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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C0C0C0> 레젠다리움의 등장인물 키리온 Cirion | |
본명 | Cirion 키리온 |
성별 | 남성 |
종족 | 인간 (두네다인) |
출생 | T.A. 2449 |
거주지 | 곤도르 |
가문 | House of Húrin 후린 가문 |
직책 | Ruling Steward 통치 섭정 |
통치기간 | T.A. 2489 - 2567 |
가족관계 | |
부모 | 보로미르 (아버지) |
자녀 | 할라스 (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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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곤도르의 제 12대 통치섭정이다.2. 이름
3. 행적
제3시대 2449년에 보로미르의 아들로 태어났다. 보로미르가 섭정이 된지 12년 만에 사망하자 2489년에 통치섭정의 자리에 오른다. 보로미르가 우루크하이를 무찔러 이실리엔과 오스길리아스를 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실리엔은 버려졌고, 칼레나르돈의 인구는 감소했다. 그동안 움바르 해적들은 다시 해안을 습격해왔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국경을 방어하는 데 모든 힘을 쏟는 것 뿐이었다.3.1. 북부의 위협
그의 재위 시기에 곤도르는 크나큰 위기에 처한다. 2501년에 전차몰이족의 일족인 발크호스 부족이 동부에서 몰려와 북부인들을 학살하고 이들을 내몬 다음 로바니온을 차지한 것이다. 또한 돌 굴두르의 지원을 받아 창포벌판의 남부 안두인 계곡까지 모두 황폐화 시키면서 곤도르를 궁지로 몰아넣는 데에 성공하였다. 2510년에 로바니온을 점거한 발크호스 부족이 곤도르로 남하할 움직임을 보이고 안개산맥의 오르크들도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통치 섭정 키리온은 과거에는 혈맹이었지만 지금은 저 멀리 북쪽으로 이동한 에오세오드족에게 구원을 요청하기로 한다. 에오세오드족에게 구원을 청하는 것은 돌 굴두르의 어둠지역을 통과해야하는 어려운 임무였기에, 키리온은 여섯 명의 자원자를 모집하여 하루에 2명씩 짝을 지어 밀사를 파견했다.총 6명의 밀사들이 에오세오드족을 향해 구원을 청하러 떠났으나, 오직 한 명만이 포위망을 뚫는데 성공하였다.[4] 3월 25일에 사신은 에오세오드 부족의 거주지에 도착하여 에오세오드의 지도자인 에오를에게 전갈을 전했고, 에오를 또한 곤도르가 무너지면 에오세오드족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 곤도르를 돕기로 결정한다. 4월 6일, 에오세오드는 대략 7천명 정도의 모든 기병대를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돌 굴두르에 도달했을 무렵, 돌 굴두르의 사악함에 두려움을 느끼고 망설였지만 갈라드리엘이 새하얀 안개로 어두움을 밀어내며 그들을 도와서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3.2. 켈레브란트 벌판의 전투
한편 곤도르에서 원군만을 간절히 기다리던 키리온은 에오세오드 부족의 군대가 와 줄지 회의를 느끼며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향했고, 아들 할라스에게 미나스 티리스의 지휘를 맡겼다.그러나 로한 고원을 지날 무렵 이미 안두인 강을 건넌 발크호스족이 후방에서 대거 출현하여 퇴로를 끊어버렸고 북쪽의 맑은림강을 넘어 곤도르 군대를 켈레브란트 벌판까지 밀어붙였다. 게다가 북쪽에서는 안개산맥의 오루크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곤도르군을 사이에 밀어넣으며 앞뒤가 모두 막힌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키리온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바로 그 순간, 발크호스 군대의 후방에서 에오를의 기병대가 기습공격을 펼쳤고 발크호스는 크게 패해 달아났다. 에오를은 이들을 마저 추격하여 칼레나르돈 평원에서 발크호스족 군대를 대파하고 곤도르 병사들과 키리온을 구해내는 데에 성공한다. 모든 이들은 키리온이 에오를을 데리고 가 대연회를 베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에오를에게 석달 후 이곳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빠르게 미나스 티리스로 돌아간다.
3.3. 로한의 건국
3개월 후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키리온과 에오를은 함께 성산[5]을 오른다.키리온은 정상에 오르기 전에 에오세오드족에게 칼레나르돈을 주고 그들과 곤도르 사이에 영원한 동맹을 맺겠다는 결의를 전한다. 에오를은 키리온의 지혜와 우정을 인정하며 수락한다. 정상에서 키리온은 엘렌딜의 무덤을 공개했으며, 증인들[6] 앞에서 칼레나르돈의 소유권을 에오를에게 양도한다고 선포하였다. 이에 에오를은 칼레나르돈에서 살 것이며 곤도르와의 우정은 영원하고 곤도르의 적은 곧 그들의 적이라고 맹세하며 화답한 에오를의 맹세가 선포된다.
에오를의 맹세에서 키리온과 에오를은 함께 퀘냐로 이 맹세는 누메노르의 영광과 엘렌딜의 신념이 함께 할 것이고 발라와 일루바타르가 보살필 것이라고 맹세했고, 에오를은 로한의 첫 국왕이 된다.
키리온은 로한의 성립으로 더 이상 '이실두르의 전통'[7]이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성지는 더이상 곤도르의 중심이 아니며, 이실두르가 말한 곤도르와 현재의 곤도르는 더이상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키리온은 엘렌딜의 무덤을 라스 디넨으로 옮겼다.
로한의 건국을 이끈 키리온의 결단은 과감하면서도 굉장한 업적이다. 아무리 당시 칼레나르돈에 사는 인구가 크게 줄었다고 해도 국토의 3분의 1를 포기한 셈이고, 당시 곤도르에서는 북부인에 대한 멸시가 상당했다.[8] 하지만 이런 키리온의 결단 덕에 곤도르는 강력한 동맹국을 얻을 수 있었고, 이 덕에 곤도르는 훗날 멸망 위기를 여러 차례 넘길 수 있게 되었다.[9]
키리온은 2567년에 118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섭정의 자리는 아들인 할라스가 잇게 된다.
[S] 신다린[2] Ship(배). 'Cut/Cleave(자르다/가르다)'를 의미하는 원시 요정어 어근 KIR에서 파생된 단어 kiryā에서 비롯됐다.[3] 대리 접미사[4] 사신의 이름은 보론디르로, 에오세오드와 같은 북방인 혈통을 이어받아 승마에 능숙했다. 그는 켈레브란트 벌판의 전투에서 전사했다.[5] 요정어로 아몬 아놔르(Amon Anwar), 로한어로 할리피리엔(Halifirien). 엘렌딜의 무덤이 있던 곳으로 로한의 건국 이후에 유해는 미나스 티리스에 이장하고 봉화대로 쓰이게 된다.[6] 할라스, 돌 암로스의 대공, 곤도르 귀족 두 명.[7] 이실두르가 만든 비밀스러운 전통으로, 곤도르의 통치자는 후계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엘렌딜의 무덤을 방문해야 한다는 전통이다. 이실두르의 명령에 따라 엘렌딜의 무덤은 성지가 되며, 엘렌딜의 후예, 즉 곤도르의 적벅한 통치자와 상속자가 아니라면 엘렌딜의 무덤을 방문할 수 없다.[8] 심지어 로한이 최대 우방국인 반지의 제왕 시점에서도 이런 멸시가 은연 중에 만연했다. 대표적으로 파라미르가 에오윈에게 청혼하자, 에오윈이 누메노르의 고귀한 여식 대신 북방의 야만인 여자와 결혼했다고 수근거릴거라고 비꼬기도 했다.[9] 이 때문에 곤도르에 왕이 돌아온 뒤에도 이런 키리온의 업적을 계승하기로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