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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7 07:56:52

탈코르셋 운동/비판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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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또 다른 코르셋을 씌우는 행태3. 본질적으로 이성애자 여성이 지속하기 어려운 운동4. TERF 성향5. 코르셋이라는 개념에 대한 의문6.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7. 페미니즘 사상검증용으로 전락

1. 개요

탈코르셋 운동의 비판과 한계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또 다른 코르셋을 씌우는 행태

여성에게 선택권이 있고 노출 또한 여성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지 다른 여성을 때리는 도구가 아니다.
엠마 왓슨이 노출 화보를 찍었다가 비난을 받자 한 말. 엠마 왓슨은 상호교차주의적 페미니스트이다.

여성성 탈피라는 미명 아래 탈코르셋 강요자들은 꾸미고 다니기 좋아하는 여성, 본래 순하고 부드러운 성격이 매력인 여성 등을 무차별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가 심화됨에 따라 탈코르셋 운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크게 나빠졌고 2020년대에 들어서는 남성 이상으로 탈코르셋 운동에 거부감을 느끼는 여성들이 많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1]

특히 레이싱 모델, 치어리더 같이 신체적 매력 어필을 주 직업으로 하는 여성들은 탈코르셋 강요자들의 메시지가 불쾌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강성 탈코르셋 운동가들은 밤낮으로 식단 조절과 운동을 하며 노력하는 이들에게 "남성의 쾌락을 위해 사회가 만들어낸 여성성을 굳히는 데 동조하는 자들"이란 모욕을 주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은 잘 가꾸어진 몸이 본인들의 매력이자 돈벌이 수단인데 자부심을 갖고 가꾼 육체와 직업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다수의 여성들을 자신들이 가르치고 이끌어 줘야 하는 모자란 존재로 본다는 점도 문제다. 패션과 스타일은 전적으로 개개인이 결정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는 여성 개개인은 남성 중심주의 사회에서 남성에게 세뇌되어 자유로운 사고가 불가능하므로 강제로라도 탈코르셋을 시켜놓고 봐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이 '코르셋'이라는 개념이 '강요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자는 개념'임을 생각하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즉, 이들은 '탈코르셋'이라는 또 다른 코르셋을 씌우고 있는 것이다.[2]

이쯤 되면 그 무엇보다도 여성혐오적인 이슬람 극단주의에서 추구하는 히잡 강요 등과 비슷하다는 평가도 나올 지경이다.

3. 본질적으로 이성애자 여성이 지속하기 어려운 운동

탈코르셋 운동은 1960~70년대에 래디컬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유행했고 원래 정치적 레즈비어니즘[3]을 기반에 둔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이다. 이성애자 여성에게는 본질적으로 맞지 않는 철학이다. 그마저도 2020년대 초반 기준으로 아무리 넓게 봐줘도 40년 전쯤에 이미 서구에서조차 영향력을 잃어버린 사회 운동이다.

코르셋 운동의 본질은 페미니스트들의 의도처럼 숏컷이나 캐쥬얼 패션으로 편하게 지내려는 욕구가 아니라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남성의 욕망이나 시각을 거부한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남성들이 선호하는 취향 선택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이성의 눈에 들기 위한 행동과 번식을 위한 욕망을 포기하고 외로움은 애완동물을 통해, 또는 같은 여자들과 성적인 파트너쉽을 맺어서 여성을 착취하는 남성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쟁취한다는 생각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이 철학의 상세한 맥락을 모른 채 머리만 숏컷으로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으니까 편하다면서 탈코르셋 운동이라고 여기는 이성애자 여성이 래디컬 페미니즘의 전성기에 종종 있었다. 이성애자 여성이 이 운동에 일시적으로 동참할 수는 있겠지만 이성과의 연애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탈코르셋을 유지하기 어렵다. 사회의 요구에 맞게 꾸미지 않은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는 싸늘한 시선에 탈코르셋을 포기하고 다시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행동은 진정한 의미로 코르셋을 벗었다고 할 수 없다. 즉, 진정으로 탈코르셋 운동을 지속하는 것은 정치적 레즈비언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이를 모르고 탈코르셋 운동에 뛰어드니 애초에 포기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이성애자라면 이성의 눈에 매력있어 보이고 싶은 것이 당연한데 이를 사상으로 억누르며 무시한 행보가 지속될 리 없다.

원래 레즈비언들은 남성을 욕망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취향에 응답해 주고 싶은 마음도 없으므로 포기하는 것도 없지만 이들이 받는 화장과 성형의 압력을 포기하기에는 '다른 여자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꾸미고 있기 때문에 다른 여자들도 그 방식에서 벗어나 준다면 이들은 기꺼이 코르셋을 벗을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의 심리학계에서 레즈비언들도 여자들에 대해 특정한 외모나 외양에 대한 판타지를 가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운동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4] 남성을 욕망하지 않으면 자유로워질 줄 알았지만 레즈비언들끼리도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외양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 테면 고도비만 여성은 일반적인 레즈비언 여성들도 대부분 연애 상대로 원하지 않는다.[5]

북미 래디컬 페미니즘의 절정기였던 70년대 말에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에 대한 환상 때문에 레즈비언들이라면 못난 남성처럼 결코 외모로 파트너를 고르지 않는다는 순진한 생각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그게 거짓말임을 알고 있는 현재는 그렇게 큰 영향력이 없다. 물론 정치적 레즈비어니즘과 관련 없는 형태로 한국의 트페미 진영이 이름만 차용해서 아주 잠깐이나마 유행시켰기는 하다.

사실 레즈비언은 성적 지향이지 사상이 아니기 때문에 레즈비언이 이런 운동에 참여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러한 운동을 주도한 레즈비언들은 당연히 래디컬 페미니즘에 입각한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을 표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쪽이건 성적 지향 이전에 여권 운동가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실제 개개인 사이에서의 인간관계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조용히 살면서 주변의 인간관계와 자기 삶을 챙기던 레즈비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들 멋대로 맞춘 프레임에 따라 줘야 할 필요도 없으니 이런 결과는 당연하다. 사회 운동에 별 생각이 없는 동성애자들은 당연히 되도록 눈에 띄고 싶지 않기 때문에 별 말이 없었을 뿐이고 성적 지향에 따라서 외모를 안 본다는 프레임은 온갖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연관성의 한계가 명확한 일반 남성/여성 전체와 성별 인권단체의 관계와는 다르게 동성애자들은 유명인이나 사회운동가들이 아니면 대중들 앞으로 나올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중 입장에서 정치적 레즈비어니즘=레즈비언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것도 이러한 착각이 일어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제대로 동성애자를 알아갈 마음 없이 그냥 자기들 사상에 끼워 넣은 것에 불과하다.

4. TERF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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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성성의 파괴다. 탈코르셋은 어떤 사람의 성별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인터섹스든 생식과 관련해서만 영향을 주고 성 정체성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며 생물학적 본능에 따른 성적 어필 욕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탈코르셋을 지지하는 이들은 시스젠더 외의 트렌스젠더나 대다수의 젠더퀴어를 부정하며 성전환한 트렌스젠더도 성전환된 성별로 인정하지 않는데 이를 잘못된 젠더관념(성 고정관념)을 가져서 나온 결과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트랜스여성은 꾸미지 않으면 미스젠더링, 배척 등 사회에서 고립되기 쉬운 구조인데 이는 꾸밈 자체가 트랜스여성의 생존과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탈코르셋 운동가들은 여성성과 남성성 등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꾸밈이 트랜스여성의 생존권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한다.

5. 코르셋이라는 개념에 대한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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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셋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기는 하는지도 논란이 많다. 모든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꾸밀 권리가 있다. 여성들의 화장과 치장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강요받지 않고 꾸미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현실의 탈코르셋 운동은 "치장 수단을 가능한 한 없애자", "꾸미고 다니는 사람에게 눈치를 주자" 등 매우 피해망상적이고 독재적인 발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사회 고위층 여성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을 예로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이자 미녀로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7세는 자신의 권력과 초월성,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비싼 화장을 했고 당대 최고의 피부관리를 받았다. 청나라 말기 황족이자 실세였던 서태후는 값비싼 최고급 비취와 금은보화로 온몸을 치장하고 다녔다. 미를 추구하는 본능은 사람이 아닌 동물들도 생식을 위해 가지고 있다.

탈코르셋의 본 의미는 "사회적 여성성에서 해방되는 것"이지만 남자들은 그러니까~ 남자들은 안 하니까~ 등을 예시로 들면서 '남자처럼' 짧은 머리와 헐렁한 옷차림을 하자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6] 당연한 소리지만 남성에게도 사회적으로 권장되는 최소한의 외적 치장 조건이 있으며 이에 따라 여성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정도 외모를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여성과 남성은 성기의 돌출 유무 등 신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으므로 정확한 근거를 가지지 못한 주장은 더욱 부적절하게 생각된다.

더불어 공동체 사회 문명을 통틀어 인류 역사상 최소한의 단정함이라는 잣대는 어느 성별에 치우치거나 국한된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국가[7]에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려는 남성들은 수염은 물론이고 두발 규정이나 염색, 옷 색깔, 액세서리 등에서 오히려 여성보다 훨씬 엄격한 제약을 받는 경우도 많다.

아래의 사례들은 서구화된 지역의 페미니스트의 입장에선 탈코르셋으로 보이지만 해당 지역에선 오히려 코르셋에 속한다.

6.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탈코르셋 운동에 편승해서 인기를 얻거나 돈을 벌려는 세력들, 탈코르셋 사진전을 한다며 티켓과 사진집을 파는 사례도 있었다. # #

7. 페미니즘 사상검증용으로 전락

"페미=돼지" 공식이 퍼진 지 오래지만 이것만으로는 페미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예쁜 사람도 페미를 하기도 하니까. 그런데 탈코르셋이 퍼지면서 숏컷을 하고 화장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들이 늘어남에 따라 더 쉽게 페미를 거를 수 있다며 탈코르셋 운동을 환영하는 안티페미니스트도 함께 늘면서 숏컷한 비 페미니스트가 오해를 받기도 한다. 페미 거르는 법이라며 짤방을 퍼트리기도 한다.

이렇게 사상검증용으로 쓰이면 그나마 괜찮은 쪽에 속하는데 문제는 서로 못 알아봐 한남이라고 서로 욕하다가 서로한테 데미지 들어가서 서로 맞고소하는 병맛스러운 일도 간간히 있다는 점이다.

[1] 사회적 지지를 잃은 2020년대에도 여자대학교에브리타임 등 몇몇 닫힌 사회에서는 다이어트, 외모 관리 얘기가 나오면 거부감부터 표출하며 꾸미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욕을 박는 자들이 있는 실정인데 언론까지 호응해 주면서 찬양 기사를 쏟아내던 래디컬 페미니즘 전성기(2017~2018년)에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여성들이 이들의 횡포에 거부감을 느낀 건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2] 물론 탈코르셋의 의미는 그것만이 아닌 "사회적 여성성과 남성성을 깨부수자"도 있지만 후술한 바와 같이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길 원하는 생물학적 본능을 세상에서 없애자는 건 실현 가능한 주장이 아니다.[3] 쉽게 말해 레즈비언이 다른 계기나 의도 없이 같은 여성을 성애의 대상으로 보는 성향의 여성이라면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은 남성에 대한 저항/반목/혐오 등을 목적으로 레즈비언이 되자라고 주장하는 사상이다.[4] 동성애는 동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것일 뿐 이쁘고 잘난 사람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 직설적으로 '남성이 여성에 대한 이상형을 말하고 여성도 남성에 대한 이상형을 그리는 것'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외모를 안 본다고 단언해 버린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이들에 의견을 듣지 않는 것에 불과하다.[5] 어떤 지역에서는 고도비만 여성을 미인으로 보고 선호하지만, 그래서 억지로 고도비만이 되어야 하는 외모지상주의의 폐해를 볼 수 있다. 이는 이쁘다고 생각되는 모습이 되려는 욕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6]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페미니즘의 일부 주장이 성별 고정관념에 기반한다는 견해가 존재한다.[7] 적어도 비이슬람계 선진국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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