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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20:35:52

진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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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석
陳硬石|Kyung-Suk Jin
출생 1979년 5월 13일 ([age(1979-05-13)]세)
경기도 성남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9cm
직업 농구선수(스몰 포워드 / 은퇴)
농구코치
학력 성남초등학교 (졸업)
낙생중학교 (졸업)
낙생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졸업)
프로 입단 2002년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 코리아텐더)
현역시절 등번호 30[1], 3[2], 27[3]
소속 <colbgcolor=#ffbc00><colcolor=#000> 선수 여수 코리아텐더-부산 KTF (2002~2008)
창원 LG 세이커스 (2008~2009)
원주 동부 프로미 (2009~2013)
코치 안양고등학교 (2013~2014)
성남중학교 (2015)
청주 KB 스타즈 (2015~2026)
감독 성균관대학교 (2026~)

1. 개요2. 선수 시절
2.1. 고교-대학 시절2.2. 프로 시절
3. 지도자 경력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선수로, 2000년대 초반 성균관대학교 농구부의 짧디 짧은 전성기를 이끌었다. 現 여자 프로농구단 청주 KB 스타즈의 코치.

2. 선수 시절

2.1. 고교-대학 시절

낙생고 1학년때부터 탄탄한 수비에 외곽슛이 좋은 슈터로 주목받았고, 고3때 청소년 대표팀 출신 장신포워드 정훈이 박성근 감독(前 명지대 감독)과 함께 합류하면서 기존의 이한권, 전병석 등과 함께 낙생고를 고교 최강의 자리로 이끈다.[4] 이들 중 특히 3학년 트리오 진경석-정훈-이한권은 낙생고 3인방이라 불리며 당시 아마추어 농구팬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는데, 이들 낙생고 3인방 모두가 대학농구 하위 팀이던 성균관대학교에 동반 진학하기로 결정하면서 농구계에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5]

파일:낙생고 및 성균관대 3인방.jpg
낙생고 3인방 중 진경석과 정훈은 1학년때부터 팀의 주전을 차지했고, 특히 폭발적인 3점슛과 탄탄한 수비력을 자랑하던 진경석은 단숨에 팀의 주득점원으로 올라섰지만, 진경석의 대학시절은 김주성-송영진 트윈타워가 이끄는 중앙대가 아마농구 최강자로 군림하던 때라 우승타이틀이라곤 2000년 전국체전과 2001년 MBC배 2번이 전부였고, 당시 연고대를 위시한 소위 명문대들의 텃세 탓에 대학 최고의 득점원이었던 진경석은 그 흔한 대학선발팀에 몇번 뽑히지 못하는 아쉬움을 겪는다.[6] 그래도 4년간 꾸준히 팀의 핵심득점포로 활약한 덕분에, 2002년 KBL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의 지명을 받는다.

2.2. 프로 시절

파일:신인 시절의 진경석.jpg

파일:코리아텐더 진경석.jpg

02-03 시즌 개막전부터 팀의 주전 스몰 포워드 자리를 꿰차며 팀의 주득점원 에릭 이버츠-안드레 페리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대학시절 장기였던 3점슛이 시즌이 갈수록 무뎌진데다, 팀내에 변청운, 김기만 등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들이 많아 시즌 중반부터는 아예 플래툰 시스템으로 출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비록 시즌 3점 성공률은 20%대까지 떨어졌지만(29.9%) 탄탄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한 수비가 좋아 상대 득점원을 묶는 역할은 충분히 했고, 루키 시즌 평균 7.3득점-2.6리바-1.5어시-1.2스틸의 기록을 올리며 헝그리군단 여수 코리아텐더를 플레이오프 4강까지 진출시켰다. 이후 상무에서 제대한 현주엽의 합류로 백업으로 밀려난 진경석은 3점슛감을 완전히 잃어버리면서[7] 출장기회 자체가 줄었고 04-05 시즌 종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소한다.

소집해제 후 07-08 시즌 원소속팀으로 복귀했으나 팀에는 이미 김영환, 박상오 등 젊고 활력넘치는 포워드들이 잔뜩 합류해 있었고, 그에 반해 진경석은 40경기에 출전해 3점슛률 20.0%를 찍는 극악의 슛감을 선보이며 추일승 감독의 신뢰를 잃어버린다. 시즌 종료 후 창원 LG김현중과 트레이드되어 당시 우승을 노리던 신선우 사단의 창원 LG 세이커스에 합류, 루키 기승호조상현의 백업요원으로 한 시즌을 보낸다.

파일:진경석 동부 선수.jpg

08-09 시즌 종료 후 FA가 된 진경석은 창원 LG와 연봉 4500만원에 재계약을 맺지만, 곧바로 강대협 등과의 2:2 트레이드를 통해 원주 동부 유니폼을 입게 되고,[8][9] 2002 드래프티 1, 3, 4위(김주성-박지현-진경석)가 한 팀에서 뛰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박지현이 입단 직후부터 주전 포인트 가드로 자리매김하며 09-10 시즌 플옵 4강 진출을 시작으로 이후 팀을 10-11, 11-12 2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시키는 데 기여한 데 반해, 진경석은 당시 동부산성으로 불리던 윤호영-김주성-로드 벤슨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지 못한데다 윤호영, 이광재 등의 백업 역할조차 못하면서 2번의 챔프전 시리즈에서 무득점에 그치는 등 활약이 아쉬웠고, 원주 동부도 2년 연속 챔프전 준우승에 머문다.

12-13시즌 들어 벤슨[10]윤호영[11]이 떠나고 김주성마저 시즌내내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진경석은 식스맨으로서 출장시간이 소폭 늘긴 했지만, 이 시즌엔 팀 전체가 아쉬운 모습만 보인 탓에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했고 진경석은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프로 통산 9시즌(공익근무 복무기간 제외)을 뛰었지만, 루키시즌이 커리어 하이 시즌일 정도로 프로에서 빛을 보지 못한 케이스다. 대학 시절 그렇게 잘 들어가던 3점 슛은 결국 통산 성공률 29.85%를 기록, 30%에도 못 미친 채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만다.

3. 지도자 경력

2013년 5월 예기치 못한 은퇴 후 안양고등학교 농구부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부임, 조신영 코치[12]를 보좌했다.

안양고 A코치에서 모교인 성남중 코치로 부임하여 후배들을 지도하다가, 2015년 5월, 서동철 감독의 부름을 받아 청주 KB 스타즈의 신임 코치로 임명된다.15-16 시즌 종료 후 서동철 감독이 사퇴하고 2016년 4월 안덕수 감독이 새로 부임했지만 진경석 코치는 유임되었으며, 2021년 4월 김완수 감독 부임에도 진경석 코치는 유임되어 수석코치로 8년째 팀을 지도하고 있으며, 작년 시즌에 V2를 달성했다.

4. 관련 문서


[1] 코리아텐더, 군 입대 이전 KTF 시절[2] 군 제대 후 KTF 시절[3] LG, 동부 시절[4] 정훈의 전학으로 인한 징계로 1997년 하반기부터 출전했음에도 불구, 하반기에 열린 모든 대회를 휩쓸며 3관왕(종별선수권, 쌍용기, 전국체전)에 오르는 성과를 거둔다.[5] 당시 PC통신 농구 커뮤니티에는 이들 3인방의 성균관대 동반 입학을 크리스 웨버-주완 하워드-제일런 로즈의 FAB Five 결성에 비하는 글들이 올라올 정도였다. 물론 성과물은 천지차이;;;;[6] 물론 2000년대 초 대학농구는 때아닌 장신포워드 풍년이 불어, 진경석 외에도 오용준, 김동욱(이상 고려대), 김동우, 방성윤(이상 연세대), 박종천(경희대) 등 좋은 3번들이 즐비했다. 진경석은 3학년때 국내에서 열린 2000년 코맥스배 대표팀에 뽑히긴 하는데, 이땐 A, B 2팀을 뽑았었기에 가능했다.[7] 03-04 시즌: 31.7%, 04-05 시즌: 28.5%[8] 원주 동부 get: 박지현, 진경석 ↔ 창원 LG get: 강대협, 박진수. (누가 봐도 창원 LG의 Big Lose;;)[9] 참고로 이 때 LG는 우려 3팀과 6명의 트레이드를 시행했다. 상술한 동부와의 2대2 포함 오리온스 이현준. 백인선박광재, 석명준과 트레이드, 전자랜드 임효성한정원을 트레이드, 김현중의 임대 복귀.[10]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재개로 인해 울산 모비스로 이적.[11] 상무 입대[12] 안양 SBS 스타즈 선수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