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width=400px><table align=right><tablebgcolor=#FFFFFF><tablebordercolor=#CC0000><bgcolor=#CC0000><width=100> ||<-2><:><bgcolor=#CC0000>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공포 ||
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공포 ||
명칭 | 한국어 | 베이징사직단 |
간체 | 北京社稷坛 | |
번체 | 北京社稷壇 | |
영어 | Beijing Shejitan | |
분류 | 고건축 및 역사기념건축물 (古建筑及历史纪念建筑物) | |
시대 | 명 ~ 청 | |
일련번호 | 3-0081-3-029 | |
주소 | 베이징시 둥청구 중화루4호 北京市东城区中华路4号 | |
등재 | 1988년 | |
차수 | 제3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 |
국가 지정 명승지 등급 | AAAA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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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이징시 둥청구에 위치한 공원으로 베이징중축선(北京中轴线)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축선 동쪽의 태묘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쑨원(孙文)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사실 중산공원은 중국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며, 쑨원이 중화권 전체에서 존경받는 위인인 만큼 대륙 뿐 아니라 대만[1],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더 나아가 중국계 이민자가 많은 캐나다에도 존재한다.베이징의 중산공원은 자금성과 바로 붙어있고, 문화재인 사직단을 개조하여 조성한 곳이기 때문에 중산공원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2. 역사
본래 1377년 홍무제가 난징에 사직단을 건축하였다. 그런데 1420년 영락제가 베이징으로 천도하면서 사직단도 옮겨서 지었고, 청나라가 건국된 이후에도 사직단은 파괴되지 않고 청나라의 사직으로 그대로 유지되었다.[2] 이후 1914년, 사직단은 공원화되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는데, 구단팔묘 중에서도 빨랐다. 1925년 쑨원의 장례식을 사직단 배전에서 치렀는데, 이를 계기로 1928년에 명칭이 '중산공원'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88년에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3. 건축물
3.1. 사직단 내부
사진 | 설명 |
극문(戟门) 사직단의 정문이자 북문이다. 문이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문으로, 본래 3칸이었다가 5칸으로 중축된다. 의화단 운동시기에 파괴되었다가 중화민국이 복구하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중앙위원회 회의실로 쓰이다가 현재는 정치협상회의 베이징시위원회 회의실로 쓰인다. | |
사직단(社稷坛) 토지의 신 사(社)와 곡식의 신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1420년(영락 18)에 세워졌다. 1914년에는 중앙공원(中央公园)으로 개칭했다가 1928년 쑨원을 기리는 의미에서 중산공원(中山公园)으로 바꾸었다. 이곳의 사직단 위에는 중국 전역에서 가져온 황(黃)·청(靑)·적(赤)·백(白)·흑(黑)의 5가지 오색토를 각각 중앙·동쪽·남쪽·서쪽·북쪽에 깔았는데, 문화대혁명 때 오색토를 모두 황토로 바꿨다가 나중에 원래대로 고쳐놨다. | |
중산당(中山堂) 사직단의 배전으로 사직단 북쪽에 위치해 있다. 정 5칸 측 3칸으로 건축되었으며 제례는 이 곳에서 사직단을 향해, 즉 남향으로 개최하였다. 쑨원의 장례가 열린 곳으로 유명하며, 1928년에 중산당으로 개칭된다. | |
음악당(音乐堂) 사직단 제단 동남쪽에 위치한 음악당으로, 1942년에 야외 음악당으로 건축된 것이 시작이다. 이후 1980년에 실내음악당으로 개조한다. | |
혜방원(惠芳园) 사직단 제단 서쪽에 있는 정원으로, 1990년에 조성되었다. 정원 중앙에는 난초를 전시하고 있는 건물인 난실(兰室)이 있으며, 이 난실의 현판은 주더가 작성하였다. |
3.2. 그 외
사진 | 설명 |
보위평화방(保卫和平坊) 원래는 클린트패방(克林德牌坊)[3] 이라는 이름으로, 여기가 아닌 둥단베이 거리에 있었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중산공원으로 이축되고 명칭도 공리전승방(公理战胜坊)으로 개칭되었다가 1952년에 현 명칭으로 변경된다. | |
습례정(习礼亭) 중산공원 남부에 있는 정자로, 원래는 홍려사(鸿胪寺)라는 사찰의 정자였다. 그러나 의화단 운동으로 인하여 홍려사가 불타고 이 정자만 남았으며 이후 청나라 예부 아문원(礼部衙门院) 내부로 이축하였다가 1915년에 중산공원 안으로 재이축한다. | |
난정팔주정(兰亭八柱亭) 중산공원 서남부에 있는 정자로, 내부에는 왕희지가 그린 그림과 건륭제의 서필이 적힌 비석이 1개 존재한다. 그 외에도 정자 내부에 중국의 유명 예술가들이 만든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
격언정(格言亭) 중산공원 북부에 위치한 서양식 정자로, 1915년에 건축되었다. 이름 그대로, 8구절의 중국 격언이 적혀있다. |
4. 관광 정보
베이징 지하철 1호선 톈안먼시역에서 가까우며, 천안문을 통해 자금성으로 들어가면 바로 서쪽에 위치 해 있기 때문에 자금성 관람 전에 같이 관람을 한 뒤에 자금성에 입장하는 식으로 관람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입장료는 사직단 3위안 혜방원 5위안이며, 통합권은 없다.[1] 대만은 쑨원이 건국한 중화민국 그 자체이기 때문에 본토보다 대만에서 훨씬 더 크게 존경받는다. 대만은 쑨원의 출생일과 사망일 모두 국경일로 지정되어있을 정도고, 총통 취임식 때도 쑨원의 초상화를 향해서 선서를 한다. 대독파들은 쑨원을 싫어한다고도 하지만, 그건 진짜 극단적인 대독파들이며 일반적으로는 대독파들도 쑨원을 존경한다.[2] 사직단(社稷壇)은 토지를 주관하는 신인 사(社)와 오곡(五穀)을 주관하는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 풍년과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단이기에 파괴할 이유가 없다. 그래도 왕조가 교체되면 이전 왕조의 사직단을 폐쇄하거나 제사를 못 지내도록 함이 통례였으므로, 사직단까지 재사용한 것은 확실히 이례적이다.[3] 의화단 운동 당시 의화단 무리의 공격을 받고 사망한 주중 독일공사 클레멘스 폰 케텔러(Clemens von Ketteler)의 이름을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