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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4 14:47:34

콘도 토시히로

파일:attachment/콘도 토시히로/kondotoshihiro.jpg
이름 近藤季洋[1]
영어명 Toshihiro Kondo
생년월일 쇼와 50년
1975년 1월 14일
출신 일본 아이치현 토요타시
직책 니혼 팔콤 대표이사 및 사장

1. 개요2. 내용3. 여담4. 장점5. 비판6. 경력

1. 개요

니혼 팔콤의 대표이사이자 미친듯이 구르는 철혈재상[2] 사장. 현재 디렉터 및 프로듀서 직도 맡고 있다.

콘도 대표는 제 2대 대표이사로서 제 1대는 야마자키 신지 前 대표. 2006년 전후로 병이 든 야마자키 대표가 직접 콘도를 지목해 대표이사로 승격시켰다. 지금에 와서 회사를 잘 성장시키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훌륭한 안목인 셈. 물론 이것도 상장 분리를 시도한 2001년 이후로 해당되는 내용이다. 그 전에는 회사를 담당하는 대표 역할은 現 회장, 카토 마사유키.

참고로 팔콤은 중소기업임에도 사장 위에 회장직이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콘도의 사내 서열은 직책으로선 2위, 입사순으로는 10위권 안에 해당된다. 직책으로서도, 입사 순으로서도 압도적으로 빠른 카토 마사유키 회장은 창립자이자 오너다. 그 외, 시나리오 및 중요 직책에서도 이시카와 미에코, 쿠사노 타카유키, 타케이리 히사요시 순으로 먼저 입사했기에 입사 순으로 따지면 당연히 밀린다. 즉, 제일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음에도 회사의 네임드 순으로 따지자면 아직 막내인 셈.

그리고 사실상 2005년부터 중요직책을 맡았기에 하늘의 궤적의 성공 이후, 출세가도를 달린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또한 대표직은 그 뒤, 2년 후에 바로 취득. 다만, 2001년에 이사직을 달았던 이시카와, 쿠사노보다는 조금 늦게 출발했다.

그래도 능력이 굉장히 뛰어났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디렉터로 자리 잡았던 쿠사노 타카유키의 디렉터 자리를 빼앗기도 했으며 이후, 창립자가 벽의 궤적까지 유지해 왔던 프로듀서 직책을 그대로 넘겨받는 등 회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재로서 많은 활약을 했다. 프로듀서 직책을 잡은 뒤로는 다시 쿠사노 타카유키에게 디렉터 자리를 반납했다.

2. 내용

경제학부 출신으로 은행과 일반 기업에 취업원서를 냈으며 그중에는 코에이, 남코, 니혼 팔콤(이하 '팔콤')도 있었지만 팔콤에서 채용 내정을 받은 후 취업 활동을 끝내고 1998년 입사했다.[3]

회사의 많은 사원들이 그렇듯 그 역시 영웅전설Ⅲ 하얀마녀에 감명받아 입사했다고 한다.[4][5] 입사와 관련된 일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쓰자면 다음과 같다.

대학과제로 만든 홈페이지에 당시 빠져 있던 게임의 공략 정보(시기 상 영웅전설Ⅲ 하얀마녀로 추측된다.)를 올렸는데, 당시 컴퓨터게임 잡지였던 콤프틱(コンプティーク)에 그 홈페이지가 소개되었다. 이 홈페이지에 게재 된 내용을 문제시 한 팔콤이 콘도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대학생이였던 콘도의 답장을 읽고 '이 녀석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 라고 생각하여 콘도를 팔콤 사옥으로 초대했다. 콘도와 대면한 팔콤은 최근 팔콤에서도 3D를 시작했다는 내용이나, 부모를 설득하는 방법 (당시 부모들에게 게임 회사의 인식은 안좋았던 모양이다.) 등 여러가지 말을 나누고 식사(철판요리)와 회사 견학을 했다. 이때 그를 응대했던 사람이 당시 팔콤의 사원이었던 신카이 마코토였다.

첫 입사 때 맡은 업무가 이스 이터널의 버그 테스트 담당이었고[6] 이후는 서버 관리자였지만 회사 내부 분위기가 "누구라도 의견을 낼 수 있다"였기에 그 역시 시나리오를 낼 수 있었다. 첫 작품은 신영웅전설Ⅲ 하얀마녀 였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써 나가기 시작했다. 그 후 그가 직접 주도해서 만든 작품인 궤적 시리즈의 첫 작품 영웅전설 하늘의 궤적이 대박이 터지면서 결국 2007년 7월 사장에 취임했다.[7]

하지만 그가 사장에 취임한 후 첫 작품이었던 쯔바이 2는 완전히 망해버렸고,[8] 이에 콘도 사장은 더 이상의 PC게임을 내지 않기로 결정한 듯 하다.[9] 이 이후 모든 게임을 PSP로 제작하기 시작하여 이식작이 아닌 첫 작품으로 2009년 9월 이스 7을 출시하였으며, 이듬해인 2010년 이스 vs 하늘의 궤적 얼터너티브 사가영웅전설 제로의 궤적을 출시하여 좋은 성과를 냈다.

그 후 2011년 영웅전설 벽의 궤적, 2012년 이스 셀세타의 수해나유타의 궤적, 2013년 영웅전설 섬의 궤적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품들이 성공을 거두며 콘도 사장은 한동안 침체되었던 팔콤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콘도사장이 취임하기 전과 취임한 후의 판매량만 보더라도 굉장히 큰 차이를 보이는게 사실이다.

2014년, 영웅전설 섬의 궤적Ⅱ가 발표되고 타이페이 게임쇼 2014에서 섬의 궤적 1편과 2편 모두 중국어 번체판 및 한국어판 출시가 결정되면서 한국에서도 주가가 상승했다. 2014년 4월 21일에 방한해 미디어 간담회에서 섬의 궤적과 섬의 궤적 2의 발매일을 발표했다.

그 이후, 계속해서 중국어 번체판 발표를 위해 해외에는 대만, 홍콩으로만 방문하였다. 주로 대만은 1월의 타이페이 게임쇼, 홍콩은 7월의 홍콩 애니메이션 게임 페스티벌로 각각 다양한 게임들을 발표하는 와중, 한국에는 미디어를 위한 간담회 한 번 열은 뒤론 오질 않고 있어서 한국에서의 발표는 이대로 SIEK에게 맡기고 패싱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으나 2019년 3월 9일, PlayStation FESTA에 콘도 토시히로 대표가 유저들을 볼 목적으로 방한 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이 때, 여러 타이틀의 한국어판이 발표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국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대신 이 때가 마침 팔콤의 38주년 창립기념일이라 깜짝 생일 파티를 열게 되었다. 이 때, 콘도 대표가 함박웃음을 짓는 것이 포인트. 여담으로 마침 해외에 출장가는 날이 팔콤의 창립기념일이었던 경우는 여태껏 없었고 그런 와중, 생일 파티를 해외에서 연 것도 처음이라고 볼 수 있겠다.

3. 여담

콘도 사장은 사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이 뛰어다니는 걸로 유명하다. JDK밴드와 보컬 코테라 카나코도 굉장히 많이 뛰어다니는 편인데도 묻힐 정도이다. 과장이 아니고 뭔가 팔콤에서 인터뷰를 한다 하면 90% 이상의 확률로 콘도 토시히로가 나온다. 다른 업체같으면 사장이 직접 안할 게임 홍보나 시연회 등도 모두 직접 하고 있고 그게 연이어 있더라도 모두 나온다.[10] 일례로 2014년 1월 25일 저녁에 열린 음주방송[11] 팔콤 어쿠스틱 라이브에 참석하고 겨우 2일 후인 1월 27일에 대만 TGS에 나타났다. 참고로 여기서 발표된 게 팔콤과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재팬 아시아(SCEJA, SCEK도 이 회사 산하에 있다.)와의 로컬라이징 계약이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영웅전설 섬의 궤적영웅전설 섬의 궤적 II의 한국어화. 이후 jdk밴드가 전부 계약이 끝나고 신규 인원으로 충당되면서 jdk밴드는 말 그대로 밴드만 하고 있고 오로지 콘도 사장만 뛰어다니고 있다.

나이가 젊은 편이라서 그런지 사장임에도 불구하고 주위 사원들이 콘도 사장이라고 안부르고 콘짱 혹은 콘짱사장.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JDK 작곡가들도 그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고 코테라 카나코도 그렇게 부르며 심지어 팔콤 익스프레스 뉴스를 담당하는 이카도 그렇게 부른다. 트위터에서도 콘도라고 안부르고 콘짱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가 사장에 취임한 이후 오덕코드가 엄청 늘었다. 특히 그가 직접 제작한 궤적 시리즈의 경우는 그 절정인데 최고 인기 캐릭터들이 모두 모에도가 엄청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외 특징으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식의 인터뷰가 많다. 반쯤 알려줘 놓고 게임의 이해를 반대로 하게 만든 다음 나중에 그 게임 발매 후 클리어했을 때 다시 그 인터뷰를 보면 완전히 정 반대의 의미였음을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섬의 궤적 2가 끝나면 하늘의 궤적 당시 구상했던 스토리의 절반이 끝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엔 '궤적 시리즈 구상의 절반이 끝난다'고 이해한 유저가 많았으나 실제론 제국편이 절반 정도 끝난다라는 의미였다.[12] 이는 메인 시나리오 라이터는 타케이리 히사요시지만 콘도 사장 본인은 시나리오는 물론 작품의 지휘를 총괄하고 회사를 책임지는 사장이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대감을 가지고 작품을 기다리되 너무 많은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적당한 선에서만 정보를 해금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형성된 이미지라 할 수 있다.[13]

4. 장점

시나리오 라이터로서 콘도 토시히로는 너무 잔잔한 설정을 짠다는 비판 정도를 빼고는 서정적인 스토리를 잘 쓴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특히 직접적으로 시나리오에 개입했던 하늘의 궤적 FC나 셀세타의 수해 같은 경우에도 서정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어 나쁘게 말하면 지루하지만 좋게 말하자면 이야기가 맵지 않은 듯이 작성하는 것을 장점으로 두고 있다. 이스 8에서도 시나리오 라이터로 참가했는데 이 때에는 셀세타와 다르게 어느 정도 서정적이면서도 어느 정도 자극적인 요소도 들어가 있다.

디렉터 및 프로듀서 직종에서도 하늘의 궤적의 대성공으로 쿠사노 타카유키보다 능력이 뛰어남을 입증해 하늘의 궤적 FC PSP판부터 디렉터를 맡기도 했다. 다만 벽의 궤적에서 갑작스럽게 카토 마사유키 회장이 콘도에게 프로듀서 직종을 건내 준 이후, 나유타의 궤적에서부터는 다시 쿠사노에게 디렉터직을 반납하고 프로듀서 직종으로 변경하였다. 이후, 웬만하면 프로듀서를 맡고 있지만 이스: 셀세타의 수해에서는 디렉터, 프로듀서, 시나리오를 한꺼번에 담당하기도 했다. 디렉터로서의 콘도 또한 아기자기한 2등신 캐릭터들로 극한의 연출을 보여준 바가 있으며 프로듀서로서의 콘도 또한 카토의 뒤를 어찌저찌 이어 총괄적인 이미지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5. 비판

현재 콘도 토시히로 대표는 상당히 뛰어다니면서 여러 정보를 알려줌과 동시에 프로듀서로서 활동을 멈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옹호적인 요소도 많지만 대표이사라서가 아닌, 개발직의 프로듀서로서 콘도 토시히로는 상당히 비판의 여지도 많이 남아있는 추세다. 특히 그는 궤적 시리즈의 뼈대를 기획하고 구성하고 있는 사람이며 실제 그는 궤적 시리즈의 초안이 되는 기획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 현재 섬의 궤적 시리즈에서 많이 벌여지고 있는 비판이 메인 시나리오 라이터, 타케이리 히사요시에게 많이 쏠리는 부분도 많지만 실제 궤적 시리즈의 줄기가 되는 스토리와 전개, 그리고 기획 등, 오히려 파고 들어보면 콘도 토시히로에게도 화살이 많이 쏠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메인 시나리오의 살을 붙이는 게 타케이리라면 메인 시나리오의 뼈를 만든 건 콘도다. 그렇기에 하늘의 궤적부터 섬의 궤적까지. 전 궤적 시리즈의 줄기 스토리는 콘도 토시히로가 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 그렇기에 반전에 대한 문제를 타케이리에게만 돌리면 안 된다. 오히려 반전의 경우는 콘도한테 책임이 가야 한다. 그의 직종은 프로듀서. 프로듀서는 전체적인 게임 개발 및 인력 내외로 총괄하여 신경쓰는 직업이기 때문. 그리고 줄기를 콘도가 작성했다면 반전의 줄기 또한 콘도의 의도대로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특히 린 슈바르처는 이미 콘도 대표의 머릿 속에서 기획이 어느 정도 되었던 캐릭터고 그 캐릭터가 표면에서 드러날 때에 수정을 많이 가하면서 콘도의 메리 수 캐릭터가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시리즈를 이어오면서 섬의 궤적부터는 더 심해져서 뻔하디 뻔한 반전으로 유저들을 짜게 식게 만들거나 반전을 캐릭터가 받아들이는 과정이 납득이 별로 안될만큼 막나가는 부분이 있다. 특히 섬의 궤적 2의 엔딩과 후일담 부분은 온갖 게임 리뷰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사족이었다는 평이 많다. 오죽하면 부적절한 엔딩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 그리고 섬의 궤적 3에 와서는, 충공그깽의 통수의 연속으로 그야말로 막장 사이코 드라마를 찍는(...) 만행을 선보여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플레이어들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섬의 궤적 4에서 더더욱 욕을 먹게 되어 버렸다.

6. 경력



[1] 팔콤이 방한한 후에 관련 기사에서 자꾸 이름을 잘못 쓰고 있다. 혼도 토시로라든지, 콘도 요시히로라든지... 팔콤 게임 엔딩 크레딧을 보면 "Toshihiro Kondo"라고 분명하게 써 있다. 헷갈리지 말자. 설마 팔콤 시나리오 스탭 중에 있는 "Yoshihiro Konda(콘다 요시히로)"와 헷갈린 건 아니겠지[2] 코테라 카나코가 콘도사장을 이렇게 부른다[3] https://news.denfaminicogamer.jp/projectbook/180724/2[4] 이는 2019년 3월 9일, 플레이스테이션 페스타에서도 밝혀진 내용이다.[5] 대학 3학년 쯤에 게임에 나오는 대사를 보고 그 대사를 전부 타이핑을 하는등 오타쿠 같은 경험도 했는데, 이 경험은 이후 시나리오 공부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6] 당시 그 악명높은 달크 퍽트의 난이도 때문에 출근부터 밤9시까지 달크 퍽트 전만 줄창 플레이 했는데도 결국 한번도 클리어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7] 2004년부터 2009년 이스 7이 나오기 전까지 팔콤의 게임은 궤적 시리즈를 제외하곤 판매량이 좋지 않았다.[8] 팔콤 사내에서도 "실패"라고 규정하는 인터뷰가 많다. 콘도 사장은 "공을 많이 들였는데 많이 팔리지 않았다"라는 언급을 지금도 자주 하면서 상당히 아쉬워하고 있다. 다만 팔콤답게 이때조차도 적자는 피했다.(...)[9] 여담으로 2007년에 궤적 시리즈의 차기작이 에레보니아 제국이 될 것이라는 인터뷰가 있었는데 쯔바이2가 망한 이후 PSP로 노선이 바뀌면서 에레보니아 제국과 동시에 구상되던 크로스벨 자치주의 이야기로 차기작 순서가 바뀐 것으로 추측된다. 어쿠스틱 라이브에서 '그 그래픽으로는 제국의 거대함을 표현하기 힘들었다'라고 했던 것만 봐도... 그리고 그 결과물이 영웅전설 제로/벽의 궤적이다. 제국편인 섬의 궤적은 2013년이 되어서야 풀3D가 되어 출시되었다.[10] 오죽하면 섬의 궤적 제작당시 현 팔콤 회장이 걱정할 정도라고...[11] 농담이 아니고 방송 막바지일때 코데라 카나코는 취한상태였다[12] 실제로는 둘 다 맞는 해석이다. 전체적으로 봐도 섬의 궤적은 절반 정도가 맞고 그 자체로도 제국편의 절반인 것도 맞고[13] 한 두 작품으로 스토리가 완전히 끝나는 작품과는 달리, 궤적 시리즈는 섬의 궤적 4 기준 14년 동안 9작품이 직/간접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작품이 판매 수익, 즉 영리를 취하기 위해 정보를 해금하는 상황이라면 스토리에 가장 깊이 관여하고 잘 아는 한 사람을 정보 공개의 대표 창구로 내세우는 형태가 정보의 관리나 중구난방식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점에서 효율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