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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21:34:10

카가와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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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소 오사카 2024 시즌 스쿼드
1 양한빈 · 3 신도
VC
· 4 유이치 · 5 히나타 · 6 노보리자토 · 7 우에조 · 8 카가와 · 9 레오 세아라
10 슌타 · 14 카케루 · 16 오쿠다 · 17 사카타 · 19 타메다 · 18 나가이 · 21 김진현 · 23 야마시타
C

24 토리우미 · 25 오쿠노 · 27 카피샤바 · 29 료고 · 31 케이스케 · 33 니시오 · 34 야마다 · 35 와타나베
38 소타 · 48 시바야마 · 55 비토르 부에노 · 77 L.페르난데스
파일:일본 국기.svg 코기쿠 아키오 · 파일:일본 국기.svg 타카하시 다이스케 · 파일:일본 국기.svg 타케다 노부히로 ·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루노 콰드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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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가와 신지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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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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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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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 ·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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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세레소 오사카 No.8
카가와 신지
[ruby(香川 真司, ruby=かがわ しんじ)] | Shinji Kagawa
<colbgcolor=#dc0969> 출생 1989년 3월 17일 ([age(1989-03-17)]세)
일본 효고현 고베시 타루미구
국적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75cm / 체중 68kg[1]
포지션 미드필더[2]
주발 오른발
소속 <colbgcolor=#dc0969><colcolor=#fff> 유스 마리노 FC (1994~1999)
고베 NK FC (1999~2001)
FC 미야기 바르셀로나 (2001~2005)
프로 세레소 오사카 (2006~2010)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0~201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2~201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4~2019)
베식타스 JK (2019 / 임대)
레알 사라고사 (2019~2020)[3]
PAOK FC (2021)[4]
신트트라위던 VV (2022~2023)
세레소 오사카 (2023~ )
국가대표 97경기 31골[5] (일본 / 200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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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0969><colcolor=#fff> 역대 등번호 일본 대표팀 - 10[6]
세레소 오사카 - 8, 26, 29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7, 2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26
베식타스 JK - 23
레알 사라고사 - 23
PAOK FC - 23
신트트라위던 VV - 10
후원사 아디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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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평가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여담
6.1. 대한민국과 얽힌 일화6.2. 응원가
7. 카가와에 대한 말, 말, 말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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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국적의 세레소 오사카 소속 축구 선수. 포지션은 미드필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총 3회의 리그 우승[7]에 기여했고, 일본 대표팀에서는 2011 아시안컵 우승에 공헌하였다. 또한 ESM 올해의 팀에 1회[8], VDV 11에 1회[9], 키커 올해의 팀에 2회[10],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1회[11] 선정되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카가와 신지/클럽 경력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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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2.2. 국가대표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카가와 신지/국가대표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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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레이 스타일


도르트문트 데뷔 시즌에는 세컨드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주로 득점에 치중하는 역할이었으나 다음 시즌부터 사힌괴체의 역할이었던 플레이메이킹도 훌륭히 수행하면서 많은 활동량과 더불어 득점에도 관여하는 2선 플레이메이커로서 본인의 축구 스타일을 확립했다.

플레이메이커로서 그의 가장 큰 무기는 패싱력으로 짧은 스루패스, 롱패스 등 모두 수준급이며 전진패스에 능하다. 또한 양발을 잘 쓰는 편에 속한다. 왼발로도 앞 대각선 방향으로 향하는 발리 롱패스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다.

파일:rps.gif

섬세한 볼터치 감각과 공간 활용에 있어서도 아시아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타고났으며 드리블과 골 결정력도 준수한 편이다. 이를 바탕으로 주로 원터치 패스나 주변 선수들과의 연계와 잔패스를 통한 유기적인 플레이로 기동력을 올려나가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동료 선수 간의 간격이 넓은 전술이나 측면 지향적인 윙어들과 같이 배치될 경우 어려움을 겪는다.

개인 플레이나 무리한 플레이를 최소한으로 한다. 때문에 문전 앞에서 득점 기회가 오면 본인이 직접 슈팅을 하기보다는 동료 선수들에게 패스를 건네는 선택을 주로 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불안정한 상황을 연출시키는 빈도는 적은 편이다. 또한 공간에 대한 이해도 역시 좋아서 단신임에도 헤더 골도 간간히 기록한다.

일본 대표팀에서와는 달리 클럽에서는 위르겐 클롭 감독이 떠난 후 여러 감독들로 부터 공격형 미드필더보다는 주로 4-3-3, 4-1-4-1 또는 3-4-3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다. 때문에 2선보다 낮은 위치에서 플레이를 하는데 있어서 활동량과 검증받은 패싱력, 침투 플레이를 바탕으로 무난하게 소화가 가능했지만 검증받지 못한 수비 가담력이나 수비력으로 주전 엔트리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잦은편이다.

위의 문단에서 서술된 대로 측면에서의 크로스가 주요 공격으로 채택되는 전술이나 동료선수간 간격이 넓은 전술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압박을 받으면 혼자 힘으로 압박을 벗겨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공을 오랫동안 지켜내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탓에 자연스럽게 백패스의 빈도가 많아진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이러한 문제점들이 드러나며 본인만의 제대로 된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도르트문트에서는 주로 원터치 패스나 동료들을 활용한 1:1 패스같은 유기적인 플레이로 압박을 벗겨내거나 본인의 드리블 능력으로 벗겨내는 등 이러한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맨유에서는 동료 선수들이 이에 맞춰주지 못했던 탓에 플메이메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의 주 임무인 기동력이 발휘되지 못했다. 당시 윙어였던 발렌시아는 후에 풀백을 무리없이 담당할 정도로 중앙보다는 주로 측면에서의 활동량이 높은 클래식 윙어였기에 카가와의 서포터가 되어주지 못했고 중앙 미드필더였던 캐릭 또한 박스 투 박스 유형의 선수가 아닌 포백 보호가 주된 역할이었기에 카가와와 함께 2선 이상의 위치로 올라오는 빈도가 적었으며 이외의 선수들과도 맞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동료 선수들간의 간격이 넓어지고 본인의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당시 루니와는 호흡이 잘 맞았지만 이 마저도 루니와 카가와가 서로를 활용하는게 아닌 이 둘의 동선이 시도때도 없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이 영상은 당시 맨유의 전술과 카가와의 궁합을 잘 보여주는 영상이다.(2013/14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올림피아코스전)

즉, 여러 전술에 녹아들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연계플레이에 의존하는 그의 플레이는 선수 생활에 있어서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몇 주 앞둔 평가전에서 4-2-3-1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의 자리에 혼다가 배치되었을 때는 주변 선수들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였으나 카가와가 혼다 대신 출전하였을 때는 자연스럽게 공격전개가 빨라짐과 동시에 이누이, 시바사키, 나가토모에게도 플레이 기회가 많이 주어지면서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 선수들도 다같이 살아나는 플레이를 연출시키기도 했다.

도르트문트 복귀 후 인사이드 윙어인 로이스공격형 미드필더미키타리안과 함께 2선에 배치됐을 때는 본인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고 다시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그리고 복귀 초에는 세 선수 모두 중앙 지향적인 탓에 잠시 호흡이 불안정한 플레이를 연출시키기도 했다.

파일:saddd.gif

다만 단점으로 지적받던 몸싸움 능력과 헤더는 어느 정도 개선이 됐다. 여전히 상대 선수들과 접촉하는 플레이는 지양하는 편이지만 2015-16 시즌 샬케와의 리그경기에서 장신 수비수들 사이에서 헤더 선취골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불가리아와의 평가전에서도 헤더 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6/17 시즌을 앞둔 프리시즌에 친정팀 맨유의 수비수 에릭 바이와의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페널티킥을 딱히 피하지 않는다. 클럽팀이나 대표팀에서 페널티킥을 전담한 적은 없지만 승부차기 상황이 오면 부담없이 무난하게 찬다. 2015 아시안컵에서 본인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법한 승부차기 실축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2015-16 시즌 DFB-포칼 결승전 승부차기, 2016년 프리시즌에 치러진 맨시티전 승부차기에서 각각 1번 키커와 2번 키커로 나와 성공시켰고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도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실축 경험 이후 페널티킥에 대해 난색을 보였던 선수는 많은 편이다. 페널티킥으로 단 하나의 득점도 올리지 않았던 차범근, 박지성[12], 주앙 무티뉴[13] 등이 있다.

4. 평가

도르트문트 시절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기록[14]들과 랑리스테를 종합해볼 때,[15] 3년 동안 분데스리가 탑클래스 공격형 미드필더로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2011-12 시즌에는 유럽 축구 매체 연합이 선정하는 ESM 올해의 팀에 아시아 선수 최초로 선정되며 월드클래스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영국 내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부진으로 상당히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첫 시즌에는 준수한 활약[16]을 했지만, 자신을 영입한 알렉스 퍼거슨이 은퇴하고 데이비드 모예스의 지도를 받은 두 번째 시즌에 최악의 모습[17]을 보여준 뒤 이를 만회하지 않고 도르트문트로 리턴해버려 종종 맨유 최악의 영입 사례들 중 한 명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거기다 포포투, 기브 미 스포츠, 90Min에서는 역대 아시아 선수 랭킹에서 카가와를 각각 8위, 9위, 10위에 올려놓는 등 최근까지도 영국 언론들에게 저평가를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일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로 평가 받는 혼다 케이스케, 나카타 히데토시와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유럽 무대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쌓은 카가와는 일본 대표팀에서 가장 우수했던 혼다, 선구자 역할을 한 나카타와 흥미로운 구도를 형성한다. 특히, 동시대에 활약한 혼다는 둘이 포지션이 겹침에도 플레이 스타일이 많이 달라서 결국 카가와가 윙어로 포지션을 바꿔 대표팀에서 공존하기도 하는 등 여러 스토리가 있는 관계다.

혼다가 일본 대표팀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준 영향 때문인지 카가와의 국가대표 활약상은 다소 묻힌 느낌이 있다. 혼다는 월드컵에서 가장 뛰어났던 일본 선수로, 2022년 기준으로 아시아 선수의 월드컵 최다 득점(4골) 및 최다 공격 포인트(4골 3도움), 월드컵 최다 POTM(4회) 등의 우수한 월드컵 실적을 지니고 있는데다 2011 아시안컵 MVP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카가와는 2011 아시안컵 4강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인해 결승전에 결장한 뒤 스포트라이트를 혼다에게 내주게 되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극도의 부진으로 일본 내에서도 큰 비판을 받았다.[18]

다만, 이는 키핑력과 킥 능력, 피지컬이 우수한 혼다가 일본 대표팀의 성향과 잘 맞아 중앙 미드필더로서 자주 기용되는 반면, 카가와는 혼다에 밀려 윙어로 기용되기도 하다보니 국가대표로서는 기대를 충족하기 까다로운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혼다가 일본 대표팀 중심에서 내려온 후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했을 때는 오히려 조별리그 콜롬비아전과 16강 벨기에전에서 1골 1도움을 포함해 맹활약을 하며 명예를 회복했다. 2011 아시안컵과 2018 월드컵에서의 활약상, 2011년 한일 친선전 멀티골 득점, A매치 통산 31골(6위) 등의 업적들이 있기에 국가대표로서도 과소평가 받을 선수는 아니다.[19] 중요한 점은 카가와도 2010년대 일본 축구 전성기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내에서는 이상하게 '반짝 선수'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었는데, 우리나라는 박지성손흥민의 영향으로 프리미어 리그가 타 리그들에 비해 압도적인 인기와 위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카가와의 분데스리가 활약상은 잘 알려지지 않은데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실패했다는 이유로 좋지 않은 평가를 내는 의견들이 상당히 많다. 거기다 한국 축구의 상징 중 한 명인 박지성이 활약하던 맨유에서 박지성이 나가고 일본인 선수가 들어왔으니 더욱 냉랭한 시선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역대 UEFA 리그 랭킹을 살펴보면 카가와가 맨유로 이적했던 2012-13 시즌부터 유럽 최고의 리그는 프리미어 리그가 아닌 라리가였고, 카가와가 도르트문트로 복귀한 후 2015-16 시즌2016-17 시즌은 오히려 분데스리가가 프리미어 리그보다 우위에 있었다.

유럽 전역으로부터 인정 받았던 카가와의 2011-12 시즌은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졌으나, 상술된 이유로 인해 2013-14 시즌에 맨유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도르트문트로 돌아가자 관심이 끊겼고, 도르트문트 복귀 이후에도 수년간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독일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사실은 묻히면서 선입견이 생기게 됐다. 그래도 일본 축구의 대표적 선수로 여겨지고 있어 혼다를 선호하는 영국 언론들보다는 상대적으로 평가가 박하지 않다.

따라서 상기의 근거들을 종합했을 때, 카가와는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20][21]이라고 할 수 있다.#, #, #, #, #, #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6.1. 대한민국과 얽힌 일화

대한민국과 관련된 몇몇 일화가 존재한다.

6.2. 응원가



별 내용은 없고, '라라라~라라라~라~카~가~와~신지!'가 전부다. 카가와 신지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뒤, 2012/13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도르트문트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가 벌어지자 맨체스터로 원정을 온 수천명의 도르트문트 팬들이 맨체스터 시내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행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찬트 'All we need is Shinji Kagawa'. 역시 별 내용은 없다. 의 노래 Radio Ga Ga의 멜로디에 가사를 변형하였다.[31]

일부 팬들은 '그의 할아버지는 진주만을 폭격했다네'라는 가사를 넣은 응원가를 만들었지만 #, 인종차별적이라서 오래 쓰이진 못했다.

7. 카가와에 대한 말, 말, 말

그는 내가 본 골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이다.
신지는 경기장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인 4선과 2선 사이에서 매우 잘 움직이는 선수이다. 선수들이 사방에서 오기 때문에 그는 샌드위치 속의 소시지와 같다.
카가와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며 중앙 미드필더를 주 포지션으로 한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어색한 왼쪽 윙어 역할을 맡으며 경기당 20분 출전에 그치고 있다. 그걸 보고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 위르겐 클롭
30분만 봤는데 그가 특별한 선수인 것을 알았다. 카가와가 공을 잡고 있을 때 상대 선수들은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언터처블한 선수였다. 환상적인 움직임으로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선수였다.
("당신이 데려온 선수들 중 최고의 발견은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에. 카가와 신지이다. 난 프로 선수 출신도 아니었고, 도르트문트 수석 스카우터로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2010년 당시 카가와를 싼 값에 영입했다. 나는 미하엘 초어크 단장과 위르겐 클롭 감독을 열렬히 설득했다. 카가와가 도르트문트에서 내가 기대한 만큼의 실력을 보여줬고 그로 인해 나도 덕을 봤다. 당시 나는 신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카가와의 성공이 구단의 날 향한 신뢰를 가져다줬다. 이에 내 최고의 발견이자, 가장 중요했던 선수 같다.
- 스벤 미슬린타트[32]
카가와는 매우 기동성 있는 선수며 매우 영리하고 창의적이다. 또한 박스 안에서 매우 빠르기 때문에 그는 검증된 스코어러이다.
- 아르센 벵거
그 소년은 천사처럼 뛰었다.
- 누리 샤힌
카가와가 도르트문트에서 정말 좋은 출발을 보였기 때문에 첫 시즌 후 그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결코 한 시즌의 활약으로 (어떤 선수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두 번째 시즌에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었다. 두 번째 시즌에는 상대로부터 집중 견제를 받게 되며 이를 극복하는 능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가와는 자신있게 패스를 연결했다. 사실 그보다 더 좋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를 선택하는 것은 간단한 결정이었다. 카가와는 영리하며 빠른 발을 지녔고 매우 열심히 뛴다. 현재 23세로 나이도 젊은 데다가 이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라는 빅 클럽에서 2년의 경험을 쌓았다. 그가 아주 좋은 선수라는 건 분명하다. 우리는 그에게 커다란 기대를 갖고 있다.
- 알렉스 퍼거슨
(UEFA 챔피언스 리그)아스널과의 경기에 직접 뛴 선수이다. 좋은 기량을 갖췄다. 팀에 오면 좋은 성적을 낼 것이다. 아시아 선수의 능력이 이 정도로 커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선수이다.
- 박지성 #
개인적으로 카가와는 스피드와 기술이 매우 뛰어난 선수라고 본다. 분데스리가에서 한 번 맞붙어 봤는데 확실히 잘 하는 선수임을 느꼈다. 경기력을 따지면 올 시즌 분데스리가 전반기 MVP답다.
- 손흥민 #
카가와는 재능이 넘치는 선수이다. 카가와와의 경쟁은 나 자신의 레벨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와 함께 뛰어 행복하다.
- 후안 마타
나의 친구 카가와가 돌아와 기쁘다. 다른 선수들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카가와가 두, 세 명의 선수를 손쉽게 제치는 장면은 정말 멋지다.
- 케빈 그로스크로이츠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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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소 오사카 2024 시즌 스쿼드
등번호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일문/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체격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양한빈 Yang Han Been 1991.08.30 195cm / 90kg
3 파일:일본 국기.svg DF 신도 료스케 進藤 亮佑 1996.06.07 183cm / 74kg
4 파일:일본 국기.svg MF 히라노 유이치 平野 佑一 1996.03.11 174cm / 68kg
5 파일:일본 국기.svg MF 키다 히나타 喜田 陽 2000.07.04 171cm / 59kg
6 파일:일본 국기.svg DF 노보리자토 쿄헤이 登里 享平 1990.11.13 168cm / 68kg
7 파일:일본 국기.svg MF 우에조 사토키 上門 知樹 1997.04.27 166cm / 61kg
8 파일:일본 국기.svg MF 카가와 신지 香川 真司 1989.03.17 175cm / 68kg
9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레오 세아라 Leo Ceara 1993.06.02 178cm / 79kg
10 파일:일본 국기.svg MF 다나카 슌타 田中 駿汰 1997.05.26 183cm / 73kg
14 파일:일본 국기.svg DF 후나키 카케루 舩木 翔 1998.04.13 177cm / 65kg
16 파일:일본 국기.svg DF 오쿠다 하야토 奥田 勇斗 2001.04.21 177cm / 71kg
17 파일:일본 국기.svg MF 사카타 레이야 阪田 澪哉 2004.05.11 175cm / 64kg
19 파일:일본 국기.svg MF 타메다 히로타카 為田 大貴 1993.08.24 175cm / 72kg
2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김진현 Kim Jin Hyeon 1987.07.06 192cm / 82kg
23 파일:일본 국기.svg DF 야마시타 타츠야 山下 達也 1987.11.07 182cm / 77kg
24 파일:일본 국기.svg DF 토리우미 코지 鳥海 晃司 1995.05.09 182cm / 71kg
25 파일:일본 국기.svg MF 오쿠노 히로아키 奥埜 博亮 1989.08.14 171cm / 68kg
27 파일:브라질 국기.svg MF 카피샤바 Capixaba 1997.01.09 170cm / 64kg
29 파일:일본 국기.svg FW 야마자키 료고 山崎 凌吾 1992.09.20 187cm / 82kg
31 파일:일본 국기.svg GK 시미즈 케이스케 清水 圭介 1998.11.25 183cm / 75kg
33 파일:일본 국기.svg DF 니시오 류야 西尾 隆矢 2001.05.16 180cm / 77kg
34 파일:일본 국기.svg FW 야마다 히로토 山田 寛人 2000.03.07 181cm / 69kg
35 파일:일본 국기.svg FW 와타나베 료 渡邉 りょう 1996.10.25 179cm / 71kg
38 파일:일본 국기.svg FW 키타노 소타 北野 颯太 2004.08.13 172cm / 60kg
48 파일:일본 국기.svg MF 시바야마 마사야 柴山 昌也 2002.07.02 161cm / 59kg
55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비토르 부에노 Vitor Bueno 1994.09.05 185cm / 78kg
77 파일:브라질 국기.svg MF 루카스 페르난데스 Lucas Fernandes 1994.04.24 174cm / 66kg
구단정보
구단주:오카노 마사오 / 감독:코기쿠 아키오 / 구장: 얀마 스타디움 나가이
출처: 세레소 오사카 홈페이지 / 2024년 7월 16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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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와시마 · 2 우에다 · 3 쇼지 · 4 혼다 · 5 나가토모 · 6 엔도 · 7 시바사키 · 8 하라구치 · 9 오카자키
10 카가와 · 11 우사미 · 12 히가시구치 · 13 무토 · 14 이누이 · 15 오사코 · 16 야마구치 · 17 하세베
18 오오시마 · 19 사카이 · 20 마키노 · 21 사카이 · 22 요시다 · 23 나카무라
파일:FIFA WORLD CUP 2018 JPN.png 니시노 아키라



[1] 전 소속팀 PAOK FC 공식 프로필[2] 주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지만, 위르겐 클롭 감독이 도르트문트를 떠난 후에는 중앙 미드필더로 더 자주 기용되었다.[3] 시즌 도중 계약 해지.[4] 시즌 도중 계약 해지.[5] 일본 대표팀 역대 득점 6위.[6] 10번 외에 8, 13, 14, 17번을 달기도 했다.[7] 분데스리가 2회, 프리미어 리그 1회[8] 2011-12 시즌[9] 2011-12 시즌[10] 2010-11, 2011-12 시즌[11] 2015-16 시즌[12] 2002 한일 월드컵 8강전 승부차기 성공 경험이 있음에도, 주장으로 참여한 2011 아시안컵 4강전 승부차기에서 10번 키커로 배정되었다. 다만 이 부분은 훗날 본인이 1번 키커로 나섰어야 했다며 후회하는 인터뷰를 한 적 있다.[13] 유로 2016 8강전 승부차기를 앞두고 자신감 없는 기색을 보이자 호날두로부터 키커로 나서줄 것을 요구받은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14] 2010-11, 2011-12, 2015-16 시즌[15] 키커에서 발표하는 분데스리가 선수 평가로 시즌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서 한 시즌에 두 번 평가를 내린다. 카가와는 WK에 1회 (2011-12 후반기), IK에 2회 (2010-11 전반기, 2015-16 전반기), K에 3회 (2011-12 전반기, 2014-15 후반기, 2016-17 후반기) 선정되어 상위권 명단에 6차례 랭크되었다. 매번 선정하는 선수의 숫자가 달라서 비유하기 어렵지만 K(리그 클래스)는 동포지션 5~10위에 드는 선수, WK(월드클래스)는 최소 베스트 11에서 최대 MVP급, IK(인터내셔널 클래스)는 이 둘의 중간이라 보면 된다.[16] 리그 우승과 26경기 6골 6도움을 기록하면서 대부분의 현지 언론들로부터 시즌 평점 7점을 받았고, 팬들로부터 구단 이달의 선수에 2차례 선정되었다.[17] 31경기 0골 2도움[18] 워스트 11 선정에 자국 내에서도 J리그로 리턴이나 하라는 등 엄청난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19] 카가와는 A매치 97경기 31골, 혼다는 98경기 37골이다.[20] 카가와 외에는 파울리노 알칸타라, 손흥민, 차범근, 박지성, 나카타 히데토시, 혼다 케이스케 정도가 있다.[21] 다만 파울리노 알칸타라를 아시아 선수로 분류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22] 두 선수 모두 풀타임을 소화했고 카가와는 어시스트를 기록했다.[23] 파일:781c5f03-s.jpg[24]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25] 상대방이 싫어하는 음식을 맞추는 코너인데 상대 출연자인 오구리 슌이 승리했다. 오구리와는 이 방송을 계기로 현재까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26] 발단은 아시안컵 당시로 추측되는 동영상이었는데 소녀시대가 티비에 나오는 장면을 보는 모습이다. 나가토모는 넋을 놓고서 바라보고 있었고 카가와는 '소녀시대 무지 좋아해요'라는 멘트를 남기며 소덕 인증을 했다.[27] 2013까지. 그 뒤로는 게임 커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가 피파 16 일본판 표지모델로 선정되었다.[28] 사실은 일본 통신사인 소프트뱅크의 광고에 나오는 장면이다.[29] Beskitball Bundesliga 약자로 독일의 농구 리그다.[30] 박주호는 프로데뷔를 일본에서 했으며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에서 뛰었다. 이를 감안하면 일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1] 영어권에서는 성과 이름을 반대로 말하기 때문에 카가와 신지가 아닌 신지 카가와라고 부른다.[32] 8년간(2009~2017)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수석 스카우터로 재직하면서 레반도프스키, 오바메양, 우스만 뎀벨레, 제이든 산초 등을 발견하여 도르트문트에 큰 이점을 가져다 준 스카우터계의 전설이며 현재는 VfB 슈투트가르트 단장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