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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23:04:10

케빈 오리스

벨기에의 前 축구선수
파일:케빈 오리스 인천.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케빈 오리스
Kevin Oris
본명 케빈 쥘리엔 헨리퀴스 오리스
Kevin Julienne Henricus Oris
K리그 등록명 케빈
출생 1984년 12월 6일 ([age(1984-12-06)]세)
안트베르펜주 튀른하우트
국적 파일:벨기에 국기.svg 벨기에
신체 192cm, 체중 95kg
포지션 중앙 공격수
소속 선수 KAC 올렌 (2002~2003)
라이라 (2003~2004)
싱트니클라세 (2004~2005)
미어호르트 (2005~2006)
KSV 루셀라레 (2006~2007)
KVSK 유나이티드 (2007~2008)
RAEC 몽스 (2008~2009)
로열 앤트워프 FC (2009~2011)
대전 시티즌 (2012)
전북 현대 모터스 (2013)
랴오닝 훙윈 (2014)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5~2016)
교토 상가 FC (2017)
KVV 세스 스포츠 (2018~2019)
KVV 베르그 엔 달 (2019~2021)
FC 베젤 스포츠 (20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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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벨기에 국적의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K리그 최초의 벨기에 출신 외국인 선수이다.

2. 플레이 스타일

192cm라는 장신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제공권과 슈팅 능력으로 득점을 기록하는 유형의 공격수. 발이 느리다는 약점이 있지만, 공중에서만큼은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선수이다. 슈팅 능력도 준수하며 기술적인 슈팅을 선보이기도 한다. 또 연계 능력과 활동량 면에서도 강점이 있는데, 의외로 측면으로 빠진 뒤에 올리는 크로스도 쓸만하고 헤딩으로 공을 떨궈 어시스트를 하거나 전방 압박을 선보이는 등 공격에서 큰 활약을 보여준다.

다만 느린 발과 이로 인해 떨어지는 돌파력 때문에 혼자서 득점을 만들기는 힘들며 팀 동료들의 지원이 필요하다.

3. 커리어

3.1. 벨기에 시절

파일:Oris-Antwerp.jpg

프로 초기엔 3~4부리그를 전전하다가 루셀라레로 가며 벨기에 프로리그에 데뷔하지만 벤치로 밀려 다시 2부 리그로 이적, 이후 몽스로 이적했고 몽스의 강등 후 앤트워프로 이적한다. 앤트워프에서는 이전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였고 이후 2012년 대전으로 이적했다.

3.2. 대전 시티즌

파일:2012100801000343500033001.jpg

2012년 이적료 1억 4천만원에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며 K리그 최초의 벨기에 국적의 선수가 되었다. 시즌 초 꽤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대전의 미드필더진이 워낙 약한터라 경기내내 상대 수비진에 의해 고립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면서 별 위력을 보여주지 못하였었다.

그러던 5월 5일 당시 리그 선두였던 수원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멀티골을 몰아쳐 팀의 시즌 첫 승리를 이끌었다.

수원 삼성전에서 골을 넣으며 발동이 걸린 케빈은 이후, 5월 28일 광주 FC 전에서도 결승골을 터뜨렸고, 6월 14일 강원 FC와의 경기에서는 2골을 터뜨렸고, 10월 17일 강원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1] 무서운 골폭풍을 앞세워 케빈은 팀의 상승세를 견인하였으며, 결과적으로 2012시즌 한해동안 16골을 기록하며 대전 시티즌의 K리그 강등을 막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보였으며, 와플 폭격기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으며, 유상철 감독 특유의 벌떼처럼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의 선수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상대를 압박하고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벌떼 축구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였다.

3.3. 전북 현대 모터스


파일:30000295440_700.jpg

대전에서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낸 후 이적료 4억 5천만원에 전북 현대로 이적했다. 입단 초기에는 기존 전북 공격진과의 부조화와 파비우 레푼지스 감독 대행이 추구했던 전술과의 부조화 등으로 팬들의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2013년 7월 최강희 감독이 복귀하면서 원톱, 투톱 시스템하에서의 공격파트너인 이동국과의 역할분담에 성공하며 2경기 연속 2골을 기록하는 등 대전에서의 폼을 회복하였다. 최전방에서의 뛰어난 활약은 타 팀들의 관심을 끌었고, 결국 전북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중국의 랴오닝 홍원으로 이적했다.

3.4. 랴오닝 훙윈

기대와 다르게 부상에 시달렸고, 설상가상으로 보드진과의 불화도 생겨 많은 경기를 뛰진 못했다. 부진이 계속됐고 9경기 1골이라는 나쁜 기록과 함께 계약을 해지했다. 해지 이후 지속적으로 K리그 복귀설이 있었고 특히 부산 아이파크와 연결이 자주 됐지만, 연봉 등 문제로 계속 지연되어 협상에 난항을 겪었고, 2월이 되도록 팀이 정해지지 않아 K리그 팬들도 그의 복귀를 못 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복귀에 성공했다. 그런데 그 행선지가 바로 인천이었다.

3.5. 인천 유나이티드 FC

파일:external/www.incheonutd.com/8181.jpg
2016년 대한축구협회 FA컵 16강전에서 팀의 2번째 골을 넣은 직후의 골 세레머니.

시즌 시작 전부터 감독 선임, 선수 이적, 위험한 재정으로 온갖 위기에 봉착했던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은 케빈 영입 소식에 모두 우린 이제 살았어!를 외쳤다. [2]

3.5.1. 인천 유나이티드 FC/2015년

2015 시즌 개막전에서 상대의 자책골을 유도해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그 이후에도 연계 플레이 등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받고 있지만, 본인의 골 결정력이 많이 아쉬운 상태. 중국에서의 한 시즌동안 주전에서 밀린 여파가 있는 듯 하다. 또한 언어가 안 통해서 팀워크 부분에서 발이 안 맞는 모습이 가끔 나오고 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던 케빈이지만 결국 부천을 상대로 FA컵에서 인천에서의 데뷔골을 넣었다. 이후 6월에 전남, 포항을 상대로 두 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면서 그의 존재감을 과시했고, 어시스트를 야금야금 쌓으면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7월엔 광주와의 홈경기에서 상대 수비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선제결승골을 터뜨렸다. 광주 골키퍼 권정혁도 나가는 줄 알고 다이빙을 뛰지 않을 정도로 기술적인 킥이였다. 8월엔 친정팀 전북과의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해서 팀의 1:0 승리를 돕고, 이후 친정팀 대전을 상대로 실점 2분만에 동점골을 터뜨려서 팀의 2:1 승리에 일조했다. 거친 몸싸움으로 옐로카드를 자주 받는다. 진성욱이 아직 폼이 불안정하기에 케빈의 활약이 중요하다. 여름부터는 이효균의 임대복귀로 후반에 교체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다만 시간이 지난 뒤엔 케빈 말고 미드필더와 교체해 투톱을 사용 중이다.

8월 29일(대전전) 현재 김진환, 김인성과 함께 FA컵 포함 팀내 득점 1위이다.

스플릿 라운드로 다가가는 상황에서 본인의 폼이 급상승, 부산, 울산을 상대로 2경기 연속 골에 성공하면서 팀내 득점 단독 1위에 올랐다. 사기적인 제공권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중. 동시에 측면의 크로스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시즌이 종료되면서 리그에서는 35경기 6골 4도움으로 팀의 유일한 두자리수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또한 시즌 종료와 동시에 재계약이 발표되면서 다음 시즌에도 팀에 남게 되었다. 시즌 막판 와다 토모키가 성장을 보이기도 했고, 이현성 등의 신인들이 합류하면서 2016년에는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

3.5.2. 인천 유나이티드 FC/2016년

올 시즌에도 여전히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고군분투 중. 인천이 빈공을 이어가는 가운데 케빈도 이렇다 할 모습은 보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4라운드 성남 FC전에서 동점골을 넣었고 누가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전북과의 5라운드 경기에서는 후반 종료 직전 송시우의 동점골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케빈의 페이스는 작년보다 빨리 올라오고 있으며, 상주 상무 전에도 2:0으로 달아나는 골을 멋있는 트래핑과 강력한 슛으로 만들어냈고 성남 전에도 강력한 슈팅으로 결승골을 뽑아내어 리그 첫 승의 주역이 됐다. 12라운드까지 3골 2도움으로 작년의 6골 4도움을 벌써 절반이나 따라잡았다.

6월 18일 친정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는 임종은과의 공중볼 경합 중 서로 머리끼리 크게 충돌하면서 잠시 의식을 잃었었다.[3] K리그 팬들에게는 신영록, 몰리나 등 과거에도 경기 중에 선수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사경을 헤맸던 사례가 있었기에 다들 가슴을 쓸어내렸던 상황. 다행히도 빠른 응급처치로 금방 의식을 회복했고, 충격 때문인지 몸이 무뎌지긴 했으나 기죽지 않고 풀타임으로 경기를 소화하는 근성을 보이면서[4] 다시 한번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7월 17일, 현재 4골 6도움. 경기마다 인천의 공격핵심을 당담하고 있으며 특히 연계가 매우 많이 늘어서 팀원들에게 결정적인 찬스를 내어주는 상황이 정말 많으며 어시스트도 벌써 6개를 기록중이다.

그리고 7월 20일 울산 현대를 상대로 2골 1도움을 작렬, 스탯은 6골 7도움이 됐다! 골 수는 이미 저번 시즌과 같으며 도움은 훌쩍 뛰어넘은 상황. 게다가 이어진 포항과의 경기에서 올해의 골로도 손색이 없는 기가막힌 발리슛으로 7골 7도움이 되면서 작년의 골 수까지 뛰어넘었다! 다른 팀의 수준급 외국인 공격수들인 아드리아노티아고 만큼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 골 결정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후반기를 앞두고 아드리아노가 장기간의 징계로 출장이 불가능해진 것과 티아고가 알 와흐다 FC로 이적한 것을 생각하면 케빈이 그들의 기록을 갱신할 여지도 충분히 생기게 되었다.

8골 8도움을 달성하고 이어서 광주 FC전 진성욱에게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9도움까지 달성. 어렵긴 하지만 도움왕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어 포항전에서 중거리슛으로 골을 기록해 9골 9도움 스탯을 기록했다. 인천 선수 중에선 최초로 10골-10도움의 기록을 올릴 수 있을 지 기대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수원 삼성과의 경기에서 항의도중 옐로카드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수원 FC와의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시즌 9골 10도움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인천의 공격 전술이 대부분 뻥축구라는 점과 시즌 내내 강등권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케빈은 오히려 작년보다 더 많은 19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였다.

3.6. 교토 상가 FC

파일:external/www.sanga-fc.jp/09_1.jpg

시즌 종료 후 J2리그 교토 상가 FC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인천을 떠나게 되었다. # 그러나 잔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인천 시절보다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 때문에 2018년에는 새로운 팀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태국과 베트남의 구단들에서 좋은 제의를 받았으며, 2018년까지 선수로 뛰고 현역에서 은퇴할 것임을 밝혔다. 은퇴한 후에는 고향 벨기에에서 개업을 준비하고 있는 별장식 호텔을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

3.7. 다시 벨기에로

한동안 근황이 들리지 않다가, 2018년 2월 아마추어 팀인 KVV 세스 스포츠라는 팀에 입단한 것이 확인되었다. # 본인이 직접 2018년이 선수로서의 마지막 해라고 밝혔던 만큼 이 팀이 사실상 현역 마지막 팀이 될 듯 싶었는데 2018년 5월 4일 재계약을 맺으면서 다음 시즌에도 현역으로 이어가게 됐다. #

2019년에는 KVV Berg en Dal로 이적했다. 이후 FC 베젤 스포르트에서 뛰다가 고관절 부상으로 인해 2021-22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다. #

4. 여담

5. 관련 문서



[1] 참고로 이날 경기에서는 상대팀 지쿠도 해트 트릭을 기록했었다.[2] 인천 유나이티드는 통역을 따로 두지 않았기 때문에 벨기에 프로리그 경험이 있고 영어에도 능통한 설기현이 케빈의 통역을 전담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2015년 초에 올라온 케빈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김원식김도혁이 영어를 잘 한다고 밝혔던 것으로 보아 설기현의 은퇴 후에는 저 둘이 통역을 해줬던 것 같다.[3] 임종은은 의식을 잃진 않았으나 이마에 출혈이 생겨 남은 시간 동안 붕대를 감고 뛰었다.[4] 교체 제의가 들어왔었으나 케빈 본인이 거부했다고 한다.[5] 2015년 K리그 클래식 37라운드, 2016년 대한축구협회 FA컵 16강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