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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4:47:55

필사즉생행생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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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난중일기에서3. 왜곡4. 성서5. 그 외6. 관련 문서

1. 개요

(필사즉생)
반드시 죽으려 하는 자는 살고
(행생즉사)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오자병법」 제3편 치병(治兵)편

노나라위나라에서 활동했던 오기가 자신의 저서 「오자병법」에 기술한 내용으로 전쟁터에서 장수가 지녀야할 기본적인 마음가짐에 대한 내용이다. 전쟁터에선 죽음을 각오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며 요행히 살고자 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항상 필사적인 심정으로 싸움에 임하고 겁에 질리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1]

워낙에 유명한 병법인 동시에 지휘관이라면 시대와 상황을 막론하고 마땅히 가져야할 근본적인 마음가짐이자 전략이기에 15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동북아권은 물론이고 서구권에도 널리 알려졌으며, 특히 한국인들에겐 충무공 이순신임진왜란 시기 명량해전 전 날 그가 병사들에게 오자병법을 인용한 연설이 「난중일기」를 통해 전해지며 크게 유명해졌다.[2]

다만 이것을 보고 죽을 각오로 싸워야 이긴다는 식의 단순 의지드립으로 해석하는 건 심히 곤란한데, '필사즉생'이란, 전열에 서있던 각개 보병의 전투의지, 즉 사기가 그 무엇보다도 전투의 승패에 중요함을 함축적으로 통찰한 표현에 가깝기 때문이다.
陷之死地然後生 (孫子兵法 第十一篇 九地)
죽을 곳에 처해지면 연후에 살수있다. (손자병법 제11편 구지)
故將有五危︰必死,可殺也﹔必生,可虜也 (孫子兵法 第八篇 九變)
장수에게 위험한 다섯가지가 있다. '죽으려고 하면 죽임을 당할수있다.' , '살려고 하면 (치욕스럽게 적에게)포획될수있다.' (손자병법 제8편 구변)
당대 백병전은 영화처럼 화려한 칼부림이 난무하는 개싸움보다는 양쪽이 방패를 들고 서로 밀면서, 방패벽 너머로 창으로 서로를 찌르려 드는 경우가 많았다. 창도 부러지기 마련이고 앞뒤로 밀리기 때문에 제일 앞쪽의 병사들은 창이나 검따위는 버리고 양손으로 방패만 있는힘껏 미는 경우가 다반사일 정도다. 이런 밀기 싸움이 지속되는 동안은 의외로 사상자가 많지 않았다.[3] 그러다가 어느 한 쪽이 밀리기 시작하면서 틈이 생기거나, 병력이 싸움에서 질것 같다는 생각에 겁을 먹고 적에게 등을 돌려서 도망치는 순간은 전열이 도미노 처럼 무너지면서 더 이상 맞싸움은 불가능하고 도망치는 쪽과 추격하는 쪽으로 나뉘게 된다. 군대라는 집단은 기본적으로 한번 승기를 잡았을 때 그 승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도망치는 적들에 대한 추격 수단[4]을 많이 갖추고 있어 한번 패퇴하는 쪽과 추격하는 쪽이 완전히 나뉘면 그때부터 무수한 사상자가 발생하게 된다. 반대로 아무리 적이 우세하다고해도 '살려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죽고 싶은 것처럼' 진형을 유지하며 버티면, 결국 치던 쪽이 지쳐서 물러나거나 오히려 적의 앞 열이 먼저 붕괴하면서 전세를 역전시킬 가능성이 존재했다.

고로 오자병서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끝까지 싸우는 자가 살아남는다는건 단순히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라는 수준의 금언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쉽게말해 먼저 모랄빵난 쪽이 도망치다가 말발굽과 화살에 진짜로 죽는다는 당대 전쟁양상을 직설적으로 요약한 것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이를 뒤집어 ‘존버는 승리한다’는 해석도 유효하다. 결국 멘탈 붙잡고 더 오래, 잘 버티는 쪽이 이겨서 살아남는 뜻이니까.

마찬가지로 '행생즉사'는 기교, 천운에 의지해 전투에서 이기려 하거나, 도망칠 각만 보는 병졸로 가득찬 오합지졸군대는 적군과 전투하고 얼마안가 모랄빵이 나면서 몰살당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당시 전투에서 패한 장수들은 처형당하거나 노예로 전락하는것이 일상이였으므로, 병법을 읽고 있던 군관/관료에게도 철저한 준비와 양질의 군대를 갖추지 않고 어설프게 이기려 들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함께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의 수전의 경우에도 각 군함이 조그만한 성처럼 작동해서 수성-공성 양상을 띄었기에 이런 논리가 동일하게 적용이 가능했다. 하술할 이순신이 인용했을 시점에도 당시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왜군의 세키부네에 비해 척당 병력도 많고, 그 크기도 더 컸기 때문에 멘탈을 붙잡고 각개격파를 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나를 믿고 싸우기만 하면 이길수 있다'고 일갈하면서 휘하 군관들을 상대로 배수진을 쳤다고 봐야한다.

2. 난중일기에서

이순신: “아직도 살고자 하는 자가 있다니,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정녕 싸움을 피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냐? 육지라고 무사할 듯싶으냐? 똑똑히 봐라! 나는 바다에서 죽고자 이곳을 불태운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병법에 이르기를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명의 적도 떨게 할 수 있다 하였다. 바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형국을 두고 하는 말 아니더냐?”
영화 《명량》에서[5]
정유년 9월 15일 (명량 해전 전날)
十五日癸卯。晴。數小舟師。不可背鳴梁爲陣。故移陣于右水營前洋。招集諸將約束曰。兵法云。必死則生。必生則死。又曰。一夫當逕。足懼千夫。今我之謂矣。爾各諸將。勿以生爲心。小有違令。卽當軍律。再三嚴約。是夜。神人夢告曰。如此則大捷。如此則取敗云 (亂中日記)[6]
15일 계묘, 날씨 맑음, 배를 맡은 장수들을 헤아리고 명량을 버릴수없기에 진영을 고수했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난중일기)[7]

위의 이순신의 논지를 현대적인 화술로 재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나는 (병법을 인용하면서) 군사학에 충실하게 전략/전술적 유불리를 따져서 충분히 이길수 있는 작전을 수립했다. (이겨서 살 계획을 짰다)
2. 그런데 내 휘하 군관(장교)들은 왜군이 보유한 배의 숫자만 보고 쫄아서 튈 기회만 엿보고 있네?
3. 왜 여기까지 와서 나를 믿지 못하냐. 나의 계획은 탄탄하니 너희들은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4. 도망쳐서 우리 모두의 승리(=생존)가능성을 위협하는 놈은 군법대로 사형에 처하겠다 .

실제로 난중일기 원문에서도 바로 다음에 "군율을 어긴다면 용서치 않겠다."라고 되어 있고, 전투 도중에 우물쭈물대는 안위와 김응함에게 "너희들 진짜 뒈지고 싶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으므로, 그냥 기강잡기식 의지드립이 아니라 회유와 협박을 섞어 배수진을 칠 의도가 다분히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보통 상관이 부하들을 이런 식으로 사지에 처넣으면 "미친놈아! 죽고 싶으면 너 혼자 죽어!"라면서 반발하거나, 심하면 프래깅을 당하기 일쑤인데, 현실에서는 한 PTSD 온 환자빤쓰런을 처버린 게 전부였다. 명량 해전에서도 참전하지는 않을 망정 바로 도주하지는 않고 "혹시 이순신이라면..?" 하고 지켜보고 있었던 걸 보면 부하들은 저 "내가 살려주겠다"라는 말이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릴 정도로 충무공에 대한 신뢰를 두텁게 가지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순신은 그 신뢰에 완벽하게 보답해서, 죽어라 싸우다가 적들에게 둘러싸여 위기에 처한 안위와 그의 배를 손수 구해내면서 "살려줄 것이다." 파트도 완벽히 지켜낸다.

3. 왜곡

종종 이 문구와 같은 의도를 왜곡하여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 상황에서 비합리적인 선택을 정신론으로 정당화하거나 억지로 개인의 의지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를 요구할 때 이를 합리화하는 의도로 쓰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세기 초반 프랑스 육군의 엘랑 비탈[8]에 영향을 잘못 받은 일본군의 반자이 돌격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말의 대명사인 이순신부터가 자신의 연설에 처음부터 "병법에 이르기를"이라고 말했다. 곧 이 말의 출처는 병법이다. 병법이라는 게 원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군사 운용방식과 군사전술이론을 설명하는 것인데, 이런 병법에서 비합리적인 정신론을 주장할 리가 없다.

필사즉생행생즉사의 원전 오자병법 제3 치병편을 보면 시작부터 四輕(사경), 二重(이중), 一信(일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먼저 보급, 전투병기, 병사의 사기를 충만하게 해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다.[9] 그 전투에서 승리하고자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잘 육성한 군대'를 갖추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 병사들이 죽을 수도 있단 생각에 주저한다 하면 오히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것보다 패배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또한 다음 구절에서도 "용병에서 주저함은 가장 큰 병폐이며, 군대를 재앙으로 몰고 가는 것은 의구심을 갖는 것에서 비롯한다"라며 전장에서 망설임을 가지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구의 의미는 어디까지나 문제를 해결할 때, 최선이라 생각하는 결정을 했다고 하면 그 후에 행동을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지, 애초에 합리적이 아닌 결정을 해놓고서 모든 것을 정신력만으로 끝내라는 뜻이 아니다.

즉, 이 문구를 쓴 오자의 원 뜻은 '의지드립'이 아니라 "만반의 준비를 하여 최선이라 생각되는 결단을 내렸다면, 망설임은 실패의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라는 의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이순신은 무과급제를 한 조선군 장수답게 장수의 교과서인 오자병법의 FM대로 승리한 것이며, 의지드립으로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이 아니다. 이 오자병법의 정수를 깊숙이 체득한 이순신은 자신이 싸웠을 때 승산이 가장 높은 장소인 울돌목에서 일본 수군에 비해 상대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던 판옥선과 각종 화포들을 활용하여 말도 안 되는 교전비로 명량 대첩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의 의미는 '제대로 싸울 준비를 갖추지도 않은 주제에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상대와 싸워서 이기고자 하는 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제 멋대로 해석하여 결론을 내리기 이전까지의 합리적인 과정을 마치 겁쟁이의 행동인 것처럼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 이 문구의 의미는 어디까지나 결론을 도출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끝난 이후의 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도망치거나 문제를 회피하는 행동을 경계하는 것이지, 그 이전의 모든 과정들을 무시하고 아무 생각 없이 닥치는 대로 강행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칫하면 기호지세처럼 될 수도 있다. 이순신이 울돌목을 전장으로 선택한 것도 대량의 정찰선을 띄워서 적을 정탐하는 합리적인 정보 탐색 과정이 둿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손자병법에서도 "상황이 불리할 때는 처음부터 전투를 피해야 한다", "무능한 장수는 일단 싸움을 한 뒤에 요행수로 승리를 바란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승패의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유불리에 따라 전투의 여부를 결정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며, 불리한 싸움을 피하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선택하는 것 또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이 멋진 격언을 '의지드립' 따위의 쓸데없는 아집에 대입하는 것은 꼭 경계해야 하며, 반대로 "누가 칼들고 협박함?" 식으로 몰아도 안 될 것이다.

4. 성서

전혀 다른 맥락이기는 하지만 신약성경 복음서에서 예수가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10장 39절(공동번역성서)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16장 25절(공동번역성서)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 8장 35절(공동번역성서)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루카 복음서 9장 23~24절(공동번역성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
루카 복음서 17장 33절(공동번역성서)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요한 복음서 12장 25절(공동번역성서)

5. 그 외

6. 관련 문서


[1] 비슷한 예로 손자는 손자병법 구지(九地)편에서 속히 싸우면 살아남아도 속히 싸우지 않으면 멸망하는 땅을 '사지(死地)'라 하고, 사지에서는 다만 싸워야 한다고 말하여 전장에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말하고 있다.[2] 다만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은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로 약간 변형하여 생즉사 어구를 좀 더 강조하여 인용했다. 아래는 그 전문.[3] 극단적인 고대 그리스 팔랑크스 대열간의 싸움의 경우, 양측에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는 싸움이 생긴 경우도 있을 정도다.[4] 대표적으로 기병전차가 있다[5] 위 영상의 1:15 부터[6] 한국고전종합DB 李忠武公全書卷之八 > 亂中日記四(제4권중 제4권) #[7] 충무공의 부대는 전사자보다 군율 및 군령 위반으로 처형된 사람이 더 많았다. 당시 충무공 휘하 장병들의 사망 원인 1순위는 전염병(2500명), 2위는 처형이고 전사(300여명)는 3위였다고. (참고로 0순위는 칠천량 해전의 주인공 원균. 당시 이순신은 백의종군 중이었으므로 '충무공이 지휘하다 발생한 사망자'로는 집계되지 않지만, '충무공의 부대'로 집계하면 무려 17,000명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원흉이 부정할 수 없는 0순위.) 물론 이순신이 포악해서 처형이 많았다거나 한 게 아니라, 군기와 군율 유지에 그만큼 철저했고 그 결과 전투에서의 전사자 수가 극적으로 적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순신이 처형했던 병사들의 죄목을 보면 현대의 기준으로도 중형을 피할 수 없는 중범죄를 범한 경우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물론 그 사정을 알고 보더라도 이순신이 처형한 병사 > 일본군과 싸우다 죽은 병사라는 게 상당히 기묘한 일인지라, 역사 동호인들이나 밀리터리 동호인들에게 "충무공 휘하 부대 사망원인 2위가 이순신", Execution(처형)에서 따와 'E순신' 등의 드립거리가 되곤 한다. 충무공 휘하에서 전사자 수가 비상식적으로 적었음을 역설적으로 칭송하는 농담이다.[8] 공세우선주의라고도 한다.[9] 오자병법의 해당 항목을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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