교섭회 | 독립구락부 | 긴키구락부 | 입헌자유당 | 입헌개진당 | 무소속 | 전체 |
이바라키현 | 0 | 1 | 0 | 4 | 1 | 2 | 8 |
도치기현 | 0 | 0 | 0 | 4 | 1 | 0 | 5 |
군마현 | 0 | 0 | 0 | 4 | 0 | 1 | 5 |
사이타마현 | 1 | 0 | 0 | 3 | 3 | 1 | 8 |
치바현 | 0 | 1 | 0 | 7 | 1 | 0 | 9 |
도쿄부 | 4 | 1 | 0 | 0 | 4 | 3 | 12 |
가나가와현 | 0 | 0 | 0 | 6 | 1 | 0 | 7 |
- 이당이 8석, 민당이 39석을 획득하여 민당이 우세하였다.
6.3. 주부
지역 | 중앙교섭회 | 독립구락부 | 긴키구락부 | 입헌자유당 | 입헌개진당 | 무소속 | 전체 |
니가타현 | 0 | 1 | 0 | 7 | 5 | 0 | 13 |
도야마현 | 1 | 4 | 0 | 0 | 0 | 0 | 5 |
이시카와현 | 2 | 1 | 0 | 3 | 0 | 0 | 6 |
후쿠이현 | 0 | 0 | 0 | 3 | 0 | 1 | 4 |
야마나시현 | 2 | 0 | 0 | 0 | 0 | 1 | 3 |
나가노현 | 2 | 0 | 0 | 3 | 1 | 2 | 8 |
기후현 | 5 | 0 | 0 | 0 | 0 | 2 | 7 |
시즈오카현 | 0 | 0 | 0 | 4 | 4 | 0 | 8 |
아이치현 | 5 | 3 | 0 | 1 | 0 | 2 | 11 |
- 이당이 26석, 민당이 31석을 획득하여 민당이 약간 우세하였다.
6.4. 긴키
지역 | 중앙교섭회 | 독립구락부 | 긴키구락부 | 입헌자유당 | 입헌개진당 | 무소속 | 전체 |
미에현 | 1 | 2 | 0 | 1 | 2 | 1 | 7 |
시가현 | 3 | 0 | 0 | 0 | 0 | 2 | 5 |
교토부 | 0 | 1 | 0 | 1 | 0 | 5 | 7 |
오사카부 | 0 | 0 | 9 | 1 | 0 | 0 | 10 |
효고현 | 0 | 0 | 3 | 6 | 3 | 0 | 12 |
나라현 | 0 | 4 | 0 | 0 | 0 | 0 | 4 |
와카야마현 | 0 | 5 | 0 | 0 | 0 | 0 | 5 |
- 이당이 28석, 민당이 14석을 획득하여 이당이 우세하였다.
6.5. 주고쿠
지역 | 중앙교섭회 | 독립구락부 | 긴키구락부 | 입헌자유당 | 입헌개진당 | 무소속 | 전체 |
돗토리현 | 0 | 2 | 0 | 1 | 0 | 0 | 3 |
시마네현 | 0 | 4 | 0 | 2 | 0 | 0 | 6 |
오카야마현 | 0 | 0 | 0 | 3 | 1 | 4 | 8 |
히로시마현 | 9 | 0 | 0 | 0 | 1 | 0 | 10 |
야마구치현 | 6 | 0 | 0 | 0 | 0 | 1 | 7 |
- 이당이 21석, 민당이 8석을 획득하여 이당이 우세하였다.
6.6. 시코쿠
지역 | 중앙교섭회 | 독립구락부 | 긴키구락부 | 입헌자유당 | 입헌개진당 | 무소속 | 전체 |
도쿠시마현 | 1 | 1 | 0 | 1 | 1 | 1 | 5 |
카가와현 | 0 | 0 | 0 | 2 | 3 | 0 | 5 |
에히메현 | 0 | 0 | 0 | 3 | 3 | 1 | 7 |
고치현 | 0 | 0 | 0 | 4 | 0 | 0 | 4 |
- 이당이 2석, 민당이 17석을 획득하여 민당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였다.
6.7. 규슈
지역 | 중앙교섭회 | 독립구락부 | 긴키구락부 | 입헌자유당 | 입헌개진당 | 무소속 | 전체 |
후쿠오카현 | 8 | 0 | 0 | 1 | 0 | 0 | 9 |
사가현 | 4 | 0 | 0 | 0 | 0 | 0 | 4 |
나가사키현 | 5 | 0 | 0 | 2 | 0 | 0 | 7 |
구마모토현 | 7 | 0 | 0 | 1 | 0 | 0 | 8 |
오이타현 | 3 | 0 | 0 | 1 | 1 | 1 | 6 |
미야자키현 | 0 | 1 | 0 | 1 | 0 | 1 | 3 |
가고시마현 | 4 | 0 | 0 | 2 | 0 | 1 | 7 |
- 이당이 32석, 민당이 9석을 획득하여 이당이 우세하였다.
[1] 1차 중원선에 따른 다수당은 민당(民党)인 입헌자유당(立憲自由党)이었으나, 다이쇼 데모크라시 전까지는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을 원로의 추천을 받아 천황이 임명했기 때문에 제1당이 내각을 장악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