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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크 강 전투

티무르 제국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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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전투 경과4. 결과

1. 개요



서기 1395년 4월 22일, 티무르 제국의 아미르 티무르킵차크 칸국토크타미쉬 칸이 북카프카스의 테레크 강에서 맞붙은 전투. 티무르는 이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킵차크 칸국의 패권을 확보했다.

2. 배경

서기 14세기 중엽, 칭기즈 칸과 후예들이 건국했던 몽골 제국원나라, 킵차크 칸국, 일 칸국, 오고타이 칸국, 차가타이 칸국으로 분열된 뒤 쇠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오고타이 칸국은 1310년 차가타이 칸국에게 멸망했고, 차가타이 칸국은 1307년 두마 칸이 사망한 이래 마지막 칸인 카잔 칸이 사망한 1346년까지 39년간 13명의 칸이 난립하는 심각한 내란에 시달렸다. 또한 일 칸국은 1335년 아부 사이드 칸이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자 붕괴되었고, 킵차크 칸국은 1357년 자니베크 칸이 암살된 이후 20년간 20명의 칸이 등장하면서 대혼란에 휩싸였다. 마지막으로 쿠빌라이 칸이 세운 원나라 마저 잦은 내란과 한족의 반란에 시달리다 1368년 명나라에 의해 몽골 초원으로 쫓겨났다.

몽골 제국의 유산이었던 국가들이 이렇듯 무너져가고 있을 때 칭기즈 칸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인물이 등장했으니, 그는 바로 티무르였다. 티무르는 바틀라스 부족의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여러 소규모 전투를 치르면서 무리를 서서히 끌어모은 끝에 1369년 트란스옥시아나의 여러 부족을 통합했다. 당시 그가 속했던 차가타이 칸국은 서차가타이 칸국과 동차가타이 칸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티무르는 동차가타이 칸국의 장군이 되어 카라운 부의 후사인과 힘을 합쳐 서차가타이 칸국을 정벌했다. 이후 후사인과 대립한 끝에 1370년 후사인을 죽이고 수르가트미쉬를 새 칸으로 옹립한 뒤, 자신은 아미르를 칭하면서 차가타이 칸국의 최고 권력자로 부상했다.

이후 주변의 여러 소국들을 공략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던 1376년, 킵차크 칸국에서 한 인물이 찾아와 티무르에게 구원을 청했다. 그의 이름은 토크타미쉬로, 청장 칸국의 황족이었다. 그는 청장 칸국의 우루스 칸과 대립했으나 전세가 점점 악화되자 마침 세력을 급격히 키우고 있던 티무르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몽골 제국을 재통합할 야망을 품고 있던 티무르는 킵차크 칸국을 자신에게 귀속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토크타미쉬를 적극 지원했다. 토크타미쉬는 티무르의 지원에 힘입어 1378년 우루스 칸의 아들 티무르 말릭을 전사시키고 청장 칸국의 칸이 되었고, 뒤이어 1380년 백장 칸국의 권신 마마이를 무찌르고 킵차크 칸국을 통일했다. 또한 1380년 쿨리코보 전투에서 마마이를 격파한 뒤 킵차크 칸국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모스크바 공국을 공격하여 1382년 모스크바를 함락시키고 모스크바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의 사죄를 받아냈다.

이렇듯 킵차크 칸국의 유일무이한 지배자가 된 토크타미쉬는 곧 티무르를 도모할 마음을 먹었다. 마침 티무르가 페르시아를 향한 원정을 개시하여 1385년 호라산 일대와 페르시아 동부 지역을 공략하느라 자신에게 신경쓰지 못하자, 그는 아제르바이잔과 페르시아 북서부를 습격하여 약탈을 자행한 후 돌아갔다. 이후 1386년 티무르가 대군을 이끌고 타브리즈와 아제르바이잔을 침공하자, 토크타미쉬는 1387년 티무르의 본거지인 트란스옥시아나를 기습 침공했다. 당시 티무르의 대다수 병력이 중동 족으로 몰려 있었기 때문에, 트란스옥시아나는 텅빈 것이나 다름없어서 토크타미쉬의 계획은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티무르가 수도로 정한 사마르칸트를 포위했을 때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원정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고, 토크타미쉬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귀환했다. 티무르는 토크타미쉬의 배신에 진노하여 킵차크 칸국을 정벌하기로 마음 먹었다. 양측은 1389년부터 코카서스 일대에서 맞붙었고, 1391년 6월 18일 콘두르차 강 전투에서 티무르가 큰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티무르는 페르시아 정벌로 관심을 돌렸고, 시베리아로 도주했던 토크타미쉬는 세력을 금세 회복한 뒤 티무르의 영토를 수 차례 침범해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이에 티무르는 토크타미쉬를 제거하기 위해 1395년 대대적인 원정에 착수했다. 이리하여 몽골 제국의 통합을 꿈꿨던 두 강자의 대결이 임박했다.

3. 전투 경과

1395년 3월 초, 티무르는 대군을 이끌고 킵차크 원정에 착수했다. 원정군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사료마다 다르지만, 대략 10만 가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군대를 5개 군으로 나누고 카스피해를 경유하여 진군하다가 4월 21일 테레크 강 건너편에 토크타미쉬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걸 확인했다. 토크타미쉬는 티무르의 군대가 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여러 건널목에 요새화된 진지를 세우고 정에병을 배치했다. 티무르는 강을 그냥 도하했다가는 엄청난 피해를 볼 것임을 직감하고, 속임수를 써서 강을 건너기로 마음 먹었다.

티무르의 군대는 사흘 동안 강을 따라 진군했고, 강 건너편의 토크타미쉬의 군대는 이를 따라갔다. 그러다 사흘째 되는 날 밤, 티무르는 여인들에게 군인 복장을 하고 진영에 남아 있으라고 지시한 뒤, 자신은 야음을 틈타 군대와 함께 건널목으로 극비리에 이동하여 강을 건넜다. 이후 참호와 목책을 서둘러 건설하고 강을 등진 채 전투 대형을 갖춰서 적의 예상되는 공세에 대비하였다. 이윽고 동이 뜨면서 티무르가 강을 건넌 게 밝혀지자, 토크타미쉬는 서둘러 군대를 규합한 뒤 적을 강 건너로 도로 몰아내기 위해 달려들었다. 이리하여 4월 22일 아침, 양군은 테레크 강변에서 맞붙었다.

전투 초반, 티무르의 좌익 부대는 토르타미쉬의 우익 부대의 맹렬한 공격으로 인해 궤멸 직전에 몰렸다. 이에 티무르는 예비군을 이끌고 몸소 좌익을 구원했다. 토크타미쉬의 우익 부대는 본대를 향해 후퇴했고, 티무르의 예비대 중 한 부대가 경솔하게 추격했다가 적 본대의 역습을 받고 궤주했다. 이로 인해 많은 티무르군 장병들이 사기가 떨어져 도주하기 시작했고, 티무르는 이를 수습하다가 적군의 공세에 노출되었다. 이때 샤이크 누르 앗 딘 휘하의 기병 50명이 달려와서 티무르를 지켰고, 뒤이어 티무르의 근위 부대를 포함한 여러 부대가 달려와서 적군의 공세를 막아냈다. 이후 중앙 부대를 이끌고 있던 미르자 모하메드가 일부 병력을 급파해 토크타미쉬의 우익 부대의 측면을 공격하여 그들을 물러나게 했다.

한편, 티무르의 우익 부대는 토크타미쉬의 좌익 부대의 거센 공세로 고전하다가 포위섬멸될 위기에 몰렸다. 그들은 말에서 내린 뒤 최후의 저항을 하려 했다. 이때 중앙에서 파견한 구원군이 도착하자 적군은 물러가면서, 그들은 가까스로 구원받았다. 토크타미쉬는 이후에도 계속 강력한 공격을 퍼부었지만, 티무르의 군대는 참호와 목책에 의지하며 악착같이 막아냈다. 이윽고 해가 저물자, 토크타미쉬는 내일 전투를 재개하기로 하고 진영으로 철수했다.

그날 밤, 티무르는 적진에 밀사를 보내 토크타미쉬의 부하들을 매수했다. 그들은 협조를 잘 해주면 에미르로 세워주겠다는 티무르의 꼬드김에 넘어갔고, 다음 날 전투가 재개되자마자 자기 부대를 이끌고 철수했다. 이로 인해 토크타미쉬군의 전력은 급격히 약화되었고, 티무르는 이 기회를 틈타 전군에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결국 토크타미쉬는 몇몇 측근만 거느린 채 전장을 탈출했고, 수많은 병력이 죽거나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 이리하여 테레크 강 전투는 티무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4. 결과

테레크 강 전투는 토크타미쉬 몰락의 시작을 알린 전투였다. 그는 더 이상 티무르에게 저항할 수 없었고, 적의 추격을 피해 볼가강 북쪽의 땅으로 도망쳐서 숨죽여 지내야 했다. 티무르는 토크타미쉬를 잡지 못하자 말머리를 돌려서 흑해의 항구도시 타나와 킵차크 칸국의 수도 사라이를 함락시켰으며, 수많은 적병을 참수한 뒤 경관 여러 개를 세웠다. 이후 부하인 테무르 쿠툴룩(Temür Qutlugh)을 킵차크 칸국의 칸으로 임명한 뒤 본국으로 돌아갔다.

토크타미쉬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으로 망명한 뒤 대공 비타우타스와 연합하여 1397년 킵차크 칸국을 되찾기 위한 원정을 개시하지만, 1399년 보르스클라 강 전투에서 참패한 뒤 러시아 튜멘 지방으로 도주하여 재기를 노렸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고 1406년 백장 칸국의 에디구가 보낸 암살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리하여 티무르의 최대 적수였던 토크타미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티무르는 기세를 이어가 몽골 제국의 통합을 위한 대규모 원정을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