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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3 18:54:55

평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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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평화 기호.svg
<colbgcolor=#000> 평화주의 · 반전주의의 상징, 평화 기호
파일:attachment/WHACA_Tank.jpg
파일:attachment/WHACA_Bomb.jpg
파일:attachment/WHACA_Air.jpg
파일:attachment/WHACA_Sniper.jpg
파일:attachment/WHACA_No_War.jpg
<colbgcolor=#000> 뿌린 대로 거두리라(what goes around comes around)[1]
<colbgcolor=#000> 언어별 명칭
한국어 <colbgcolor=#fff,#1f2023>평화주의
한자 ·
영어 pacifism
중국어
독일어 Pazifismus
러시아어 пацифизм
부자들이 전쟁을 선언하면 죽는 자들은 가난한 자들이다.
장폴 사르트르
좋은 전쟁, 나쁜 평화란 이 세상에 있었던 적이 없다.
There never was a good war, or a bad peace.
벤저민 프랭클린, 1783년 9월 11일, 조시아 퀸시에게 보낸 편지 중
1. 개요2. 상세3. 한국 법률에서의 평화주의4. 역사5. 관련 어록6. 해당 인물7. 해당 정당
7.1. 한국7.2. 해외
8. 해당 사상을 내포한 작품
8.1. 영화8.2. 소설 / 수필 / 라이트 노벨8.3. 만화 / 애니메이션 / 특촬물8.4. 게임8.5. 음악
9. 관련 문서

1. 개요

평화주의(平和主義)인본주의내지 종교적 관점으로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수호하려는 태도나 운동, 사상 또는 이념을 의미한다. 반전주의와도 어느 정도 뜻이 통한다. 주로 평화 운동과 반전 운동으로 대표된다. 상징으로는 가 있다.

이 문서는 반전주의(反戰主義)도 같이 다루고 있다.

2. 상세

전쟁인간욕구에 따른 자연적인 것이라면 평화에 대한 갈망도 인간의 생명 존중의 본능적 욕구에 따른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역사상으로는 전쟁이 발생한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며, 서구에서는 헤브라이의 예언자,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사상에서부터 근대 인도주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그 사상적 계보를 찾아볼 수 있다. 고대 동양에서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묵자와 그의 가르침을 따른 묵가가 단연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묵자 사후에는 학파가 분열하고 타락하면서 되려 침략자를 위해 일하는 씁쓸한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반전주의라고도 하지만 반전주의라는 단어는 정확히 평화주의에 대입되지는 않는다. 반전주의는 주로 한국에서만 쓰는 단어이고, 대체로 전쟁 자체에 반대하는 사상이다. 평화주의는 군대 무용론을 포함하고 있지만 반전주의는 최소한의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은 찬성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반전주의자라고 한다면 궁극적으로는 군대 무용론을 지지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군의 해체나 그 과정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군대 무용론자들과 조금 이견을 보이는 편이다.[2] 파라벨럼[3]이 워낙 역사적으로 틀린 적이 없는 격언이기도 하고, 국제사회에서 최소한의 자기보호도 포기해야 하는 군대 무용론을 의미없는 몽상으로 여기는 현실주의자들의 비율이 동서고금 가리지 않고 높은 게 사실이기 때문에 '나 평화주의요', '나 반전주의요'라고 막연히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아예 군대 무용론까지 지지하는 사람들은 평화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이상으로 심취한 핵심층 정도인 게 현실이다.

제자백가, 유가, 불교, 도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힌두교 등 대다수의 종교성인들치고 반전주의를 주장하지 않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프리카아메리카 원주민 등의 제도화되지 않은 종교나 사상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의 것들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체제에 포섭되어 가면서 전쟁을 정당화하게 되는 것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었다.[4]

아나키즘, 신좌파와 사상이 거의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아나키스트나 신좌파인 인물/정당/단체는 대부분 평화주의 내지 반전주의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평화주의=좌파라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이며 좌파의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파 진영 내에도 평화주의자가 있다.[5]

3. 한국 법률에서의 평화주의

한국 법에서 찾아볼 수 있는 평화주의로 대표적인 것이 한국 헌법의 헌법원리상 국제평화주의와 평화통일지향이다.

국제평화주의를 명시해 놓은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전문
~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

제5조 ①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6]


평화통일지향을 명시해 놓은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전문
~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ㆍ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제66조 ③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제92조 ①평화통일정책의 수립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

4. 역사

4.1. 제국주의 시대

평화주의의 반전 운동이 명확한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즉 제국주의의 시대 이후의 일이다. 이때부터 반전 운동이 대중 운동으로서 자리를 잡는다.

4.2.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서구에서는 기독교가 대중적 반전 운동의 주체였다. 당시 퀘이커, 여호와의 증인, 재림교회 등 소수 종파부터 천주교등 주류 종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파들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4)는 계율에 따라 전쟁을 반대하고 군사훈련에 동참할 것을 거부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식민지 피압박 민족의 반제국주의, 민족 해방 운동과 자유주의, 사회주의 세력에 의하여 전개되었다.[7] 이런 정세는 제국주의에 억압되어 온 피압박 민족의 해방 투쟁을 발전시켰으며 1927년 국제반제동맹(國際反帝同盟)을 결성. 국제적 규모의 제국주의 반대, 민족 독립 지지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제1차 세계 대전 시기다. 이전에도 역사적으로 병역거부자는 지속적으로 있어 왔지만 미증유의 대살육전을 앞에 두고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신념에 따라 조직적으로 병역을 거부한 것은 1차대전이 처음이다. 기독교계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재세례파(아나뱁티스트)들에 의해 최초로 주창되었다.[8]

전간기에는 1차대전에서 활약한 미 해병대 장군이었지만 평화주의, 반자본주의 운동을 펼치던 스메들리 버틀러 장군이 '전쟁은 사기다'라는 책을 발간해 당시 미국의 해외 개입, 팽창정책의 허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4.3. 제2차 세계 대전

일본 제국중국 침략아돌프 히틀러군비 확장에 의해 세계적으로 전쟁의 위기가 닥쳤는데 이런 상황에서 앙리 바르뷔스(Henri Barbusse)와 로맹 롤랑(Romain Rolland)[9]의 제창으로 1932년 8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반전대회(國際反戰大會)가 열려 여러 나라에서 2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이 대회는 사상 초유의 국제적 규모의 반전 대회로서 정당, 사상, 신념의 차이를 초월하여 반전주의자/평화애호자들이 결집하였다. 이 대회를 계기로 하여 정치적/인도주의적/종교적인 갖가지 반전/평화 운동이 눈앞에 처한 긴급한 과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반전주의/반파시즘으로 단결해 나갔으며, 이러한 운동의 발전은 비록 전쟁 자체를 막지는 못했지만[10] 파시즘 타도와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내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반전 운동 경험과 성과는 전후의 새로운 국제적 조건 아래에서 전후 세계의 평화 운동에 많은 공헌을 했다. 미국에서는 진주만 공습을 당한 직후 의회의 대일선전포고에서 유일한 반대표 1표가 나왔는데 미국의 첫 여성 국회의원이자 반전주의 의원인 지넷 랭킨이 던진 반대표였다. 비난을 받았으나 반전주의의 대표라는 이미지와 함께 "민주주의만장일치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소신은 후대에 인정받아 미국 국회의사당 현관에 동상이 세워지고 지금도 그 뜻을 기리는 사람이 많다. 관련 기사

4.4. 현대

4.4.1. 베트남 전쟁

지미 헨드릭스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연주한 미국 국가.[11]
초반에는 정상적인 연주로 들리지만 후반부는 폭탄이 투하되는 소리, 폭격 소리, 사이렌 소리, 사람의 울음소리,
그리고 미군에서 추모곡으로 사용되는 'Taps'의 멜로디를 섞어 베트남 전쟁과 미국 정부를 풍자했다.

미국의 베트남 개입은 공산주의를 부도덕하고 사악한 것으로 규정하고, 그 위협으로부터 미국적인 민주주의와 생활 양식을 지켜야 한다고 결의하면서 시작된 것인데 국제 연합 헌장, 국제법, 국제 조약에 위반되며 미국의 역사적/전통적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으며, 베트남 전쟁이 격렬해지면서 그 의문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학자와 지식인들은 1965년, 프린스턴 대학교의 교수 R.A 포크 박사를 위원장으로 하여 미국의 베트남 개입의 합법성에 대해 조사, 분석하는 위원회인 '미국의 베트남정책에 관한 법률가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 위원회는 미국의 베트남 개입이 몇 가지 사항에서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공표했다. 의회에서는 정부의 베트남 정책에 관한 공청회가 열리고, 텔레비전, 라디오 등에서도 갖가지 공개 토의가 행해졌다. 거기에다가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이 강화되고 고엽제 작전, 미라이 학살의 실태가 밝혀짐에 따라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의혹은 곧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운동의 움직임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와 데모가 자주 일어났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집회는 1969년 10월 15일을 '베트남반전일'로 하여 워싱턴을 중심으로 미국 각지에서 행해진 대규모 베트남 반전 통일 행동이다.

미 국방부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조사, 연구를 하여 무려 47권에 이르는 <미국방부비밀보고(펜타곤 페이퍼)>를 만들었는데 하필이면 그 내용 중 일부가 뉴욕타임스에 의해 폭로되고 먈았다. 이는 미국의 베트남 정책에 대한 허상을 벗겨내고 실태를 알리는 결과가 되어 안 그래도 거세던 반전 운동이 더욱더 확산된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전개되었는데 그 결과 시민들의 반전 시위는 미국 정부가 폭격 중지 → 평화 교섭 개시 → 미군 철수 → 전쟁 종결의 순서로 결의를 잡는 데 영향을 미쳤다. 물론 남베트남이 워낙 답이 안나오는 집단이라 설사 시위가 없었다고 쳐도 최종적으로는 미국이 손을 뗄 수밖에 없었겠지만.

4.4.2. 테러와의 전쟁 시대

2001년 9월 11일에 벌어진 9.11 테러의 영향으로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여 일어난 21세기 최초의 전쟁인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았으며 이어서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다. 적어도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는 그나마 좋은 듯...했으나 다른 전쟁을 또 일으키려고 하자 2003년 2월 15일, 세계 600여 도시에서 1150만여 명이 참여하여 반전 시위를 하였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부시 대통령은 '그딴 거 알 게 뭐야' 하며 다 씹고 전쟁을 일으켰는데 그게 바로 이라크 전쟁이다. 이후 미군이 이라크 포로들을 학대한 사실 등이 알려지며 반전 운동이 더욱 더 확산되었다.

4.4.3.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는 기존 전쟁들이 장기전으로 가는 추세이기도 하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제3세계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소규모 게릴라전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고, 대신 전쟁의 원인 중 하나인 팽창주의, 패권주의에 대한 경각심 정도로만 표출되는 정도로 시들해졌지만 뜬금없이 러시아가 가만히 있던 우크라이나에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규탄이 자국민들에게서도 일어나게 되고, 이에 러시아의 팽창주의와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해 전 세계가 피해국인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전쟁 가해국인 러시아를 규탄하는 쪽으로 반전주의 열풍이 불고 있다. 이 전쟁은 2022년 가장 핫한 이슈로 번졌으며, 각종 SNS상에서 해시태그 전쟁반대(No war)로 위시되는 민간적 반전 시위는 사회 현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심지어 전쟁 가해국인 러시아측에서도 수많은 국민들이 반전시위를 하다 체포되거나, 훈련소나 철도에 테러를 일으키는 등 전쟁 반대 의사를 크게 표현하고 있다.

4.4.4.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동에서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서 반전 시위가 재점화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위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이며 휴전 촉구, 이스라엘가자 지구 봉쇄 및 점령 중단,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항의와 팔레스타인의 인도적 지원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주로 이스라엘 대사관과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으며, 특히 2024년 4월 이후로는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교 점거 시위에서 대규모 체포 작전이 일어난 것을 시작으로 예일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UC버클리와 같은 미국 전역의 주요 대학교와 유럽 등지의 대학교로 퍼지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 경찰은 시위에 대해 강경 대응을 하며 미국 사회가 베트남 전쟁 이후로 다시 분열되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4월 30일까지 미국 전역에서 최소 1000명의 시위대가 체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러한 시위 진압에 주방위군을 투입하라는 요구가 있다.

이러한 시위는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 이후 최대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더 가디언은 이 시위가 베트남 전쟁 당시의 반전 시위 이후로 가장 중요한 학생 시위라고 평가하고 있다#.

4.4.5. 한국에서

파일:kbtlove_216144_1[2918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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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국방위에서 증언하는 오태양 △ 대체복무제 및 양심적 병역거부자 석방 반전주의 시위[12]

한국에서는 평화주의, 반전주의에 대한 도입 자체가 다소 늦었다. 독립운동가이자 시민운동가였던 함석헌 등은 평화주의 도입을 위해 활동하기도 했지만 일제강점기6.25 전쟁을 겪은 당대의 한국인들에겐 평화주의가 정착하기 어려운 개념이었고, 더불어 징병제 국가이기 때문에 평화주의자는 병역을 거부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십상이었다. 때문에 천주교, 불교 등의 종교단체에서 간간히 평화주의를 제창하던 것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2001년 청년운동가 오태양이 자신의 반전주의 / 평화주의적 신념을 바탕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며 기존의 여호와의 증인로만의 양심적 병역거부가 아닌 평화주의, 반전주의적 양심적 병역거부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는 강한 반대에 휩싸이게 되었지만 전쟁없는세상 등 오태양의 병역거부가 신호탄이 되어 평화주의 단체들이 생겨났다.

임태훈 등의 인권운동가들은 징병제 속 군인과 총칼을 들기 거부하는 이들을 위한 군인권센터를 설립하거나 육우당, 정욜, 곽이경 등 동성애자인권연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 소속된 퀴어 인권운동가들 역시 반전 평화운동을 진행했다. 여성주의 단체인 여성민우회 역시 평화주의 시위를 진행했으며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진보네트워크 등 진보 성향 시민단체 들 역시 평화주의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이런 흐름의 와중 참여정부이라크 전쟁 파병을 선택하며 전국적으로 진보 운동가들이 강한 반전 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평화주의 운동 진영의 기조는 이어져 징병제모병제 전환 논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강의석군대 무용론을 바탕으로 알몸으로 평화주의 기습 시위를 진행해 대중들에서의 여론이 안 좋아지기도 했다. 사실 강의석은 기존의 평화주의자, 반전주의자들과의 사상적, 실질적 교류도 전혀 없었으며 박태환의 군 입대를 지지하는 등 사상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인물이기도 했음에도 그의 돌발 행동이 평화주의 진영에 악영향을 초래했다. 이 시기 오태양, 임태훈 등 평화주의 운동가들 역시 전혀 상관이 없음에도 같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촛불집회,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 등을 기점으로 2016년 ~ 2018년에 평화와 인문학 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며 다시 평화주의적 논의가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 등과의 유화적인 입장을 바탕으로 한 통일적 평화주의부터 기존의 평화주의 운동을 이으는 반전주의 운동 등 여러 방향의 논의가 나왔으며 이재명, 문재인, 심상정 등의 대권주자는 이러한 평화주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정당에서도 평화주의 논의는 나오고 있다. 노동당은 평등, 생태, 평화를 채택하며 평화주의를 제창했으며 2017년 전술된 오태양 등이 소속된 진보정당 미래당이 창당되며 미래당은 평화주의 집회를 진행해 진보정당들의 평화주의에 대한 논의도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미래당, 노동당과 사상적 연관이 짙은 녹색당, 정의당은 평화주의를 본격화 하기도 했다.

2023년에는 반전주의 시민단체 전쟁없는세상DX KOREA, ADEX 전시회장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5. 관련 어록

무기라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기구다. 자연(物)은 그래서 이를 미워한다. 그러므로 도를 깨달은 사람은 이것을 쓰지 않는다.
夫唯兵者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노자, 도덕경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손무, 손자병법[13]
평화란, 인류가 개발해야 할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넬슨 만델라
평화는 단지 폭력의 부재가 아닙니다. 평화는 자비심이 현현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달라이 라마 14세
Souviens-toi
기억하라
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 입구에 세워진 푯말
My good friends, for the second time in our history, a British Prime Minister has returned from Germany bringing peace with honour. I believe it is peace for our time. We thank you from the bottom of our hearts. Go home and get a nice quiet sleep.
친애하는 여러분, 역사상 두 번째로 영국 총리가 독일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라고 믿습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집에 돌아가서셔 평안히 주무십시오.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14]
문화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사람이라면 평화주의자가 아닐리가 없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그동안 죽어간 이들을 생각하면 평화를 거부하는 이가 다 역겨워진다.
이시다 이라
신문에서 끔찍한 전쟁 소식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그런 평화의 세상이 올 것입니다. 이제 총소리는 게임 속에서만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임요환
Let us fight to free the world - to do away with national barriers - to do away with greed, with hate and intolerance.
세계를 해방시키고, 나라 간의 경계를 없애어, 탐욕과 증오와 배척을 근절하도록 함께 투쟁합시다.
찰리 채플린, 위대한 독재자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준비해야 합니다.
오태양, 평화주의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 중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당신이 삶에 충분하다면, 당신과 나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봐요.
마이클 잭슨 Heal the World의 가사
국경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요. 죽이거나 죽어야 할 이유는 없어요. 종교도 마찬가지고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간다고 상상해 보세요.
존 레논 Imagine의 가사
평화란, 우리가 반드시 말해야 하는 언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5장 9절
War does not determine who is right – only who is left[15].
(전쟁으로는 누가 옳은지가 결정될 수 없다. 그저 누가 살아남았는지가 결정될 뿐이다.)
버트런드 러셀
전쟁에서의 승리를 아름답게 여기는 것은 살인을 즐기는 것이다.
노자
한 명을 죽이면 살인이라고 세상의 지탄을 받고, 열 명, 백 명을 죽이면 그 죄는 그만큼 더욱 무거워진다. 하지만 남의 나라를 공격하여 수천, 수만을 해하는 것을 사람들이 불의라고 여기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하는 것은 어찌 된 것인가?
묵자
눈에는 눈을 고집한다면 모든 세상의 눈이 멀게 될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
전투를 앞 둔 병사의 눈빛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쟁을 하자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겪어보지 못한 자에게 전쟁이란 달콤한 것이다.
에라스뮈스
40년 되었습니다. 베트남 퇴역 군인들도, 전쟁 얘기는 피하려고 했죠. 승리자유를 얘기하지만 그건 잘못된 겁니다. 누가 이기고 졌냐는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전쟁에서는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없어요. 파괴만 있을 뿐이죠. 싸워보지 않은 사람들만이 이기고 진 것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죠.
It has been forty years. Even the Vietnamese veterans, we avoid talking about the war. people sing about victory, about liberation. They're wrong. Who won or who lost is not a question. In war, no one wins or loses. There is only destruction. Only those who have never fought like to argue about who won or who lost.
바오닌, 북베트남 육군 퇴역 군인,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
나는 (후투족의 투치족 학살이 있었던) 르완다의 역사에서 보복과 재보복의 악순환을 끊어야 하고, 그 길은 응보의 정의를 넘어 회복의 정의로, 용서의 자리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용서 없이는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첫 번째 전쟁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전쟁이 일어났었다.
지난번 전쟁이 끝났을 때 승전국과 패전국이 있었다.
패전국에서 하층 서민들은 굶주렸다.
승전국에서도 역시 하층 서민들은 굶주렸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우리의 가장 큰 희망은 단순히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 전쟁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그 이유이다.
올로프 팔메
2003년 3월 20일 지구의 반대편에서 또 전쟁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든 간에 사람을 다치게 하고 서로 죽이는 행위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먼 미래, 우리들마저도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에는 인종이나 국경을 뛰어넘어 모두가 사이좋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타카하시 카즈키. 유희왕 33권 작가 코멘트.
이긴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 아무리 비싸고 더럽고 자존심 상해도 전쟁보다 평화가 낫다.
이재명

6. 해당 인물

7. 해당 정당

7.1. 한국

대부분이 진보 정당이다.

7.2. 해외

8. 해당 사상을 내포한 작품

8.1. 영화

8.2. 소설 / 수필 / 라이트 노벨

8.3. 만화 / 애니메이션 / 특촬물

8.4. 게임

8.5. 음악

9. 관련 문서



[1] 이 광고들 모두 광고천재 이태백의 모티브가 되는 인물 이제석이 만든 광고다. 맨 윗 사진의 M1 에이브람스 전차와 네 번째 사진의 저격소총은 원래 저렇게까지 포신이 길지 않지만 사진 효과를 내기 위해 일부러 과장되게 합성했다. 즉, 기둥에 둘러대면 언젠가 뿌린대로 거두며 인과응보 식을 표현한 셈이다.[2] 물론 대다수 평화주의자들이 대놓고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군대의 존재를 중요시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다.[3]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즉 평화를 누리고 싶다면 최소한 주변의 악당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할 힘은 갖추고 있어야한다는 뜻이다.[4] 불살의 대명사인 불교조차도 왕즉불 사상 등으로 권력의 한 축을 차지하면서 전쟁과 살육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으니...[5] 우파 자유지상주의자들도 보통 외교적 평화주의를 지지하는데 이들은 좌파처럼 '평등'을 목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불개입주의에 가깝다. 보수적인 참전용사들이 전쟁의 끔찍함에 학을 떼고 전쟁 반대를 외치는 경우도 있다.[6] 다만, 무조건적 평화주의와는 다르게 방어적 전쟁은 용인함을 내포한다.[7]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사민당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상당수의 사회주의 정당 또는 정파들이 "자국 보호"라는 명분 하에 전쟁을 대찬성(...)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는 독일 공산당을 비롯한 더 급진적인 정파들이 출현하는 계기가 된다.[8] 재세례파는 아미쉬등의 보수적인 계열과 메노나이트 등의 중도파, 그리고 평화주의 내지 민중신학과 결합된 급진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소수의 신자와 신학자, 목회자가 존재한다. 존 요더의 '예수의 정치학'을 번역한 김기현 목사가 이 분야의 연구자로 유명하다.[9] 둘 다 소설가이다.[10] 이런 운동은 일각에선 파시즘을 키운 경향도 있기는 하다. 뮌헨 협정 문서 참조. 전쟁을 피하겠다고 유화책을 배풀었으나 그것이 독이 된 사례다.[11] 다소 시끄럽고 전장의 소음을 묘사한 기타 소리가 공포스럽게 들릴 수 있음.[12] 국제앰네스티, 군인권센터, 전쟁없는세상,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여성민우회 등의 활동가들. 오태양 미래당 대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박주민 의원 등이 시위를 진행했다.[13] 손자병법을 단순히 '어떻게 해야 잘 싸우는가'에 대한 공략집 정도로 여기던 사람들에게는 의외일 수 있는데 정작 손자병법에선 전쟁을 될 수 있으면 피하고, 무조건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쳤다.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인적 자원, 국가적 역량을 심각하게 소모하는 행위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전쟁을 하지 않고 해결할 방법이 있으면 전쟁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끝내고,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해야 된다면 최대한 신속하게, 최대한 확실한 방법으로 단기간에 끝내는 방법이 차선이라고 말한다. 물론 일반적으로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시작하는 반전주의와는 좀 차이가 있지만, 고전 병법의 대가마저도 전쟁은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14] 출처[15] 옳다라는 뜻뿐만이 아니라 오른쪽이라는 뜻도 있는 right, 남았다는 뜻뿐만이 아니라 왼쪽이라는 뜻도 있는 left 두 단어를 이용한 고급 언어유희기도 하다.[16] 데빌맨, 마징가 Z 등의 작품에서 직간접적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삽입했다.[17]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이기도 하다.[18] 평화주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여러 음악을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의 콘서트에서 평화 기호를 사용하기도 했다.[19] 작가 본인이 젊은 시절 태평양 전쟁에 징집되어 왼팔을 잃는 등 참혹한 경험을 많이 겪었다. 전원 옥쇄하라!는 그의 경험과 반전주의가 담겨진 대표작.[20] 한때는 정복군주로 활동하며 침략 학살을 일삼았긴 했으나 정복으로 피폐해진 참상을 목도하고 불교에 귀의해 평화정책을 펼쳤다.[21] 다만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자신은 평화를 주러 온 게 아니라고 가르치기도 했다.(마태복음-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22] 오우삼 문서에도 서술된 이야기인데 1990년대 후반 그가 한국에 잠시 들렸을 때 자기 영화가 폭력적이라는 기자에게 자신의 영화는 폭력을 반대한다고 했으며, 스스로도 폭력을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한 바가 있다.[23] 헌정의 신(憲政の神様), 의회정치의 아버지(議会政治の父)로 불린 일본 제국 시기의 대표적인 리버럴 정치인으로, 1920년대부터 군부에 반대해 군국주의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24] 군부가 미쳐 날뛰는 쇼와 시대총리로서 군부를 통제하고 끝까지 전쟁을 막으려고 애를 썼다.[25] 이 사람은 본인 인스타에서 아베 신조를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들려고 한다"며 대놓고 비난한 바 있다.[26] 코지마 히데오의 대표작인 메탈기어 시리즈가 전쟁에 대한 비판과 평화의 소중함이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한국을 방문할 당시 6.25 전쟁을 인류 역사상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동족상잔이라고 평했다.[27] 중국인과 한국인을 위해서 인권운동을 펼쳤으며 독립운동가의 재판에 적극적으로 변호인으로 나섰다. 이 공적으로 사후 대한민국 건국훈장이 수여되어 가네코 후미코가 건국훈장을 받기 전까지는 일본인으로서 유일하게 한국 독립유공자였으며 지금도 가네코와 더불어 단 둘뿐인 일본인 독립유공자로 있다.[28] 자유지상주의자들은 타국에 외교적,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반대한다. 이를 불개입주의라고 한다.[29] 작중 방문자 외계인은 지구의 냉전 체제를 못마땅해하고 비판한다.[30] 극장판 시드 프리덤에선 아예 압도적인 무력을 위해 기존의 사용이 금지 된 병기까지 총 동원했다. 시드 시리즈를 후쿠다가 잡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보여준다.[31] 생태주의도 겸한다.[32] 크리스몬드를 훈장에 달고 다니기 때문에 그래서 블랙봉이 노린 것이다.[33] 그래도 되찾는다.[34] 영화 킬 빌에서도 나온 어구를 인용한 것이다. 복수는 숲과 같아 한 번 시작하면 그 안에서 끝없이 방황하게 되니, 복수를 끝내는 방법은 분노와 증오의 방황을 끝내고 숲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35] 자신을 증오하며 죽이려 드는 헤이터와 그의 부하들 포함.[36] 본편에서는 간접적으로 묘사되었지만 외전인 원피스 팬 레터에서 일반 해군의 시선을 통해 정상전쟁의 참상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37] OVA기준 블러디 나이트 엘 파실 전투-적군에 의한 포로학대에 대한 시민들의 두려움 제국령 침공작전-제국민들을 수탈하는 동맹군 키포이저 성역 회전-갓 태어난 자식을 두고 아군에게 공격당해 죽는 병사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아군이 붕괴되는 와중에 탈출하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제국군인들 버밀리온 성역 회전-몸의 반쪽이 날아간 채 어머니를 부르는 병사 호랑가시나무관 습격사건-사이비 종교에 의해 자살한 어린아이 그 외에 참혹한 시체가 된 병사들은 여럿 보여준다.[38] 가장 유명한 반전 만화로 전쟁으로 인해 가족까지 잃은 작가의 아버지의 경험담을 담은 수필형 만화인 수작.[39] 다만 X4부터는 이나후네 케이지의 개입 때문에 단순히 시그마 때려잡기 및 제로의 연대기 정도로 변질되었다. 다행히 개입이 끝난 X6 이후로는 시리즈 본연의 주제 의식으로 어느 정도는 돌아온 편.[40]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 워커 발매 당시, 제작자 코지마 히데오는 한 인터뷰에서 ‘게임의 주 연령층인 청소년들에게도 게임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깨닫게 하고, 반전주의를 알리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다.[41] 반드시 사망할 수밖에 없도록 디자인되어 있다.[42] 적군의 진격을 막겠다고 자국 영토에 핵을 투하하거나 오시아에게 도시를 멀쩡히 넘겨주지 않겠다고 자국의 도시를 방화하는 벨카나 민간인 거주지를 상대로 무차별 융단폭격을 가하는 연합군 양측 모두 부정적으로 그려지며, 그 결과 전쟁 직후 양국의 군인들이 국경없는 세계라는 아나키즘 무장조직을 결성하여 테러를 벌이게 된다.[43] 초반 인트로는 과거 고조할아버지가 참전한 2차세계대전의 광풍이후 세계는 기술의발전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지내었지만 그 발전속에서도 결국 전쟁은 변하지 않은체 자신의 고조부와 마찬가지로 전쟁을 맞이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44] 예로, 게임 승리시 나타나는 문구는 '승리했습니다!' 가 아닌 '승리했나요?' 다. 해당 문장이 핵으로 폐혀가 된 지구의 위에 나타나며 유저가 무슨 행동을 벌인건지 실감나게 해준다.[45] 니코가 전쟁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는 요소들이 GTA 4 미션들에 숨어있다. 예시로 'Jamaican Heat' 미션에서 니코가 자본주의를 더러운 사업이라 비판하자 로만이 "전쟁처럼?"이라고 물어보자 곧바로 급정색을 하며 부정한다.[46] 레콩키스타가 시작된 중세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이슬람과 가톨릭으로 대표되는 두 종교 간의 대립으로 인한 전쟁과 전쟁으로 인한 참상을 묘사하며 음악의 내용 역시 '사람들은 왜 서로 미워하고 싸우며 그런 추악한 역사를 계속 되풀이하는가'를 주제로 삼고 있다.[47] 메르헨에 수록된 곡 중에서 유일하게 평화를 주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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