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시대 전전 하마구치 내각 濱口內閣 | Hamaguchi Cabinet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929년 7월 2일 ~ 1931년 4월 14일 | ||
출범 이전 | 이후 | ||
다나카 기이치 내각 | 제2차 와카쓰키 내각 | }}} | |
<colbgcolor=#00ff00> 내각총리대신 | 하마구치 오사치 / 제27대 | ||
여당 | |||
중의원 해산일 | 1930년 1월 21일 |
▲ 하마구치 내각 출범 기념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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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9년 7월 2일, 황고둔 사건의 책임으로 다나카 기이치 내각이 총사퇴하면서, 입헌민정당 총재 하마구치 오사치가 제27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임명되어 설립된 내각이다.일본 제국 시대의 내각 중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이고, 평화주의적인 성향을 보인 내각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1]
이 시기 내각에선 하마구치 총리의 강력한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금해금, 런던 해군 군축조약 등 군축, 긴축정책에 기반해 완강하게 개혁을 밀어붙혔으나, 금해금의 여파로 인한 경제 불황 및 여론 악화와 군부 강경파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1930년 11월 14일, 하마구치 총리가 도쿄역에서 극우 청년 사고야 도메오(佐郷屋留雄)에게 저격당해 입원하면서 시데하라 기주로 외무대신이 당일부터 1931년 3월 9일까지 약 3개월간 총리 권한대행[2]을 맡았다.
1930년 3월 10일 하마구치가 중의원, 귀족원에 등단하면서 직무에 복귀했으나, 부상 악화로 4월 14일 총사퇴했다.
2. 각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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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외무대신 | <colbgcolor=#ffffff,#1f2024> 시데하라 기주로 | |
내무대신 | 아다치 겐조 | |
대장대신 | 이노우에 준노스케 | |
육군대신 | 우카기 가즈시게 | |
해군대신 | 다카라베 다케시 → 아보 기요카즈 | |
사법대신 | 와타나베 치후유 | |
문부대신 | 고바시 이치타 → 다나카 류조 | |
농림대신 | 마치다 추지 | |
상공대신 | 다와라 마고이치 | |
체신대신 | 고이즈미 마타지로 | |
철도대신 | 에기 다스쿠 | |
척무대신 | 마츠다 겐지 | |
무임소대신 | 아베 노부유키 | }}} }}}}}}}}} |
2.1. 국무대신
- 비고란에 쓰여진 것을 제외하고는 1929년 7월 2일 임명
직책 | 대수 | 성명 | 소속 | 특이 사항 | 비고 |
내각총리대신 | 제27대 | 하마구치 오사치 | 중의원 입헌민정당 | 입헌민정당 총재 | |
- | 시데하라 기주로 | 귀족원 (동화회) 남작 | 내각총리대신 임시대리 (외무대신 겸임) | 1930년 11월 14일 겸임 1931년 3월 10일 겸임 해제 | |
외무대신 | 제40대 | 시데하라 기주로 | 귀족원 (동화회) 남작 | 하마구치 총리 암살 미수 사건으로 인해 1930년 11월 14일부터 1931년 3월 10일까지 내각총리대신 권한대행 수행 | 재입각 |
내무대신 | 제41대 | 아다치 겐조 | 중의원 입헌민정당 | 재입각 | |
대장대신 | 제30대 | 이노우에 준노스케 | 귀족원 무소속 → 입헌민정당 (무회파) | 재입각 | |
육군대신 | 제35대 | 우가키 가즈시게 | 군인 육군 대장 (육군대학 14기) | 재입각 | |
임시대리 | 아베 노부유키 | 군인 육군 중장 (육군대학 19기) | 1930년 6월 26일부터 1930년 12월 10일까지 임시대리 | 무임소대신과 겸직 | |
해군대신 | 제31대 | 다카라베 다케시 | 군인 해군 대장 (해군병학교 15기) | 재입각 1930년 10월 3일 사임 | |
제32대 | 아보 기요카즈 | 군인 해군 대장 (해군병학교 18기) 남작 | 첫 입각 1930년 10월 3일 취임 | ||
사법대신 | 제32대 | 와타나베 치후유 | 귀족원 연구회 자작 | 첫 입각 | |
문부대신 | 제39대 | 고바시 이치타 | 중의원 입헌민정당 | 첫 입각 1929년 11월 29일 사임 | |
제40대 | 다나카 류조 | 중의원 입헌민정당 | 첫 입각 1929년 11월 29일 취임 | ||
농림대신 | 제6대 | 마치다 추지 | 중의원 입헌민정당 | 재입각 | |
상공대신 | 제6대 | 다와라 마고이치 | 중의원 입헌민정당 | 첫 입각 | |
체신대신 | 제33대 | 고이즈미 마타지로 | 중의원 입헌민정당 | 첫 입각 | |
철도대신 | 제8대 | 에기 다스쿠 | 귀족원 입헌민정당 (동성회) | 재입각 | |
척무대신 | 제2대 | 마츠다 겐지 | 중의원 입헌민정당 | 첫 입각 | |
무임소대신 | - | 아베 노부유키 | 육군 육군 중장 (육군대학 19기) | 육군대신 임시대리 | 첫 입각 1930년 6월 16일 취임 1930년 12월 10일 면직 |
[1] 나머지 하나는 본인의 후임자가 조각한 제2차 와카쓰키 내각이다.[2] 엄밀히 말하면 내각총리대신 임시대리이지만, 하마구치 총리가 워낙 오랫동안 입원해있어서 사실상 내각총리대신 권한대행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