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위에 세워진 도시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시가지 풍경 | 명소 중 하나인 자연 아치 |
1. 개요
아랍어: قسنطينة (Qusanṭīnah)프랑스어/영어: Constantine
알제리 제3의 도시. 인구는 61만 명. 중세 시대에 현 알제리 동부는 콘스탄티노이스로 불렸는데, 콩스탕틴에서 유래한 지명일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18-19세기 알제리 베이들의 지배 하에 아흐메드 베이 궁전 등 여러 이슬람 건축들이 지어졌고, 그 덕에 2015년 아랍 문화 수도로 지정되었다. 삼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구도심과 그 주변으로 시가지가 확장된 탓에 양측을 잇는 다리들이 많은데, 그 풍경이 감탄을 자아낸다.
2. 역사
1835년 완공된 콩스탕틴의 아흐메드 베이 궁전
북아프리카의 많은 도시들이 그렇듯이 페니키아에 의해 세워졌고, 사와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2차 포에니 전쟁 후 누미디아의 왕 마시니사가 로마의 도움으로 도시를 얻어 수도로 삼았고, 이름도 키르타로 바꾸었다. 유구르타 전쟁 중에 키르타는 로마군의 거점이었고, 그후 로마령이 되었다. 로마의 지배하에서도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식민도시 (콜로니아)로 승격되고 인구가 5만에 이르는 등 번영하였으나 서기 311년에 막센티우스와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알렉산데르 간의 내전으로 파괴되었다. 그 후 서기 313년에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도시가 재건되어 콜로니아 콘스탄티아나 (Colonia Constantiniana)로 명명된 것에서 현재의 지명이 유래되었다.
1837년 콩스탕틴 함락 | 1840년 콩스탕틴 삽화 |
그후 430년 반달 왕국령이 되었다가 533년 동로마 제국에게 수복된 후 요새화되었다. 그후 동로마령 누미디아의 총독부로 기능하였고, 7세기 후반에는 베르베르인 여왕 카히나가 아랍인들에 맞서 도시의 수비를 맡았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도시는 697년 우마이야 왕조에게 점령되었고, 아랍어 발음인 카센티나로 불리게 되었다. 다만 그 기독교 공동체는 10세기까지 존속했다고 한다. 도시는 12세기 무와히드 왕조와 13-15세기 하프스 왕조의 통치 하에 제노바, 피사, 베네치아 상인들이 왕래하는 등 교역 도시로 번영하였다. 1529년부터 오스만 제국령이 되었고 18세기 말엽, 중앙 정부로부터 자립한 알제리 총독인 살라흐 베이는 도시에 여러 이슬람 건축을 세웠다. 19세기 프랑스의 침공 시에 콩스탕틴은 현지인 저항의 거점이었으나 프랑스 군의 포위 끝에 1837년 10월 함락되었다. 한세기가 넘는 프랑스 지배기 동안 현재의 시가지 구조가 형성되었다.
3. 교통
콩스탕틴 무하메드 부디아프 공항이 위치해있다.4. 여담
알제리 동부의 중심 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도시 이름이 로마 황제의 이름이고, 알제리 독립 전쟁의 상대였던 舊 식민 종주국 프랑스가 이 라틴어의 후계 격인 프랑스어를 쓰기 때문에, 프랑스의 잔재를 없애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지역명을 바꾸자는 운동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