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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67258><colcolor=#ffffff> 프란시스 코베인 Frances Cobain | |
본명 | 프란시스 빈 코베인[1] Frances Bean Cobain |
출생 | 1992년 8월 18일 ([age(1992-08-18)]세) |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0cm[2] |
부모 | 아버지 커트 코베인 어머니 코트니 러브 |
배우자 | 이사야 실바(2014년 ~ 2017년) 라일리 호크(2023년 ~ 현재)[3] |
자녀 | 아들 로닌 워커 코베인 호크(2024년 9월 17일생)[4] |
직업 | 모델, 예술가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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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6년 어머니 코트니 러브와 함께 | 1993년 아버지 커트 코베인, 어머니 코트니 러브와 함께 | 1993년 아버지 커트 코베인, 어머니 코트니 러브와 함께 2[5] |
너바나의 리더인 커트 코베인과 홀의 리더인 코트니 러브의 외동딸로 잘 알려진 미국의 모델, 예술가.
2. 상세
1992년 8월 18일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코트니 러브가 임신 중에 헤로인을 사용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낙태를 권유했지만, 커트는 딸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코트니에게 제발 낙태를 하지 말라고 애원하였다. 다들 프란시스가 기형아이거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을 거라고 예상했으나 다행히도 모두의 걱정과 달리 프란시스는 건강하게 태어났다.[6] 이름은 커트가 좋아했던 바셀린즈 여성 멤버였던 프란시스 맥키에서 따왔다.태어난 이후 아버지 커트 코베인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종종 너바나의 시상식이나 공연에 등장하기도 했다. 몽타주 오브 헥을 보면 커트가 얼마나 프란시스를 아꼈는지 그의 노트 메모를 보면 알 수 있다.[7] 링크 특히 커트가 갓 태어난 프란시스에게 우유를 먹이며 인터뷰를 하는 게 방송을 타기도 했었다. 그러던 커트가 사망하기 일주일 전인 1994년 3월 30일, 프란시스는 어머니 코트니 러브와 함께 커트가 입원해있는 LA의 재활병원을 찾았다. 입원해있던 커트 코베인은 딸인 프란시스와 재미있게 놀아주며 오후 시간을 보냈는데, 이는 부녀의 생전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커트는 다음 날 재활병원을 탈출해 자택이 있는 시애틀로 돌아갔고, 4일 후인 4월 5일 총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커트가 사망한 이후에는 어머니인 코트니 러브, 고모인 킴 코베인, 그리고 친할머니인 웬디 오코너가 프란시스를 양육했으며 2009년에는 코트니 러브의 마약 중독[8]으로 양육권이 박탈될 위기에도 처했으나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9] 아버지의 기일이나 관련 행사에 어머니와 종종 모습을 비추고 있다.
대부는 커트 코베인의 친한 친구였던 R.E.M의 마이클 스타이프이며, 대모는 드루 배리모어이다.
현재 프란시스는 바드 칼리지 졸업 후 모델과 예술가[10] 일을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종종 프란시스가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는데, 그림에 소질이 있다. 가끔씩 노래도 부른다.
프란시스는 The Eeries라는 밴드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락스타 이사야 실바를 만나 2014년에 결혼을 했다. 하지만 2016년, 프란시스는 이혼을 신청했고 이혼 소송 중에 아버지의 유품인 MTV Unplugged in New York에서 썼던 1959 마틴(C.F.Martin&Company) D-18E 일렉트릭 어쿠스틱 기타를 빼앗기고 말았다.[11] 프란시스가 남편에게 선물로 기타를 줬다는 주장을 법원에서 인정했기 때문이다.
2021년, 토니 호크의 아들인 라일리 호크와 연애하고 있다는 뉴스가 떴다. 2023년 10월 7일, 라일리 호크와 프란시스 코베인이 LA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R.E.M.의 보컬리스트이자 프란시스의 대부인 마이클 스타이프가 주례를 맡았다.
2024년 9월 17일, 아들 로닌 워커 코베인 호크를 낳았다.
3. 가족관계
아버지인 커트 코베인과는 애증의 존재인데 프란시스가 인터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가 정말 밉다. 내 나이 5살 때 아빠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치열했던 사춘기 시절 스스로 내 곁을 떠난 아빠에 대한 원망이 가시질 않는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전 남편인 이사야 실바와 아버지인 커트 코베인의 기타를 두고 소송을 벌이거나 아빠의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거나 커트 코베인의 50번째 생일날 SNS에 '오늘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아빠의 50번째 생일이 되었을 텐데, 아빠 생일 축하해요. 아빠의 사랑하는 딸 프란시스 코베인 드림'이라고 글을 쓴 것을 보아 그리움과 원망의 감정이 있는 듯하다. 또 다른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은 록 음악을 좋아하지만 아버지의 밴드 너바나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고 오아시스 같은 밴드들을 좋아한다고 밝혔다.[12] 그래도 록 스피릿은 커트 코베인과 코트니 러브 둘 다 닮은 듯하다.어머니 코트니 러브하고도 사이가 안 좋았는데 코트니가 어머니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 크다. 마약을 상시 복용하고 술에 취한 상태로 다니는 등 좋은 부모로서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했고 프란시스는 그런 어머니를 상당히 싫어한 듯. 하지만 현재는 코트니가 약도 끊고 여러 방면으로 재기를 시도하면서 관계가 상당히 좋아진 것으로 보인다. 모녀가 종종 같이 다니는 모습이 파파라치 사진을 통해서 올라오고 있다.
조부모인 도널드 코베인과 웬디 오코너와는 사이가 원만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와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들도 꽤 있으며, 웬디 오코너와는 행사에도 몇 번 같이 나타난 적 있다.
4. 기타
- 외모는 어머니를 더 많이 닮았지만[13], 눈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의견이 많다.
- 2010년 8월 18일 이후로는 어머니한테서 커트 코베인 유산 및 브랜드를 물려받아 관리 중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남겨준 로열티가 상당한지[14] 이혼 소송 도중 재산 내력이 밝혀졌는데 본인 순자산이 1,130만 달러 (한화로 138억 9335만원) 정도라고 한다. 한 달에 10만 달러를 받는다고. 본인도 잠깐 사치한 후에 돈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아 자중한다고 하니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는 셈.[15][16]
- 2015년에 했던 롤링 스톤 인터뷰에 의하면, 프란시스는 너바나의 팬은 아니지만, 너바나 노래 중 일부를 즐긴다고 한다. Nevermind의 Territorial Pissings를 훌륭한 노래[17]라고 말하기도 하고, In Utero의 Dumb을 들을 때 매번 울기도 하고, 커트 코베인 스스로에 대한 인식의 축소판인 노래인 것 같다는 말을 했다.[18] 출처
- 커트 코베인 다큐멘터리인 커트 코베인: 몽타주 오브 헥에 기획자로서 참여했다. 후에 몽타주 오브 헥 제작에 참가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밝혔는데 그 이유는 후반부가 커트 코베인을 미워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 커트 코베인의 일기장이 책으로 나온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내가 죽고 난 후 사람들이 내 속마음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사생활의 침해이고, 특히 그의 예술에서 그가 그런 생각을 내놓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일기장을 굳이 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중략)" 출처
- 라나 델 레이가 한 발언에 대해서 비판을 했다. 자신의 우상인 커트 코베인[19]과 에이미 와인하우스에 대해 인터뷰에서 얘기하고 있던 와중, 두 가수가 요절 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내가 이미 죽어 있었으면 좋겠다." (I wish I was dead already.)라고 말한 게 문제였다. 라나 델 레이는 아마 '자신이 이미 세상에 없었더라면 자신의 우상들을 만날 수 있었을텐데'라는 마음으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
프란시스는 이 발언에 대해 트위터로 "젊은 음악가들의 죽음은 말 그대로 낭만적으로 표현될 만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결코 알지 못할 거고,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그것을 '멋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위업이 되어 버려요. 삶을 포용하세요. 인생은 단 한 번 뿐이에요."라고 트윗했고 후에 라나 델 레이의 해명을 듣고 나서 그녀에게 어떠한 적대심은 없지만 그저 개인적인 경험의 관점에서 대입해 말했다고 했다. 출처[20]
- 30세가 된 기념으로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렸었는데, 자신의 30대가 찾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2017년 9월 30일에 프란시스가 타고 있던 에어 프랑스 A380 비행기에서 불이 붙어 엔진이 손상된 사건이 있었고 #, 불 붙은 날개 부분과 기울어지는 비행기를 본 순간 죽음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이 상황을 이겨내면 자신의 인생의 순간에서 매번 벗어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하고, 그때의 경험 이후로 매 순간을 감사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출처
- 2024년 4월 5일, 커트 코베인의 30번째 기일을 맞아 프란시스가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과 함께 게시물을 올렸다. #
아빠를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아빠의 목소리 톤이나 어떤 커피를 좋아하셨는지, 잠에 들기 전에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은 후 잠자리에 누웠을 때의 느낌을 알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무더운 워싱턴의 여름에 저와 함께 올챙이를 잡았을지, 카멜 라이트와 딸기 네스퀵 냄새를 맡았을지(아빠께서 가장 좋아했다고 들었어요.) 항상 궁금했어요. 하지만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준 깊은 지혜도 있어요. 아빠는 누군가를 잃은 생생한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죽음에 대한 교훈을 저에게 선물해 주셨어요.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연민과 개방성, 은혜로 사랑할 때 이 땅에서의 시간이 본질적으로 더 의미 있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준 선물입니다.
커트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저에게 편지를 썼어요. 편지 마지막 줄에는 "네가 어디를 가든, 내가 어디를 가든 항상 너와 함께할 거야."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커트가 이 약속을 지킨 이유는 그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노래를 들을 때든, 손을 맞잡을 때든, 그 순간 저는 아빠와 잠시나마 시간을 보내며 초월적인 느낌을 받아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했던 모든 분들께, 저는 오늘 당신을 생각하며 이 글을 올립니다. 우리의 슬픔의 의미는 같아요. ||
[1] 프란시스란 이름은 스코틀랜드 밴드 The Vaselines의 프란시스 맥키에서 따왔다. 이 밴드의 Son of a Gun이란 곡은 너바나도 커버했다. 미국 배우 프란시스 파머에서 따왔다는 주장도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미들네임은 태명이었던 Bean(콩)에서 가져왔다. 작은 태아의 모습이 콩과 닮아서 커트가 붙여준 별명이다.[2] 구글 프로필에 160cm라고 나와있다. 키가 약 175cm인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178cm인 코트니 러브 보다 훨씬 작다. 다만 키가 165cm라는 말도 있다.[3] 공중 900도 회전을 성공하면서 스케이트보드계에서 유명세를 떨친 전직 스케이트보드 선수이자 배우, 사업가인 토니 호크의 아들이다.[4] https://www.instagram.com/p/DAe0FuPSA-_/?igsh=YTk5ZWNxZHA5dW84[5] 1993년 9월 2일 MTV video music awards에서 찍힌 사진이며 잘 알려진 대로 이 사진이 찍힌 후 1년도 안 되어서 커트 코베인은 자살한다.[6] 출산 후 너바나의 인터뷰 중간중간에 가끔씩 프란시스가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Kurt Cobain: Montage of Heck에도 나온다.[7] 해석하자면, '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형태의 책임을 요구하는 위치에 나 자신을 두기로 했다. 매번 TV에 나오는 죽어가는 아이들이나 최근에 아이를 잃은 것에 대해 증언하는 부모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아이를 잃는다는 생각이 자꾸 나를 맴돈다. 나는 내 아이를 부양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을 때 까지 싸울 것이다. 난 프란시스에게 나 자신보다 그녀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의 의무인 것이기 때문이 아닌 진심으로 프란시스를 사랑하기 때문이다.'[8] 진통제 과다 복용으로 인해 문제가 생겼기도 했는데, 당시 프란시스가 구급차가 올 동안 마사지도 해주고 차도 마시게 했다고 한다.[9] 양육권은 프란시스가 태어나고 이틀 후 커트와 코트니(특히 코트니가 한 잡지에서 임신 중에 헤로인을 사용했다는 발언을 한 게 문제였다.)의 마약 문제로 인해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2003년에는 진통제 과다 복용 사건 때문에 친할머니인 웬디 오코너한테 맡겨져 있었다. 그 후 2년 뒤 다시 양육권을 찾았지만 2009년에 또 양육권 관련 문제가 발생했다.[10] 정확히 말하자면 시각 예술가이다.[11] 2020년 6월 경매가 600만달러(한화 약 72억원)에 낙찰되었다.[12] 노엘 갤러거와 만난 적도 있다.# 참고로 노엘은 너바나와 커트 코베인을 아주 좋아한다. 커트의 우울증을 안타깝게 여겨 반발심리로 Live Forever를 만들어낼 정도.[13] 특히 턱과 같은 전체적인 얼굴형은 정말 코트니 러브를 닮았다는 의견이 많다.[14] 총 자산이 4억 5천만 달러 (한화 5532억 7500만원)다. 프란시스는 이 중 37%를 상속받았다고 한다.[15] 커트랑 비슷한 시절 인기를 끈 맥컬리 컬킨 재산이 1700만 달러 정도로 맨하튼과 시카고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데다 생활비 걱정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프란시스는 여기다 맥컬리랑 달리 아버지 로열티가 꾸준히 나오니 낭비만 하지 않는다면 종신연금 수준인 셈.[16] 물려받은 재산에 대해 자신이 직접 번 돈이 아니기도 하고 마치 자신이 결코 없앨 수 없는 크고 거대한 대출을 물려받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돈과 낯선 관계나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자신이 직접 벌지 않은 돈이기도 하고 자신이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돈처럼 느껴진다 라고 밝혔다. 추가로 상속 받은 후 6년 간은 상당히 낭비하며 살았으나 이제는 재산의 중요성을 깨닫고 관리한다고 밝혔다. 출처[17] “‘Territorial Pissings’ is a f****** great song,” she said." (원문)[18] “And ‘Dumb’ — I cry every time I hear that song. It’s a stripped-down version of Kurt’s perception of himself" (원문)[19] 너바나를 엄청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트니 러브를 게스트로 초대해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20] 원 트윗은 f워드가 나오는 등 상당히 감정이 섞인 트윗이었다. 라나의 발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칫하면 패드립처럼 들릴 수 있는 발언이라 아버지 없이 힘든 사춘기를 보낸 프랜시스 입장에서 욱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