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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19:15:21

카를로스 곤

르노 그룹의 역대 회장
루이스 슈바이처 카를로스 곤 티에리 볼로레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카를로스 곤
Carlos Ghosn|كارلوس غصن‎|カルロス・ゴーン
파일:카를로스 곤.png
출생 1954년 3월 9일 ([age(1954-03-09)]세)
브라질 합중국 혼도니아 주 프로투벨류
국적
[[브라질|]][[틀:국기|]][[틀:국기|]]|
[[레바논|]][[틀:국기|]][[틀:국기|]]|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삼중국적)
신체 170cm
학력 에콜 폴리테크니크(X1974)
에콜 데 민 드 파리
가족 할아버지 비샤라 곤
아버지 조르지 곤
어머니 호지 제타 재자르
전처 리타 코르다히
후처 캐롤 나하스
1녀 캐롤라인 곤
1남 앤서니 곤
2녀 나딘 곤
3녀 마야 곤
소속 기업 미쉐린 (1978~1996)
르노 (1996~2019)
닛산 (1999~2018)
미쓰비시 (2016~2018)
종교 기독교 (마론파)
주요 상훈 KBE, 남수포장, 대십자상(이사벨 1세 훈장)

1. 개요2. 생애3. 기타4.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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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에서 태어난 레바논프랑스인 기업인. 민족은 레바논계, 출신지는 브라질이다보니 브라질, 레바논, 프랑스 3개 국적을 가지고 있다.

2. 생애

원래 그의 가문은 동방 가톨릭 교회의 한 부류인 마론파를 믿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가 식민 통치를 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워지자, 그의 할아버지는 13살 때 혈혈단신으로 브라질의 혼도니아로 이주했다. 그래도 가문 대대로 수완이 좋았는지 할아버지부터 당장 고무 무역, 농산물 도소매업, 여행 사업을 비롯해서 여러 기업을 거느렸고 4남 4녀를 두었다.

곤은 다이아몬드 무역업자로 일했던 조르지(Jorge)와 나이지리아 출생 레바논인인 제타[1] 사이에서 4명 중 유일한 아들로 태어난다. 2살 때 비위생적인 물을 마셨다가 질병에 걸리는 바람에 어머니와 함께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주했다가 질병이 나아지질 않자, 1960년 베이루트로 다시 이주했다.[2]

예수회 소속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971년부터 프랑스로 와서 학업을 이어나간다. 학력으로 보듯 수학물리학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하나 그의 관심사는 사학, 지리학, 언어학이었다고 한다. 그랑제콜을 마치고 나서 경제학 박사 학위 과정을 밟으려고 했으나, 미쉐린 측에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일할 diplômes d'ingénieur 보유자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고 1978년부터 직장인의 길을 걸었다. 1981년 프랑스 공장 관리자, 1984년 연구개발 책임자를 거쳐 1985년 남미 지사의 COO를 맡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1989년 북미 지사의 사장 겸 COO로 임명되자 가족들과 함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그린빌로 이주 후 1년 뒤에 CEO을 맡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1996년 당시 르노 회장이었던 루이스 슈웨체르[3]가 파워트레인 운영 및 제조 담당 부사장 자리를 제안하면서 18년 가까이 일한 미쉐린을 퇴사하고 르노로 이적함과 동시에 200억 프랑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수익성이 나지 않는 공장들을 폐쇄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3년 후인 1999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4]가 설립되자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닛산에 입사해 2000년 6월 사장으로, 또 1년 후인 2001년 6월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됐다. 한편 제너럴 모터스포드로부터 이적 제의가 있었으나 모두 거부하였다.

일본에서 평가는 양극화를 띠고 있다.[5] 닛산을 회생시키기 위해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는데, 닛산 전체 근로자의 15%인 2만여명의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3백여개가 넘는 대리점을 폐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6]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동안 일본 내 기업 최고경영자의 연봉 중 가장 높은 금액 수준인 10억 엔대 연봉을 받게 되는데, 정리해고된 노동자들과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를로스 곤이 최고경영자로 재임한 시절과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난 이후의 성과 및 주가를 비교해보면, 그만큼 받아가는 게 당연할 정도로 닛산은 순식간에 막장으로 변해버렸다. 닛산과 미쓰비시의 구조적 병폐가 그토록 심각했고, 카를로스 곤의 구조조정은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던 것.
다만 부정적으로 보는 일본 언론은 카를로스 곤 시절의 닛산은 닷선의 브랜드를 부활하는 등의 다양한 모델 라인업을 확장하고 개도국 등의 시장을 확대하는 식으로 판매량과 규모를 늘렸지만 이와 반대로 강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며 개발직 등의 인력은 늘리지 않았기 때문에 판매 중인 모델의 페이스리프트나 변경이 늦어지며 갈수록 모델 노후화가 진행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판매에 많은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식으로 판매량을 유지하는 건강하지 못한 언젠가는 망가질 사업 구조였고 이게 곤이 퇴임하고 나서 터진 것일 뿐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특히 2023년 들어서는 닛산의 원가절감이 카를로스 곤 시절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고 평가가 높아지면서 닛산은 나름대로 부활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인지 닛산 팬들 중 일부는 그의 구조조정이 결과적으론 회사의 경쟁력만 깎아먹고 있었다는 또 다른 재평가를 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도 일본처럼 입지가 좋은 편이 아니다. 2020년에 탈세 혐의로 프랑스 검찰도 체포 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에, 프랑스로도 갈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 그렇다고 제 3국을 가자니 범죄인 인도조약으로 인해 프랑스로 송환될 가능성이 커서 갈수도 없다. 그런 연유로 일본에서 탈출한 이후엔 가족들과 함께 레바논에 거주하고 있다.

2.1. 체포와 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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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9일 "유가증권 보고서 허위기재와 특별배임 등"의 혐의로 일본 검찰에 의해 체포되어 구속됐다가 2019년 3월 10억엔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이후 한 달여 만에 재구속된 뒤 추가 보석 청구 끝에 5억엔의 보석금을 내고 4월에 풀려나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2019년 12월 31일 일본을 극비리에 탈출하여 레바논으로 도주하였다.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의 보안 결함을 이용하였다.

3. 기타

4. 대중매체



[1] 법적 이름은 호지(Rose)지만 가족들은 모두 제타라 불렀다고 한다.[2] 그의 아버지는 레바논에서 신부를 살해한 혐의로 징역 15년을 복역하다 1975년 브라질로 이주했다.[3]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가 그의 작은할아버지다. 아버지는 IMF 3대 총재를 역임했던 피에르 폴 슈웨체르. 즉, 슈웨체르가 프랑스어로 슈바이처를 부르는 단어이다.[4]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5] 재계에서는 스타 경영자, 노동계에서는 프랑스에서 온 악마라고 하면서 각각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6] 일본은 지금도 전세계에서 종신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인데, 카를로스 곤은 이런 일본의 종신고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외국인이라 종신고용이 생소했을 수도 있겠지만, 기업의 최고경영자 입장에서 종신고용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을 것이다. 회생이란 명분을 내세워 구조조정을 밀어붙였으니 종신고용을 박살낸 셈.[7] 원래 성은 나하스, 전 남편 사이의 자식 셋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