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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감국 | |
<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명 제12대 정강왕 주형가 | 朱亨嘉 | |
시호 | 없음 |
연호 | 흥업(興業, 1645) |
성 | 주(朱) |
휘 | 형가(亨嘉) |
부왕 | 정강영목왕 주이호(朱履祜) |
모비 | 정강영목왕비 |
생몰 | ? ~ 1645년 4월 |
재위 | 명 정강왕 |
1638년 ~ 1646년 4월 | |
남명의 감국 | |
1645년 ~ 1646년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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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명나라의 황족이자 남명의 비정통 황제.명나라의 추존 황제이자, 태조 홍무제 주원장의 부친이었던 인조 순황제 주세진(주오사)의 손자인 주수겸(朱守謙)의 10대손이었다. 주형가는 선조들의 정강왕위를 계승하며 지내왔다. 남명의 감국(監國)으로서의 재위 기간은 1645년이었다.
2. 생애
주형가는 명나라의 번왕 작위를 대대로 세습했으며, 그의 아버지는 주이호였다. 1645년 청군에게 남경이 함락된 후 융무 원년(1645년) 8월 3일 양국위(楊國威)와 고혁(顧奕)의 지지하에 감국을 칭하고, 흥업(興業)으로 개원했다. 오주(梧州, 우저우)의 융무제[1]는 주형가의 황제 참칭을 전해 듣고는 진방전(陳邦傳)에게 방비를 돕게 하고, 주형가가 참칭한 곳의 토사(土司)들에게 주형가를 따르지 말라고 전했다.이후 정괴초(丁魁楚)가 오주에서 군대를 보내 주형가를 공격했고, 주형가는 도망가다가 붙잡혀 1646년 복건성에 끌려가 그해 4월에 처형당했다. 그의 아들이었던 석도(주도제)는 무창(武昌)으로 도망쳐 한동안 승려 생활을 하다가 남명이 멸망하자 화가로 활동했다. 중국에서는 석도가 아버지 주형가보다 훨씬 유명하다.
3. 가계도
- 부 : 주이호(朱履祜) - 정강영목왕(榮穆王)
- 정강왕 주형가
- 아들 : 주도제
- 아들 : 주원제(朱原濟)
[1] 남명의 제2대 황제 주율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