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모야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ATP 투어 세계 랭킹 1위 | ||||
피트 샘프러스 1998.08.24. ~ 1999.03.14. (29주) | → | 카를로스 모야 1999.03.15. ~ 1999.03.28. (2주) | → | 피트 샘프러스 1999.03.29. ~ 1999.05.02. (5주) |
역대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자 | ||||
1997년 구스타부 쿠에르텡 | → | 1998년 카를로스 모야 | → | 1999년 안드레 애거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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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모야 Carlos Moya | |
<colbgcolor=#ad1519> 본명 | 카를로스 모야 욤파르트 Carlos Moya Llompart |
생년월일 | 1976년 8월 27일 ([age(1976-08-27)]세) |
국적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발레아레스 제도 마요르카 섬 팔마 |
프로데뷔 | 1995년 |
신체 조건 | 191cm (6 ft 3 in), 86kg |
사용 손 | 오른손 (두손 백핸드) |
ATP 싱글 랭킹 | 최고 1위 |
ATP 더블 랭킹 | 최고 108위 |
개인전 통산 성적 | 575승 319패 (64.3%) |
개인전 타이틀 획득 | 20회 |
그랜드슬램 성적 | 호주 오픈 준우승 (1997) 프랑스 오픈 1회 우승 (1998) 윔블던 4라운드 (2004) US 4강 (1998) |
통산 상금 획득 | $13,443,970 |
SNS | [1]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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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은퇴한 테니스 선수이다.2. 통산 커리어
- 개인전 통산 성적 : 575승 319패
- 커리어 통산 타이틀 획득 : 20회
- 복식 통산 성적 : 24승 50패
- 복식 타이틀 획득 : 0회
- 통산 상금 획득 : 13,443,970 달러
그랜드슬램 대회 : 우승 1회 / 준우승 1회
- 호주 오픈 : 준우승 1회 - 1997
- 프랑스 오픈 : 우승 1회 - 1998
- 윔블던 : 4라운드 - 2004
- US 오픈 : 4강 - 1998
카를로스 모야의 연도별 메이저대회 성적표
연도 | 호주 | 프랑스 | 윔블던 | US |
1996 | 1라운드 | 2라운드 | 1라운드 | 2라운드 |
1997 | 준우승 | 2라운드 | 2라운드 | 1라운드 |
1998 | 2라운드 | 우승 | 2라운드 | 4강 |
1999 | 1라운드 | 4라운드 | 2라운드 | 2라운드 |
2000 | 불참 | 1라운드 | 1라운드 | 4라운드 |
2001 | 8강 | 2라운드 | 2라운드 | 3라운드 |
2002 | 2라운드 | 3라운드 | 불참 | 2라운드 |
2003 | 2라운드 | 8강 | 불참 | 4라운드 |
2004 | 불참 | 8강 | 4라운드 | 3라운드 |
2005 | 1라운드 | 4라운드 | 불참 | 2라운드 |
2006 | 1라운드 | 3라운드 | 불참 | 3라운드 |
2007 | 1라운드 | 8강 | 1라운드 | 8강 |
2008 | 1라운드 | 1라운드 | 불참 | 2라운드 |
2009 | 1라운드 | 불참 | 불참 | 불참 |
2010 | 1라운드 | 불참 | 불참 | 불참 |
기타 대회
3. 선수 소개
스페인의 테니스 선수로서 6세부터 테니스를 하기 시작하였고 1995년에 프로에 데뷔하였다. 주목받은 것은 1997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을 달성한 때부터인데 카를로스 모야는 1997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128강전(1회전)에서 전년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우승자이며 당시 세계 랭킹 6위이던 보리스 베커(독일)를 3-2(5-7, 7-6<7-4>, 2-6, 6-1, 6-4)로 격파하고 준결승전에선 당시 세계 랭킹 2위이던 마이클 창(미국)에게 3-0(7-5, 6-2, 6-4)의 완승을 거두고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카를로스 모야의 첫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결승전 진출이기도 했는데 결승전에선 우승 후보이던 당시 세계 랭킹 1위인 테니스 황제 피트 샘프라스(미국)에게 세트 스코어 0-3(2-6, 3-6, 3-6)의 완패를 당하여 준우승을 거두었다.하지만 이 준우승을 시작으로 카를로스 모야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카를로스 모야의 전성기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였지만 1999년 중반부터 2002년 초반까지는 부진하였던 시기로 실제 전성기는 1997년부터 1999년 초반까지의 첫번째 시기와 2002년 초반부터 2004년 중반까지의 두번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전성기 시기이던 1998년에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 유일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는데 8강전에서 당시 세계 랭킹 3위인 마르셀로 리오스(칠레)에게 3-1(6-1, 2-6, 6-2, 6-4)로 승리하여 4강전에 진출하였고, 4강전에선 세계 랭킹 15위인 펠릭스 만티야(스페인)를 3-1(5-7, 6-2, 6-4, 6-2)로 꺾고 결승전에 진출하였는데 결승전에선 세계 랭킹 14위이던 알렉스 코레차(스페인)에게 3-0(6-3, 7-5, 6-3)의 완승을 거두고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하였다.
1999년 3월에는 처음으로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카를로스 모야의 세계 랭킹 1위는 스페인 테니스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것이다. 카를로스 모야가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것은 1998년 3월부터 1999년 3월까지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 1998년 US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1998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준우승, 1998년 마스터스 몬테카를로 오픈 남자 단식 우승, 1999년 마스터스 인디언 웰스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ATP 투어 남자 단식 준우승 1회를 거둔 덕택이었다.
하지만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기엔 카를로스 모야의 성적이 압도적이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한 것은 당시가 피트 샘프라스와 안드레 애거시의 양강 시대와 황제 로저 페더러의 독주 시대 사이의 절대 강자 없이 여러 강호들이 물고 물리던 군웅할거의 춘추전국 시대였던 덕을 본 것도 있다.
그러나 이 첫번째 전성기가 지난 이후 두번째 전성기 때에는 이미 76년생인 카를로스 모야의 다음 세대 후배들인 80년대 초반 출생한 마라트 사핀,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 로저 페더러, 레이튼 휴이트, 앤디 로딕 등이 치고 올라왔고 얼마 후엔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의 독주 시대도 열렸기에 카를로스 모야는 이 두번째 전성기 시기에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4강에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그래도 두번째 전성기 시기에 거둔 주요 성적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2회, 2002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ATP 마스터스[5] 시리즈 남자 단식은 우승 2회, 준우승 2회, 4강 진출 3회,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선 우승 8회, 준우승 4회를 기록하였다.
2010년에 오랜 발부상에서 회복되지 못하여 은퇴하게 되는데 공식 대회 출전은 2010년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마드리드 오픈이 마지막이었으나 은퇴식은 2010년 ATP 월드 투어 파이널 남자 단식에서 열렸다.
이 은퇴식에는 2010년 ATP 월드 투어 파이널 남자 단식에 출전하는 상위랭커 8명 이외에도 페르난도 베르다스코, 미하일 유즈니, 알렉스 코레차, 요나스 비요크만, 토마스 요한슨 등이 참석하여 카를로스 모야의 은퇴식을 성대하게 축하하였다.
2010년 은퇴할 때까지의 통산 주요 성적은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 1997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1998년 US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5회, 1998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준우승,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2회, ATP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은 우승 3회, 준우승 3회, 4강 진출 6회,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16회, 준우승 19회를 차지한 세계적인 선수였다.
<rowcolor=#fff> 2006년 은퇴 즈음의 모습 |
4. 플레이 스타일
경기 스타일은 스페인 선수답게 클레이 코트에 강한 베이스라이너이다. ATP 투어 이상급 남자 단식 결승 진출 44회 중에 28회가 클레이 코트에서 열린 대회였으며 ATP 투어 이상급 남자 단식 우승 20회 중에서 클레이 코트 대회는 무려 16회일 정도로 클레이 코트에 강한 선수였다.5. 여담
- 2017년부터 동향 선후배 사이라 사적으로 굉장히 가까운 라파엘 나달의 전담 코치를 맡고 있다. 이를 기점으로 나달의 실력이 다시 수직상승했기 때문에 코치로서의 평가가 매우 좋은 편. 또한 나달이 설립한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유망주들을 육성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