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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5 14:26:46

웃으며 삽시다

1. 개요2. 소개3. 역대 출연자
3.1. KBS 출신3.2. MBC 출신3.3. SBS 출신3.4. 기타
4. 역대 코너
4.1. 웃으면 좋아요 시절 (1991년 12월 ~1993년 10월)4.2. 1993년 10월~1995년 3월4.3. 1995년 4월~1997년 3월4.4. 1997년 3월~1998년 2월

1. 개요

SBS(당시 서울방송)에서 1991년 12월 14일부터 1998년 2월 13일까지 방영했던 코미디 프로그램.

KBS, MBC에서 활동하고 있던 개그맨들이 SBS로 대거 이적하여 활동하였다.[1][2] 이후 SBS에서도 신인개그맨을 공채선발하여 함께 활동하였다.

2. 소개

SBS의 개국 직후인 1991년 12월 14일'토요일 6시 웃으면 좋아요' 라는 타이틀로 첫 방송을 시작했다. 그러다 1992년 3월 28일 한시간 늦춰서 '토요일 7시 웃으면 좋아요' 로 변경하다가 1993년 4월 29일 목요일 밤 10시로 이동하여 '웃으면 좋아요' 로 방송하였다.[3]

1993년 10월 23일 가을 개편에 맞추어 '웃으며 삽시다' 로 개명하고 다시 토요일 저녁 7시로 이동하여 토요일 저녁 황금 시간대에 높은 인기를 누렸다.[4] 1997년 10월 31일 금요일 저녁 7시로 이동하여 방송을 하였지만 1997년 IMF 경제위기 여파로 인해 인기가 떨어지자 1998년 2월 13일에 종영했다.[5][6] 토요일 6시 웃으면 좋아요 를 시작으로 정확히 6년 2개월간의 역사를 정리하게 되었다.

타이틀 송의 경우, '토요일 6시 웃으면 좋아요' 시절에는 출연 개그맨들이 함께 부른 노래를 사용했고, 웃으며 삽시다 중후반부에는 룰라의 '100일째 만남'을 개사한 노래를 사용하였다.

웃으면 좋아요 시절 방송분은 SBS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

여담으로 웃으면 좋아요 방송시기 지역민방 개국전이었고 역외 재송신 방식으로 지방유선방송을 통해 볼수 있었다고 한다.[7]

3. 역대 출연자

3.1. KBS 출신

3.2. MBC 출신

3.3. SBS 출신

3.4. 기타

4. 역대 코너

4.1. 웃으면 좋아요 시절 (1991년 12월 ~1993년 10월)[18]

4.2. 1993년 10월~1995년 3월[20]

4.3. 1995년 4월~1997년 3월

4.4. 1997년 3월~1998년 2월[28]



[1] 이 여파로 인해 KBS의 유머1번지는 몰락되어 1992년 10월 초에 종영하였지만 MBC는 유머 1번지 종영한지 한달여 만에 오늘은 좋은 날을 방송하여 인기를 누렸었다.[2] 유머 1번지 같은 경우는 1/3 이상의 핵심 개그맨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수의 신인 개그맨들도 아직 인지도가 낮은 상황이라 인기가 예전만 못했다. 물론 김형곤, 엄용수, 양종철, 이상운 등 의 일부 핵심 개그맨들은 잔존 하였지만 소수였기에 인기를 되찾기엔 역부족 이였다. 반면에 오늘은 좋은 날 같은 경우는 신인 개그맨과 핵심 개그맨 그리고 탤런트의 균형잡힌 비율로 인지도를 유지하였고 또한 임하룡 등 타 방송 중견급 개그맨들이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90년대 코미디를 주름 잡았다.[3] 주말에서 평일 늦은밤에 이동한 이유는 국내 최초의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 이 주말방영시간대로 이동하였기 때문이다.[4] 프로그램 말기인 1997년 4월 19일부터 PSB(현 KNN)에서는 서울지사에서 제작했던 자체 연예정보 프로그램인 "연예파크" 신설으로 인해 방송되지 않았다.[5] 이 여파로 인해 SBS 소속 개그맨 들이 토사구팽을 당하여 KBS, MBC로 흩어지거나 아예 자취를 감췄는데, 특히 연륜이 좀 있는 개그맨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다만 소속 개그맨들 중 박미선표인봉은 종영 후 약 3주 뒤 방영된 자사의 일일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 캐스팅된다.[6] 게다가 당시는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 외환 위기로 인해 사회분위기상으로 브라운관을 통해 웃고 즐길 수 있는 예능프로그램을 편성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SBS를 포함한 모든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개편 시기를 막론하고 강제 종영되었던 것 때문이다.[7] 1995년 5월 14일 부산,대구,광주,대전 4개 지역민방 개국으로 방송시작하기 시작하였고 1997년 9월 울산,전주 10월 청주방송 개국하여 방송하였다.[8] 초창기에 짧게 활동했던 이유가 당시 SBS가 서울경기 한정으로 송신하고 그 외 지방에는 송신하지 않는다는걸 뒤늦게 알아서 KBS로 복귀 했다는 말이 있다.[9] 전술한 심형래와는 달리 의외로 유선방송으로만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던 지방에서 팬레터가 많이 올 정도로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이적한 케이스로 꼽혔다. (TV가이드 1992년 4월 4일 30페이지 중에서)[10] 과거 강병철과 삼태기의 멤버였다.[11] 김재원과는 동명이인이며, 1991년 SBS 특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현재는 근황을 알 수 없음.[12] 당시에는 본명 '김현동'으로 활동했다.[13] 당시에는 본명 '장준원'으로 활동했다.[14] 당시에는 본명 '최두영'으로 활동했다.[15] 이정길과는 동명이인이며, 1995년 SBS 공채 4기로 데뷔했다.[16] 당시에는 본명 '황원식'으로 활동했다.[17] 1960년대 '불나비'를 히트시킨 가수.[18] 1993년 봄 개편 때 목요일 방영으로 이동했다.[19] 아래 후술할 레일맨의 전신코너로 오프닝 배경에 들국화의 '세계로 가는 기차' 도입부 음악이 나왔다.[20] 1993년 가을 개편 때 웃으며 삽시다로 개명 하면서 다시 토요일 방영으로 이동하였다.[21] 전작인 황대장과 달리 SBS에서 자체 제작하였다.[22] 이주일의 아내[23] MBC 웃으면 복이 와요, TBC 고전유머극장을 연출한 1세대 코미디 PD. SBS 개국 초기 코미디 전망대 MC로 활약하기도 했다.[24] MBC 웃으면 복이 와요 PD[25] TBC의 살짜기 웃어예/토요일이다 전원출발, KBS의 유머 1번지를 연출했다.[26] 가수 겸 배우 한그루의 데뷔작.[27] 물론 북한의 중산층 이상 한정.[28] 1997년 가을 개편 때 금요일 방영으로 이동하였다.[29] 김수정영 챔프에 연재한 만화를 실사화 했다. 강성범이 주인공 부니기 선생을, 김병조는 부선생을 항상 못마땅해 하는 교감선생님 역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