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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바야시 마사키 연출, 나카다이 타츠야 주연의 1962년 사무라이 영화.위선적인 권력자들이 겉치레로 명예를 지키는 걸 한 낭인을 통해 통렬히 비웃고 저항하는 메세지를 담은 작품이다.
2. 예고편
3. 내용
1630년 5월 13일, 도쿠가와 막부 초기의 일본을 배경으로 다이묘 이이 가문의 에도 저택에서 가로(家老) 사이토가 일기를 쓰면서 시작된다. 후쿠시마 가문의 가신 츠쿠모 한시로(나카다이 타츠야)라는 낭인이 할복을 하겠다며 이이 가문의 저택으로 찾아오는데...당시는 일본의 전국시대와 오사카 전투가 끝나 각지에 낭인이 넘쳐났다. 그러나 태평성대에 그들이 등용되는 것은 없어 많은 낭인들이 백수 신세였다. 결국 한 낭인이 다이묘들의 저택에 찾아가 할복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그 기개를 높이 산다며 등용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모방해 각지에서 서로 할복하겠다며 떼를 쓰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저택을 계속 피로 더럽힐 수도 없고 뒷처리도 버거워, 이를 귀찮게 여긴 가신들은 낭인들에게 돈을 좀 주고 쫓아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러한 차에 이이 가문의 저택에 게이슈의 낭인 지지이와 모토메란 청년이 방문해 할복할 테니 장소를 달라고 부탁한다. 일반적으로는 돈을 좀 주고 쫓아냈으나 각로와 가신들의 대화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 안된다고 하여 결국 모토메에게 진짜로 할복을 시키게 된다. 예상 밖의 사태에 당황한 모토메는 잠시 여유를 달라고 하나 그가 도망갈 것이라고 생각한 이이 가문은 반강제로 결국 할복시킨다. 이때 모토메는 제대로 된 칼도 없어 죽검을 차고 있었는데[1] 그 죽검으로 배를 가르다 제대로 되지 않아 혀를 끊어 비참하게 죽는다.[2]
며칠 뒤 또 게이슈의 낭인이라는 츠쿠모 한시로가 찾아온다. 사이토는 이를 귀찮게 여겨 위의 모토메의 일을 알려주며 그냥 가라고 하지만 츠쿠모는 한사코 배를 가르겠다고 한다.
이후의 자세한 사항은 다음 백과사전 항목 참조. #
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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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스코어 85 / 100 | 점수 7.3 / 10 | 상세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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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도 100% | 관객 점수 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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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면서[3] 영화 7인의 사무라이와 더불어 일본 사무라이 영화가 서구권에 알려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4] 실제로 두 영화는 각본가도 같다. 상당한 걸작으로 1962년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각본과 놀라운 연기가 굉장하다. 2시간에 걸친 영화 내용 중 현실과 회상의 교차, 사이토와의 대화와 논쟁, 그리고 의문의 남자 츠쿠모의 진짜 목적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 영화의 포인트로 단순한 사무라이 액션 활극이나 찬바라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굉장히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 많은 영화다. 물론 후반부의 검술 장면이나 마지막 사투 씬은 아주 긴장감이 높아서 무술 영화로도 손색이 없다. #
영화에 등장하는 이이 가문은 상당한 명문가로 에도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천왕 중 한명인 이이 나오마사의 후손인데, 영화 후반에 나오는 갑옷 역시 그의 갑옷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권력을 가진 사무라이들이 비참하게 사는 낭인들의 삶을 생각해보진 않았겠지만 그 잘난 이이 가문의 가풍이니 외관도 실제로는 위선과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걸 통렬히 비판하고 비웃는 츠쿠모와 이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을 덮고 넘어간 뒤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사이토의 태도는 현대 사회에서도 한번쯤 돌이켜 볼 만한 일이다.
5. 여담
- 2011년에 일본의 영화 감독인 미이케 다카시가 리메이크했다. 전반적으로 무난한 리메이크라는 평이 대세.
- 나카다이 타츠야는 이 영화를 자기가 출연한 작품 중 최고로 꼽았다.
- 네이버 영화 내용에는 웬 생뚱맞은 내용(사소한 일 때문에 할복하게 된 사무라이가 저항을 한다)이 적혔는데 영화 내용과 다르고 그런 단순한 인과가 아니다.
- 나카다이 타츠야는 촬영 당시, 같이 연기한 선배 배우 미쿠니 렌타로와 발성법을 두고 논쟁하자 감독 고바야시 마사키가 "너희끼리 합의를 볼 때까지 촬영은 쉰다."고 말하고서 전원 철수했다 다음날 재촬영했다고 한다. 이 일화를 공개한 나카다이는 "스튜디오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였으니 가능했지,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본 영화계는 반대로 제작위원회의 지나친 간섭으로 고통받는다.)
[1] 빈곤한 생활로 인해 칼날을 팔고 대나무로 칼날을 대신해 놓았던 것.[2] 이 장면은 리메이크보다 원작이 처절하게 그렸다고 평가받는다.[3] 보이테흐 야스니의 카산드라 고양이와 함께 수상.[4] 보통은 7인의 사무라이가 하라키리보다 고평가받으나, 7인의 사무라이보다 하라키리를 고평가하는 시네필이나 평론가도 꽤 있다. 7인의 사무라이가 일본 영화사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가지는 영화인지 생각해보면 하라키리가 얼마나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