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장편 연출 작품 (TV 영화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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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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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품상 - 드라마 | ||||||||||||||||||||||||||||||||||||||||||||||||||||||||||||||||||||||||||||||||||||||||||||||||||||||||||||||||||||||||||||||||||||||||||||||||||||||||||||||||||||||||||||||||||||||||||||||||||||||||||||||||||||||||||||||||||||||||||||||||||||||||||||||||||||||||||||||||||||||||||||||||||||||||||||||||||||||||||||||||||||||||||||||||||||||||||||||||||||||||||||||||||||||||||||||||||||||||||||||||||||||||||||||||||||||||||||||||||||||||||||||||||||||||||||||||||||||||||||||||||||||||||||||||||||||||||||||||||||||||||||||||||||||
제50회 (1993년) | → | 제51회 (1994년) | → | 제52회 (1995년) | ||||||||||||||||||||||||||||||||||||||||||||||||||||||||||||||||||||||||||||||||||||||||||||||||||||||||||||||||||||||||||||||||||||||||||||||||||||||||||||||||||||||||||||||||||||||||||||||||||||||||||||||||||||||||||||||||||||||||||||||||||||||||||||||||||||||||||||||||||||||||||||||||||||||||||||||||||||||||||||||||||||||||||||||||||||||||||||||||||||||||||||||||||||||||||||||||||||||||||||||||||||||||||||||||||||||||||||||||||||||||||||||||||||||||||||||||||||||||||||||||||||||||||||||||||||||||||||||||||||||||||||||||||
여인의 향기 | → | 쉰들러 리스트 | → | 포레스트 검프 | ||||||||||||||||||||||||||||||||||||||||||||||||||||||||||||||||||||||||||||||||||||||||||||||||||||||||||||||||||||||||||||||||||||||||||||||||||||||||||||||||||||||||||||||||||||||||||||||||||||||||||||||||||||||||||||||||||||||||||||||||||||||||||||||||||||||||||||||||||||||||||||||||||||||||||||||||||||||||||||||||||||||||||||||||||||||||||||||||||||||||||||||||||||||||||||||||||||||||||||||||||||||||||||||||||||||||||||||||||||||||||||||||||||||||||||||||||||||||||||||||||||||||||||||||||||||||||||||||||||||||||||||||||
역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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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 (1993) Schindler's Lis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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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장르 | 드라마, 시대극, 전기, 전쟁 |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
각본 | 스티븐 제일리언 |
원작 | 토머스 케닐리 - 소설 《쉰들러의 방주》 |
제작 | 어빙 글로빈, 캐슬린 케네디, 브랑코 러스틱[1] 제럴드 R. 몰렌, 로버트 레이몬드, 류 리윈[2], 스티븐 스필버그 |
출연 | 리암 니슨, 벤 킹슬리, 레이프 파인스, 캐롤라인 구덜 조나단 샤갈, 엠베스 데이비츠 외 |
촬영 | 야누스 카민스키 |
편집 | 마이클 칸 |
음악 | 존 윌리엄스 |
미술 | 알란 스타스키 |
의상 | 애나 B. 셰퍼드 |
제공사 | |
제작사 | |
수입사 | |
배급사 | |
개봉일 | |
상영 시간 | 194분 |
제작비 | 2,200만 달러 |
월드 박스오피스 | $321,306,305 |
북미 박스오피스 | $96,065,768 |
대한민국 총 관객 수 | 847,259명 (서울 관객수) |
스트리밍 | [[U+tv| U+tv ]] | [[U+모바일tv|U+모바일t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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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 등급 |
1. 개요
스티븐 스필버그 연출, 리암 니슨 주연의 전쟁 드라마 영화로 1993년에 개봉했다.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동조하던 부패하고 속물적인 인물이었으나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모든 재산을 바쳐 유대인 1,100여 명[7]의 목숨을 구해낸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 제목인 '쉰들러 리스트'는 쉰들러가 유대인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기 위해 자신이 작성한 유대인들의 명단에서 유래했다.[8]
특이하게도 독일군 역할을 맡은 주연 배우는 영어를 쓰고 독일군 엑스트라들은 독일어를 써서 현장감과 몰입감을 더 극대화시켰다.
2.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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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주년 재개봉 포스터 | 재개봉 포스터 |
3. 예고편
25주년 예고편 |
[kakaotv(394982876)] |
재개봉 30초 예고편 |
[kakaotv(394401074)] |
재개봉 메인 예고편 |
4. 시놉시스
시대와 맞선 위대한 용기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1939년, 독일에게 점령당한 폴란드의 한 도시.
독일인 사업가이자 냉정한 기회주의자인 오스카 쉰들러는
유태인이 경영하는 그릇 공장 인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아끼지 않는다.
인건비 없이 수백명의 유태인을 고용한 오스카 쉰들러는
우연히 유태인 회계사인 스턴과 가까워지고,
나치에 의해 참혹하게 학살되는 유태인들의 참혹한 실상을 마주하게 된다.
서서히 그의 양심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마침내 강제 노동 수용소로부터 유태인들을 구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구해낼 유태인 명단이 적힌 쉰들러 리스트를 만드는데...
지금 우리가 꼭 보아야 할 영화
쉰들러 리스트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1939년, 독일에게 점령당한 폴란드의 한 도시.
독일인 사업가이자 냉정한 기회주의자인 오스카 쉰들러는
유태인이 경영하는 그릇 공장 인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아끼지 않는다.
인건비 없이 수백명의 유태인을 고용한 오스카 쉰들러는
우연히 유태인 회계사인 스턴과 가까워지고,
나치에 의해 참혹하게 학살되는 유태인들의 참혹한 실상을 마주하게 된다.
서서히 그의 양심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마침내 강제 노동 수용소로부터 유태인들을 구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구해낼 유태인 명단이 적힌 쉰들러 리스트를 만드는데...
지금 우리가 꼭 보아야 할 영화
쉰들러 리스트
5. 제작기
5.1. 원작
원작은 호주 작가 토머스 케닐리(Thomas Keneally)가 쉰들러의 일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 '쉰들러의 방주'(Schindler's Ark)이다.[9]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에서 가죽 제품 사업을 하던 리어폴드 페퍼버그(Leopold Pfefferberg)가 이 이야기를 소설로 쓸 수 있도록 소재를 제공했다. 페퍼버그는 쉰들러가 구해낸 유대인들을 통칭하는 '쉰들러 유대인(Schindlerjuden)' 중 한 사람으로, 쉰들러의 이야기를 영화나 소설로 만들어 그에 대해 알리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다. 1980년에 페퍼버그는 가게에 온 토머스 케닐리에게 쉰들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케닐리는 쉰들러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소설화 작업에 착수했다. 소설은 1982년에 출간했다.
한국에는 영화가 개봉한 1994년경에 영화 제목과 동일한 "쉰들러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해 나왔고, 현재는 모든 판본이 절판되어 구하기 힘들다.[10]
5.2. 판권 구매부터 제작까지
스티븐 스필버그는 우연히 서점에서 「쉰들러의 방주」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이런 대단한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겨 관객들에게 소개하면 뜻깊은 일일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필버그는 직후 1983년도에 유니버설을 통해 판권을 사들이고 리어폴드 패퍼버그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언제 영화를 만들 것이냐는 페퍼버그의 질문에, 스필버그는 10년 후에 만들겠다고 했으며 실제로 영화는 10년 뒤인 1993년에 개봉한다.판권을 확보한 스필버그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여러 사람을 거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그러나 스필버그 본인은 감독직에는 아무래도 부담감을 느꼈는지 자신은 프로듀싱만 하며 촬영은 적당한 감독을 수배해 연출을 맡기고자 했다. 고심 끝에 인선을 한 스필버그는 최초엔 마틴 스코세이지(!)에게 연출을 맡기려 했으나, 스코세이지는 이탈리아계인 자신보단 유대계 감독이 연출해야 할 프로젝트라며 거절했다. 이 과정에서 원래 스필버그가 케이프 피어의 판권을 보유했고, 스코세이지가 쉰들러 리스트의 판권을 보유했는데 서로 바꿨다고 한다.
이후 실제 홀로코스트 피해자 유족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게 연출을 부탁했지만, 폴란스키는 스필버그와는 달리 본인이 직접 홀로코스트를 겪고 모친상을 겪었기에[11] 스필버그의 시나리오를 읽어보고는 "내게는 너무 개인적인 내용"이라며 객관적인 연출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거부했다.[12]
마지막으로 스필버그는 빌리 와일더를 찾아갔고 와일더도 자신의 스완송으로 쉰들러 리스트를 원했다. 빌리 와일더 또한 유대계로 1933년까지 베를린에서 살다 나치가 집권하자 미국으로 도망쳐온 이민자였다. 하지만 와일더는 스필버그에게 직접 메가폰을 잡으라고 독려했다.
이리하여 쉰들러 리스트는 결국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을 맡게 된다. 무엇보다 스필버그가 직접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짓을 저지르는 네오나치들에 대해 듣게 되면서부터였다. 그걸 보고 누군가가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여 결국 스스로 영화를 만든 것이다.
5.3. 제작 과정
감독과 배급사 양쪽에서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다. 일단 스필버그 본인이 촬영 기간 내내 멘탈이 남아나질 않았다. 자기 조상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13] 그전까지 문서상으로만 홀로코스트를 알던 스필버그는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 사건의 심각함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은 작중에서 그려지는 온갖 충격적인 광경들을 보면 이해가 간다. 담담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그려내 오히려 충격이 더 배가 된다.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시달려온 유대인으로서의 위치와 정체성 문제가 겹치면서 이성을 유지한 상태로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어찌나 멘탈이 깨졌는지 당시에 엑스트라 중 누군가 밤 10시 30분에 칼퇴근해야겠다고 투덜거리자 뛰쳐나와 누가 그랬냐고 불같이 화를 냈을 정도로 히스테릭해지고, 절친한 로빈 윌리엄스에게 전화해서 날마다 나를 좀 즐겁게 해주게! 제발...이라는 식으로 하소연했다고 한다.
스필버그의 아내 케이트 캡쇼[14]와 아이들, 부모까지 촬영장에 함께 있었고 심지어는 랍비까지 한 명 대동했다고 한다. 이에 더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트콤 '사인펠드' 방영분 VHS를 미국에서 폴란드로 수시로 배송했다고 한다.
진작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느낀 배급사 유니버설은 이 영화를 제작하는 조건으로 딱 한 가지를 내걸었다. 쉰들러 리스트 찍기 전에 쥬라기 공원부터 끝내라. 사장은 스필버그가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면 쥬라기 공원은 못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1992년 8월 쥬라기 공원의 촬영을 시작해 11월에 촬영을 끝냈고, 임시 편집본은 촬영이 끝난 지 1주 만에 나왔다. 이게 다 끝나고 나서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은 다음 해 3월에 시작되었다. 쉰들러 리스트 이후 스필버그의 영화들이 상당히 바뀐 것을 보면 선견지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배급사에 문제가 된 또 하나는 바로 흑백 촬영. 컬러 영화가 당연해진 시기에 흑백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희한한 요청이었다. 일단 흑백으로 극장 개봉까지는 받아준 것 같은데, 사장이 돈을 더 벌어볼 생각으로 '영화를 컬러로 찍어 나중에 VHS 발매할 때 컬러 버전도 내보자'는 식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스필버그는 거절하려 했는데, 현장에서 아무도 흑백 영화 촬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고생길이 뻔한 것을 진작에 알았을 것이다. 컬러 영화를 찍던 식으로 세트를 만들면 면과 면의 명암차가 크지 않아서 화면이 뭉개진다든지 하는 문제들을 사전에 발견한 제작진은 인위적으로 페인트를 칠해 세트의 명암을 조절하는 등의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이 영화는 총 다섯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흑백이다. 영화 시작 부분에 나오는 유대교 예배, 후반에 나오는 쉰들러 묘소 참배 장면, 그리고 쉰들러가 안식일(토요일) 유대교 예배를 허용할 때 나오는 촛불, 그리고 가장 유명한 장면인 빨간 코트를 입은 여자아이(Girl in the Red Coat, 두 군데에 걸쳐서 등장). 끝내 희생되고 마는 이 소녀는 개봉 후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15]
또한 첫 장면이 컬러로 진행되다 흑백으로 바뀌며 본 내용이 시작되고, 마지막 장면에서 시점이 현재로 바뀌며 다시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기법은 고전적인 기법으로 이미 오래전인 1939년에 오즈의 마법사에서 사용한 기법을 반대로 적용한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관객에게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다.
이런 갖가지 고생을 하면서 희한한 흑백 영상을 함께 만들어낸 촬영감독 야누스 카민스키(Janusz Kamiński)[16]는 이후 나온 스필버그의 모든 영화의 촬영감독으로 참여했으며 지금도 일한다.
당시 뉴스위크지 보도에 따르면 촬영은 전부 폴란드에서 했다고 하는데 촬영 당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스필버그를 알아본 폴란드 노인이 촬영 현장에 다가오더니만 스필버그를 죽일 듯이 쳐다보며 마구 폭언을 퍼부었다는 것이다.
"나는 히틀러 자식이 싫지만, 유대인은 더 싫어. 왜냐면 네놈들은 '히틀러는 악마, 유대인은 불쌍한 버러지.' 이 따위로 떠벌리는 영화나 찍고 자빠졌잖아? 그렇게 너희는 언제나 자기들 유대인만 가엾다고 생각한다고! 당장 나가! 구역질 나는 놈들아!"
이 말에 스필버그는 하얗게 질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주연 배우 리암 니슨이 화를 내면서 반론했지만 끝내 경호팀을 호출해 노인을 제압하고 무력으로 촬영장 바깥으로 떼어내야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노인도 거들어 스필버그에게 목매달아 죽으라는 손짓까지 하여 스필버그는 창백해져 고민해야 했다.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지역의 아직도 존재하는 반유대주의는 사실 생각보다 더 복잡한 문제이다. 해당 문서 참조. 이 복잡한 성격은 실제 홀로코스트 당시 동유럽 현지인들이 홀로코스트에 협조하거나 방관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진 이후 폴란드에 전 세계 유대인들의 비난이 쇄도했으며, 특히 이스라엘 측에서 폴란드에 강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한편 해당 노인은 소식이 끊겨 오리무중이라고 한다.[17]
6. 등장인물
- 오스카 쉰들러 역 - 리암 니슨 (양지운)
- 이자크 슈테른 역 - 벤 킹슬리[18] (이완호)
- 아몬 괴트 역 - 레이프 파인스 (강구한)
- 에밀리 쉰들러 역 - 캐롤라인 구덜 (강희선)
- 리어폴드 페퍼버그[19] 역 - 조나단 샤갈 (김수중)
- 헬렌 히르시 역 - 엠베스 데이비츠[20] (윤소라)
- 율리안 셰르너 역 - 안제이 서린 (장승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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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츠슈타펠의 상급대령으로 실존 인물이다. 크라쿠프의 SS 및 경찰의 지휘관[21]을 역임하고 있으며 작중에서는 단정하고 신사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 역시 유대인은 살아있어서는 안되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인간 말종이다. 오스카 쉰들러와는 영화 초반에 레스토랑에서 만나 친분을 쌓으며, 이후에도 쉰들러가 유대인 소녀에게 키스한 죄로 감옥에 들어가자 자신의 권한으로 석방시키는 등, 뒷배를 봐준다. 영화에서는 묘사가 되지 않지만 작중 크라쿠프 게토 학살과 유대인의 아우슈비츠로의 강제 추방을 명령한 자가 바로 이 자이다. 즉, 해당 영화의 실질적인 최종 보스가 셰르너인 셈. 전쟁 막바지에 부패 혐의가 들통나 1944년 말, 계급 강등과 함께 디를레방어 여단[22]으로 전출되었으며 1945년 4월 28일, 폴란드의 숲 속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 루트비히 한 역 - 마이클 Z. 호프만 (문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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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츠슈타펠의 대령 및 질서경찰 대령으로 실존 인물이다. 중반에 쉰들러를 변호하는 괴트와 대화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와중에 괴트가 돈으로 자신을 꾀어내려는 낌새가 보이자, 무표정을 유지하며 "나를 매수하려는 겐가?"라며 단칼에 거부한다. 이후 율리안 셰르너가 들어오자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자리를 비켜준다. 셰르너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의 강제추방과 학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전쟁범죄자이다. 전후에는 전쟁범죄 혐의로 여러번 기소당했으며 끝내 1975년에 서독의 법원으로부터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83년에 암 투병으로 인해 조기 석방되었고 석방으로부터 3년 뒤 1986년에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 요제프 멩겔레 역 - 다니엘 델 폰테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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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인물로 일명 죽음의 천사(Angel of Death)라고 불린 잔혹한 인간이다. 계급은 슈츠슈타펠 무장친위대 대위. 영화 속에서는 아우슈비츠로 잘못 이송된 유대인 여성들을 골라내기 위해 직접 나타난다. 참고로 배우와 실제 인물의 외모가 꽤 많이 비슷한 편이다.
7. 줄거리
1939년, 독일에 의해 폴란드가 점령당하며 근방의 유대인들이 등록을 위해 기차역으로 몰려드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나치의 점령과 함께 인근의 유대인들은 게토가 설치된 크라쿠프로 강제 이주당하게 되며, 공장이나 저택 등 유대인 명의로 된 재산도 전부 독일 측에 압류당한다.한편 체코 출신의 부패하고 방탕한 독일인 사업가이자 나치당의 당원인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23]는 이를 한 몫 단단히 챙길 기회라 생각해 크라쿠프로 이주하여 법랑 공장을 인수하고 싼 값에 유대인 노동자들을 부려먹으며 이윤을 챙기려 한다. 쉰들러는 높으신 분들에게 기름칠하는 일에는 익숙했으나, 정작 실제 공장 경영엔 익숙치 않았기에 유덴라트(Judenrat)[24]에서 일하던 유대인 회계사 이자크 슈테른(Itzhak Stern)에게 실무를 맡기게 된다. 쉰들러는 궁지에 몰린 유대인 투자자들을 슈테른을 통해 소개받아 불공정 계약을 맺어 투자금을 마련하였고, 몸값이 비싼 폴란드인 대신 유대인들을 노동자로 고용한다. 이후 슈테른이 회계와 운영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동안 쉰들러는 적극적인 뇌물과 매수, 환대 쪽에서 능력을 발휘해[25][26] 법랑 용기를 납품하는 군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쉰들러가 자신의 공장 인력을 전부 유대인 노동자로 채워넣은 것은 단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일 뿐이었으며, 그는 인류애와는 거리가 먼 부패하고 방탕한 사업가일 뿐이었다. 슈테른은 발품을 팔아 위조 서류를 유대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27]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렇게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었고, 슈테른 본인 또한 수용소로 끌려갈 뻔하다 쉰들러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는다.[28][29][30]
한편 크라쿠프 수용소의 소장으로 아몬 괴트가 부임하게 된다. 괴트는 반유대주의와 나치사상에 찌든 사이코패스 그 자체로 심심풀이로 발코니에서 총을 쏴 수용자들을 쏴죽이는 취미를 가진 정신병자였다.[31] 괴트와 쉰들러는 호의적으로 지냈으나, 나치의 패악질을 직접 목격한 쉰들러는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된다. 특히 나치가 크라쿠프 게토를 청산[32]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쉰들러는 충격을 받게 된다.[33]
이후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전부 크라쿠프-프와슈프(Kraków-Płaszów) 강제수용소에 수용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노동에 종사하게 된다.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던 이들도 전부 수용소에 끌려가게 되자, 빈 공장을 두고 볼 수 없던 쉰들러는 괴트를 찾아가 슈테른과 직원들을 돌려달라고 호소한다. 괴트가 대가를 요구하자 이후부터 쉰들러는 틈만 나면 괴트의 집을 찾아가 각종 성상납과 뇌물 수수로 그를 구워 삶게 되고, 결국 자신의 공장 노동자들과 수용소의 일부 유대인들을 공장 노동자로 속여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쉰들러의 공장에서는 그래도 인간 대접은 받을 수 있었기에 유대인들 사이에서 쉰들러의 공장은 낙원으로 소문이 돌게 되고, 급기야 어느 날 한 여성이 쉰들러에게 찾아와 수용소에 갇힌 자신의 부모를 구해달라는 일까지 발생한다. 대외적으로 쉰들러는 나치 당원이었고 유대인을 돕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로 판명되면 그의 신변이 위험해지기에, 쉰들러는 이를 탐탁치 않아한다.[34] 그러나 나치의 여러 패악직을 보며 쉰들러의 점차 갈팡질팡해지고, 결정적으로 나치의 지시로 수용자들이 사살 후 매장된 유대인들을 다시 파내 불태우는 목불인견의 모습과 함께 생존자들 전부가 아우슈비츠로 이송될 예정이라는 괴트의 말을 듣게 된다.[35]
결국 완전히 마음을 바꾼 쉰들러는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어, 자신의 자금력이 닿는 한 가능한 모든 수용자들을 공장 노동자라는 명목 아래 빼돌리기 시작한다.[36] 이 과정에서 구출할 수용자들의 명단[37]을 작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후일 "쉰들러의 명단"(Schindler's list)가 된다. 괴트에게 트렁크 단위로 눌러담은 현금을 바치고, 의심하는 셰르너에게는 다이아몬드를 뇌물로 제시하며, 다른 기업가에게도 수용자를 고용하는 것이 더 싸다며 이들을 고용하자고 돌아다니는 등 눈물겨운 노력을 펼친다.[38] 이 과정에서 여러 번 의심을 사기도 했으나 노인은 숙련된 금속공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은 "이런 조그만 손가락 아니면 누가 탄피를 닦겠느냐"라는 항변으로 이들을 붙잡아 둘 수 있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는 단순히 유대인들을 빼돌리는 데 사용한 비용보다 더 막대한 로비 자금이 들어갔고, 실제 숙련공보다 잉여 인력이 더 많은 상황에서 불량품 생산률이 급등하자 쉰들러는 다시 사비를 털어 다른 공장에서 완성된 제품을 사와 나치 측에 납품하면서까지 이들을 지키게 된다.[39] 덤으로 쉰들러는 로젠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들과 아우슈비츠로 잘못 보내진 유대인들까지 추가로 구출하고 임시병동을 만들어 그들을 간호하기도 한다. 쉰들러가 사업 재산 보장법에 의거해 공장이 허가 없이 수색당하지 않을 권한, 즉결처형 면제권한 등을 내세웠기에 쉰들러의 공장에서 유대인들은 나치의 습격을 받지 않고 안전히 거주할 수 있었고, 쉰들러의 공장은 사실상 유대인을 지켜주는 아지트가 된다. 그렇게 쉰들러가 소유한 브륀리츠(Brünnlitz) 강제수용소는 나치의 수용소 중 유일하게 수감자에 대한 학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수용소가 되었다.
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하며 유대인들은 마침내 해방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치 당원이었던 쉰들러가 연합군에 의해 전쟁 범죄자로 쫓기게 된다. 쉰들러는 자신이 구출한 유대인들에게 마지막으로 작별을 고하고[40] 쉰들러와 아내가 야반도주를 하던 밤, 모든 노동자들과 슈테른이 그를 배웅한다. 슈테른은 쉰들러가 혹시나 붙잡혔을 때를 대비해 노동자들과 함께 쓴 탄원서를 건네주고, 금니를 녹여 만든 반지에다 탈무드의 격언인 '하나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세상을 살리는 것이다'를 새겨 선물한다. 유대인들은 쉰들러 덕분에 1,100명의 유대인과 그들에게서 태어날 미래 세대까지 목숨을 구원받았다며 감사를 표하지만 쉰들러는 자신이 조금만 더 돈을 벌었다면 진작에 돈과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더라면 한 명이라도 더 살렸을 지 모른다며 죄책감과 수치심에 넋이 나간 채로 오열한다. 모든 유대인들이 회한에 젖어 오열하는 쉰들러를 안아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쉰들러는 대피하고, 유대인들은 다음날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고 영화의 메인 빌런이었던 괴트는 폴란드의 최고 국가 재판에서 반인륜 범죄 혐의가 인정되어 폴란드군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진다. 해방된 유대인들이 걸어가는 장면이 전환되는데, 이후 영화는 컬러로 전환되며 쉰들러에 의해 살아난 유태인들의 현재 모습(1993년 당시)을 보여준다. 쉰들러는 "박해받았던 1200명 유대인들의 잊을 수 없는 생명의 은인"이라는 묘호 하에 나치 당원으로서는 유일하게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안장된다. 그리고 그가 구해준 유대인들과 그의 후손들 수 천명이 찾아와 쉰들러의 묘비에 돌을 올리며 그를 추모한다.
8. 연출적 특징
이 영화에선 다큐멘터리적 연출이 강조되었는데, 유대인 학살 장면 역시 굉장히 빠르게 지나간다. 역사적 비극을 드라마적 과장 없이 담담하게 그려내 관객들이 더욱 실감할 수 있게 하는 스필버그 감독의 연출적 장치라 볼 수 있다.그리고 다른 영화와 달리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와 악역 아몬 괴트의 직접적인 대결 묘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 역사 대로 쉰들러가 괴트를 뇌물로 매수해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하며 괴트 역시 쉰들러의 편의를 봐주기도 한다. 스필버그 감독은 현실주의적인 복잡한 인간관계를 그려내어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려 했던 것이다. 괴트와 쉰들러가 단 둘이 마주 앉아 협상할 때도 이런 연출이 돋보이는데, 쉰들러는 빛이 밝은 곳에 앉아있는 반면 괴트는 어둠이 섞인 곳에 앉아있어서 괴트의 불안정한 심리를 암시한다. 쉰들러는 괴트와 직접 대결하지 않고도 괴트의 심리를 간파하고 주도권을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지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오스카 쉰들러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 영화임에도 쉰들러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게토로 추방되어 비극과 공포 속에 살아가는 유대인들, 악행을 저지르는 나치 친위대와 아몬 괴트의 비중이 더 큰 편이다. 홀로코스트라는 참상을 강조하기 위해 쉰들러의 비중을 축소한 스필버그 감독의 의도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스필버그는 전형적인 영웅서사를 정면으로 배격했고 나치라는 거대한 악의 시스템 안에서 쉰들러라는 한 개인이 어떻게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몸부림칠 수 있었는지 보여주려는 것이다.
9. 사운드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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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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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indler's List blends the abject horror of the Holocaust with Steven Spielberg's signature tender humanism to create the director's dramatic masterpiece.
《쉰들러 리스트》는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공포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특유의 따뜻한 인간미를 결합하여 그의 극적 걸작을 만들어냈다.
로튼 토마토 총평
《쉰들러 리스트》는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공포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특유의 따뜻한 인간미를 결합하여 그의 극적 걸작을 만들어냈다.
로튼 토마토 총평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와 함께 홀로코스트 영화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흑백 및 다큐멘터리적인 연출은 당시의 잔혹한 현실을 생생히 전달하며, 관객에게 감정적 충격과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는 나치 독일 치하에서 유대인들을 구한 실존 인물 오스카 쉰들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인간성과 도덕적 선택의 의미를 강하게 부각한다. 쉰들러는 처음에는 이익을 좇는 실리적인 사업가였지만, 점차 유대인들의 고통을 목도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1100명을 구하게 되며, 그 변화의 서사는 깊은 감동과 윤리적 울림을 자아낸다.
《쉰들러 리스트》는 상업성과 예술성, 역사적 책임감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 드문 사례로 평가받으며, 1993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묻는 강력한 도덕적 메시지로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10.1. 유대인의 피해의식?
네오나치들이 유대인의 피해의식이라는 식의 주장을 펼쳤으나 이는 논리가 없다. 영화를 제대로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영화에서 유대인은 피해자이기 때문에 선하다고 묘사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오직 나치가 저지른 온갖 만행을 보여줄 뿐이다. 실제로 비평가에 따라서는 이 영화는 유대인보다는 나치의 폭력성에 더 중점을 두었다고도 말한다. 홀로코스트와 휴머니즘, 나치의 폭력을 주제한 이 영화는 큰 울림을 준다.실제로 오스카 쉰들러는 후반까지 공장의 유대인들과는 그다지 교류를 하지 않고, 나치의 고위층과 더 교류를 했다. 이는 실제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쉰들러는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비정하기까지 한 사업가였다. 특별히 나치를 반대하지도 않았다. 단지 "내가 아는 사람들을 죽게 둘 수 없다"는 최소한의 도덕을 지키고자 한 것. 쉰들러가 유대인을 도와준 것은 유대인들에게 사랑을 느껴서가 아니라, 나치에게 사악함을 느껴서 도와준 것이라는 말이다. 당시 시대를 생각해보면 이것만 해도 넘치도록 대단한 것이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며 1,100여 명의 생명을 살렸고, 결국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재산을 모두 탕진하는 일까지 감수했다. 심지어 폴란드를 떠나기 직전에는 유대인들에게 옷과 식량을 주는 등 자기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온정을 베풀던 다른 독일인 공장주에게 '자기와 같이 공장을 모라비아로 옮겨서 유대인들을 살려내자'[41]고 설득하다 거절당하기까지 한다. 이 사람이 그나마 양심적이라 자기만 발을 빼는 데서 끝냈으니 망정이지, 쉰들러의 의도를 게슈타포에 밀고하기라도 했으면 쉰들러는 절대로 무사할 수 없었다. 아무리 유대인에게 동정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알고 있었다지만, "외부인"에게 쉰들러가 본의를 드러낸 건 정말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미국 영화들이 유대인에 유리한 것도 사실이고 너무 유대인의 피해만 많이 영화로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홀로코스트를 다뤘다고 해서 유대인의 피해의식이라는 것은 편견이다. 똑같이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다룬 작품들이라도 나치의 악행을 이 영화만큼 그대로 보여준 작품도 그리 흔하지 않다. 영화로는 피아니스트, 만화로는 쥐 정도뿐.
또한, 스필버그의 다른 영화 뮌헨을 보면 스필버그는 적어도 피해의식을 지닌 사람은 아니다.
로만 폴란스키의 명작 피아니스트와 비교하자면 쉰들러 리스트는 주인공 쉰들러의 행적을 중심에 놓고 그와 대척점에 있는 아몬 괴트를 비롯한 나치의 잔혹성에 초점을 두었다면, 피아니스트는 물론 나치의 잔혹성도 그리긴 했지만 좀 더 전쟁 속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다룬 편이다. 피아니스트에는 나치측 인물뿐 아니라 같은 유대인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유대인, 그리고 주인공의 친구인 유대인 경찰 이츠학을 비롯해 주인공을 이용해 사기 행위를 저지르는 안텍 등 정말 다양한 인간들이 나온다.
쉰들러 리스트에서도 학살 증거 인멸을 위해 유대인들을 시켜 소각장에 썩어가는 시신들을 던져 넣는 작업을 하다 반쯤 미쳐서 소리를 지르고 시체 더미에 발터 P38 권총을 난사하는 SS 하사(노르베르트 바이저[42] 분)의 모습이 나온다.(1분 30초 무렵) 이를 두고 죄책감에 미쳐버린 또 한 사람의 피해자를 표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었으나, 해당 인물은 100% 창작으로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인 알베르트 후야르(Albert Hujar)를 바탕으로 한 인물이다. 후야르는 정신이 불안정한 사이코패스로, 학살 행위를 매우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자제심을 잃고 아무에게나 총질을 하는 광적인 행동까지 보인 바 있다. 그가 학살을 자행 및 감독한 폴란드의 한 장소는 아예 그의 이름을 따 후요바 언덕(Hujowa górka)로 명명되었다.[43] 실존 모델의 이런 행보를 생각할 때, 해당 장면이 학살 행위에 대한 죄책감에 미쳐 기행을 벌인 것을 묘사한 장면이라기 보다는 그저 학살의 흥분에 미쳐서 날뛰는 장면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휴야르는 쉰들러가 열차에 수용된 유대인들에게 소방 호스로 물을 뿌려주는 장면에서도 나오는데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하다가 쉰들러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서서 먹다가 쉰들러의 제안에 괴트가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라는 명령을 내리자 "어디 불났어요?" 라는 대사를 해서 쉰들러와 괴트가 폭소를 한다.
11. 흥행
스필버그는 이 영화가 망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대단한 호평 속에서 제작비 대비 10배 수익을 거둬들이며 스필버그에게 마침내 아카데미를 안겨준 영화가 되었다.# 그전까지 스필버그를 상업 영화 만드는 감독으로 낮춰 보던 사람들도 이 영화를 시작으로 스필버그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특히 독일에서는 개봉 첫날 표가 매진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한국 배급을 맡은 UIP 한국지사에 의하면 쥬라기 공원보다 이 영화가 성공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확실치 않다. 당시 서울 관객 집계에서 쥬라기 공원은 106만명 관객이 관람했지만, 쉰들러 리스트는 84만 7천명으로 나온다. 전국 관객에서 앞섰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2000년 초반부터야 전국 관객 집계가 이뤄진 탓에 자세한 전국 관객 집계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시는 배급사가 멋대로 국내 관객 수를 부풀리는 것도 허다했으므로 이게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물론 두 작품 다 한국, 월드와이드 모두 크게 흥행한 작품들인 것은 맞다.
극장 개봉 당시, 영화 앞뒤의 나레이션 자막(번역 자막 말고)을 모조리 한국어로 바꿔 넣을 정도로 배급에 공을 많이 들였다. VHS 출시본까지는 이 한국어화가 살아있었지만 TV 방영 시에는 원래의 영어 자막 버전으로 나왔다.
12. 수상
- 제6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음악상, 편집상, 촬영상, 미술상 수상작 /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음향상, 분장상, 의상상 후보작
- 1997년 미국 영화 연구소(AFI) 100대 영화 9위 선정
- 2007년 미국 영화 연구소(AFI) 100대 영화 8위 재선정
13. 논란
다른 곳으로 가야 할 쉰들러의 유대인들이 행정 착오로 아우슈비츠로 이송된 일 자체는 진짜로 있었고, 이들은 영화에 나온 것처럼 쉰들러가 협상을 통해 구해냈다. 단, 이들은 처음부터 노동자로 분류되어 아우슈비츠로 갔기에 가스실에 들어간 게 아니라 진짜로 소독 처리를 받고 막사에 수용됐으며, 영화에서처럼 가스실로 끌려가는 사람들과 교차하지는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또한 영화에서는 끌려간 쉰들러의 유대인들만 구해낸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들 외에도 노동 수용소에 있던 건강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유대인 150명 정도를 노동자 파견 명목으로 더 구해냈다. 예루살렘의 쉰들러 묘비에 적힌 1,200명은 이때 추가된 유대인까지 합친 인원수다. 그러나 이렇게 추가로 구한 유대인들은 쉰들러의 유대인들보다 영양 상태가 매우 나쁜 탓에, 아우슈비츠에서 쉰들러의 공장으로 오는 동안 열차 안에서 7명이 사망했다.
이전 설명에는 수용소장 아몬 괴트의 최후가 영화에서 "Heil Hitler"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것이 허구라고 서술했으나, 실제로도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44]
그리고 유튜브에 올라온 아몬 괴트의 처형 영상으로 알려진 동영상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Bloody Tales(2013)에 따르면 이 영상은 루트비히 피셔(Ludwig Fischer)의 처형 영상이라고 한다. 아몬 괴트의 죽음에 대해서는 1945년 2월 미군에 체포된 후 폴란드 인민공화국 정부에 인도되어 1946년 폴란드 최고법원의 유죄판결에 의해 교수형을 당했다는 것 외에는 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고 한다.
곡 황금의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에서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해당 곡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예루살렘을 회복한 6일 전쟁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해당 부분을 Halikha LeKesariya로 바꿨다.
14. 기타
- 고증이 뛰어나다. 친위대 뿐만 아니라 독일 국방군, 유대인 경찰, 슬라브계 보조경비대원 '트라브니키'[45], 그리고 SS 여성 간수도 재현되어 있다. 최후반부에 잠시 등장하지만 소련군, 폴란드 인민군 복장도 충실하게 재현했다.
- 스필버그는 이 영화로 얻은 자기 몫의 로열티 전액을 홀로코스트 역사재단인 쇼아 재단(Shoah Foundation)에 기부하였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피가 맺힌 돈'(blood money)이라 도저히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 명장면 중 하나이면서도, 개봉 당시 소수 영화 계층에서는 논란이 일은 장면이 있다. 바로 샤워실 장면 때문인데 이 장면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서스펜스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영화의 기능 중 하나인 카타르시스와 이 영화와 같은 역사적인 고증으로 슬픔을 이루는 작품의 경우에 드러나야 하는 고발성이 서로 상충하여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스포일러], 미하엘 하네케 감독도 똑같은 이유로 비판했는데 비극적인 주제가 오락이 되는 순간, 모든 논쟁의 여지가 사라진다고 강조하며 그는 프랑스 감독 알랭 레네(Alain Resnais)의 다큐멘터리 영화 '밤과 안개'(Night and Fog)를 유일하게 책임감 있는 영화로 언급했다. 동시에 관객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 "무엇을 의미하느냐?"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관객의 입장을 묻는 방식이 올바르다고 설명했다. #
- 영화 초반 레스토랑 씬에서 오스카 쉰들러가 SS 장교들과 한창 친목질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들 장교의 소매 부분을 잘 보면 SS 특유의 커프 타이틀 위에 "SD"라고 적힌 패치가 붙어 있는데, SD(Sicherheits dienst의 약칭, 보안부)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제국중앙보안성(RSHA) 소속이다. 자세한 것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문서 참조.
또한 초반 씬에서 쉰들러가 장교들과 '즐거운 방랑자'(Mein Vater war ein Wandersmann)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47], 이 역시 고증 오류다. 실제로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가요로, 독일 전통 민요로 종종 오인되다 보니 영화에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 이 영화도 스필버그의 많은 작품들처럼 존 윌리엄스가 음악을 담당했는데, 이작 펄만이 연주한 메인 테마가 매우 유명하다. 윌리엄스도 이 음악이 마음에 들었는지 약간 손보고 중간에 나오는 다른 OST와 합쳐 바이올린 협주곡을 만들었다. 윌리엄스는 작곡 전 처음으로 영화를 보고 나서 너무나 마음에 들어 몇 분이나 밖에 서성이다 왔다고 한다. 그러고 돌아와서는 스필버그에게 "이 작품에는 더 나은 작곡가를 쓰는 게 좋겠어"라고 조언했는데, 스필버그는 "나도 알아, 근데 그런 사람들이 다 죽었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 영화에서 밤이 되자 독일군이 유대인들이 은신한 건물에 다시 들어가 청진기로 천장 벽을 짚어보는 등 수색하여 온갖 곳에 몰래 숨어 겨우 살아남은 유대인들마저 모조리 학살해버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건물에서 한 독일군 장교가 아무 감정도 없는 듯한 표정으로 바흐의 영국 모음곡 2번 전주곡을 연주한다. 다른 군인들이 MP40을 정말 쉴 새 없이 난사해대는 통에 총소리와 피아노 연주가 함께 울려퍼지는 아이러니컬한 장면은 한때 위대한 음악가를 배출한 문명인들이 홀로코스트 같은 광기어린 짓들 역시 저질렀음을 잘 표현한다. 또 피아노 소리를 듣고 온 다른 독일군들이 나누는 대화 또한 인상적인데, 한 병사가 바흐냐고 묻자 다른 병사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곡이라고 말해준다.[48] 살육의 현장에서도 마치 열심히 일하다 쉬는 것처럼 장교가 치는 곡의 작곡가가 누구냐만 신경 쓰는 피도 눈물도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바흐의 곡이 맞음에도 모차르트라고 잘못 아는 것은, 그들이 교양 있는 체하지만 실상은 무지한 상태임을 꼬집는 장면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 신체검사가 끝난 직후 노동 가능으로 분류되어 좋아하던 유대인 여성들이 어린 자녀들이 실려가는 트럭을 보고 그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눈이 뒤집혀 일제히 달려들고 경비병들이 통제에 실패하는 모습도 굉장한 명장면. 아이들은 어디 좋은 데라도 가는 줄 알고 어른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데 가슴 아픈 모습이다. 노동 불가능으로 분류되는 어린아이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하는 즉시 가스실로 보내져 학살된다. 따로 차출되면(=노동 불가능) 어떤 운명이 기다려지는지는 유대인들도 소문으로나마 알았다고 대화를 통해 묘사된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바로 전날 밤까지도 이를 뜬소문에 불과하다고 치부했으나 이것이 진짜로 눈 앞에서 최악의 형태로 실현된 것. [49] 서슬 퍼런 SS들도 이 상황에선 감히 군중에게 쏘지 못해 하늘을 향해서만 쏘고 단순히 시위를 말리듯 붙잡기만 한다. 해당 장면
- 2004년 영화 호텔 르완다가 이 영화의 전개와 유사하다.
- 쉰들러가 떠난 이후, 유대인들이 공장 입구의 땅바닥에서 잠을 자는 것은 유대인들의 추모 풍습이다. 실제로 유대교 전통 장례식 때는, 유족들이 찬 마룻바닥에서 자며 고인을 추모한다. 지옥 행성의 죄수[50]에도 묘사되었다.
- 소련군 장교가 나타나자, 유대인들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했을 때 그 장교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라면 동쪽으로 가진 않을 거다. 그들은 당신들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서쪽으로도 가지 않을 거다. 거기서도 당신들을 싫어한다." 참혹한 학살 이후에도 반유대주의와 나치즘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대사다.
- 영화 마지막 장면에 오스카 쉰들러의 노력으로 생존한 유대인들과 그 후손, 당시 생존해 있던 에밀리 쉰들러 등이 자신들을 연기한 배우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쉰들러 묘지에 참배하는 모습이 나온다. 즉 당시 실제로 생존한 본인들이 참배하는 것을 찍은 것이다.[51] 특히 쉰들러의 묘에 장미꽃을 헌화하는 이는 바로 극중에서 쉰들러 역을 맡은 배우 리암 니슨. 카메라가 멀리서 촬영하는 시점이라 잘 보이지 않지만, 충분히 알아볼 수는 있는 수준이다.
- 스필버그가 처음으로 만든 R등급 영화로, 이후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뮌헨이 R등급을 받았다.
- 스필버그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영화학과에 다니다 중퇴한 후 늦은 나이에 34년 만에 졸업을 위해 복학한다. 졸업 과제는 자신이 제작한 12분 이상의 영화를 제출하는 것이었는데, 스필버그는 쉰들러 리스트를 졸업 과제로 제출했고 그대로 교수진의 만장일치 만점을 받아 졸업했다고 한다.
- KBS에서 방영된 한국어 더빙판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주요 배역 선정에 관해 테이프 오디션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은 아몬 괴트 역의 강구한이 더빙의 신에 출연해 언급하며 공개되었는데, 오디션을 보고 한참 뒤에 스필버그 감독에게 "아몬 괴트 역은 Mr.강으로 해주세요."라는 답변을 받아 이 역할을 연기할 수 있게 된 걸 본인 성우 커리어 최고의 자랑거리 중 하나로 여긴다고 한다.
- 빨간 코트를 입은 여자아이를 맡은 폴란드 배우 올리비아 다브로브스카(Oliwia Dabrowska, 1989년생)는 스필버그와 18세가 되면 이 영화를 보겠다고 약속했음에도, 11살 때 처음 영화를 봤다고 한다. 엄청 끔찍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자랑스러웠다고 한다. 다브로브스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난민들을 돕는 봉사자로 근무하고 있다.
- 북한에서도 예술 종사자들은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53] 일부 서방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허용되는데, 쉰들러 리스트도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에서 안나가 북한 영화감독에게 서방 영화 중에 무엇을 봤냐고 묻자 감독이 패트리어트, 쉰들러 리스트, 그리고 대부를 봤다고 대답한다.
- 촬영장에 소재 제공자인 리어폴드 페퍼버그의 배우자이자 본인 또한 당시 생존자인 밀라 페퍼버그가 방문한 적이 있는데, 스필버그가 아몬 괴트로 분장한 레이프 파인스를 소개하자, 실존한 인물의 끔찍한 기억이 떠올라 50년 가까이 지났어도 공포를 주체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면서 주저앉기 직전까지 갔다. 이 때문에 스필버그는 그녀를 부축해줘야 했다고. 수용소를 재현한 세트장에서 슈츠슈타펠 장교복을 입은 사람과 마주치는 상황이 PTSD를 불러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단순 해프닝이지만 전쟁 피해자가 가진 트라우마는 평생 간다는 걸 보여준 슬픈 일화이다.
[1] 영화 초반 파티 장면에서 지배인으로 카메오 출연 하며, 이 사람도 홀로코스트 생존자다.[2] 피아니스트 또한 제작했다.[재개봉] [재개봉] [재개봉] [재개봉] [7] 정확히 명단에는 1,098명이 기록되었고 이후 150여 명을 더 구해 1,200여 명을 구해냈다. 때문에 쉰들러의 묘비에도 1,200명이라고 적혀 있다.[8] '쉰들러 리스트'는 총 7부가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남아있는 명단은 5부로 미국 워싱턴 홀로코스트 기념관과 독일 코블렌츠의 연방 기록 보관소가 각각 1부,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2부, 개인이 1부를 소장중이다.[9] 영화의 제목이 원작 소설과 다른 이유는 방주(Ark)에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보니 쉰들러 리스트가 종교 영화로 취급받고, 종교적으로 논란이 될 것을 우려하여 쉰들러 리스트로 제목을 정하였다고 한다.[10] 가끔씩 인터넷 중고서점에 물량이 풀리기는 한다.[11] 폴란스키는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폴란드계 유대인이다. 그가 10살이 되던 해인 1943년, 본인은 유대인 집단 거주구역인 게토의 폐쇄 과정에서 간신히 게토를 빠져나가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을 피할 수 있었으나, 어머니는 붙잡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살해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 전후 살아남아 아들과 상봉했다.[12] 그리고 폴란스키는 후에 '피아니스트'로 자신만의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만든다.[13] 스필버그의 부모는 우크라이나 유대인이며 16~20명의 친척을 홀로코스트로 잃었다.[14] 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의 여주인공이다. 스필버그에게는 두 번째 아내로, 영화 제작이 끝나자마자 결혼하여 현재까지 잘 살고 있다.[15] 이 소녀를 연기한 배우는 지금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구호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16] 폴란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폴란드계 미국인.[17] 촬영 시기와 나이를 보면 이미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8] 아이러니하게도 2018년에 개봉된 '오퍼레이션 피날레'에선 유대인 학살에 앞장섰던 나치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을 연기하면서 홀로코스트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 연기해본 셈이 되었다.[19] 상술했듯이 본 영화의 원작 소설을 저술할 때 작가에게 증언을 해준 사람이다. 영화에서는 폴덱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게토 초창기에는 암시장에서 쉰들러가 주문한 물건들을 암시장을 통해 구해주는 역할을 했으며, 크라코프 수용소에서는 아몬 괴트의 운전기사이자 정비사로 일했다.[20] 마틸다에 허니 선생으로 나온 배우다.[21] SS- und Polizeiführer, SSPF[22] 오스카 디를레방어와 함께 읽어보면 알겠지만 인간말종 범죄자들만 모아둔 악명 높은 부대이다.[23] 외래어 표기법상 "오스카 신들러"지만 사실상 "쉰들러"로 자리잡았다.[24] 유대인 평의회. 당시 게토에서 유대인들을 대표하던 회의체.[25] 암시장에서 활약하던 폴덱 페퍼버그(Poldek Pfefferberg) 등 여러 사람과 손을 잡고 당시 구하기 힘들던 생과일이나 고급 주류, 담배, 초콜릿, 통조림, 나일론 스타킹 등을 암시장에서 구해 선물해 주고, 각종 파티에 참석해 눈도장을 찍는가 하면, 비서를 고용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젊은 여성들을 고용한 뒤 파티에 데리고 가 이들을 고위 관료와 군인들에게 에스코트 식으로 붙여주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하였다. 실제 역사에서도 쉰들러는 어마어마한 양의 뇌물을 바쳐 각종 계약을 따냈다. 여담으로 폴덱 페퍼버그는 쉰들러 리스트의 모티브가 된 서적 "쉰들러의 방주"의 저자 레오폴트 페퍼버그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26] 여담으로 당시 나일론은 상용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그 적은 양도 전부 낙하산 줄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기에, 나일론은 배급제로 유통될 만큼 고급 사치품이었다.[27] 노동 능력이 있다고 증명되는 사람들에게만 이른바 "블라우샤인"(Blauschein, 푸른 카드)이라 불리던 노동 허가증이 발급되었고, 이게 없는 사람들은 죄다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가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블라우샤인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필요했는데, 슈테른은 직접 인쇄기로 가짜 서류를 찍고 쉰들러 공장의 이름을 빌려 근로 증명서를 여럿 찍어내 퍼트렸다. 이 와중에 정신 못 차리고 이상한 소리를 해서 슈테른의 골치를 썩이는 몇몇 사람들은 덤 이후 이들은 법랑 공장에서 직접 여러 용기를 찍는 법을 배우게 되어 나름 성공적으로 공장 노동자로 편입된다.[28] 위조 서류 제작이 들킨 건 아니고, 실수로 집에 신분증과 서류를 두고 왔다가 검문에 걸려 바로 수용소행 열차로 끌려간 상황이었다. 뒤늦게 이를 안 쉰들러가 기차역에 직접 찾아가 책임자들에게 "슈테른을 못 찾으면 당장 내일 자로 동부 전선으로 발령날 줄 알아라"라며 협박해, 열차가 출발하고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직전 짐짝처럼 수용된 수많은 유대인들 중 슈테른을 간신히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29] 영화상에서 나치는 유대인들에게 다른 곳으로 이주될 뿐이며, 짐가방은 다음 열차편으로 갈 예정이니 짐가방에 이름을 잘 적어두는 걸 잊지 말라고 계속적으로 고지한다. 하지만 정작 열차가 떠나자, 이 수많은 짐가방들은 전부 기차역 한쪽 사무실로 옮겨져 나치의 손에 개봉되어 값어치 있는 것들이 전부 분류되고 약탈당한다. 즉 말이 이주지 사실상 이들이 전부 절멸 수용소로 향함을 암시한다. 사무실에는 약탈한 보석을 감정하는 유대인들이 몇 갇혀 있는데, 이들 앞에 수많은 금니가 감정 대상으로 배부되며 앞서 떠난 이들의 운명을 암시한다.[30] 여담으로 이 기차역 장면에서 자세히 보면 어느 여성이 자신의 짐가방에 분필로 "Schneider, Sarah"(슈나이더, 사라)라고 적는 모습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데, 이 여성은 영화 초반부 크라쿠프 기차역 장면에서 자신의 이름을 등록하던 여성이다. (당시에는 소녀) 아래의 "빨간 코트를 입은 소녀"가 생각나는 장치.[31] 영화에서 묘사된 괴트의 저택과 발코니 자체는 존재했다. 단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실제로는 지형 문제로 인해 발코니에서 유대인들을 바로 사살하는 건 불가능했고, 괴트는 보통 직접 저택에서 나와 유대인들을 사살했다고 한다. 보통 괴트가 총을 든 채 티롤식 모자(Tyrolean hat)를 쓰고 저택에서 나오면 유대인 사냥이 시작된다는 뜻이었기에, 주변의 유대인들은 숨거나 도망쳤다고 한다.[32] liquidation. 게토를 비우는 행위로 수용된 유대인들의 재산을 전부 몰수하고 수용소로 끌고가며 게토를 폐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와중에 일어난 대규모 학살은 덤. 일부 유대인들은 게토 내 숨었으나, 그날 밤 다시 한 번 독일군이 들이닥쳐 남은 사람들을 전부 이유 불문 사살해 버린다.[33] 당시 아내와 함께 승마를 하러 나왔다가 직접 사람들이 사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여기서 그 유명한 "빨간 코트를 입은 소녀"가 등장한다.[34] 여성이 찾아와 호소하고 간 뒤 쉰들러는 슈테른에게 내가 무슨 자선사업가냐고, 나도 위험해진다고, 알고 보면 괴트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며 반쯤 자신을 합리화하듯 투덜거린다. 괴트도 죽이는 걸 즐기는 건 아닐 거라는 쉰들러의 말에, 이에 슈테른은 조용히 괴트가 수용자 한 명이 도망가자 괴트가 수용자들을 전부 줄세운 뒤 한 명 걸러 한 명씩, 그렇게 총 25명을 권총으로 즉결 처형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일화를 전해준 생존자는 자신의 오른쪽과 왼쪽에 서 있던 사람이 뒤통수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광경 속에 서 있어야 했다. 양심에 찔린 듯 쉰들러는 그래서 뭐 어쩌라는 식으로 더 큰소리를 내지만,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풀어 슈테른에게 건네준다. 다음 날 수용자들을 관리하던 카포는 쉰들러의 손목시계를 찬 채 수용자 둘을 따로 불러내고, 이 둘은 쉰들러의 공장으로 배치받게 된다. 당시는 쿼츠 시계가 상용화되기 전이었기에, 손목시계는 뇌물로 사용될 정도로 가치가 있었다.[35] 실제 역사에서도 카틴 학살의 매장지가 발각된 이후 나치는 증거 인멸을 위해 매장한 유대인들의 시체를 다시 파내 전부 불태웠다. 이 장면에서 쉰들러는 자신이 이전에 봤던 빨간 코트를 입은 소녀의 시체가 수레에 실려 불길로 끌려가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된다.[36] 이 대목이 쉰들러가 진정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처음에는 유대인들을 노동인력으로 부려먹으려고 공장에 데려왔을 뿐이었고, 이후에 자신의 노동자들을 구출한 것 역시 학살을 목격하며 느낀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 그리고 자신과 정이 든 슈테른을 비롯해 자신이 알고 지내던 사람들까지 죽게 내버려둘 순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이 시점 이후부터는 쉰들러 자신과 상관없는 타인까지도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것을 감수하고 구하려 하고, 탐욕만을 추구하던 초반과는 다르게 종국에는 그들을 구하는데 모든 것을 바치게 된다.[37] 당연한 말이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수용자들을 구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구해낼 사람을 선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38] 다만 실제 역사에서나 영화에서나 다른 기업인들을 설득하는 것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39] 이는 실제 역사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상황이 역전되어 회계사로서 적자를 걱정하는 슈테른과 비용 걱정 따위는 일단 제쳐두라는 쉰들러의 대화가 백미.[40] 당시 공장 현장에는 나치 독일군도 있었는데 이들은 평소 쉰들러가 유대인 노동자들은 자신의 사유재산이므로 절대로 해칠 수 없다고 강조하며 보호했기에 원래도 쉰들러의 유대인들을 해치지 못했다. 당시 독일군의 명령에 의해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사살하여 증거를 없애란 최후의 명령을 받았지만 쉰들러는 이번에도 그들을 설득해 말린다.[41] 쉰들러의 대사에 따르면 둘이 힘을 합치면 4천 명을 구해낼 수 있었다. 만약 그 사람이 쉰들러의 설득에 응해 둘 다 성공했다면, 쉰들러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했다고 해서 역사에 더 위대한 사람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쉰들러가 1100명을 구했으니, 3천 명 가까이 구한 그 공장주가 더 주목을 받게 되는 건 당연하다.[42] 독일 배우로, 더 씽에서 초반에 개를 추격하던 노르웨이인 역할로 나온 적이 있으며, 24년 뒤 나치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설정의 대체역사물 게임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에서 아돌프 히틀러를 연기한다. 또한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에 마드리갈이라는 기업의 수장으로, 마약 사업에 뒷돈을 댄 사실이 밝혀지자 화장실에서 자살하는 역으로도 출연했다.[43] 후요바(hujowa)는 폴란드어로 남성의 성기를 비하하는 욕설로, 후야르라는 성씨와 비슷하게 들린 점에서 착안해 붙은 이름이다.[44] 출처: Teege, Jennifer; Sellmair, Nikola (2013). Amon: Mein Großvater hätte mich erschossen. Reinbek bei Hamburg: Rowohlt.[45] 친위대보다 훨씬 어두운 검은색 흑복인데 군모에 아무 표식도 없는 자들이다.[스포일러] 다만 이것을 제작할 당시에도 의식했는지, 쉰들러의 유대인들이 다시 열차에 탑승하는 장면과 함께 지하 가스실로 걸어내려가는 듯한 앳되어 보이는 여성과 노인들의 모습, 그리고 꺼질 기색 없이 연기가 솟구치는 아우슈비츠의 굴뚝을 비춰준다. 이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안도하다가 순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는 평이 많다. 왜냐하면 노동력이 없다고 판단된 아이와 여성, 노인들은 아우슈비츠 도착 즉시 가스실행이라서다. 이 장면에 앞서 샤워실에서 살아남아 안도하며 나오던 쉰들러의 유대인들이 지하 가스실로 걸어내려가는 다른 유대인들을 바라보는 장면도 나오는데, 처음에는 웃는 낯빛이다가 걸어내려가는 담장 너머 동포들의 운명을 짐작하기라도 한듯 점차 침통해지는 표정이 백미다.[47] "팔데리, 팔데라(Valderi, valdera)"라는 후렴구로 유명하다.[48] 의미심장하게도 이 부분은 영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나온다.("Was ist das? Ist bach?" "Nein, Mozart")[49]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과 경악하며 달려오는 엄마들의 모습의 대비 때문에 어린 자녀와 시청하는 부모들은 이 장면을 설명하는데 큰 곤란을 느낀다고 한다. 애초에 이 영화는 15세 이상 관람가로, 해당 장면에선 신체검사 때문에 옷을 전부 벗어야했던 유대인들이 남녀 가리지 않고 전부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알몸으로 나오기까지 해 너무 어린 자녀랑 같이 보기엔 좀 곤란하긴 하다.[50] 쥐의 작가 아트 슈피겔만의 단편 만화로, 정신이 불안정한 어머니의 죽음과 그에 대한 자신의 죄책감을 다룬다. 쥐 단행본에도 전체 내용이 삽입되었다.[51] 쉰들러의 공장의 회계를 담당한 이자크 슈테른은 1969년에 이미 사망해 당시 생존해 있던 이자크 슈테른의 아내 소피아 베켄로트와 극중 이자크 슈테른 역할을 맡은 벤 킹슬리가 참배 장면에 대신 등장한다.[52] 그 해에 피츠버그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여 해당 발언을 하였다.[53] 김길선 기자는 국방과학원 근무 시절에 이러한 시야 넓히기의 일환으로 007 시리즈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