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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남명 제2대 황제 융무제 | 隆武帝 | |
묘호 | 소종(紹宗) |
시호 | 배천지도홍의숙목사문열무민인광효양황제 (配天至道弘毅肅穆思文烈武敏仁廣孝襄皇帝) |
봉호 | 당왕(唐王) → 남양왕(南陽王) → 당왕(唐王) |
연호 | 융무(隆武) |
성 | 주(朱) |
휘 | 율건(聿鍵) |
자 | 장수(長壽) |
부황 | 선황제(宣皇帝) |
모후 | 선황후(宣皇后) 모씨(毛氏) |
출생 | 1602년 5월 25일 (음력 4월 5일) |
사망 | 1646년 10월 6일 (음력 8월 28일, 44세) |
재위기간 | 명 당왕 |
1632년 ~ 1636년 | |
남명 남양왕 | |
1644년 ~ 1645년 | |
남명 당왕 (복위) | |
1645년 | |
남명 황제 | |
1645년 8월 18일 ~ 1646년 10월 6일 |
[clearfix]
1. 개요
남명의 제2대 황제.묘호는 소종(紹宗), 시호는 배천지도홍의숙목사문열무민인광효양황제(配天至道弘毅肅穆思文烈武敏仁廣孝襄皇帝)였다. 휘는 율건(聿鍵)이었으며, 연호가 융무(隆武)라 융무제(隆武帝)라고 부른다. 자(字)는 장수(長壽)였다.
2. 생애
융무제 주율건은 당단왕(唐端王) 주석황(朱碩熿)의 손자이자, 당유왕(唐裕王) 주기성(朱器墭)의 장남이었다. 태조 홍무제의 23남으로 당왕에 봉해진 주경(朱桱)의 8대손으로 명나라 황실과는 먼 친척이었다.1632년 할아버지 주석황의 뒤를 이어 당왕에 올랐는데 이는 아버지 주기성이 요절했기 때문이었다. 1636년 주기성을 모함해 죽인 숙부들을 장살하고, 같은 해에 홍타이지의 후금군이 명나라의 변경을 공격하자, 숭정제에게 근왕병을 이끌고 싸울 것을 주청했으나, 숭정제가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주율건은 황명을 어기고 끝내 독자적으로 근왕병을 조직했다. 그는 농민군과 싸웠으나 패퇴했고, 숭정제는 주율건을 폐서인한 후 봉양에 감금시켰다.
1644년 숭정제가 자살하고, 같은 해 홍광제 주유숭이 남경에 정권을 세우자 연금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주율건은 당왕이 아닌 그보다 한 등급 낮은 남양왕에 책봉되었다. 1645년 홍광제는 남경 방어에 실패하고, 청나라의 남정군에 체포되어 1646년에 교살되었다. 이에 남양왕 주율건이 명나라 부흥군에 의해 남명의 제2대 황제로 옹립되었다. 그러나 부흥군의 다른 분파는 연락이 되지 않아 주이해를 황제로 옹립하는 등 혼선이 빚어졌다.
1646년 복건성으로 진격한 청나라 남정군에 의해 융무제가 생포되어 감금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단식으로 저항하다가 결국 굶어 죽었다. 효의양황후(孝毅襄皇后) 증씨(曾氏)[1]에게서 외아들 주림원(朱琳源)과 9명의 딸을 뒀으나, 주림원은 요절했다. 융무제가 후계없이 죽자 명나라 부흥군은 후계자 선정을 놓고 내분에 휩싸였다가 일단 그의 아우였던 주율오를 옹립했다.
3. 가족
제13대 신종 만력제에게 있어, 융무제는 18촌 동생이 되었고, 제14대 광종 태창제에게는 19촌 아저씨가 되었으며, 제16대 의종 숭정제와 남명의 초대 황제인 안종 홍광제에게는 20촌 할아버지뻘이 되었다. 이처럼 명나라 황실과 촌수가 멀었던 융무제는 정통성을 위해 황제로 즉위하자 자신의 4대 선조를 황제로 추증하고, 시호를 올렸다. [2]- 부황 주기성 - 선황제(宣皇帝)
- 모후 모씨(毛氏) - 선황후(宣皇后).
- 조부 주석황 - 단황제(端皇帝).
- 조모 위씨(魏氏) - 단황후(端皇后).
- 증조부 순왕(純王) 주주영 - 순황제(順皇帝).
- 증조모 주씨(周氏) - 순황후(順皇后).
- 고조부 경왕(敬王) 주우온(朱宇溫) - 혜황제(惠皇帝).
- 고조모 조씨(趙氏) - 혜황후(惠皇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