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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04-06 04:44:59

카를로스 쿠엔틴

파일:attachment/quentin.jpg
이름 카를로스 쿠엔틴 (Carlos José Quentin
생년월일 1982년 8월 28일
국적 미국
출신지 캘리포니아 주 벨플라워
신체조건 185cm, 107kg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3년 드래프트 1라운드 29순위
소속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6~2007)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8~2011)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12~2014)

1. 개요2. 커리어 초기
2.1. 부상과 복귀
3. 커리어 말기4. 기타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에서 활약한 야구선수.

2. 커리어 초기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초고교급의 실력을 보여줬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종목에서. 185cm, 107kg의 떡대를 자랑하는 쿠엔틴은 야구에서 소속 고등학교에 두 개의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면서 본인은 28개의 홈런을 쳤고, 미식축구에서는 라인배커로 뛰면서 그 해 고등학교 최고 수비수 상을 탔다. 농구 실력도 좋은 편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만능 스포츠맨. 이 실적을 바탕으로 장학금을 받고 스탠퍼드 대학교에 진학했고, 여기서 야구로 완전히 방향을 굳혔다. 스탠퍼드에서 거둔 성적이 0.350 타율에 35홈런 26도루 170타점. 한 마디로 아마 레벨에서는 더 할 것이 없었다.

결국 2003년 프로 지명을 받고 프로 무대로 뛰어든다. 첫 팀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예상보다 지명 순위가 내려간 것은 대학 막판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수술후유증없이 착실하게 성장해 2006년 처음 메이저리그 물을 먹지만, 디백스에서는 딱히 활약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고전한 것. 여기에 부상까지 겹쳤다. 제법 기회를 줬음에도 별 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자 실망한 디백스는 결국 또 다른 외야수 유망주 저스틴 업튼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FA를 앞둔 외야수 에릭 번즈를 잡고, 쿠엔틴을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보냈다. 그리고 이 트레이드는 최악의 트레이드가 되었다. 우선 에릭 번즈는 3년 30M을 받으면서 WAR가 매년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최악의 먹튀가 된다.

젊은 팀이라서 우산을 씌워줄 타자 없이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했던 디백스 시절과 달리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폴 코너코와 같은 우산을 씌워줄 타자가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특유의 장타력이 대폭발하며 2008년 홈런 선두를 질주하면서 일약 팀의 중심 타자로 올라섰다. 우익수로서 수비력은 별로였지만, 공격력으로 다 만회했다.

2.1. 부상과 복귀

2008년 8월말, 클리블랜드와의 경기에서 파울플라이로 물러나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방망이를 무릎에 내리쳐 부러뜨리려고 했는데, 정작 부러진 것은 방망이가 아니라 자신의 오른손 손목이었다. 이 때문에 수술을 받고 시즌 아웃이 되어버린 것. 시즌 아웃 당시 홈런 선두로 36홈런 100타점을 기록했고, 9월 한 달 동안 경기를 마저 소화했다면, 최소 45홈런에 120타점 이상은 충분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당연히 MVP는 따놓은 당상이었다.[1] 유력한 MVP 후보에 거론되는 등, 잘 나가던 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어이없는 행동 하나.

이 후유증으로 2009년에도 절반 가량 결장하고, 2010년에도 공갈포 비슷하게 전락하면서 한 번의 실수가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본이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2011년에는 웬만큼 살아나서 아담 던이 역사에 남을 삽질을 펼치고 있는 화이트삭스에 천군만마가 되어주는가 했더니 시즌 후반기에 들어서는 다시 2할 5푼 타율에 5할 장타율을 치는 공갈포 비슷한 모드로 회귀. 하지만 공갈포라기에는 다른 위엄있는 공갈포들과 달리 볼넷과 삼진이 적은 편이고 24홈런 77타점은 공갈포라기에는 생산력이 제법 쏠쏠하며 득점권타율 자체도 3할에 가까운지라 공갈포라기엔 억울하다. 사실 2011년에는 화이트삭스에서 이만큼 OPS 8할을 쳐주는 선수도 별로 없었던지라 쿠엔틴이 천군만마인건 변함없지만... 안습.

한편 FA 전까지 2011 시즌 이후 연봉조정 한 차례밖에 안 남은지라 시즌 중반 트레이드설이 불거졌다. 데드라인에서 마침 우타 빅뱃이 급했던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데려갈거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필리스와의 협상 자체가 시작부터 화이트삭스 쪽이 많이 유리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FA까지 쿠엔틴보다 1년이 더 남은 휴스턴 애스트로스헌터 펜스가 필라델피아행.

대신 2011년 마지막날인 12월 31일, 시삭스의 리빌딩 차원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의 트레이드가 결정되어 2012년에는 고향 캘리포니아에서 뛰게 되었다. 그리고 무릎 부상으로 신음하면서도 41경기에서 .266 .380 .510의 준수한 스탯을 기록하던 2012년 시즌 중 3년 2700만 달러의 계약에 합의하였다. 시즌 최종 성적은 .254 .340 .499로 쏠쏠한 활약을 해줬다. 86경기만 나온 건 안자랑

3. 커리어 말기

2013년 4월 11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홈경기 중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 양팀 선수들이 몰려나갔는데 그와중에 자신에게 빈볼을 던진[2] 다저스의 잭 그레인키에게 카일 판스워스가 빙의한 전직 미식축구 라인배커다운 거친 태클을 가해 그레인키가 쇄골 골절 부상을 당했다. 영상 이때문에 분개한 다저스의 맷 켐프가 쳐들어와 주차장에서 키배 말싸움을 벌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 상황 과정 등을 보면 그레인키와 쿠엔틴 서로 쌍방과실에 가깝지만 아무리 흥분했더라도 의도적으로 상대를 부상입힌 것은 메이저리거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 쿠엔틴에게 책임이 더 크게 돌아갔다. 몇 개월 뒤 그레인키와는 홈에서 다시 만났지만 이때는 충돌이 없었고, 맞대결은 그레인키의 완승으로 끝나 그레인키가 경기로 복수. 13시즌 성적은 .275/.363/.493으로, 수준급의 비율넘버로 이번에도 82경기만 뛰었다. 헌터 펜스와 비슷한 비율넘버로 절반의 몸값을 받으면서 시즌 반만 뛰는 중. 확실히 유리몸이다.

2014 시즌도 여전히 많은 경기를 결장했고 이제는 성적마저 좋지 않다. 그리고 시즌 후에 샌디에이고가 트레이드로 외야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자리마저 없는 상황 그래서인지 결국 크레이그 킴브럴 트레이드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로 넘어갔는데 거기서 넘어가자마자 지명할당을 당했다. 이후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지만 2015년 5월, 은퇴를 선언하였다가 2016시즌을 앞두고 미네소타 트윈스 스프링캠프에 초청선수자격으로 참가했다.

4. 기타

떡대가 좋고 미식축구 수비수답게 깡이 세서 그런지 몰라도,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힛 바이 피치 제조기이기도 하다. 15개~20개 정도의 HBP를 유발하여 딱히 좋은 편은 아닌 선구안을 몸빵으로 때운다. 카를로스 마그넷틴 문제는 그게 누적되어 유리몸으로 이어진다는 것.

과묵한 성격이라 가족들에게도 자기가 상 탄 것을 잘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미식축구 최우수 수비 선수상도 아버지 차 트렁크에 그냥 넣어두고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1] 2008년에는 타자들 성적이 워낙 고만고만한 편이라 MVP 고르기가 정말 애매했다. 결국 팀의 지구우승에 큰 가산점을 얻은 보스턴의 더스틴 페드로이아가 타지만, 똑같이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상태였던 쿠엔틴이 건강하게 뛰어서 40홈런을 넘겼다면 MVP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아시발꿈.[2] 카운트는 3-2라서 고의성은 없었다고 그레인키는 주장하고 있으나 쿠엔틴은 그 순간 격분하여 눈에 뵈는게 없었던 모양이다(...) 삭스 시절에도 그레인키 공에 얻어맞은 적이 있으니... 더욱이 4월 9일 경기에서 쿠엔틴은 로날드 벨리사리오에게 힛 바이 피치를 맞아 10일 경기를 결장한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