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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01:08:17

팻 패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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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 Patterson

1. 프로필2. 소개3. 경력4. 기타5. 둘러보기

1. 프로필

파일:Pat_Patterson_pro.png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본명 피에르 클레르몽(Pierre Clermont)
→ 팻 패터슨(Pat Patterson)[1]
별칭 Killer
Pretty Boy
[이후]
출생일 1941년 1월 19일
사망일 2020년 12월 2일 (향년 79세)
출생지 캐나다 자치령 퀘벡 주 몬트리올
신장 185cm
체중 111kg
피니시 무브 아토믹 드롭
주요 커리어 NWA U.S 헤비웨이트 챔피언 5회
N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9회
NWA 플로리다 태그팀 챔피언 1회
캐내디안 인터네셔널 태그팀 챔피언 5회
A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NWA 팩픽 노스웨스트 태그팀 챔피언 2회
I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WWF 하드코어 챔피언 1회
WWF 노스 아메리칸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3]
NWA 샌프란시스코 U.S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플로리다 텔레비전 챔피언 1회
NWA 아메리칸스 챔피언 1회
NWA 팩픽 노스웨스트 챔피언 3회
WWF 인터컨티넨탈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4]
WWF 하드코어 챔피언 3회
WWE 24/7 챔피언 1회

2. 소개

1958년 WAW에 입사한 이후 60년이란 세월 동안 WWE에서 일해온 캐나다의 프로레슬러이자 WWE 직원.

WWE의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WWE가 스테로이드 파문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도,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발생해 엄청난 파문이 벌어졌을 때도 꿋꿋이 WWE와 함께한 인물이자 많은 선수들이 WWE에 정착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놔주는 인물이다. 그래서 빈스 맥맨이 가족 같다고 신임하는 인물이다.

3. 경력

1958년 NWA에 입성한 팻 패터슨은 당시로서는 특이하게 여성처럼 립스틱을 바르고, 핑크색 트렁크를 입고 나오는 모습을 보이며 활동해서, 당시 별명이 Pretty Boy였다. 자신의 오랜 파트너인 레이 스티븐슨을 만나 악역 태그팀으로 활약하면서 여러 차례 태그팀 챔피언에 오른다.

1979년 WWF에 입성하게 되었고, 악역으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당시 WWF 노스 아메리칸 챔피언쉽을 획득한 뒤 자신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토너먼트에서 우승해 사우스 아메리칸 챔피언 타이틀도 얻었다고 말했고, 그로인해 양 대륙에 걸친 타이틀이자 WWE의 2인자 타이틀인 WWE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십이 탄생하게 되었다.[5]

1984년부터 프로레슬러에서 은퇴해 업무를 보는 로드 에이전트가 되었는데, 언더테이커를 영입하는 등 여러 성과를 올렸다.

1994년 이후 WWF가 스테로이드 파동을 겪으면서 위기에 빠지게 되고, 많은 인원들이 WCW로 떠나버렸지만 그는 꿋꿋이 남아서 WWF를 지켰다. 그리고 1997년 11월 자신의 고향 몬트리올에서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일어났다.[6]

몬트리올 스크류잡 이후 빈스 맥맨은 악덕 기업주의 이미지를 이용해 애티튜드 시대를 열고 본격적으로 TV쇼에 끼어들게 되는데, 팻 패터슨 본인도 제리 브리스코[7], 서전 슬로터와 같이 빈스 맥맨의 충실한 딸랑이 간신배 역할을 하면서 코퍼레이트의 일원으로 활약한다. 코퍼레이트의 일원으로서 빈스 맥맨을 열심히 찬양하고 아부하거나, 중요한 경기에 끼어들어 코퍼레이트의 승리를 일조하기도 하고, 파트너인 브리스코와 하드코어 경기를 했으며[8] 셰인 맥맨과 경기를 하기도 했다.

월요일 밤의 전쟁은 WWF의 승리로 막을 내렸고, 팻 패터슨 역시 다시 본 업무인 로드 에이전트로 돌아갔다. 2002년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이 사라졌다가 1년 뒤인 2003년 부활하자 당시 토너먼트 우승자였던 크리스찬에게 벨트를 수여하기도 했다.

간간히 방송에 출연하는 한편 2014년 WWE 네트워크에서 방영한 레전드 하우스에 과거 동료들과 나와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2015년 5월 4일 WWE RAW 이후 오프 카메라에서의 팻 패터슨 감사제 때 빈스 맥맨, 브렛 하트 그리고 WWE의 모든 선수들이 나와서 그의 생일을 축하했다. 빈스 맥맨은 팻 패터슨을 위해 현 디자인의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을 선물했으며, 팻 패터슨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애창곡인 프랭크 시나트라My Way를 열창했다.

2019년 RAW 리유니온 특집에 등장, 알 트루스에게서 WWE 24/7 챔피언십 벨트를 탈환한 드레이크 매버릭부기맨을 보자 놀라 자빠진 다음에 등장, 그를 몇번 밟은 뒤 발로 커버해 챔피언이 됐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선 곧바로 제럴드 브리스코에게 내줬다.

WWE에서 계속 일해오다가 2020년 12월 2일에 wwe.com을 통해 사망소식이 나오면서 79세 나이로 사망한다.

4. 기타

5. 둘러보기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1996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WWEHOF.jpg
1996년 WWF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
1981년
5월 4일
WWF 앨리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
서전 슬로터 vs _팻 패터슨_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 최악의 경기
2000년 6월 25일
킹 오브 더 링
WWF 하드코어 챔피언십 하드코어 이브닝 가운 경기
제럴드 브리스코 vs 팻 패터슨(C)


[1] 2008년 본인의 링 네임으로 개명[이후] 이 별칭은 제임스 엘스워스의 별칭이된다.[3] 초대 챔피언[4] 초대 챔피언[5] WWE가 이 사실을 발표한 날이 만우절이었다고 한다. 한 개의 대륙보다는 더 있어보여서 이쪽이 선택되었다.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이 생긴 다음에도 노스 아메리칸 벨트는 한동안 유지되었다가 보보 브라질을 끝으로 사라졌다. 이후 노스 아메리칸 챔피언이라는 이름은 한참을 지나 NXT 노스 아메리칸 챔피언 벨트로 넘아갔다.[6] 데이브 멜처의 칼럼에 따르면 경기 당일 숀 마이클스가 샤프슈터를 시전하고, 브렛 하트가 이를 샤프슈터로 뒤집은 후 DX와 하트 파운데이션의 난투극으로 경기를 끝낸다는 각본을 팻 패터슨 본인이 숀과 브렛에게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숀 마이클스가 브렛 하트에게 샤프슈터를 건 순간 심판 얼 헤브너가 경기를 급작스레 끝내며,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발생했다.[7] 형인 짐 브리스코와 함께 브리스코 브라더스-ROH의 브리스코스와는 관계 없다.-로 활약한 인물.[8] WWF 킹 오브 더 링(2000)에서 WWF 하드코어 챔피언십 경기였는데, 두 영감탱이들이 여장을 하고, 무기도 인형이나 베게를 이용하는 진짜 OME스런 경기. 결국 보다못한 크래쉬 할리가 쳐들어와 팻 패터슨 머리에 쓰레기통 샷을 먹이며 타이틀을 뺏었다.[★]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