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메이지 20년(1887년)경, 청조는 제11대 광서제가 즉위한 시대에 있었다. 젊은 광서제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정치적 실권은 서태후가 쥐고 있었다. 유럽과 미국이 대륙에 진출하려고 할 때, 청나라 장래를 두고 자금성 안은 서태후를 중심으로 한 수구파와 광제를 내세운 개혁파의 의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청나라의 제9대 황제 함풍제의 후궁이자 10대 황제 동치제의 생모다. 동치제가 세상을 떠난 후 광서제를 즉위시키지만, 정치적 실권은 본인이 손에 쥐고 있었다. 청나라 미래의 위기를 느낀 그녀는 황제에게 권력을 넘기려고는 생각하지만 꺼려지게 되어 끝없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전례에 건륭이 가경에게 선위를 했음에도 태상황으로 물러나 실질적 권위를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며, 그와 같은 삶을 꿈을 꾸었다. 실제로 초반에 건륭의 허상을 보며 "손자며느리인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는 말을 묻는가 하면 권력의 정점에 있음에도 늘 어찌해야될지 고민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역사의 기록마냥 천하를 호령하려고 하는 고증이 지켜졌는지, 광서제의 황후 간택때 그에게 마음대로 고르라고 하면서도 끝내 자기 뜻대로 친정 사람을 황후자리에 앉히고 타타랍씨 자매를 들이는 등 여러모로 다방면의 캐릭터로 보인다.
이춘운(춘아)(여소군)
집안이 어려워져 매일 굶주림에 시달렸다. 그의 형이 아사하게 되자, 그는 스스로 거세하고 입궁하게 된다. 입궁하자 자희의 총애를 받게 되면서, 자신이 이 권력의 암투에 휘말리게 될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양문수(주일위)
이춘운의 의형제로. 과거시험에서 장웝급제 하였다. 청나라의 어두운 미래와 흔들리는 자금성에 맞서 낡은 체제를 바꾸고, 개혁운동으로 나라의 새바람을 일으키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청나라 제11대 황제. 그는 온화하고 내성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황제로 즉위한 후에 친정을 갈망하지만, 자희의 강압적인 태도에 늘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든다. 자희에 대해서는 친애보다 경외심이 더 많다.
청균(서백혜)
양희정의 딸, 양문수의 부인.
장부인(은도)
자희의 조카딸로 북경에서 외국인 모임을 하는 공관을 운영하고 있다. 궁정 안팎을 오가며 다양한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권세가임을 알린다. 양인과 일반인 사이를 주선하여 국가와 개인의 운명을 변화시키기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하고 있는다는 명목으로 행동하였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자희의 이익도 포함시키게 된다.
예쁘고 귀여운 말괄량이 소녀로 이해심이 많다. 그녀는 치장을 좋아해서, 새로운 풍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성격을 가졌다. 궁은 그녀의 등장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억압되어 온 재첨에게 많은 위안과 즐거움을 주었다. 재첨과 그녀는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녀는 그의 후궁이 되어 진비로 봉해졌다. 그러나 재첨이 그녀를 너무 사랑하게 되어 자희가 친선한 황후를 소홀히 하자, 이로 인해 자희 명을 받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순계(주준)
천하의 이름을 떨친 청년으로 보기 드문 나라의 인재다. 그는 과거시험을 같이 치른 문수를 만나 마치 옛친구를 만났다는 듯이 친해지고, 의형제를 맺은 뒤 함께 공명을 얻어 같은 곳에서 벼슬을 받게 된다. 주임 시험관인 양희정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제자로 들였다. 그는 천하를 생각하는 좋은 신하였다. 그는 국익을 중시하고, 백성들의 근심을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써왔다.
감독 왕준은 다나카 유코가 서태후를 너무 닮았다고 생각을 하게 되어, 그녀의 횡포한 면모와 더불어 서태후의 역할이 딱 맞아 떨어진다며 캐스팅했다고 한다.
극 중 자금성은 헝디엔영시성 세트장에서 촬영된 거지만[8], 이화원이 배경으로 나오는 장면은 실제 베이징에 있는 이화원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극 중 춘운 역을 맡은 배우 여소군은 영화 매란방에서 청년 매란방 역을 맡아 경극 연기를 연기한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성인 역을 맡은 여명보다 칭찬을 많이 받았다. 매란방에서 선보인 경극 연기를 이 드라마에서도 경극이 특기인 환관 역을 맡아 마음껏 뽑냈다. 천카이거가 장국영과 더불어 발굴해낸 또 한명의 경극 전문 남배우라 봐도 무방할 정도.
극 중 서태후를 비롯한 여럿 궁중 여성들이 착용한 의상과 장신구가 후궁견환전과 비슷한 느낌을 많이 주는데, 실제로 두 드라마 같은 의상 디자이너가 의상을 담당했던 드라마였고,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몇몇 장신구들이 훗날 후궁견환전에서 재활용되기도 했다![9]
효정경황후가 초기 황후로 지내던 모습을 보면 황후의 복장은 견환의 희귀비 시절의 복장과 똑같았고, 장신구나 대랍시를 보면 심미장이 떠오른 경우도 있다.
중국에서는 처음에 중일합작으로 제작되고 서태후 역을 일본인 배우가 맡는다는 사실에 다소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으나, 막상 방영이 되고나서는 고증이 매우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반응을 보여 덕분에 더우반에서도 8점대의 높은 평점을 받았다.
지금은 중국에서 탑급 배우로 잘나가는 조려영과 주일위의 신인 시절을 볼 수 있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 때만 하더라도 비교적 인지도가 적은 신인 배우들이었기 때문.
[1] 나중에 NHK 종합에서도 일본어 더빙버전으로 방영되었다.[2] 다만 일본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NHK는 방영권만 구입했을 뿐, 직접적으로 제작에 관여한 것은 아니며 제작에 관여한 일본인 제작진들은 전직 NHK 프로듀서였다가 퇴사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고 한다.[3] 훗날 여의전을 연출하게 된다.[4]신삼국에서 손권 역을 맡은 배우다.[5]오자와 켄지의 사촌동생이자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의 아들. 타키가와 크리스텔의 전 연인이기도 했다.[6]마더의 모치즈키 하나를 연기했다. 무엇보다 그 유명한 오싱의 주인공이기도 하다.[7]산하련에서 해란주를 연기한 배우. 지금은 성형으로 인해 그 모습을 볼 수 없다.[8] 현재 명청시대 자금성을 배경으로 한 고장극은 100% 이곳에서 촬영이 진행된다. 유일한 예외라면 영화 마지막 황제인데, 아직 세트장이 조성되지 않았을 시절이라 실제 자금성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9] 참고로 이 창궁의 묘 같은 경우 중국에서 엄청난 수준의 의상고증을 선보인 걸로 칭찬을 받았는데, 문제는 청 초기와 서태후가 군림했던 청 말기는 의상스타일이 많이 달랐기 때문에 후궁견환전과 여의전은 극 중 배경이 청 초중기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청 말기식 의상을 선보였다고 고증덕후들에게 많이 까이기도 했다. 한국 사극으로 치면 배경이 조선 초중기인데 구한말·일제강점기 초기 스타일의 한복이 나온 것과도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